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과 한 마리의 파리, 그리고 넛지 대북정책(Nudge Policy) > News Insight

영어로 팔꿈치로 슬쩍 찌르는 것을 넛지(nudge)라고 한다. 이 말은 행동경제학자인 리차드 탈러(Richard H. Thaler)와 캐스 선스타인(Case R. Sunstein)이라는 2명의 경제학자가 ‘넛지’라는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책으로 엮어 내면서 전 세계의 지식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개념이다. 보다 정확한 의미에서 넛지의 개념은 ‘변화를 유도한 부드러운 개입’이란 의미이며 ‘행위자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게 무엇인가를 하게 되는 상황’을 뜻한다. 

말이 변화를 유도한 부드러운 개입이지 그 개입이 어디 쉽겠는가? 소위 상대방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을 변화로 유도해 낸다는 의미의 행동을 한다는 것은 거의 바람처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물을 흔들리게 함으로써 바람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것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바람의 존재는 무엇으로 확인하는가? 소리? 태풍? 허리케인? 쓰나미? 낙엽의 떨어짐? 돛단배? 그런데 바람의 존재와 실체는 진정 보이지 않고 바람의 힘에 의한 사물의 동작을 통해서만 바람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은 사물의 식별력, 인식력, 존재력에 대한 과학적 한계가 아직도 얼마나 큰 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 세 가지 부분은 철학적 영역임과 동시에 과학적 영역이기도 하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볼 수 없는 것은 공기, 산소, 바람과 같은 기체(氣體)류 들이다. 나머지인 고체, 액체는 거의 다 볼 수 있다. 바로 넛지란 개념은 기체의 한 종류인 산소처럼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수소폭탄이나 가스처럼 사람을 죽이기도 할 수 있다. 단 보이지 않게.

우리말에 ‘봄날 가랑비에 옷 젖듯이’라는 말이 있다. 비를 맞은 사람은 그 양이 너무 적기 때문에 옷 젖는 줄을 모른다. 그러나 비 맞은 양이 쌓이면 옷이 축축해져 자신이 많은 비를 맞았다는 것을 그제야 인식하게 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넛지와 관련된 가장 유명한 사례로는 고속버스 휴게소와 같은 곳에 있는 하얀 타일의 ‘남성소변기에 그려진 아주 작은 검정색 파리 그림’이 거론된다. 보통 사람들은 소변기 앞에 ‘일보 전진은 역사의 진보’, ‘한 발짝 더 다가 가시오’라고 써진 글귀를 봐도 글씨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변기에 작은 파리 한 마리를 그려 놓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들은 소변기에 그려진 작은 파리를 맞히기 위해 한 발짝 다가 가서 볼 일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알아서 ‘정조준’을 하게 된다. 이처럼 넛지의 기획설계사들은 애써 말하거나 강요하지 않아도 스스로들 알아서 한 발짝씩 더 소변기 가까이 다가 가도록 사람의 행동을 변화시킨다. 

나는 이 넛지의 행동경제학을 보면서 ‘한국의 대북 외교정책’을 떠올렸다. 북한을 군사적으로 폭격해서 핵시설을 폭파할 수 없다면 우리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그러면서 어쩌면 이 넛지 전략이 최선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남북 간의 충돌을 피할 수 있고 충돌에 따른 비용과 불행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에게 애써 강요하지 않아도 북한이 스스로 우리의 의도된 전략과 정책대로 변화된 행동을 추구할 수 있도록 유도해 낼 수 있는 ‘소변기의 한 마리 작은 파리’를 우리가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 작은 파리를 찾아내는 것이 곧 북한을 보이지 않게 움직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 핵심이다. 그것을 현 문재인 정권은 알고 있을까? 모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정은을 변화시킬 이 작은 한 마리의 파리를 알고 있다. 그것은 어이없게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통해 얻은 영감의 한 파편이다. 이 파편 조각은 작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메시지가 될 수 있고 그 메시지는 바로 ‘게티스 버그의 현장’이었다. 

1863년 11월 19일 미국의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게티스버그로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초원과 숲, 전원의 농촌 마을과 구릉지 같은 평지의 언덕들이 풍광을 이루고 있는 가장 미국적인 전원의 시골이었다. 그렇지만 남북전쟁 당시 이곳은 전쟁의 살육과 광란의 총성이 광풍을 일으키며 온 들판을 피로 물들인 미국 현대사의 비극의 역사적 현장이었다. 링컨이 게티스버그 연설을 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기 넉달 전만해도 이곳에서는 무려 5만 명이나 죽거나 상처를 입은 남북전쟁 최대의 격전지였다. 우리나라로 말한다면 백마고지와 같은 혈전지대였다. 하지만 게티스버그의 연설이 중요한 것은 게티스버그의 연설 이후에도 약 2년 간의 남북전쟁이 벌어졌지만 이 연설로 게티스버그의 전투는 남북전쟁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티스버그에 도착한 링컨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짧은 3분 간의 게티스버그 연설로 가장 감동적이면서도 가장 기념비적인 연설을 했다. 그는 비록 이 연설의 문맥을 성경에서 얻은 것이긴 하지만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말을 남겨 인류 민주주의 역사상 가장 탁월한 연설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이 호소력이 컸던 것은 메시지의 내용도 좋았지만 다름 아닌 그가 메신저로서 ‘게티스버그’의 전투현장에서 그 연설을 했기 때문이었다. 링컨이 특정한 현장, 과거의 기억이 그대로 묻어 있는 생생한 전투의 현장에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서 오늘의 비극에 종지부를 찍자고 호소하며 미래로 미국의 앞날을 끌고 나갈 수 있는 파워풀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힘의 원천은 결국 ‘역사적 현장’이었다. 

그의 한 마디는 비극적인 전쟁의 현장에서 탄피를 주워 드는 행위와 비교할 수 있다. 링컨이 아무리 많은 말을 한다 해도 누군가의 몸을 관통했을지 모를 탄피를 직접 보여 주는 것보다 전쟁의 참상을 강렬하게 전달할 수는 없다. 탄피는 곧 그 자체로서 전쟁이라는 과거의 사건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지만, ‘탄피를 주워 드는 행위’를 함으로써 미국의 역사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마음을 ‘넛지’했다. 이것이 곧 메시지의 힘이다. 
 

한국의 대북정책도 북한에 대한 전쟁선언을 선포할 각오를 할 수 없고, 일방적으로 대북 지원외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한 마리의 파리를 찾아서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 한 마리의 파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우리도 북한의 체제를 보장한다는 밑그림이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없다면 한국전쟁의 비참한 남북참상의 그림을 김정은에게 보여 줘야 한다. 그리고 무수한 북한군을 죽인 국방군의 탄피와 무수한 한국군을 죽인 인민군의 탄피 하나씩을 들고서 이것들을 김정은에게 보여 줘야 할 것이다. 그런 다음 북한이 아무리 핵을 가져도 남한의 핵전력과 기술이면 불과 6개월 이내에 그에 버금가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는 현실의 가공할 핵무기 제조 능력을 보여 줘야 한다. 그래야 김정은의 마음을 ‘넛지’할 수 있고,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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