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예우는 범죄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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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예우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판·검사를 마치고 막 개업한 변호사, 즉 전관 변호사에게 현직 판·검사들이 ‘예우’로서 유리한 결정을 내려주는 행위를 의미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관 변호사가 담당 판·검사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의뢰인으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뀐 것 같다. 변호사법에 전관 변호사들의 수임을 제한하는 규정이 도입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그런 사례를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고, 그래서 그 의미가 바뀐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 동안 전관예우는 법조인 출신 고위 공직자의 인사청문회 때 언급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전관예우가 요즘 법조계를 술렁이게 하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 모 변호사가 사건 수임료로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로부터 50억 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최 모 변호사는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이다. 여기에 1년 수입이 100억이라는 검사장 출신 홍 모 변호사의 이야기까지 나온다.
같은 변호사인 필자로서도 귀를 의심했을 정도로 많은 수임료다. 99%의 변호사들은 1년이 아니라 평생을 일해도 그 정도의 돈을 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을 보는 대다수의 변호사들, 특히 젊은 변호사들이 느끼는 분노감은 상당히 크다. 사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전관예우를 없애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을 해왔다. 변호사법에서는 공직을 마친 뒤 자신이 있었던 기관의 업무를 일정 기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 도입되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전관예우의 핵심으로 보고, 전직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할 때마다 강하게 반발해 왔다. 실제로 대한변협은 2015년 차한성 전 대법관이 대형로펌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려고 하자, 변호사 개업신고서를 반려하는 초강수를 두기까지 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도 1심 형사사건에서 판사와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될 경우, 사건을 재배당 하는 제도를 시행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터진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이사의 사건은 국민들과 법조인들에게 ‘전관예우는 도저히 없앨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좌절감마저 안겨준다. 실제로 2013년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소속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90.7%가 전관예우가 존재한다고 응답했다. 향후에도 전관예우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하는 응답자는 80.7%였다.
도대체 전관예우가 근절되지 않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전관예우가 범죄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 ‘전관예우’ 대신에 ‘전관비리’라는 말을 쓰자는 제안까지 나온다. 거기에 더해 필자는 전관예우는 ‘비리’를 넘어 ‘범죄’라고 생각한다. 형법 제349조는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을 취득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관예우, 정확히는 전관 변호사가 절박한 의뢰인으로부터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것이야 말로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하여 현저하게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는 행위이다. 지금까지 대법원은 이 부당이득죄의 적용을 매우 엄격히 제한하고 있었다. 그러나 만약 부당이득죄가 단 한번만 적용되어야 한다면, 바로 우리가 소위 ‘전관예우’라고 부르는 행위에 적용되어야 한다. 형법상 부당이득죄는 거액의 돈을 받기만 해도 처벌되기 때문에 뇌물죄나 그 밖에 다른 범죄를 적용하는 것보다 입증이 훨씬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만약에 전관 변호사가 승소 혹은 석방을 장담하면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냈다면 그것은 사기죄에 해당된다. 재판 결과는 누구도 예측을 못한다. 검찰 수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의뢰인에게 승소나 석방을 장담하면서 거액의 수임료를 받아낸다면, 그것은 분명히 의뢰인을 속이는 행위이다. 전관 변호사들의 그러한 행위가 굿을 해야 병이 낫는다고 하며, 굿 값으로 거액을 뜯어내는 무당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전관예우는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고, 그러한 불신으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당들의 사기행각보다 더욱 심각한 범죄이다. 전관예우는 범죄다. 이제 전관예우라는 말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전관비리이자 전관범죄이다. 법원과 검찰은 전관 변호사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며 고액의 수임료를 챙기는 것을 범죄로 엄하게 다스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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