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고사’로 변질된 ‘가짜 수능’은 서둘러 폐지해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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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제 오류와 난이도 논란으로 홍역을 치른 교육부가 내놓은 수능 개선안이 정말 황당하다. 출제위원회의 구성을 다양화하고, 출제위원장과 대등한 위상의 검토위원장을 임명하겠다는 것이 전부다. 결국 끈끈한 선후배 관계와 알량한 사회적 지위를 앞세워 출제 문항을 검토하는 교사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특정 대학 출신 교수들이 문제였던 셈이다. 수능의 근원적인 한계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없었고, 알만 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교육과정평가원의 불합리하게 경직된 출제 관리의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노력도 없었다. 오히려 한 순간에 조폭 수준의 패거리 문화에 젖어있는 비윤리적인 집단으로 매도돼버린 특정 대학 출신 교수들의 입장을 안타까워해야 할 형편이다.
공교육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수능의 문제는 우리가 흔히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학생들에게 모든 과목을 암기하도록 강요하던 ‘학력고사’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1993년에 처음 도입한 것이다. 선진국에서 볼 수 있는 통합교과적이고 탈(脫)교과적인 고등 정신능력과 함께 학생들의 종합적 이해와 논리적 사고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것이 당시 교육 당국의 떠들썩한 소개였다. 심지어 수능을 통해 입시에 종속되어 있던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시키겠다는 주장도 있었다. 미국의 SAT를 흉내 내서 학생들에게 2번의 기회를 주겠다는 비현실적인 계획은 난이도 조절에 철저하게 실패함으로써 도입 첫 해를 넘기지 못하고 폐기돼버렸다.
그런데 고등학교 교육과정과 전혀 무관한 언어‧수리탐구‧외국어로 구성되고, 문‧이과 구분도 없었던 진짜 수능은 1994년까지 3회로 막을 내렸다. 오늘날 우리가 ‘수능’이라고 알고 있는 시험은 국어‧수학‧영어‧탐구(사회‧과학‧직업)‧제2외국어 영역의 총 42개 교과목을 대상으로 치러지는 것으로 모든 면에서 과거의 ‘학력고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가 교과 이기주의의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한 사범대 교수들의 적극적이고 조직적인 반발에 항복을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늘날의 수능은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유리할 것으로 짐작되는 일부 과목을 선택해서 빠른 시간에 정답을 골라내는 사교육 시장의 훈련을 강요하는 학력고사로 변질된 ‘가짜 수능’이다. 우리 모두가 지난 20년 동안 교육부와 교육 전문가들의 의도적인 거짓말에 감쪽같이 속아왔던 셈이다. 지금도 수능을 관리하는 교육과정평가원은 수능의 탈을 쓴 엉터리 학력고사를 수학 능력을 측정하고,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는 시험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수능이 정체성만 상실해버린 것이 아니다. 사범대학의 끈질긴 로비 탓에 시험의 영역과 교과목이 끊임없이 늘어났고, 사라졌던 문‧이과 구분도 다시 시작됐다. 원점수‧총점‧백분위‧표준점수‧변환표준점수‧영역별 등급 등이 총동원 된 성적 표기방식의 변화는 추적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변화를 거듭했다. 지금까지 22년 동안 무려 12차례의 개정이 있었다. 수능의 개정이 끝난 것도 아니다. 앞으로 3년 동안 3번의 개정이 예정되어 있다. 수능의 제도를 바꾸는 이유는 언제나 똑같았다.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교과목 선택에 대한 공정성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약속은 괜한 핑계였을 뿐이다. 학력고사로 변질된 가짜 수능은 지난 20년 동안 끊임없이 표류하면서 회복이 불가능한 누더기로 변해버렸다. 교과목 선택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사실은 모든 수험생이 경험을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한 진실이다. 베트남어와 아랍어를 선택하는 학생이 넘쳐나는 것이 수능의 불공성성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수능의 의미도 심각하게 퇴색돼버렸다.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와 수능 성적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도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진실이다.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이 대학 생활에 잘 적응해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현재의 수능은 수험생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 아니다.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의 교육과도 아무 상관이 없는 수험생의 부모가 어디에도 쓸 데가 없는 객관식 문제풀이 훈련을 위해 사교육 시장에 낭비할 수 있는 재력(財力)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이 분명하다.
학력고사로 변질된 가짜 수능의 정말 심각한 폐해는 따로 있다. 실제로 시험 관리의 편리성을 핑계로 고집하는 객관식 시험의 폐해는 상상을 넘어선다. 객관식 문제풀이가 압도하는 고등학교 교육으로는 교육부가 특별히 강조하는 꿈과 끼를 살려주는 창의 교육도 불가능하고, 책임‧배려‧나눔을 목표로 하는 인성 교육도 불가능하다. 현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이라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적 합리성과 예술적 창조력을 바탕으로 하는 융합 교육도 객관식 시험 앞에서는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에는 명백하게 정해진 답이 있어야 한다는 객관식 문제풀이 훈련으로는 과학 교육에서 강조하는 탐구 교육도 불가능하다. 공허한 공정성과 비용 절약을 핑계로 객관식 가짜 수능에 집착하는 한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가야할 우리 아이들의 행복은 그림의 떡이 될 수밖에 없다.
교육 정책에서 거품을 걷어내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교육부와 일부 몰지각한 교육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무의미한 ‘구호’에 속아서 무너져 가는 교육 현실을 무책임하게 방치해왔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교육 정책과 교직을 학생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독점해왔던 교육 전문가들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공교육의 내용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적성과 진로를 핑계로 학생을 구분하는 문과와 이과는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문제를 잘못 파악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법이다. 문‧이과 구분 교육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과학 영재를 잘 길러내겠다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과학고의 안타까운 현실이 문‧이과 구분 교육의 문제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과학을 좋아하고, 잘 한다는 이유로 수학‧과학만 집중적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융합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할 수가 없다. 사회 전체가 어려웠던 시절에 어쩔 수 없이 수용했던 반쪽짜리 ‘문‧이과 구분 교육’은 하루 빨리 폐지해야 한다. 그래야만 진정한 의미의 창의‧인성‧융합을 실천할 수 있는 현대적 홍익(弘益) 인간을 길러내는 전인 교육이 가능하다.
미국의 SAT를 어설프게 흉내 낸 가짜 수능은 처음부터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이제 누더기로 변해버린 엉터리 수능에 더 이상 매달릴 이유가 없다. 가짜 수능은 개선이 아니라 폐지를 해야 한다. 민주화된 다양성의 시대에 걸맞도록 대학에게 학생 선발 기능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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