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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엔저와 일본의 고민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24년07월03일 17시10분
  • 최종수정 2024년07월03일 10시59분

작성자

  • 이지평
  • 한국외국어대학교 특임강의교수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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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일본정부의 신중한 금융긴축, 엔저 막기에 역부족

 

일본 엔화가 지난 6월 26일에 1달러당 160엔으로 하락했다. 금년 1월 초의 1달러당 141엔과 비교해도 11.9%나 절하된 셈이다. 일본은행은 금년 들어서 마이너스 금리정책에서 벗어나고 지난 6월의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도 오는 7월부터 양적 금융 완화의 규모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했으나 엔화의 약세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이와 같이 계속되는 엔저 압력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 4월 26일에서 5월 29일 동안 9조 7,885억엔을 투입해 외환시장에서 달러화 매각, 엔화 매수에 나서서 일시적으로 엔저 흐름을 완화시켰으나 6월 말에 다시 엔화가 1달러당 160엔대로 하락한 셈이다. 

9조엔을 넘는 외화자금을 투입해서 엔화를 매입해도 엔저 억제 효과가 2개월 정도 밖에 지속되지 않아서 일본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지난 6월 25일의 한일 재무장관 회의에서도 양국이 최근의 달러화 강세, 엔화 및 원화의 약세에 대한 우려를 공동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엔저의 지속은 장기불황과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기 위해 지난 아베 정권 하에서 2012년 이후 강화된 초금융완화 정책의 결과이기도 한다. 그동안 실시된 막대한 ‘돈 풀기 정책’으로 방출된 엔화 자금으로 인해 초저금리 상태가 지속되면서 일본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해외 투자 및 융자에 주력해 오다가 최근에는 개인투자가들도 해외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의 단기정책금리는 기존의 마이너스 상태에서 0~0.1%로 인상되기는 했으나 주요국과 비교해서 일본금리는 극히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본은행이 월간 6조엔 정도의 국채 매입을 통한 양적 금융 완화도 축소되는 방향에 있으나 일본은행이 국채 보유 잔액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은행의 급격한 국채 매입 축소 및 양적 금융 긴축은 금리 급등 리스크도 있어서 쉽지 않을 수 있다. 

 

일본은행은 오는 7월 30일, 31일의 금융정책결정 회의에서 국채 매입 규모 축소, 양적 긴축에 나설 것으로 보이나 감축 규모는 한정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국가 채무의 GDP(국내총생산) 비중이 230%를 초과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폭적인 양적 긴축이나 금리의 급상승을 허용하기가 어려운 측면도 있다. 일본 정치권도 엔저에 따른 서민들의 물가 부담을 우려하면서도 아베노믹스, 코로나19 극복 과정에서 팽창한 일본의 재정지출을 크게 축소할 의욕도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일본은행은 양적 긴축과 함께 추가적인 금리인상 정책을 모색할 것으로 보이지만 완만한 속도로 소폭의 그칠 가능성이 있다. 주요 연구기관 담당자의 금리 전망치(일본경제연구센터, ESP Forecast, 2024.6.)를 보면 2024년 말 금리를 0.2~0.3%로 예상한 전문가들이 가장 많았으며, 2025년 말의 경우도 예상치가 0.7~0.8% 정도에 그치고 있다. 한편, 미국의 정책금리는 2024년 말까지 5.0% 내외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고 2025년에도 4.0% 내외 수준을 보인다면 미일 금리차의 축소는 한정된 수준에 그쳐 엔저 억제 효과에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 측면에서의 엔저 요인과 함께 저출생 인구고령화로 노동력 부족이 극심한 상황에서 일본 경제의 경쟁력이 기본적으로 약해진 것도 있다.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는 원자재 가격이 고공행진 한 작년에 비해 올해는 크게 감소하고 있지만 금년 들어서도 적자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장기불황기에 일본기업이 해외 생산을 확대하면서 일본의 제조업 기반이 약해진 것, 최근의 IT 혁명에 따라 디지털 무역이 확대되고 있으나 일본은 디지털 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 분야의 경쟁력도 약해서 디지털 무역적자가 커지고 있는 문제도 있다. 물론, 막대한 규모로 확대된 일본기업의 해외거점의 수익을 반영한 본원소득수지의 대규모 흑자로 인해 일본의 경상수지는 흑자를 보이고 있으나 이 본원소득수지의 흑자 중 상당 부분은 일본에 송금되지 않고 해외에 재투자되고 있어서 외환 수급 측면에서는 엔화 매수 압력이 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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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저가 일본의 수출산업을 재생할 것인가?

