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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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괴담 정치’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발생한 재앙적인 쓰나미(지진해일)에 의해서 파괴되어 뜨겁게 달아올랐던 노심(爐心)을 식혀준 지하수‧빗물은 ‘핵 폐수(廢水)’가 돼버렸다. 우리 수산물‧천일염의 안전성을 강조하는 과학자도 국민 건강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친일 돌팔이’로 전락해버렸다. 일본의 본격적인 방류가 시작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지식인과 언론의 역할이 몹시 실망스럽다. 냉철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이성적 문제 제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불안에 떠는 국민을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엉터리 억지‧궤변‧횡설수설로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어쨌든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은 우리 어민과 수산업자만 괴롭히는 명백한 자해(自害) 행위다. 과학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괴담으로는 국제 사회에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리의 우려를 정당화시킬 수 없다.
과학‧상식을 외면한 지식인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은 명문대학의 ‘명예교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후쿠시마 괴담을 ‘제2의 광우병 괴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의한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그의 입장은 널 뛰듯 오락가락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우리 근해에서 생산한 수산물은 절대 안전하다’는 것이 그의 명백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이 지난 2년 동안 아무도 종잡을 수 없는 횡설수설로 변해버렸다. 이제는 정반대로 오염수 방류가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우기고 있다. 심층해류‧삼중수소‧평형수가 문제라고 한다.
결국 애써 참아왔던 어민들의 분노가 폭발해버렸다. 자신들의 생업에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킨 서균렬 서울대 명예교수를 경찰에 고발해버렸다. 어민과 수산업자의 상황은 심각하다. 근해에서 잡은 생선의 가격이 절반 이하로 떨어져 버렸고, 천일염은 동이 나버렸다. 수산시장과 횟집도 문 닫을 걱정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렇다고 경찰이 당장 수사에 나설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신의 반일(反日) 감정을 애써 숨기지 않는 물리학자도 있다. 과학적으로 처리한 오염수의 방류는 허용할 수 있지만 굳이 앞장서서 찬성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일본의 오염수 방류는 단순한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문화‧역사의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에 대한 뼈에 사무친 거부감을 거침없이 드러낸 지적이다.
인문‧사회학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합리적‧이성적 판단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방사성 핵종의 ‘처리’와 ‘방류기준’이 무엇이고, 독성물질의 ‘희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일상생활이나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오수(汚水)와 폐수(廢水)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 지에 대한 상식도 외면해버린다.
실제로 어느 중진 역사학자는 일간지 칼럼을 통해서 ‘어느 쪽 과학이 옳은지는 나는 모르겠다’는 낯 뜨거운 고백을 했다. 우리 수산물이 안전하다는 ‘보수의 과학’과 당장 재앙이 닥쳐오고 있다는 ‘진보의 과학’ 중 어느 것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지를 헤아리고 판단할 능력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이다. ‘과학’과 ‘상식’까지 이념의 틀로 재단하고 구획하는 것이 ‘문송이 교육’에 찌들어버린 우리 인문학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역사적 교훈에 대한 해석도 황당하다. 1591년 조선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동인(김성일)과 서인(황윤길)이 조정에 정반대의 보고를 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서인이 보고했듯이 임진왜란이 일어난 것도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동인의 판단이 안이했던 셈이었다. 그런 역사적 경험 때문에 우리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드시 위험한 것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서균렬 교수를 잘 안다’는 지적도 당혹스럽다. 서균렬 교수가 걱정하는 해류는 방사성 핵종을 우리나라로 운반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서 고려하는 해류의 특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해양학자도 아닌 ‘젊은 변호사’가 지적한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고, 서 교수의 억지로 생업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고 호소하는 어민들에 대한 공감의 자세도 필요하다.
오염수 방류의 과학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의 과학과 상식은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과는 정반대다. 137만 톤에 이르는 오염수를 한꺼번에 방류하더라도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은 측정도 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 정설이다. 후쿠시마 앞바다에 1억5000만 개의 페트병을 버리면 그중에서 우리나라로 흘러오는 페트병은 1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후쿠시마에서 버린 페트병은 시간이 지나도 해류를 따라 우리나라로 한꺼번에 ‘흘러오지 않는다’는 분석이 더 적절하다는 뜻이다.
원자력연구원과 해양연구원의 분석이 그렇고, 중국의 과학적 결론도 마찬가지다. 과학잡지 ‘네이처’와 ‘뉴사이언티스트’에 실린 과학 논문도 다르지 않다. 해류가 오염물질을 고스란히 운반해주는 대신 사방으로 흩어지게 만든다는 우리 상식과도 일치하는 결과다.
방사성 핵종의 독성에 대한 억지도 과학이나 상식과 맞지 않는다. 세상에 ‘독’(毒)과 ‘약’(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강한 독이라도 노출‧피폭량이 충분히 적으면 걱정할 이유가 없고,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노출‧피폭량이 너무 많으면 독이 되기 마련이다. 중세의 명의(名醫) 파라셀수스가 남긴 ‘용량(用量)이 독을 만든다’는 명언이 바로 그런 뜻이다.
삼중수소‧스트론튬‧세슘‧플루토늄도 예외일 수가 없다. 오염수를 알프스(다행종제거설비)로 처리한 후 방사성 핵종의 농도가 방류기준 이하가 되도록 400배로 묽히면 방사선 피폭에 의한 부작용을 걱정할 이유가 사라져버린다. ‘폐기물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 방지’를 위한 런던협약에서도 그런 처리‧방류수의 해양 방류는 무제한으로 허용한다. 우리도 하수‧오수(汚水)‧폐수(廢水)를 똑같은 방법으로 처리‧희석해서 바다로 방류하고 있다.
방사선 피폭의 부작용이 ‘발암성’으로 한정되는 것도 분명한 상식이고 과학이다. 암은 대표적인 만성질환이다. 방사성 핵종으로 오염된 수산물을 한 번 먹거나, 만지거나, 본다고 암에 걸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오염 사실이 확인된 수산물을 굳이 먹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오염 가능성이 매우 낮은 수산물은 ‘한 마리도 먹으면 안 된다’는 억지에 겁을 낼 이유는 없다.
방사성 오염물질의 해양 투기에 대한 과도한 우려는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경험도 있다. 1993년에는 러시아가 핵잠수함에서 배출된 핵 오염물질을 동해에 대량으로 투기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11년부터 2년 동안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서 속수무책으로 태평양에 누출된 방사성 핵종의 양도 현재 후쿠시마 오염수에 들어있는 것보다 적어도 1000배나 많았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방사선으로 오염된 수산물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70경 톤의 바닷물이 들어있는 태평양의 자연적인 자정(自淨) 능력을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태평양에 방사성 오염물질을 마구 투기해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과학’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민 불안을 잠재워줄 것이라는 정부의 주장이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사고 직후 2년 동안 속수무책으로 누출된 원전 파편으로 심하게 오염됐던 후쿠시마 근해의 수산물에 대한 정부의 어정쩡한 입장도 국민 불안을 부추긴다.
형평성을 핑계로 엉터리 괴담을 마구 증폭시켜 놓은 언론의 책임도 무겁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의한 우리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과학’에 갈래가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과 상식을 거부하는 괴담을 합리적인 과학으로 착각하는 언론의 전문성은 몹시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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