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정부에 바란다 <4>금융정책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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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과 금융은 수레의 두 바퀴이기 때문에 한 바퀴가 너무 크거나 작아도 문제가 된다. 견제와 균형을 통해 민주주의가 창달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제조업과 금융 간에도 존재하고 있다. 제조업 일방주의는 생산설비의 과잉을 가져오고 지나친 금융 우선주의는 머니게임을 통한 투기바람을 초래한다. 제조업과 금융 사이에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갈 때 한국 경제는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 3만 달러, 4만 달러로 뻗어갈 수 있다.
현대전은 공군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 적진이 공군에 의해 거의 궤멸되면 육군이 적진을 최종 접수함으로써 전쟁이 끝나게 된다. 이에 빗대어 제조업과 금융이 흔히 육군과 공군에 비유되곤 한다.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그만큼 금융의 중요성이 증대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금융이 지난 5년 동안 거의 정체상태를 겪어왔다. 박근혜정부의 기술금융 내지 창조금융은 이제 그 존재감마저 찾을 수 없다. 또 금융이 독자성을 상실하고 손쉬운 경기활성화의 도구로 이용되었다. 부동산 경기활성화를 위해 부채주도성장에 치중하다보니 가계부채만 증가하였다.
더 나아가 금융개혁을 추진하였지만 근본적인 금융개혁 과제는 각종 논란이 예상된다고 기피하고, 지엽적인 문제에만 몰두해 개혁의 성과가 미미하였다. 이와 같이 국민이 느끼는 개혁의 체감도가 떨어지니까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개인종합자산관리라는 비과세 상품을 관 주도로 출시하였다. 이는 ‘국민 부자 만들기’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출발하였지만 저금리 기조 하에서 운용성과도 미미했고, 이로 인해 세제혜택이 가입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금융기관의 수수료로 지출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상품설계에 문외한인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사전에 예상됐던 부작용이었다.
이제 차기정부가 들어서면 금융에 대한 생각을 180도 바꿔야 한다.
첫째, 금융업을 규제산업으로 간주해 관 주도로 끌고 가려고 하지 말고, 민간의 자율과 창의를 최대한 고양시키는 방향으로 금융업을 접근해야 한다. ‘치(治)하기 위해’ 관이 존재하면 금융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제조업이 하드웨어라면 금융업은 소프트웨어다. 스마트폰에서 보듯이 소프트웨어는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를 정도로 혁신적이다. 관치에서는 관이 아는 만큼 금융회사의 활동을 허용하고, 또 새로운 것은 되도록 ‘내 임기 중에는 안 하겠다’는 성향이 있다. 따라서 금융혁신은 고사하고 관에 순치돼 특색 없는 고만고만한 금융사들만 있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의 삼성전자’를 기대하는 것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격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금융은 마치 말을 마구간에 가두어 놓고 사육사가 주는 먹이와 통제에 의해 사육하는 것과 흡사하다. 그러나 제대로 사육하기 위해서는 울타리가 쳐진 넓은 목장에서 말들이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으면서 스스로 성장하도록 해야 한다. 다만 말들이 울타리를 넘어가면 그때 비로소 사육사의 제재가 들어와야 한다. 이를 위해 전업주의(專業主義) 대신 겸업주의(兼業), 포지티브 시스템 대신 네거티브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둘째, 금융업을 내수산업에 머물러 있게 하지 말고 국제화를 서둘러야 한다. 적어도 동북아 금융허브라는 꿈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금융은 네트워크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금융이라는 네트워크의 일원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는 마치 우리가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인터넷이라는 네트워크에 접속해야 하고, 잠시라도 네트워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항시 휴대하는 이치와 같다.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가입자 수가 많을수록 인터넷 또는 휴대폰이라는 네트워크의 가치가 상승한다. 이를 네트워크의 외부성이라 칭한다. 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의 중심지가 되겠다는 의미는 우리가 동북아라는 지역의 금융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세계 금융네트워크에 연결하겠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문화적 배경은 금융한국으로 나아가는데 결코 호의적이지 아니하다. 제조업의 경우 젓가락 사용 문화가 반도체 산업 또는 생명공학에 유리하다고 하나 문화적 차이가 제조업의 육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그러나 금융은 위험을 먹고 사는 산업이고, 따라서 금융업에서 위험관리가 필수적이다. 위험관리는 문화 또는 가치관으로 자리매김해야 정착되는 것이지, 위험관리시스템 등을 구비한다고 위험관리가 정착되지는 않는다. 또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는 관행이 확립되어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판례에 의해 법체계가 확립되는 영미법 체계가 금융 산업에 유리하나 우리의 경우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금융 강국 논의는 구호에 그치고 있는 일회성 사업이다” 또는 “한국의 여건으로 볼 때 금융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론이 있는 반면 “향후 한국의 차세대 혁신산업으로서의 위치를 금융업이 차지하여야 한다.”는 당위론 사이에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금융 강국 논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매진하여야 한다.
셋째, 금융소비자보호가 금융의 최고선으로 자리매김하여야 한다. 금융소비자보호는 환경보호에 못잖은 중요한 문제이다. 환경보호는 국가뿐 아니라 민간차원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한 국가차원의 활동은 거의 없고, 또 금융소비자보호의 기치를 높이 들고 활동하는 민간단체도 별로 없다.
따라서 금융소비자보호를 전담하는 가칭 금융소비자보호원과 같은 조직의 구축이 시급하다.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금융소비자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금융소비자보호를 지향하여야 한다. 금융소비자 교육내용을 예시하면 장기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노후대비 재무 설계교육, 그리고 금융소비자가 이용 가능한 법적 구제제도 교육 등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금융소비자보호원은 금융소비자를 대신하여 법적 분쟁 조정 및 해결 활동을 수행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의 운용재원은 금융기관의 이익 중 일부를 출연하여 예산을 편성하되 향후 기금적립으로 운영의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것이다. 금융소비자보호가 제자리를 잡아가면 은행, 증권 및 보험에 대한 금융소비자의 신뢰도 자연히 올라간다. 금융소비자의 신뢰가 제고되면 금융시장의 활성화는 불문가지이다.
한국경제의 문제점 중 하나는 지나친 중국편중이다. 그럼에도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제조업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비해 확실히 비교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분야로 금융업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그저 희망으로 그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차기 정부의 획기적인 대책을 기대한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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