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 국가 흥망의 교훈 #13 : 여광 일인국가 후량(I)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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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
(39) 여찬의 실정과 여초의 쿠테타(AD401)
후량 주군 여찬은 집권하자마자 술과 여자를 가까이 하면서 정치를 등하시 하였다. 태상 양영이 그런 여찬을 안타까이 여기며 간언을 올렸다.
“ 폐하께서는 하늘의 뜻에 부응하여 천명을 받았으니
당연히 도를 가지고 정치를 올바로 하셔야 할 것입니다.
지금 강토는 날로 쪼그라들어
두 고개(홍지령과 언지산) 사이의 땅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선조의 대업을 펼칠 생각은 않고
날이면 날마다 여자와 술과 사냥에 빠져 계시니
장차 위태로움이 올까 크게 걱정됩니다.“
여찬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여전히 환락에 빠져 들었다. 이 때 반화(감숙성 영창현)지역을 다스리던 여초가 멋대로 선비족을 공격하였는데 선비족 추장 사반이 동생 걸진을 여찬에게 보내 억울함을 호소하게 했다. 여찬은 즉시 명령을 내려 여초와 사반을 동시에 조정에 들어오게 하였다. 여찬이 부르자 여초는 두려웠다. 몰래 수도 고장(감숙성 무위) 들어와 전중감 두상과 비밀 결탁을 맺었다. 그리고는 여초가 여찬을 알현했는데 주상 여찬이 여초를 몹시 나무랐다.
“ 경은 형제관계를 빌미로 나를 속이다니
경의 머리를 베어야 나라가 안정되겠구나.“
여초가 어쩔 줄 모르며 사과했다. 여찬은 애초에 여초를 죽일 생각은 없었고 다만 따끔하게 훈계를 할 생각이었다. 곧이어 여찬이 여러 신하들과 주연을 베풀었는데 여초의 형인 여륭이 여찬에게 여러 번 술을 권하는 바람에 여찬이 몹시 취하게 되었다. 여찬의 수레가 궁궐의 작은 문을 통과할 수 없게 되자 시위장수가 칼을 내려놓고 수레를 미는 동안에 여초가 잽싸게 땅에 놓여 진 칼을 잡아서 여찬을 내리쳤다. 놀란 여찬이 수레에서 피하며 내려와 여초를 웅켜 잡으려 하다가 가슴에 칼이 찔렸다. 수레를 밀고 있던 시위장수 두 명이 황급히 여초를 제압하려 했으나 무기도 없었으므로 여초의 칼에 죽고 말았다.
(40) 여찬의 부인 양씨의 절개(AD401)
곁에서 이 사태를 목격한 여찬의 왕후 양씨가 근위병에게 여초를 토벌하라고 명령을 내렸지만 전중감 두상이 즉각 중지시키고는 근위병의 무장을 해제했다. 장군 위익다가 들어 와 칼에 찔린 여찬의 목을 베었다. 경악한 양왕후가 이렇게 외쳤다.
“ 사람이 죽었으면 이미 흙이나 돌과 같은 데
어찌 그 육체를 다시 해치려 하는가?“
위익다는 양왕후에게 욕을 한 뒤 여찬의 목을 들고 돌아다니며 말했다.
“ 여찬은 먼저 돌아가신 황제의 명을 어겼소.
태자(여소)를 죽이고서 자립했으며 거칠고 포악하였소.
반화태수 여초는 인심을 따라서 그를 제거하였고
종묘를 안정시켰으니
우리 모든 신하들은 함께 즐기고 축하해야 할 것이오.“
여찬의 숙부, 즉 여광의 형제인 파서공 여타와 농서공 여위는 모두 고장의 북성에 있었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서 유세했다.
“ 여초가 반역의 난을 일으켰으니
공은 주상 여광의 동생들로써
대의에 기탁하여 그를 토벌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찌 성공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계십니까?“
여위가 그 말에 자극을 받아 여타와 함께 군사를 일으키려고 하자 여타의 처 양씨가 나서며 여타에게 말했다.
