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 국민은 이미 대패(大敗)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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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운털 박힌 유승민의원을 저렇게 잘라버렸다. 그 주변의 인물들도 죄다 잘랐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한 쪽은 비리 전력에 당적을 몇 번이나 옮겨 가며 비례대표를 네 번이나 한 비대위원장이 비례대표 2번을 셀프-공천했다.
선거 때가 되면 하던 나쁜 짓도 중단한다. 평소하지 않던 예쁜 짓도 한다. 표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마치 경쟁하듯, 작심하고 이해하지 못할 일들을 했다. 말로는 선거에서 이기고 어쩌고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도무지 이기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왜 이럴까? 민심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아니면 공천권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소신이 강해서?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선거를 당내 세력구도 재편의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을 주도하는 자들의 입장에서 이번 선거는 선거가 아니다. 대선을 앞두고 당내 패권을 강화하는 기회일 뿐이다.
이 점에 있어 거대정당 둘은 완벽한 담합을 했다. 한 쪽만 무리를 하면 다른 쪽이 반사이익을 얻을 가능성이 너무 크다. 결과적으로 선거 후 무리수에 대한 비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양쪽 모두 무리수를 쓰는 상황에서는 이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어느 쪽도 유리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자르고 싶은 대로 자르고 가지고 싶은 대로 가졌다.
누가 이렇게 했나? 알 수 없다. 증거도 없고 시작과 끝을 추적하기도 힘이 든다. 하지만 누가 얻고 누가 잃었나를 보면 떠오르는 게 있다. 비박이 대거 잘려 나갔으니 대통령과 청와대를 지목하는 것이고, 친노가 아닌 친 문재인 세력과 친 김종인 세력이 커졌으니 두 사람 간에 무엇이 있지 않았겠느냐 의문을 가지는 것이다.
누가 이기고 누가 가졌던 국민은 이미 졌다. 선거의 최대 패배자이자 피해자는 국민이다. 투표를 한들, 또 어떤 선거결과를 얻은들 국가나 국민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나? 승리는 오직 그들 몫이다.
생각해 보라. 친박 중심의 새누리당이 이거면 뭐라 말하겠나? 친박패권을 강화한 것을 국민이 이해해 주었다고 할 것 아닌가? 그동안 있었던 각종의 부도덕하고 무리한 일들을 국민이 추인해 주는 꼴이 되지 않겠나? 선거에 이긴 후 이들이 뱉어낼 제일성을 상상해 보라. “국민여러분의 사랑과 지지로 승리하게 되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더불어민주당이 이기게 되면 또 뭐라 하겠나? 이런저런 전력에도 불구하고 당을 옮겨가며 비례대표를 다섯 번이나 하는 것을 국민들이 밀어주었다고 하지 않겠나. “국민여러분, 여러분의 이해와 지지로 이번 선거를.......” 역시 끔찍하다.
그렇다고 스스로 튀어 나온 당과 통합을 하자는 논의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후보들이 들어 있는, 또 공천과정에 도끼까지 등장한 국민의 당을 찍을 것인가? 이 또한 답답한 일이다.
선거결과와 관계없이 국민은 이미 졌다. 그냥 진 것이 아니라 대패, 즉 크게 졌다. 앞으로 4년 내내 이 부도덕하고 볼썽사나운 공천과정을 주도하거나 통과한 패권세력 주체와 하수인들이 금배지를 달고 국회 안팎에서 헤매는 모습을 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분통을 터뜨려야 할 것이다.
어쩌다 이 꼴이 되었을까? 간단하다.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도 없는 사람들이 정치와 국정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력이 없으니 어쩌겠나. 패거리를 만들고 그 힘으로 힘을 얻고 유지하는 수밖에 더 있겠나. 국민이야 죽든 말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건 말건 말이다. 패거리 없앤다며 패거리를 만들고, 패거리 패권구도를 없앤다며 새로운 패권구도를 만든다.
국민은 속수무책, 어찌할 수가 없다. 이들이 만들어 놓은 정당제도 아래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정당이 정치과정을 독점하게 해 놓고, 그 속에서 두 개의 거대 정당이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다. 새로운 정당을 만들면 되지 않나 하지만, 그렇게 하면 또 다시 정치권 안팎의 바람직하지 못한 자들만 몰려든다. 새 정당은 금방 헌 정당이 된다.
말만 국민주권에 주권재민이다. 썩은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길을 썩은 정치 그 자체가 막고 있다. 절망이다. 친박 패권을 대 놓고 밀어붙이는 상황을 그대로 보고 있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한다. 또 비리 전력에 이 당 저 당 돌아다니며 다섯 번이나 비례대표를 하는 정치인이 오직 명예만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하는데 분노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길을 찾아야 한다. 썩은 정당들과 파렴치한 정치지도자들이 정치를 독점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이 이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은 있을 수 있다. 다만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 인해 그 길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근본적 모순과 함께 기존의 국정운영체계의 한계 등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길은 찾을 수 있다. 보다 혁명적인 시각으로 보다 혁명적인 방법을 찾아보자. 길은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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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님의 댓글
김선우
안녕하세요. 사회학을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손발이 오글거리게 만든 현 정치권에, 매우 분노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혁명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비슷한 의미로 장하성 교수님은 '나비효과'를 인용하시면서 청년층의 적극적인 선거참여와 문제인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미 국민들은 대패했습니다. 누굴 뽑고 지지해야 하는지를 논의하는 것 조차, 이젠 한숨만 나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는 해야합니다. 그런데 이미 더러워진 물이기에,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지난 번에 돋보기에서 말씀하셨던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씀하시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그 실질적 과정은 어떻게 될까요?
"이렇게 하자!" 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모이고, 갈등을 위한 분노해소가 아닌 건설적인 대안과 구체적인 개혁을 논하고, 폭력이 아닌 대화와 타협을 통해 '민주주의' 안에서 해결해 나가야 할 텐데요.
그 구체적인 프로세스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가 궁금합니다. 혁명, 보수든 진보든 완전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신 그 길을, 여쭙고 싶습니다.
P.S 교수님께서는 국민의당 행사에서 축사를 해주셨습니다. 단순한 개인적 호의만으로 참석하셨다고 생각치는 않습니다. 분명 기대하는 무언가가 있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국민의당에 '혁명'을 기대하셨는지, 만약 그렇다면 국민의당이 지향했어야 할 혁명은 무엇인지 또한 여쭙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