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사태에 비추어 본 한국 자본주의의 현주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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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의 난”을 겪고 있는 롯데그룹을 둘러싼 많은 논란 중 이 글에서는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불투명한 지분 구조와 총수 일가의 개인 회사에 대한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기업집단, 통칭 “재벌” 중 롯데그룹의 지분구조는 특히 복잡하다. 아래 그림은 2015년 4월 현재 롯데그룹의 주요 계열사 간의 출자 관계의 일부를 보여 준다. 호텔롯데 및 일본롯데홀딩스가 그룹 지분 구조의 정점에 있는 것은 알 수 있지만, 다른 계열사들의 경우 누가 얼마만큼의 실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렵다. 롯데그룹 지분구조의 불투명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자 소규모 지분고리가 상당히 해소되었으나, 순환출자/피라미드출자 구조 자체는 유지되고 있다.
그 결과 겉보기에는 “1주 1표(상법 369조)”의 원칙이 지켜지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소수지배주주(통칭 “총수 일가”)가 자신의 배당권보다 훨씬 더 많은 의결권을 행사하게 된다. 전문적 용어를 빌리면, 우리나라 재벌의 회사법적 본질은 순환출자와 교차피라미드식 출자의 결과, 지배주주가 자신의 실질 소유권을 초과하는 의결권을 행사하는 “상호 공동 지주회사”이다. 순환 출자를 통해 계열사 “상호”간에 지주 회사 역할을 하며, 교차 피라미드식 출자를 통해, “연대하여 공동으로”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주 회사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우월 의결권” 제도는 미국, 유럽에도 존재하며,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구글은 2004년 상장 시 일반 투자자들에게는 1주 1표의 A클래스 보통주(2012년 1월 현재 약 2.58억주)를 발행하고, 기존의 경영진과 내부인들은 1주 10표의 B클래스 보통주(0.67억주; 이 중 Larry Page, Sergey Brin, Eric Schmidt가 92% 보유)를 보유하였다. 그 결과 Page, Brin, Schmidt 3인은 지분은 약 19%에 불과하나, 의결권은 약 66%로 “의결권 승수”는 약 3.5배에 달한다. 이는 롯데를 포함한 우리나라 재벌 총수 일가가 행사하는 의결권 승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계열사 출자의 본질은 재벌의 소수 지배주주(총수 일가)로 하여금 자신의 실질 지분을 초과하는 의결권을 행사하게 하는 것인데, 이는 우월 의결권을 행사하는 주식을 발행하여 보유하는 것과 사실상 동일하다. 그 결과 구글이나 우리 나라의 재벌(소수의 예외 제외)이나 사실상 적대적 M&A는 불가능하다. 즉, 명시적인 우월 의결권 제도와 계열사간 출자는 둘 다 매우 강력한 적대적 M&A 차단 수단이다.
적대적 M&A가 기존 소수지배주주나 경영진의 무능/부당한 사익 추구 행위로 인해 주가가 회사의 “본질가치”에 비해 저평가되는 것을 규율하는 시장 메커니즘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적대적 M&A의 위협에서 벗어 날 경우, 회사의 지배주주는 단기적으로는 그 성과가 가시화되지 않으나 (따라서 회사내부자와 주식시장 간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주가에 반영되지 않으나) 장기적으로 회사 가치를 높이는 투자에 전념할 수 있다.
따라서 우월 의결권(또는 이와 유사한 효과를 가져오는 계열사 간 출자)과 같은 적대적 M&A 차단 장치가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결론 내릴 수 없다. 예를 들어, 구글의 경우 사실상 Page와 Brin의 의사에 반하는 적대적 M&A는 불가능하지만, 2004년 상장 시와 비교시 2016년 1월말 현재 시가 총액은 약 270억달러에서 5,172억달러로 23.5배 수준이다. 즉, 2004년 상장 당시 “자발적으로” 의결권 제한에 동의한 소액 주주는 큰 이익을 본 것이다.
