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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66) 나무의 역설 1: 나무는 알아서 뭐 하지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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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1년07월23일 17시00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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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된 말로 나무에 꽂힌 것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블로그 아이디로 ‘나무박사’라는 거창한 이름을 쓰는 제게 가장 당혹스러운 질문이 바로 이번 주 주제입니다. ‘김도훈의 나무사랑 꽃이야기’라는 난을 연재해 오다가 이달 초에 ‘나무와 경제’라는 시리즈를 올렸습니다만, 필자가 더 용감하게 도전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시리즈가 ‘나무의 역설’입니다. 가는 곳마다 나무를 관찰하다보니 우리가 가졌던 일반적인 상식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나무가 보여준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갑니다. 그런 역설을 독자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었고, 이번 주 주제가 바로 그 첫 편입니다. 이번 주부터 한두 달에 한 번씩 쓰려고 하는데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약간 겁이 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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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4일 들른 원광대 자연식물원 연못에 핀 연꽃: 
글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여름날씨를 감안해서 수생식물의 대표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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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일 골드CC의 수련과 7월3일 덕수궁 연못의 노랑어리연꽃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효용에 대해서는 금년 초에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만, 필자 나름대로 깊은 숙고 끝에 쓴 글도 독자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필자가 늘 고백해 왔듯이 함께하는 친척, 학교 동창, 정책포럼, 종교 단체 등등의 모임에서는 당연히 필자의 열정을 어느 정도 인정해 주고, 종종 ‘나무박사’ 취급도 해 주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도대체 필자가 왜 그렇게 나무를 알려고 하지? 나무를 알아서 뭐 하려는 거지? 등의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많다고 느낍니다. 필자가 가진 나무에 대한 열정과 쌓은 지식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그런 분들의 의문이나 직접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드리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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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23일 남한산성 서문 가까이의 소나무 숲: 
적송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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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3일 덕수궁 안의 주목 두 그루: 
줄기가 붉어서 주목임을 알게 된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대인에게서 나무가 너무나 멀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특히 도시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더욱 그렇지요. 사실은 누군가의 노력 덕분에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은 나무들이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해 주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 도시인들이 주거지로 삼고 있는 아파트단지는 물론이고, 큰 주택단지 근처에 잘 조성되어 있는 공원이나 수변 산책로 주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가까운 산에 이르기까지 늘 나무들을 만나고 있지만, 그 나무들은 보이지 않는 공기나 물과도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나무들이 그런 존재로 보이고 있는 것이 오히려 나무들에게는 더 좋은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면 오히려 자신들에게 화를 미칠지도 모르니까요. 예를 들면 사람들은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음을 계기로 그 산의 10% 정도를 덮고 있는 이깔나무를 베어내고 그곳에 토종 나무를 심겠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다행히 많은 사람들의 반대로 그 계획은 저지되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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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4일 원광대 자연식물원의 낙우송: 
주변에 물혹이라 부르는 뿌리의 일부가 땅위로 솟아오른 것을 볼 수 있다. 비슷한 나무인 메타세콰이어는 가지지 않은 특징이다.

 

하지만 그 나무들이 예쁜 꽃을 피울 때나 열매를 달 때, 가을에 단풍이 들 때 또는 우거진 잎으로 그늘을 선물할 때는 우리 도시인들은 제법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필자가 아쉬워하는 점은 그렇게 뜨거운 관심을 보이던 나무들을 그 현상이 사라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 버리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이른 봄 우리 마음을 들뜨게 했던 벚꽃이 사라지면 우리 주변의 벚나무들은 더 이상 존재 가치를 잃게 됩니다. 늦가을 떨어진 노란 은행잎은 낭만의 상징이지만 은행나무가 가치 있는 것은 그때뿐이지요. 오히려 한창 더운 이때쯤에는 아파트단지에서 크게 자라는 나무들은 시끄럽게 우는 매미들의 온상으로 여겨져 미움을 받기 일쑤이지요.  

