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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不通)과의 결별,新광화문시대를 열어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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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1월18일 11시50분
  • 최종수정 2019년01월18일 11시48분

작성자

  • 유연채
  • 前 KBS정치부장, 워싱턴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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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대통령시대가 무산됐다. 광화문시대는 대통령이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에서 내려와 광화문에 집무실을 두고 출퇴근길에 시민들도 만나고 근처 시장에 들러 서민들과도 대화하는  <국민속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다.<제왕적 대통령>의 포기선언이다. 문재인시대를 하나로 담은 공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촛불 대통령의 이 굳센 약속이 깨진 건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문제를 대표적으로 웅변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꼭 가야할 길이라도 갈 수 없는 길이 있음을 알려준다. 현실과 이념의 간극은 얼마나 큰 것인가를 확인해준다. 그리고 문재인의 길이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유홍준 광화문시대 자문위원장은 경호와 의전의 어려움을 해소할  공간이 확보되지 않아 공약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년 반 이상을 준비해온 것 치고는 해명이 참으로 가볍다. 그야말로 제1호 공약인데 처음부터 이런 문제가 발생하리란 걸 몰랐을까? 그러면 ‘지켜지지 않아도 할 수 없지’라며 시작했을까? 아니  지내보니 역시 청와대야 라는 판단을 한 것일까? 

결국 유홍준 위원장에게만 맡겨놓고 정작 당사자는 이사 갈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약속대로 라면 바로 올해 2019년, 광화문 대통령시대의 역사적 개막을 볼 수 있었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없이 허망하다. 꿈을 빼앗긴 것처럼 말이다. 꿈이 바로 현실이 되는 건 아니지만 때로 현실이 될 때 더 큰 감동이 된다. 월드컵 4강 신화처럼 말이다. 

 

세상을 바꿀 뻔한 2019년, 청와대는 철옹성 같은 북악산자락에 그렇게 위압적인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다. 멀게만 보이는 청와대에서 광화문으로 내려온 최초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보고 싶었다. 국민들은 갈망했다. 새로운 나라를 보여주는 상징이라 여겼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라서 가능할거로 봤다. 

 

광화문 광장 촛불혁명의 힘으로 대통령이 되었기에 그곳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은 결코 져버리면 안 되는 일이었다. 큰 약속을 깬 것이다. 지문처럼 지우기 어려운 불신(不信)으로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다. 공약무산은 차라리 잘 된 일이라는 쪽도 많다. 이 경제난에 큰 부담을 던 때문인지, 처음부터 비현실적이라 여겼는지 여권은 아쉬움이 별로 없어 보인다. 대통령 공약(公約) 1호가 공약(空約)으로 날아갔는데 보수가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은 더 이상하다.

광화문 대통령 시대가 오는 게 두려워서 일까?. 한국당은 박근혜대통령을 끌어내린 광화문의 힘, 그 트라우마를 지우기 어려울 거다. 광화문이란 말만 들어도 움츠러드는데 문대통령이 광화문으로 내려오면 보수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으로 청와대가 지켜진 것에 오히려 안도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광화문시대가 무산된 것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날려 보낸 셈이다. 촛불의 압도적 지원으로 탄생시킨 열린 광장의 시대로 문재인 정부를 상징화한다면 광화문대통령시대의 포기는 소통정치의 조종(弔鐘)을 울린 거다. 취임 때 문대통령이 직접 말한 광화문시대의 미래는 국민들의 심금(心琴)을 울렸다. 청와대 대통령시대를 끝내겠다고 했다. 특권의 한 시대를 끝내겠다고 했다.

 국민 속으로 국민 곁으로 가는 ‘특별한 약속’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약속이 깨지는 전조와 징후는 도처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문재인 청와대가 처음 문을 열었을 땐 ‘과연’이란 탄성이 나왔다. 소통의 광장으로 거침없이 나가는구나, 기대는 커졌다. 참모들과 테이크아웃 커피 컵을 들고 잔디밭을 산책하며 담소하는 모습은 “뭐 대면보고가 필요한가요?”라고 수석과 장관들에게 우스개처럼 말을 던졌던 직전 대통령과는 너무나 대비됐다. 언론과는 사전 각본이 없는 신년회견을 했고 기업인들과는 웃옷 벗고 호프미팅을 하며 경제발전에 함께 가자고 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기획 이벤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아는 데는 굳이 첫눈이 올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청와대 20개월 동안 국민과의 소통은 점점 야위어 지고 멀어져 갔다. 반면 정책과 의사 결정에서 부처는 점점 소외되고 청와대가 다 한다는 비판은 커져갔다. 이른바 청와대 정부다. 정의와 진실도 그들만의 것처럼 독점되는, 예의 그 익숙한 옛날 청와대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소통이 차단된 공간엔 제왕적 권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을 카페에서 만나는 초유의 사태가 났는데도 대통령의 비서는 언제 누구라도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는 일상적인 일이 된다. 공무원의 휴대폰은 언제든 임의적으로 영장 없이 압수해 조사 할 수 있다 한다. 