물론, 구글은 하나의 사례이나, 중요한 점은 순환 출자, 피라미드식 출자, 명시적 우월 의결권의 존재 여부 그 자체가 아니라, 소수지배주주가 소액주주의 부를 부당하게 침탈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회사법적 장치(독립적 사외이사/감사의 선임, 대규모 내부 거래/합병 시 지배주주를 제외한 일반주주들의 찬성 요구 등)가 존재하고 잘 작동하는지, 만약 이러한 피해가 발생한다면 소액주주들이 자신의 피해를 원활히 구제받을 수 있는 법제도가 마련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신규 순환 출자의 금지(14년 1월 공정거래법 개정, 14년 7월 시행)는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순환 출자 고리 수의 감소가 성과의 척도가 될 수는 없다. 공정위의 2016년 업무보고 첨부 자료(p. 3)을 보면, 순환 출자 고리 수는 2013년 4월 97,654개에서 15년 12월 94개에서 감소하였는데, 절대 다수가 롯데 그룹 1개에서 줄어 든 것으로 판단된다.
현 정부의 입법안 중 정작 중요한 과제(다중 대표 소송제, 감사 위원이 될 이사의 분리 선출, 전자투표제 및 집중투표제의 단계적 의무화)는 재계의 반대/경제 활성화로의 정책 선회 등으로 무산되었는데, 필자가 판단하기에 순환 출자의 해소 그 자체보다도, 소수지배주주의 사익 추구행위에 대한 사전적, 사후적 규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과제이다.
특히 총수 일가의 지분이 높은 (비상장) 회사에 일가의 지분이 낮은 계열 회사들이 “일감을 몰아 주는“ 행위는 “일반주주의 부의 침탈”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내재하며,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으면 한국 자본주의의 정당성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은 지속될 것이다.
계열사 간의 내부 거래를 통한 효율성을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관련 계열사들이 (거래 비율에 따라) 출자하면 되지, 총수 일가의 사적 회사로 만들 이유는 희박하다.
총수 일가의 개인회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상증세법을 통한 과세와 공정거래법을 통한 규율이 시도되고 있다. 그런데, 이익을 보는 총수 일가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상증세법적 접근은 (자발적) “증여“를 전제로 하는 것인데, 계열 회사들의 일반 주주들이 이에 동의한 바 없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한편, 공정거래법적 접근(13년 8월 개정)은 경쟁 제한성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어, “소수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의 이해 상충“이 핵심인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근원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특히 사전 규제 방식(총수 일가의 직접 지분율이 상장 회사는 30% 이상, 비상장회사는 20% 이상으로 한정)은 오히려 규제 회피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 주주의 피해를 사전 예방/사후 구제하기 위한 법제도가 원활히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감안하면, 상증세법/공정거래법을 통한 규제에 반대만 할 수도 없으며, 과세당국과 공정위의 법집행의 성과/부작용을 지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소수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행위가 발생할 경우,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인 일반 주주들이 지배주주와 경영진을 대상으로 사전적 감시를 할 수 있는 사내 감시 기구와 사후적 피해구제를 원할히 받을 수 있는 법제도의 마련이 필수적이다. 전자의 예는 독립적 이사/감사의 선임이 될 것이며, 후자의 예는 소송의 원피고간 “무기대등의 원칙”을 실현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힘 있는 자의 부당한 행위로 피해를 입었다고 소송을 제기한 원고(소수주주, 소비자, 중소기업, 하청업체 등) 측 주장에 근거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경우, 피고인 대기업이 소송과 관련성이 높은 내부 자료를 법원을 통해 피고에게 제공하는 증거확보절차(discovery)의 적절한 도입이 절실하다. 이는 비단 소수지배주주의 사익추구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광범위하게 필요한 제도적 장치이다.
시장 경제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힘을 가진 자가 그 힘을 남용하여 다른 경제주체에게 피해가 발생시킬 경우,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그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재산권의 확립에 못지 않게, 시장 경제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필요한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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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Choi님의 댓글
AlbertChoi
소수지배주주(통칭 “총수 일가”) ?
총수=두목
재벌 = 편법 탈법으로 회사를 운영하는 대기업집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