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보조금과 예산전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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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7월 18일 국무회의에서 “이권 카르텔, 부패 카르텔의 정치보조금을 전부 삭감하고 그 재원으로 수해복구와 피해보전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언급하였다. 지난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정치보조금이란 용어를 새롭게 사용하였는데 또 사용한 것이다. 당시에는 “정치보조금은 전면 삭감하고, 경제보조금은 잘 살리고, 사회보조금은 효율화·합리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여당 대표들은 이 용어가 ‘쉽고 금방 이해가 되는 용어’로서 여야 예산전쟁에서 유리한 어젠다 세팅이라고 반색하였다. 감각적 판단이 무딘 학자들은 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예산전쟁의 현장에서 생사를 거는 정치인들은 금방 이해가 되는 듯하다.
정치보조금의 개념과 성격은 윤석열 정부의 예산전쟁 제1라운드에서 그 실마리가 있을지 모른다. 첫 예산안이었던 2023년도 예산안은 법정처리기일(12월 2일)을 훌쩍 넘긴 12월 24일에 국회를 통과하였다. ‘국회 선진화법’이 존중받기 시작한 2014년 이후 가장 지연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여야 합의의 진통이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진통의 이면에는 그간 ‘국회 몫’으로 여겨져 온 증·감액 규모에 대한 이견이 있었다. 야당은 예산안 중 1% 내외(약 5조 원)의 증·감액을 주장하였지만 여당은 0.5%만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이 전무하였던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며 여야가 증·감액을 통해 관행적으로 지역구 예산을 나눠 갖는 것이 문제라고 인식했다. 이 때문에 여야의 예산전쟁은 한층 더 증폭되었다는 분석이 있다.1)
윤석열 정부의 예산전쟁 제2라운드는 재정준칙 입법화 과정에서 발발하였다. 건전재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재정준칙의 입법화를 적극 추진하였다. 2024년 총선 일정을 감안한다면 2023년 상반기에는 입법절차를 완료해야 한다. 그런데 야당은 재정준칙보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통한 재정확대가 더 시급하다고 반대하고 있다. 특히 여당은 야당이 ‘사회적경제기본법’을 재정준칙 입법과 무리하게 연계한다고 비판하며, 이 법은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표밭인 운동권 시민단체에 퍼주기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2)
여야의 정치적 합의는 정책적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적 이익이 도사리고 있음을 이 두 차례의 예산전쟁이 잘 드러내고 있다. 제1라운드인 2023년도 예산안에서 국회는 대략 1,800개의 세부사업들을 증감 조정하였다. 예산항목은 피라미드 형태로서 장(분야), 관(부문), 항(프로그램), 세항(단위사업), 세부사업 등의 체계를 갖추는데, 국회의원들이 장, 관, 항의 정책기능별 예산배분보다 세부사업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연 이는 바람직한 행태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제2라운드인 재정준칙 입법화 과정에서도 정치적 이익은 강하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재정준칙은 재정운용을 자의적 재량에 맡기지 않고 명시적 규율로 전환하는 것이기에 그 대의명분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3)
이 때문에 야당은 재정준칙을 정면 반대하기보다는 ‘추경이 더 급하다’는 논리를 앞세우고 또 ‘사회적경제기본법’이 시급하다며 어깃장을 놓고 있다. 재정준칙 논란의 이면에 ‘운동권 시민단체에 퍼주기를 하겠다’는 정치적 이익이 있다는 여당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보조금’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 두 차례의 예산전쟁에서 얻은 인식인지 모를 일이다. 민주적 선거에서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이들에게 인사와 예산상의 이익을 제공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기본 습성이다. ‘정치보조금’이란 정치인들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지지층을 위한 예산사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보조금’을 어떻게 인식해야 할 것인가? 