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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스러운 청문회와 법치주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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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25일 21시0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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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스러운 청문회와 법치주의

 

 내년 4월 총선 즈음 새로운 시즌을 예고하면서 올해 청문회 시즌이 거의 끝나간다. 올해 국회의 타율(打率)은 저조하다. 이유는 후보자가 대부분 정치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지만 후보자들이 “송구스럽다”는 표현을 연발하게 한 점에서 국회의 타율이 나쁘지만은 않다.“죄송하다,” “볼 면목이 없다,” “미안하다.” 라는 표현은 통상 자주 쓰이지만 “송구스럽다”는 단어는 유독 청문회의 계절에만 자주 들린다. 사전을 찾아보니 “미안하고 두렵고 거북스러운 느낌이 있다.” 라는 뜻이다. 무엇 때문에 고위공직자 후보들은 미안하고 두렵고 거북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 누구에게 미안하고 무엇이 또는 누가 두렵다는 말일까? 왜 거북할까?   

 

인사청문회 제도 “문제 있다.”

 인사청문회 제도는 2000년 국회법이 개정되고 이에 따른 단행법으로서의 인사청문회법이 통과되면서 시행되었다. 그 후 수차례 개정을 거치면서 인사청문회의 대상이나 기간이 확대되었고 많은 후보자가 종국적으로 공직에 취임하지 못하기도 했다. 또 그 상황은 청문회 전에 임명권자가 인사 청문요구를 철회하거나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경우, 청문회까지는 열렸으나 그 이후 임명권자가 지명을 철회하거나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경우, 마지막으로 본회의에서의 표결까지 갔으나 부결된 경우 등 지극히 다양하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원인을 살펴보면 모두 의혹에 그치는 것이지만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스폰서로부터의 향응이나 뇌물수수, 논문표절, 위증, 역사관, 전관예우, 자녀국적 등 다양하다. 고위공직자가 되기에 부적합한 후보자들을 많이 골라내었으니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 청문회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도 많다. 실제로  이 제도의 개정을 위해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개정 법률안이 2012년 임기를 시작한 제19대 국회에서만 지금까지 39개에 이르고 있다. 

 고위공직을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능력과 자질은 무엇일까? 이는 고위공직의 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고 또한 각자의 철학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한 기준 자체가 또한 임명권자와 국회의 정치적 역학관계에 따라서, 그리고 국회 내 다수당과 소수당간 당파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이러한 모든 가변적 요소나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모든 국민과 정치인들이 의견을 같이 하는 공직자의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면 법을 지키면서 살아 왔으며 따라서 범법자가 아니라는 것 일게다. 이는 법치주의가 우리 헌법과 정치현실에서 그만큼 중요한 가치라는 것을 반영하는 현상으로 법률가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으며 우리나라의 장래를 위하여서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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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를 너무 개념적이고 원론적으로 접근

  문제는 우리가 법치주의를 너무 개념적이고 원론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치주의란 권력자의 자의적 의사에 따른 지배가 아니라 국민 내지 국민의 대표들이 합의한 법에 따른 지배를 의미한다. 다른 한편 법치주의는 모든 이들이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법을 존중하고 따를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모든 이가 모든 법을 지키면서 살기는 어렵다. 법을 어겨서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기도 하고 위법사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또는 상당한 기간이 경과된 이후에 밝혀져서 처벌 없이 넘어가기도 한다. 또한 법도 법 나름이어서 자동차를 몰고 다니다 보면 교통법규를 위반할 수도 있고 세금관계가 복잡하다 보면 세무사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도 불구하고 세법을 어겼을 수도 있다. 