“ 여위와 여초는 모두 형제의 아들인데
어찌 여초를 버리고 여위를 도와 재앙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하십니까?“
여타는 곧바로 여위에게 가서 말했다.
“ 여초의 거사는 이미 성공했소.
무기고를 장악하고 또 모든 정예군사를 손아귀에 넣은 셈이요.
승산도 없을뿐더러 나는 늙어서 힘이 없소.“
여초의 동생 여막이 여위에게 다가와 말했다.
“ 역적 여찬이 형제를 죽였으므로
여륭과 여초가 인심을 좇아서 그를 토벌했습니다.
그것은 밝으신 공을 세우려 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명공께서야말로 돌아가신 주공(여광)의 맏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의심한단 말입니까?“
여위는 그 말을 믿고 여초와 여륭에게 사람을 보내 신뢰의 뜻을 표한 뒤 홀로 말을 타고 궁궐로 들어갔다. 여초는 즉시 여위를 잡아 죽였다. 그리고는 왕위를 여륭에게 맡겼다. 여륭이 사양했지만 여초가 말했다.
“ 지금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기색인데
어찌 도중에 내린다는 말이요?“
마침내 여륭이 왕위에 올랐다.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신정(神鼎)으로 고쳤다. 여초는 모든 군사권을 장악하는 도독중외제군사가 되었다. 여찬의 왕후 양씨가 궁궐을 나갈 때 진기한 보석을 훔쳐 나갈까 염려된 여륭 형제가 몸과 짐을 수색하게 했다. 양씨가 말했다.
“ 너희 형제들은 의롭지 못하여 서로 죽였는데
나 또한 곧 죽을 몸인데
보석이 무슨 소용이 있어서 숨겨서 나간다고 하느냐!“
여초가 옥새가 있는 곳을 물었지만 양씨는 이미 부셔 버렸다고 하면서 가르쳐주지 않았다. 양씨는 원래 미색이 뛰어났으므로 여초가 탐을 내어 양씨의 아버지 우복야 양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 황후가 만약 자살한다면 그 우환은
온 가족에게 끼칠 것이니 그리 아시요! “
양환이 여초의 엄포를 양씨에게 전해주자 양씨가 말했다.
“ 대인께서는 딸을 팔아서 저족(여씨)에게 주어
부귀를 꾀하시는데 한 번 그리 한 것도 모자라 또다시 그리 하시려 하십니까?“
마침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호를 목후라고 내렸으며 양환은 후환이 두려워 독발이록고에게로 도망갔다. 독발이록고는 그에게 좌사마를 내렸다. 하서왕 독발이록고는 후량의 여륭을 공격하여 크게 이겼으며 2천여 호를 빼앗아 들어왔다.
(41) 북량 저거몽손의 쿠테타(AD401)
북량왕 단업은 용렬한 서생에 불과했다. 정치가 매끄럽지 못했고 군사는 형편없었다. 처음부터 단업을 도와 나라를 일으킨 공신들도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북량의 인심과 실세는 흉노족인 저거씨에게로 쏠리고 있었다. 그 핵심에 저거몽손(AD368-AD439)이 있었다. 차츰 민심이 멀어지는 것을 느낀 단업은 저거몽손을 제거할 생각이 굳어져 갔다. 평소 저거몽손을 멸시하고 모욕하던 문하시랑 마권을 수도 장액태수 저거몽손의 후임으로 임명하자 저거몽손 또한 단업에게 마권의 부적절함을 고해바쳤다.
“ 천하에 근심해야 할 사람은 오직 마권 뿐 입니다.”
용렬한 단업은 겁에 질려 저거몽손 그 한마디에 마권을 죽여 버렸다. 저거몽손이 사촌 형 저거남성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 단공은 분별력과 결단력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혼란을 다스릴 능력도 없고 통솔력도 없습니다.