민주주의를 위해 불가피한, 즉 여야 정치인들의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불가피한 ‘거래비용’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기득권에 기초한 악행이기에 전면 삭감하는 것이 마땅할 것인가? ‘정치보조금’의 설명에 내재되어 있는 윤 대통령의 인식은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정치적 이익을 위한 예산사업’은 곧잘 ‘쪽지예산’으로 불리었다. ‘쪽지예산’이란 국회 예산심사에서 공식적인 검증 없이 반영되는 선심성 끼워넣기 증액예산이라 할 수 있다. 밀실에서 구두로 이루어지는 쪽지예산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국회의 정당한 예산심사 절차에 이를 반영하자는 입법 노력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국회의 예산증액은 서면질의 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공식 절차를 거친 증액예산을 ‘쪽지예산’이라고 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치적 이익을 위한 예산사업’을 ‘귀표(earmarks)’라고 부른다. ‘귀표’라는 용어는 공유지에서 풀을 뜯는 자신의 가축을 구분하고자 가축의 귀를 특정한 방식으로 자르는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귀표예산’은 정치인이 국가 전체의 보편적 이익보다 특수한 지역이나 집단의 편파적 이익을 위해 자신이 찜한 예산을 의미한다. ‘귀표예산’은 미국에서 종종 ‘돈육덩어리(pork barrel)’로도 불리는데, 주인이 소금에 절인 돼지고기를 던져주면 노예들이 서로의 몫을 다투는 모습에 비유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관리예산처(OMB)는 ‘귀표예산’을 경쟁절차 또는 전문성에 기반하여 사업예산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하는 행정부의 법적 헌법적 책임을 우회하고자 의회가 특정 지역이나 수혜자를 지정하여 편성하는 예산이라고 규정하고 있다.4) 2007년 미국 의회는 ‘귀표예산’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이의 공개 규칙을 채택하며 공식화하였으나, 2011년에는 귀표예산을 금지하는 의회규칙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귀표예산’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그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여 양성화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미국과 달리 대부분의 국가들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세부사업 예산편성에 의회가 개입할 수 없도록 함으로써 ‘귀표예산’ 또는 ‘쪽지예산’을 원칙적으로 원천 금지한다. 영국은 300여년 전인 1706년에 이미 의회의 의사규칙(Standing Orders)을 통해 세부사업 예산편성에 대한 의회의 개입을 금지하였고, 프랑스는 1958년 제5공화국 헌법에서 개별 국회의원들의 예산 제안을 금지하고 있다(헌법 제40조). 대신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회의 역할은 예산총량과 재원배분 등 정책적 이슈에, 그리고 세부사업에 대해서는 그 집행의 사후감시에 집중하고 있다.
‘정치보조금’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식은 영국과 프랑스의 예산제도에 더 부합한다. 국회의원들이 특정 지역과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세부사업 예산편성에 더 관심을 가진다면 국가의 보편적 이익은 저해될 수밖에 없다. “국회는 전략적 관점에서 거시예산 심사에 주력하고, 미시예산에 대해서는 행정부의 편성권을 존중하여 사후점검과 감독에 주력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필자로서는 윤 대통령의 인식을 지지한다. 5)
그러나 여야의 정치적 이익을 적절히 관리하는 방법으로 여야의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 냈던 기존의 정치관행을, 윤 대통령이 돌파해낼 수 있을 것인지 그 귀추가 자못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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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아일보, “지역구 챙기기용 ‘정부예산 감액’ 대치…野 1%, 與 0.5%”, 2022년 12월 19일, A6.
2) 동아일보, “한시 급한 재정준칙 입법, 6월로 넘어가 … 與 ”野 법안인질국“ 野 ”민생 추경 우선“, 2023년 5월 27일, A4.
3) 언론사에 기명컬럼을 투고한 재정학자 거의 모두는 재정준칙 입법화에 찬성하고 있다.
4) Wikipedia, “Earmark(politics)” 참조.
5) 옥동석, “재정에 대한 국회의 역할,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뉴스인사이트, 2023년 4월 30일, 국가미래연구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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