 따라서, 법규위반 자체가 고위공직자 후보의 자질에 대한 의심을 야기 한다기 보다는 구체적인 내용과 상황에 따라서 다른 판단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청문회 운영의 현실, 즉 공직자 후보자의 모든 범법행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여 이들에 대한 공개적인 창피를 주는 것은 분명히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청문회가 법치주의라는 헌법적 가치에 대한 우리의 확신을 더하여 주는 계기가 되기보다는 고위공직자들까지 법을 어기면서 살아 왔고 따라서 우리나라에서의 법치주의는 형식과 명분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주어서 모든 국민들이 법치주의라는 중요한 가치에 냉소적 태도를 취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불행하게도 법적으로 강제하거나 어긋나는 행동에 대한 제재수단은 없다. 정치인들은 후보자에 대한 온갖 의혹을 들추어서 언론에 떠들어대지 말고 이러한 의혹이 얼마나 신뢰할 만한 것인지를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조사하고 이러한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면, 그리고 이러한 의혹이 공직자로서의 업무수행에 장애가 될 만한 법치주의에 대한 무시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 시점에서 그러한 의혹만을 언론에 제기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무엇이 그러한 의혹이며 무엇이 사전적 합리적 조사인지는 정치인들이 그들의 관례로서 확립하여야 하며 그러한 관례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행착오가 불가피할 것이다. 위장전입이나 탈세가 대표적인 예로 어떤 이는 이 때문에 낙마하였으며 어떤 이는 송구스럽다는 한마디로 통과하였다. 자녀의 국적이 왜 공직후보자의 자질과 관련이 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어떤 이는 낙마하고 어떤 이는 국가의 최고기밀과 안보를 다루는 공직에 아무런 문제없이 취임하기도 한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적어도 정치인들의 청문회에 대한 현상파악과 목표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 하여야만 새로운 길을 출발할 수가 있을 것이다. 언론도 이러한 출발점에 대하여 동의한다면 무조건 정치인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비판하거나 반대로 정치인들이 뿜어내는 자료를 무조건 새로운 의혹이라며 게재하지 말고 보다 내부의 조사와 판단 절차를 거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정치 내지 언론의 속성이라는 한계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사실이라는 이유 하나로 언제나 정당화될 수는 없으며, 해결책이 언제나 현실을 바꾸는 것이기에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다.   

 

 청문회 절차 개선…해당 조직 고위간부들 배석 없애야

 청문회 자체를 절차적으로 개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임명권자는 일정한 사항을 기재한 후보자에 대한 자료와 함께 청문회를 요청하여야 한다. 그 이후의 절차에 관한 규정은 청문회 기간과 보고서 채택에 관한 것뿐이다. 이제 청문회가 정치적 절차임을 전제로 임명권자가 기재하여야 할 사항에 대한 자세한 규정, 반대로 위원회에서 요구할 수 있는 자료에 관한 자세한 규정, 그리고 청문회에서 질의하거나 의견을 구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한 자세한 규정들을 만들어야 한다. 후보자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하는 질문, 후보자의 공직 수행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 개인적 생활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제기는 삼가고 고위공직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후보자가 보여준 능력과 경험을 치하하면 정치인들도 같은 수준의 정치적 지도자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절차와 관련하여 청문회의 원조인 미국 의회에서의 장면과 구별되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현상이 있다. 공직 후보자의 적격성을 확인하는 청문회에 해당 법원 내지 행정부처 고위간부들이 배석하고 있는 것이다. 대개 후보자는 맨 앞줄의 가운데 의자에 앉고 법원이나 행정부처 직원들이 옆에 또는 뒷줄에 앉아 있으며 그 수가 한두 명이 아니라 거의 모든 간부들이 뒤에 자리 잡고 있어서 마치 조폭영화에서 나오는 집단패싸움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특히 대법원 판사 청문회에 법원행정처 고위법관들이 줄줄이 앉아 있는 장면은 우리 사법부의 관료주의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몹시 한심해 보인 것이 사실이다. 미국언론을 통하여 접하는 미국 의회에서의 연방대법원 청문회는 그 자료에 있어서 방대한 반면 후보자 개인과 일부 가족만이 배석하며 그 이외의 공무원은 보이지 않는다. 후보자의 개인적인 수행비서 내지 자문관 정도는 예외이겠지만 이들 역시 뒤의 방청석에 앉아 있다. 