단업에게 충성하던 색사와 마권이 제거되었으니
이제 제가 일어나 그를 제거하고 형님을 세우려 합니다.“
저거남성이 이렇게 대답했다.
“ 원래 단업은 외로운 나그네에 불과했다.
우리 집안이 추대하였으므로 우리 형제 믿기를 물 속 고기와 같았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그렇게 믿는데 도모하는 것은 상서로운 일이 아니지 않느냐?“
저거몽손이 옳다고 느껴 자진하여 서안(감숙성 산단현) 외지로 나가겠다고 자원했다. 단업도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다. 저거몽손이 사촌 형 저거남송과 같이 난문산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약속하고서는 몰래 사마 허함을 시켜서 단업에게 알리도록 했다.
“ 저거남성이 날을 잡아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만약 난문산에서 제사를 지내겠다고 보고하면
왕께서는 그것이 반란의 날인줄 아십시오.“
며칠 뒤 정말로 저거남성이 단업에게 난문산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알려왔다. 단업은 죽각 군사를 보내 저거남성을 잡아들였다. 억울한 저거남성이 단업에게 이렇게 말했다.
“ 저거몽손이 전에 반란을 일으키자고 했지만 인륜을 들어서 제가 반대했습니다.
다만 제 동생이 한 일이라서 감추어 두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있으므로 부하들이 따르지 않을 것을 두려워 한 저거몽손이
저를 죽이고자 이런 계략을 세운 것이 분명합니다.
왕께서는 제가 죽었다고 거짓으로 말한 다면
저거몽손은 저의 죽음을 핑계로 대고 분명히 군사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 때 저를 보내시면 분명히 반란은 실패할 것입니다.“
단업이 그 말을 믿지 않고 저거남성을 죽였다. 저거몽손이 울면서 무리들에게 말했다.
“ 끝없는 충성심으로 단업을 보필하였으나
형님 저거남성을 이유없이 죽였다.
제군이 원수를 갚지 않으면 누가 갚겠는가? “
처음에는 나라 위세가 미약하였지만
이제는 단업과 같은 용렬한 군주가 해결할 수 없으리만치 나라가 커졌다.“
저거남성은 평소에 군사들의 민심을 깊이 얻고 있던 터라 만 명 이상이 몰려들어 복수를 외쳤다. 그 위세에 눌린 여러 장수들과 강족, 호족들이 저거몽손에게 귀순해 왔다. 단업은 우장군 전앙에게 저거몽손을 방어할 것을 요청했으나 전앙은 부대를 이끌고 저거몽손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단업의 거의 모든 수하 장수들이 저거몽손에 귀순하자 수도 장액은 그냥 허물어졌다. 단업이 저거몽손에게 당부했다.
“ 나는 혈혈단신이요.
그대 가문에서 추대 받아 이까지 왔으니 내 목숨을 구해주어
동쪽으로 가서 가족을 보게 해 주시오.“
저거몽손은 즉시 단업의 목을 베었다. 사마광은 단업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 단업은 유학자로써 평소에 어른스럽고 의젓했다.
그러나 권모와 책략이 없고 법에 위엄도 없어서
부하들의 기강이 무너졌고 해이해 졌다.
게다가 무당과 점(무격,巫覡)을 지나치게 믿었기 때문에 패배에 이르렀다.
(자치통감 권112)“
저거남성의 아들 저거부점과 친척 저거구뢰는 군사를 이끌고 남량의 독발이록고에게 항복했다. 양중용 등 저거몽손의 부장들은 저거몽손의 인물됨과 리더십을 인정하여 대도독으로 추대했다. 저거몽손은 대사면령을 내리고 중요 직책에 측근과 친척을 배치했다. 저거몽손이 북량을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그림] 후량(AD386-AD403) 왕조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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