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나무 사랑 꽃 이야기(65) 피나무가 가진 색다른 이미지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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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무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무엇인지요? 쉽게 떠오르는 우리 몸속의 붉은 피의 이미지는 이 나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휴전선 가까이 있는 산악지역에서 군대 생활을 한 분들 중에는 상관들이 숲속에다 찍어둔 피나무가 자라도록 기다렸다가 그 나무를 베어서 바둑판을 만들어 준 경험을 가지고 있거나 혹은 그 반대로 그렇게 만든 바둑판을 가보로 보관하고 계신 경우에는 이 나무의 목재로서의 가치가 먼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나무는 목재의 질이 균일한 데다가 참나무처럼 (오크라고 하면 더 잘 떠오르겠지요.) 지나치게 딱딱하지 않아서, 이 나무로 만든 바둑판 위에 바둑돌을 놓으면 살짝 흡수되듯이 부드럽게 받아들인다고 해서 인기가 높고 그만큼 피나무 바둑판은 가격도 비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고급은 비자나무 바둑판이라고 하는데 필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목재의 질이 좋을 것 같고, 잎모양은 역시 하트 모양이다.
필자는 이 나무 이름을 들으면 바로 ‘멋진 프로펠러를 단 열매들’이 첫 번째 이미지로 떠오릅니다. 이 나무는 이런 멋진 열매들을 잔뜩 달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공원을 장식할 만한 가치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열매들을 발견하고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여하튼 피나무는 긴 프로펠러 날개 하나에 조금 큰 완두콩 같은 열매들을 몇 개씩 달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자연으로 날려보내면 바람을 타고 조금이라도 멀리 날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세계 곳곳의 공원에서 이런 피나무의 가치를 인정해서 심어 놓은 사실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자연 속의 캐나다 산책로에서도 옛 영화를 보여주는 프랑스 궁전의 뜰에서도 이 나무는 그 모습을 보여주며 반겨 주었습니다.
멀리 앵방리드 건물이 보인다.
우리나라 절에서는 이 나무는 매우 성스러운 이미지를 가집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대각을 이루신 자리, 즉, ‘보리수 아래’를 상징하는 나무로서의 이미지를 존중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나무를 소개하는 수목학자들도 우리나라 절에서 스님들이 이 나무를 보리수라고 소개하는 것을 나무라지 말고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옳다고 할 정도이지요. 이 나무가 그런 이미지를 가진 이유는 바로 그 잎 모양 때문입니다. 피나무의 잎은 전체적으로 둥근 모양인데 잎의 끝이 약간 뾰족해지는 반면에 잎자루가 달린 잎의 아래는 약간 들어가듯이 마무리되어서 마치 심장 모양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이런 피나무의 잎모양이 석가모니께서 탄생한 인도 북동쪽에서 자라는 ‘보띠 트리 (Bodi tree)’의 잎모양과 닮았다는 데에서 우리 옛 스님들이 이 나무를 ‘보리수’라고 부르고 거의 모든 절에 심게 된 것 같습니다. 필자는 방문하는 절마다 조금만 열심히 돌아보면 이 나무들이 눈에 잘 띄는 자리를 골라서 심겨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더구나 완두콩보다 조금 큰 열매들은 제법 단단해서 큰 것들을 골라서 잘 다듬으면 염주를 만드는 데도 사용할 수 있으니, 얼마나 성스러운 나무입니까? 그래서 절에 심긴 제법 열매가 굵은 피나무들을 염주나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필자는 위에서 설명한 ‘보띠 트리’를 인도 북동쪽이 아닌 기후도 비슷하고 남방불교 (소승불교)의 첫 도래지이며 아직도 불교가 국교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인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 양곤에 있는 미얀마 최고의 절인 슈웨다곤 파고다를 찾았을 때 보았습니다. 미얀마는 인도 북동쪽과 거의 기후가 비슷하니 이 나라에도 본래부터 자라고 있던 나무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여하튼 이 절에서는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제법 큰 ‘보띠 트리’를 심어놓고 기념하고 있었습니다. 이 나무 아래에 부처님 상을 세워놓고 부처님의 보리수 아래의 수행과 대각을 기념하는 모습을 연출해 놓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나무의 잎모양을 보면 피나무 잎모양과 유사한 심장 모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보띠 트리의 잎끝의 꼬리가 피나무보다는 훨씬 긴 모양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이 두 나무는 나무 분류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다른 나무입니다. 가장 큰 차이가 바로 피나무는 가을에 잎을 떨어뜨리는 낙엽수인 데 비해, 보띠 트리는 열대 지방에 사는 상록수라는 사실이지요.
나무 아래 부터님 상이 모셔져 있고, 잎 모양은 역시 하트 모양이다.
운 좋게 6월 초에 절을 방문하는 기회가 있다면 이 피나무의 (절에서는 보리수) 개화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런 류의 키 큰 나무들이 (喬木) 일반적으로 풍매화를 피우는 경향을 보이는 데 비해 피나무는 충매화를 피웁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이 나무 근처에는 수많은 벌들이 날아들지요.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노랑과 주황이 섞인 이 나무의 꽃 모습도 충분히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피나무의 이미지는 필자가 오랫동안 살았던 프랑스의 공원이나 궁전 정원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입니다. 묘하게도 피나무는 가지를 잘라대는 전지(剪枝)를 잘 견뎌내는 나무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로수로 자라는 플라타너스를 거의 불구자 이미지가 나오도록 가지를 잘라버린 모습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곤 하는데, 프랑스에서는 이 피나무를 네모 반듯하게 잘라서 거의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들어놓은 경우를 수없이 발견하며 놀라곤 했습니다. 필자가 아직 나무에 깊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때도 이 나무의 프랑스어 이름은 알아내서 기억했던 적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느 것이 피나무의 진정한 이미지일까요? 물론 이 모든 것을 합쳐야 이 나무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요. 그렇지만, 피나무를 발견하면서 위의 어느 하나의 이미지라도 사랑하고 관심을 기울여 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나무에 대한 사랑도 시작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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