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주도 경기대책, 가계부채 폭발 위험성 높인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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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로 가계대출 잔액이 1천조 원을 돌파한데 이어 금년 1~3월간 주택담보대출이 11.6조원 증가하여 작년 동기 증가액 1.3조원의 9배에 달하는 급증세를 보임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과연 가계부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가? 경제규모에 대비하여 어느 정도의 가계부채 규모가 위험수준인가에 대해서 합의된 기준은 없다. 개략적으로 국내총생산의 75%수준을 임계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작년 우리나라의 가계신용 규모는 국내총생산 대비 73%로 위험수준에 육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미 가계부채 상환 부담이 가계소비를 위축시키는 만성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대출은 주택담보 대출이 45%를 차지하고 있어 일단 건전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건전성 측면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자영업자 대출로 작년 6월말 현재 370조원에 달하며, 특히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 수는 작년 9월말 현재 329만명으로 대출규모는 323조원로 전체 가계대출의 3분의 1에 달한다. 문제는 국내경기가 계속 침체될 경우, 자영업자들이나 다중채무자들의 상환위험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최근의 가계부채 급증 양상은 작년 8월 주택담보대출비율(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한은의 금리인하가 이를 촉진했다. 경제 활성화에 충력을 기울이고 있는 정부는 금년 1분기 전국 주택매매거래량이 전년 동기대비 18% 증가하여 부동산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는데 일단 성공했다. 신임 금융위원장이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를 중단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렵게 살린 주택경기 활성화에 누가 찬물을 끼얹겠는가? 하지만 정부는 언제까지 주택담보 대출 증가세를 경제활성화 수단으로 활용할 것인가? 그동안 과연 가계부채는 얼마나 증가할 것이며, 그래도 가계부채는 안전할 것인가?
가계부채의 총량이 급증하는데 따른 문제점에 대하여 정부는 총량 규제 대신에 가계부채의 구조를 개선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 주목을 끌었던 ‘안심전환대출’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안심전환대출로 공급된 34조원은 다른 문제점은 논외로 하더라도 460조원 주택담보대출 총액의 7.4%에 불과하다. 안심대출로 전환되지 않은 430조의 ‘불안대출’은 어떻게 할 것인가?
가계부채 문제가 완화되기 위한 전환점은 가계소득 증가율이 가계대출 증가율보다 높아져 가계의 상환능력이 높아지는 것이다. 문제는 지난 10년 동안 가계총가처분소득 증가율보다 가계대출 증가율이 높은 추세가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가계총가처분소득은 54% 증가에 그친 반면에 가계대출은 100% 증가하였다. 특히 작년 가계총가처분소득은 3.7% 증가에 그친 반면에 가계대출증가율은 6.9%에 달하여 문제가 더욱 악화되었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을 주택경기활성화 대책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한에는 이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고, 가계부채 증가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 분명하다.
경기는 40개월을 넘게 완만한 하강국면을 이어가고 있으나, 다행히 금융기관들의 가계대출 부실율은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대체로 대출 부실은 대출 증가의 2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작년 하반기이후 대출 급증은 2017년 하반기부터 부실 위험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고, 특히 그때 경기가 어려울 경우 그 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다. 가계대출의 급증세를 우려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금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0월 3.9%에서 지난 1월 3.4%로 낮추더니 4월에는 3.1%로까지 다시 낮추었다. 예상보다도 악화되고 있는 세계 경제 흐름으로 봐서는 과연 3%가 가능할지 의문스럽다. 한국은행이 전망하고 있는 내년 성장률 3.4% 역시 신뢰성이 낮아 보인다. 이와 같이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과연 음식업 등 자영업자들의 사업은 어떻게 될 것이며, 부채를 제대로 상환할 수 있을까?
최경환 부총리는 작년 6월 취임 이래 확대재정정책부터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장하는 소득정책에 이르기까지 놀라울 만큼 폭 넓은 경기대책을 추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성과를 보이고 있는 정책은 작년 8월 주택담보대출 규제완화를 통한 주채주도 경기대책이다. 정부와 가계의 부채를 확대하여 경기회복을 촉진하는 부채주도 경기대책은 단기적으로 가장 효과적인 경제 활성화 대책임에 분명하다. 정치권에서 소득주도 성장론이 거론되고 있으나, 정부가 재정정책으로 가계소득을 늘리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편 조세 등을 통하여 소비를 촉진하는 정책도 국민들의 미래에 대한 기대가 개선되지 않는 한 단기간에 상당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에 부채주도 성장정책은 단기에 효과를 나타내는 한편 부작용은 빨라야 2년 후에나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부나 부채주도 성장정책의 유혹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부채주도성장 정책이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김대중 정부 말기의 신용카드 보급 확대를 통한 소비촉진정책은 2003년‘카드대란’을 가져 왔고 이후 내수는 2년 넘게 극심한 어려움을 겪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가계부채 규모는 임계치에 이르러 시한폭탄의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주목해야 할 중요한 이유는 이 시한폭탄의 폭발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경기침체의 장기화와 가계의 부채 증가를 경제활성화 수단으로 쓰는 정부 정책에 의하여 그 위험은 높아지고 시간은 앞당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가계대출은 123조원 증가하였으며, 국가채무는 84조원 증가하였다. 기획재정부는 박근혜 정부 5년간 국가채무가 216조원 증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가계 부채의 증가를 경기대책으로 계속 추진한다면, 가계 대출은 과연 얼마나 증가할 것인가? 더 심각한 의문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해인 2017년까지 가계부채 문제를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대로 간다면, 박근혜 정부는 정부 부채와 가계 부채의 증가로 그나마 저성장 경제를 유지한 ‘부채의 정부’로 기록될 가능성이 있다.
현 정부가 ‘부채의 정부’로 남고 싶지 않다면, 현재의 부채주도 경기대책을 계속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 본고는 중앙일보 4월 15일자 시론으로 실었던 내용을 수정 보충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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