 

결국 우리는 광화문 대통령시대로 가지 않는다고 청와대가 스스로 문을 닫은 셈이다. 의전과 경호의 문제는 근본이 아닌 것이다.

닫혀 진 문밖으로 ‘이건 아니잖나’ 라고 소리치는 내부 고발자가 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청와대와 여권은 ‘미꾸라지, 망둥어가 날뛴다’고 했다. 여당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원전 정책과 소득주도 성장을 조정하라는 고언(苦言)이다. 집권3년차의 징크스들이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건 무얼까? 어김없이 반복된 역사의 거울에 비춰보면 배신 또는 권력투쟁일 것이다. 때때로 또는 자주 혼밥, 혼술을 한다고 알려진 대통령은 더욱 외로워 질 것이다. 광화문시대를 포기한 뒤의 청와대는 왠지 더 쓸쓸해 보인다. 이사 간다고 설레다가 그대로 눌러 앉을 때의 허전함이 느껴진다. 문화전문가 유홍준 위원장이 풍수지리적으로 불길한 점도 있어 이전해야 한다고 지나가듯 말한 것은 꼭 그곳을 나와야 한다고 걱정하는 깊은 한숨처럼 들린다. 실제로 청와대의 기운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나같이 대통령을 힘 빠지게 하는 사건의 연속이다.

 

 지지율은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정체 중이다. 그래서 일까? 문 대통령은 청와대 개편을 통해 더 가까운 사람들을 불렀다. 2012년 대선후보시절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친문중의 친문’ 노영민 주중대사를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앉혔다. 보수쪽에서 끊임없이 사퇴를 요구한 조국 민정수석은 유임시켰다. 친정체제를 강화했다. 갈수록 순혈주의(純血主義)가 견고해진다며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곁에서 찬가를 불러주는 사람, 아니면 호루라기를 불어주는 사람 어느 쪽이 해답일까, 같은 유전자를 가진 사람, 쓴소리를 하는 사람 어느쪽 선택이 현명할까? 포기를 선언한 광화문시대를 되살리는 것이 분명한 해답이다. 청와대를 떠날 수 없다면 그 안에서 <新 광화문시대>를 열어라. 의지만 있다면 청와대 안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열린 광장으로 더 낮은 곳으로 청와대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혼자 하는 대통령의 식사에 시민들을 초청하면 되는 일이다. 청년들을 불러 맥주를 마시며 대통령의 정책에 왜 반대가 큰 지를 물으면 되는 일이다. 현장 이야기를 경청하면 정책을 바꿀 마음이 생길 것이다. 때로는 청와대 밖 골목시장으로 암행시찰도 나가보라, 경제위기론을 보수의 이념동맹이 만든 프레임으로만 치부할게 아니라는 현실과 직면할 것이다.

 

광화문 시대는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과 삶을 존중하고 살핀다는 약속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며 봉사자 였던 청년 공무원 신재민의 세계는 정말 하찮은 세계인가, 청와대는 그 아래가 모두 좁은 세상으로 보일만큼 드높고 넓은 세계인가? 이런 반문(反問)들은 광화문 촛불광장에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외침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광화문 시대를 사실상 포기한다는 발표와 함께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집권3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광화문 시대는 끝난 게 아니다. 영원히 불씨를 살려가야 할 약속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특별한 소통의 약속을 실천하는 일은 국민을 살리고 나라를 살리고 정권도 살리는 일이다. 이를 포기한다면 영락없이 정권실패의 그림자가 40개월의 남은 시간들을 덮어 버릴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국회와 소통하고 시장과 소통하는 광화문 시대의 새로운 질서, 뉴노말(New Normal)을 열어야 한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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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1월18일 11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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