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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공직후보자 추천에 대한 사법적 심사가 강화되어야 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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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4월17일 20시42분

작성자

  • 한만수
  •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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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대 국회의원 입후보자 공천과정의 난맥상 

여야를 막론하고 2016. 4. 13.에 실시된 20대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공천과정은 이미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은 ‘민주적 절차’에 익숙해진 국민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난맥상을 보여주었다. 우리 사회의 학교, 사회단체, 회사 등 대부분 사단(社團)의 직무 담당자는 구성원들의 다수결 원리에 의하여 선출되고 있고, 우리 국민들은 이에 익숙해져 있다. 그런데, 20대 국회의원 입후보자 공천은 국민들의 눈에 실체 면에서 당헌.당규에 규정된 일관된 기준에 따르지 않았고, 절차 면에서도 당헌.당규에 규정된 민주적 절차에 심히 위배되는 것으로 보였다.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적용되는 규범(Norm)의 정신이 실종됨으로써 ‘정치판은 우리와는 먼 나라의 이야기’라는 정치기피증 내지 정치혐오증을 심화시켰다. 국민들은 우리 사회 다른 분야의 지배구조(governance)는 점진적으로 나마 발전해 가는데, 왜 유독 정당의 지배구조는 발전은커녕 오히려 퇴행하고 있는지 의아해하고, 그 개혁을 갈망하고 있다.


2. 정당 지배구조와 활동의 ‘민주성’ 요청은 헌법적 명제이다  

경제는 생산활동이고, 정치는 생산물의 분배행위이다. 생산물의 분배행위를 담당하는 정치단체의 핵심은 정당이다. 헌법재판소는 여러 차례에 걸쳐 “정당은 국민과 국가의 중개자로서 정치적 도관(導管)의 기능을 수행하고, 주체적, 능동적으로 국민의 다원적 정치의사를 유도, 통합하여 형성함으로써 국가정책의 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라고 하여 이러한 정당의 기능을 잘 표현하고 있다(헌재 2006. 3. 30. 2004헌마246; 헌재 2004. 3. 25. 2001헌마710). 이처럼 중요한 공공적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는 정당의 지배구조와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 헌법도 제8조 제2항에서 “정당은 그 목적·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하며...”라고 선언함으로써 그 활동의 민주성을 요구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공직선거법 제47조 제2항은 “정당이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당의 지배구조와 활동의 민주화라는 이러한 헌법적 명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이라는 민주국가 운영의 원칙에 따라 정당의 지배구조와 활동은 다른 기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이에 정당 활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회의원을 비롯한 공직후보자 추천과정은 다른 기관에 의한 최소한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3. 반복되는 공천행위의 비민주성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법원의 적극적 관여가 필요하다

정당의 공천행위의 민주성을 보장하기 위한 외부 기관의 통제 자체도 민주적이어야 할 것인바, 이 원칙에 합당한 방식은 헌법과 법률의 구현을 보장할 권한을 부여받은 법원에 의한 심사이다. 다만, 법원이 정당의 공천행위의 정당성 심사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헌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는 또 다른 가치, 즉 정당활동의 자유가 침해되어서는 안 되므로 명확한 ‘민주성 침해’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i)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고 있는 참정권과 공무담임권의 획득과 행사 요건을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는 행위, (ii) 민주주의 작동의 핵심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에 반하는 행위, (iii) 자체만으로 객관적이고 분명하지 않고(non-self explanatory) 심히 주관적이거나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한 행위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이 일응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오랜 민주주의 역사를 가진 미국 법원의 판례에서 보다 구체적인 기준을 찾을 수 있다. 정당의 공천행위의 민주성을 판단하는 기준에 관한 미국 법원의 판례의 취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첫째, 정당의 당헌.당규에 반하여 이루어진 공직후보자 추천행위는 무효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당의 집행위원회 회의에 의사정족수에 미달하는 위원들이 출석하자 출석한 위원들의 결의로 사망으로 공석이 된 위원을 현장에서 선출하여 의사정족수를 채운 뒤 공직후보자를 추천한 경우, 의사정족수에 미달한 회의에서 공석 위원을 선출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그 공천행위는 무효라고 보았다(Hervey v Greene County Bd. of Elections, 166 A.D.2d 743, 563 N.Y.S.2d 110). 또 다른 예로, 당원이 아닌 자를 공천할 수 없다는 당규에 위반하여 입당하지 않은 사람을 공천한 행위도 무효라고 보았다(McAuliffe v Senn, 97 A.D.2d 745, 467 N.Y.S.2d 913). 

 

둘째, 법령의 규정에 반하는 당헌.당규는 무효이고, 이러한 무효의 당헌.당규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공천행위도 무효라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정당의 주위원회(State Committee)가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도록 하고 있는 선거법에 위반하여 하위의 군위원회(County Committee)가 공직후보자를 추천한 행위는 무효라고 보았다(Martin v. Alverezl, 21 A.D.3d 572, 799 N.Y.S.2d 921). 또 다른 예로, 정당의 당원이기만 하면 그 정당 내부 위원회의 위원이 될 수 있도록 한 선거법에 위반하여 해당 정당의 당원으로서 10년 이상, 당직자로서 6년 이상 재직한 자만이 해당 정당의 군위원회(County Committee)의 의장과 부의장에 선출될 수 있다고 한 당규를 무효로 판단하였다(Terenzi v. Westchester County Committee of the Conservative Party of New York State, 71 Misc.2d 93 171 Misc.2d 93). 위 판례는 그 무효의 이유로 “민주주의가 기능할 능력은 선거에서 그 지도자를 바꿀 유권자들의 힘에 달려있는데,” “The ability of a democracy to function lies in the power of the voters to change its leadership at each election.”