 

일본정부는 현재와 같은 과도한 엔저는 일본경제에 부정적인 측면이 큰 것으로 보고 시장 개입에 나서고 엔저가 과도하다는 발언도 계속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신흥국 경제와 달리 선진 G7 국가로서 독자적인 금융정책을 견지하고 있는 나라이기는 한다. 국제금융 이론에서 △ 환율의 안정 △ 자유로운 자본거래 △ 금융정책의 자율성 중 각국은 2가지만 선택 가능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은 환율의 안정을 희생하고 자유로운 자본거래와 금융 정책의 자율성을 중시하고 있는 나라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차이는 있다. 미국이 금리 인상에 나서고 세계 각국이 동반 금리 인상을 감행한 지난 2022년에도 일본은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했다. 또한 금년 및 내년에 미국 등 세계 각국이 금리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으나 일본은 오히려 국내경제 사정상 금리 인상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의 엔저는 실질실효환율 측면에서 1970년대와 같은 수준으로 과도한 것이고 일본의 소비자물가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그래도 금년도의 일본 소비자물가는 2%대에 머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된 일본으로서는 높은 수준이긴 한다. 다만, 이것으로 일본경제가 큰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며, 엔저가 일본 물가에 미칠 영향은 치명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현재의 심화된 엔저는 대체적으로 수출 대기업의 수익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수입 원자재 비중이 높고 수출액도 한정된 중소기업의 경영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다만, 이러한 지나친 엔저 충격이 장기화되면서 해외투자에 치중했던 일본 대기업이 일본 내에서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수십 년 만에 일본 본국에서 공장을 신설하기로 한 일본기업도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일본기업에 의한 투자 확대, 공급 능력의 확충이 수출산업의 부활을 가져올 것인지 기대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 정부는 첨단반도체 육성, 수소 등 그린 이노베이션 관련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장기불황 과정에서도 일본의 소재, 부품, 장비 기업의 강점은 유지되어 왔으며, AI 반도체나 양자 기술 관련 분야에서 이들 일본기업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으며, 일본으로서는 이를 계기로 반도체 산업 등의 부활을 노리고 있는데, 엔저가 일정한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수소, 암모니아 등의 차세대 그린 산업의 개발 및 발전을 위해서도 일본의 소부장 기업이 힘을 발휘할 것으로 보이며, 이 분야에서도 일본이 엔저를 활용해서 관련 산업 도약의 기회를 포착하는 데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은 현재 저출생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에 고전하고 있으며, 엔저로 산업투자 여건이 조성되어도 국내외 기업이 일본에서 노동력을 구하지 못하여 투자를 주저하게 되는 측면도 있긴 하다. 아무리 엔저가 되어도 인력 문제 때문에 공급 확대가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도 기존의 양적 고용 확대 정책에서 생산성을 중시하여 노동력 투입 절약적인 성장전략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자동화, 로봇화를 통해 1인당 생산성을 높여서 디지털, 그린 산업 등의 하드웨어를 주도하면서 부가가치를 확대해 임금의 지속적인 상승세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아무리 노동 수요가 많고 인력 부족이 심화되어도 저부가가치 업무에 한정될 경우 임금 상승세에는 한계가 있으며, 근로자의 스킬 향상 시스템의 강화를 포함한 생산성 향상이 해결책으로 인식되고 있다.

 

엔화 향방의 불확실성, 트럼프 대선 승리로 미국 주가와 달러화의 동반 하락 가능성

 

일본의 재정 및 금융 정책 동향과 함께 일본 산업의 수출 역량 강화 전략의 불확실성 및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의 시차 등도 고려하면 당분간 엔저 기조가 크게 역전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나 미국이 점차 금리 인하에 나서는 한편 트럼프 후보가 대선에 승리하여 달러화 약세 유도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트럼프 후보는 금리인하 정책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미국 연준에 대한 압박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후보가 공약으로서 내세우고 있는 각국에 대한 관세율의 대폭적인 인상 정책이 실현될 경우 세계 경제에 대한 충격도 예상된다. 미국 금리의 인하는 증권시장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 있으나 트럼프 후보의 고관세 정책이 세계 경제의 혼란을 야기하여 미국 주식시장의 상승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하면서 달러화의 약세가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한 일본 가계로서는 커다란 리스크를 경험함으로써 해외투자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트럼프 후보의 관세인상 정책이 미국의 물가 상승세를 가속화시킬 수 있으며, 미 연준에 대한 노골적인 금리인하 압력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장기금리가 급등해 오히려 달러화 강세, 엔저가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당분간 엔저 기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으나 대선 이후의 미국 정치 구도의 변화 및 정책 방향에 따라 엔화의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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