 

현대인들이 나무와 멀어지고 있다고 했는데, 우리 조상들은 나무마다 다른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고 날마다 그 나무들과 대화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사실은 그분들이 남긴 풍속화나 시문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파트단지, 공원 등에서 흔히 만나는 느티나무, 앵두나무, 박태기나무 등이 그곳에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 조상들이 이 나무들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지요. 기실 그 나무들은 위에서 열거한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지지 않았다고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아파트단지에서 흔히 보이는 과실수들, 살구, 매실, 감, 대추 등의 나무들도 이제는 그 과일들을 수확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나무들이 우리에게 주는 정서적 가치가 더 인정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그런 사실을 깨달아가는 것이 첫 번째 나무를 알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최근 도시인들에게 애완동물 기르는 열풍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팬더믹이 이런 현상을 더 부채질한 것 같기도 합니다. 애완동물은 갖가지 표정으로 쓸쓸해지기 쉬운 도시인들의 마음을 달래주는데 나무들은 그런 표정이 없어서 아쉽지요. 꾸준히 관찰하고 있는 필자와 같은 나무 사랑맨들에게는 그 표정을 보여주지만 말입니다. 그런 나무의 표정 변화를 알아가는 것도 나무사랑의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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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8일 탄천 지류 금토천변에서 만난 해바라기: 
가운데가 작은 꽃들이고 바깥은 곤충을 부르기 위해 펼친 꽃잎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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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6일 오른 청계산에서 만난 산수국: 
가운데 작은 꽃들이 진짜 꽃이고 바깥은 곤충들을 유혹하는 가짜 꽃이다.

 

조금 더 과학적이고 생태학적인 의미에서 나무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적어도 필자같은 사람에게는 말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나무들은 이름은 다르지만 다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필자는 종종 호남지방으로 내려가곤 하는데, 비슷한 토질과 비슷한 기후를 가진 지역에서 밭마다 다른 작물을 기르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고구마와 고추, 담배를 심어놓은 밭들이 서로 이웃하고 있는데, 어떻게 같은 환경에서 저렇게 단맛, 매운맛, 독한 맛 등의 다른 특성을 가진 식물들이 자랄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지요. 기실 땅에 뿌리를 박고 있는 나무들은 땅 위로 드러난 큰 줄기, 가지, 잎, 꽃, 열매 등과 땅 아래에 숨어 있는 뿌리와 잔뿌리를 가진 그저 비슷비슷한 존재로 보이는 것도 당연한 것 같습니다. 필자도 즐겨 보는 동물의 왕국에 나타나는 동물들이나 주변 애완동물들이 보여주는 뚜렷이 구분되는 특징들을 보여주는 것과 비교해 보면 나무들은 정말로 지루하도록 비슷한 존재라고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일견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나무들이 (나아가 식물들이) 참으로 많은 다양성을 가지고 있고, 그런 다양성 덕분에 우리 주변의 환경이 유지되고, 때로는 그런 다양성 덕분에 결정적인 신약의 원료가 발견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이나 생태학자들은 생물의 다양성 유지의 필요성을 그렇게 목메어 외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조상들 중에서도 나무와 식물들의 특성들을 잘 관찰한 후에,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 다른 특성들을 이용하여 각종 질환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정리해서 결국 동의보감이라는 귀한 책으로 남겨주신 분도 계시지요. 필자는 그런 경지에는 도저히 이를 수 없겠지만, 매일매일 나무와 식물의 다양성을 점점 더 깨달아가는 재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무를 알고자 하는 또 다른 큰 이유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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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1일 저녁 들른 범어사 경내의 가래나무: 
호두처럼 고소한 내부를 먹고나면 큰 묵주의 중심으로 쓰인다. 
(작은 돋보기 장치로 안에 그려진 부처님을 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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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7일 탄천변의 실새삼: 
노란 플라스틱 실을 뿌린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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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7일 새벽 문형산으로 가다가 서현사거리에서 만난 메꽃들: 
밤에는 꽃잎을 이렇게 접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필자는 그렇게도 비슷하게 보이는 나무들이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하면 보여주는 이런 다양성에 매료되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의 역설은 비슷하게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나무는 절대 비슷비슷하지 않다는 역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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