 정당의 규칙으로 인해 그러한 민주주의 원칙이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들고 있다. 정당의 당헌.당규가 민주적 절차를 규정한 법령에 위반되는 경우 이는 무효라는 취지의 판례들이 여럿 존재하는바, Kahler v. McNab, 48 N.Y.2d 625, 421 N.Y.S.2d 53, 396 N.E.2d 200; Lugo v. Board of Elections, 123 Misc.2d 764, 474 N.Y.S.2d 910 (Sup.Ct.N.Y.Cty.1984).

 이들 판례들은 한결같이 그 원칙을 다음과 같이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비록 정당은 정당의 지배구조에 관한 규칙을 채택함에 있어서 넓은 자유(latitude)를 갖지만, 정당의 규칙이 법령의 원칙을 벗어나서는 아니 된다.” 

 

4. 정당 공천의 민주성 확보에 관한 우리 법원의 입장

우리나라 법원도 정당 공천행위의 민주성 여부에 관하여 수차례의 판단을 내린 경험을 갖고 있다. 

 

우선, 당헌.당규에 위배되는 정당의 공천행위는 무효라고 본 사례들이 다수 있다. 첫 번째 사례로는 2000. 3. 24.에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이 사법사상 최초로 “공천이 민주주의 원리에 위배되거나 절차가 현저히 불공정하고 정당 내부규정에 위배되는 경우에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전제하고, ‘공천과정에서 지구당 의사를 반영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한 당헌에 위반하여 전혀 그러한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16대 국회의원 입후보자 공천의 효력을 공천무효확인의 소송 확정 때까지 정지시킨 사례이다. 두 번째 사례는, 2004. 3. 26.에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지역구 후보가 되려는 자는 공모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한 당헌에 반하여 후보자 공모기간 중 공천 신청도 하지 않은 인물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의 후보자로 결정한 사안에서 ‘지구당 당원의 민주적 절차에 관한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로 공천효력정지 가처분 결정을 내린 것이다. 세 번째 사례는 2016. 3. 23.에 이번에 치러진 제16대 국회의원 공천과 관련하여 서울남부지방법원이 정당의 공천관리위원회가 의결정족수를 채우지 않은 상태로 공천신청인의 공천신청을 반려하기로 한 사안에서 그러한 결정은 당헌.당규에 규정된 절차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공천의 효력을 정지시킨 것이다. 

 

반면에 정당의 공직후보자 선정이 민주성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본 사례도 있다. 현역 국회의원의 25%를 제19대 국회의원 후보자 공천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한 소위 컷오프제도의 민주적 절차 및 적법 절차 위반 여부에 관해 서울남부지방법원은 구체적인 컷오프 기준 및 심사절차가 별다른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정해졌다거나 현저히 자의적으로 적용되었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컷오프 기준에 불분명한 점이 있고 컷오프 평가항목에 합리성이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 정도는 정당이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자율적 영역에 속한다는 이유로 그 적법성을 인정한 사례이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2. 3. 20. 선고 2012카합177 결정). 

 

한편, 대법원은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후보자의 당내 경선 절차에서 시당 선거관리위원장의 관인이 누락된 투표용지의 유.무효 여부에 관한 중앙당 최고위원회의 무효 결정이 민주적 절차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서 “당내 후보자 경선이 일반적인 선거원칙의 본질을 침해할 정도로 후보자선정이 객관적으로 합리성과 타당성을 현저히 잃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 후보자선정은 유효하다”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대법원 2015. 2. 12. 선고 2014수39 판결[당선무효확인의소]).

 

위에서 본 우리 법원의 판결례의 취지를 요약하면, 정당의 당헌.당규에 정해진 공천절차에 명백히 위반하여 이루어진 정당의 공천행위를 무효로 보는 입장은 비교적 잘 정립되어 있으나, 공천의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고 다분히 결정권자의 자의에 맡겨져 있는 경우 그 민주성을 부인하는 데는 상당히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5. 공천 기준의 ‘민주성’ 보장에 관한 법원 입장의 진일보가 필요하다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정당의 공직후보자 추천행위의 난맥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적극적 관여가 필요하다. 우선, 정당의 당헌.당규에 위배되는 공천행위는 물론, 당헌.당규가 법령에 위반되는 경우에는 그 당헌.당규에 따라 이루어진 정당의 공천행위까지  과감히 무효로 선언하여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천의 기준이 그 자체만으로 객관적이면서 분명하지 않고 자의적인 경우에도 간접적으로 ‘유권자의 판단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민주성을 부정하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다수결 원칙을 위반하여 소수의 지지를 받은 사람을 추천하는 행위나 특정의 1인이 사실상 후보추천권을 행사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자유가 방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정치활동의 자유 보장을 이유로 정당 공천의 자의성을 방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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