 법적으로 따져 보건대 후보자는 후보자로서 임명 전 절차의 일부를 진행하는데 불과하며 따라서 공무원들이 시간을 내어서 후보자 청문회에 앉아 있는 것은 일종의 직무유기에 해당할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도 해당 업무에 무지하여 고위간부가 옆에서 늘 지원을 하여야 할 정도라면 해당 분야의 전문지식이나 리더십 면에서 역량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후보자는 자기가 해당부처에 데리고 갈 비서나 자문관 정도라면 모를까 그 이외의 고위간부를 청문회에 배석시키는 것을 삼가 하여야 할 것이다. 

 

 최근 Robert Gates의 회고록 Duty를 읽고 있다. Robert Gates는 아버지 Bush 때 CIA 국장을 하다가 Texas A&M 총장생활을 즐기고 있던 2006년 아들 Bush로부터 국방부 장관 제의를 받았다. Rumsfeld에 대한 국회 심지어는 공화당 내부에서의 비난이 드센 때이었다. Robert Gates는 부인과 아버지 Bush만의 의견을 구한 후에 직접 차를 몰고 아들 Bush를 만나러 간다. 어떻게 이라크 전쟁을 이기고 미군을 조속히 귀환시킬 수 있을지에 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여 집에 돌아와서 당일 저녁 전화로 통보받은 후에 바로 의회 청문회 절차를 준비한다. 

 우선 비싼 법률가를 구하여 답변서를 작성한다. 의회를 방문하여 의회지도자들의 자존심을 만족시켜 준다. 청문회 주의사항 제 1조는 의견이 갈리는 질문은 직답하지 말고 우회적으로 답하거나 다른 주제에 관하여 이야기하며 절대로 국회의원들의 심보에 거슬리지 않도록 한다. 자기 부인은 Texas A&M 축구경기를 응원하러 가야 하기 때문에 청문회에 참석하기를 거절한다. 질문서에 대한 답변서 준비에 많은 법률 자문료를 지불하고 국회의원들에 대한 답변에도 역시 조심조심하여 국방장관이 된 Robert Gates는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무수히 국회와 언론에 불려나갔다. 그는 워싱턴에서 가장 자신을 잘 통제하는 장관으로 평가받았다.  Rumsfeld와 비교되니 당연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언론에서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정말로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하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Duty에서 미국 국회의원처럼 머리가 텅 비고 실속 없는 자들이 세상에 없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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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들 스스로 청문회 제도 개선 논의를 시작할 때

후보자들의 송구스럽다는 표현은 아마도 이런 맥락에서 청문회 위원들에게 미안하고 당신들이 두려우며 한편으로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국회의원들의 자존심을 만족시켜야 하는 자신이 몹시 거북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단어인 것 같다. 이제 청문회가 이 정도에 이르렀으니 앞으로  공직 후보자가 아닌 청문회를 진행하는 정치인들이 국민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청문회 제도의 개선을 위하여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때인 것 같다. 국회의원들이 제출한 개정안이 39개에 이르는 것을 보니 우리나라의 청문회가 조만간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설 것 같다.

 마지막으로 Bush가 Gates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한가지였다. 즉 언제나 자기에게 솔직하게 전쟁 상황을 이야기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Bush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미국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보다 잘 할 수 있었던 많은 기회를 놓치고 금융시장을 망가트린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 부문을 읽다 보니 Bush 집안의 큰 아들로서 미국 대통령 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이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이는 우리나라의 정치적 지도자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기업이건, 공공기관이건, 모든 조직의 지도자에게도 해당하는 것으로 한국사회의 모든 지도자에게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조직의 지도자가 간부(staff)들에게 제일 먼저 부탁하여야 할 일은 언제나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하여 달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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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3월25일 21시0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9일 12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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