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bottom)의 위험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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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업이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기업을 경쟁에서 도태시키기 위해 일시적으로 제품을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우리는 ‘덤핑’(dumping)이라고 부르면서 죄악시한다. 경쟁기업들이 서로 덤핑을 계속하게 되면 그 결과는 ‘영의 수익’(zero profits)에 이른다. 그래서 이러한 덤핑행위는 이른 바,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bottom)의 대표적 경우로 불린다. ‘바닥으로의 경쟁’을 통해서 어느 한 기업만 살아남아서 시장을 독점하는 경우도 가끔 있지만, 경험칙상 기력의 소진으로 모두 도태되는 경우가 더 많다. 설령, 어느 하나가 최종적으로 살아남아서 시장을 독점하게 되더라도 소비자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이런 해악을 막기 위해 세계 각국은 덤핑을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어떤 외국기업이 국내시장에서 덤핑행위를 했고, 그로 인해 국내산업에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판정되는 경우 덤핑방지관세를 부과한다(관세법 제51조 이하).
그런데, 경쟁자를 따돌리고 혼자서 시장을 독식하려는 목적에서 행하는 ‘바닥으로의 경쟁’ 행위는 기업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들 사이에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유해한 조세경쟁’(harmful tax competition)이라고 불리는 기업소득에 대한 법인세 인하 경쟁이다. 유해한 조세경쟁이라고 함은,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각국이 국제자본이나 그 동원활동을 가능한 한 많이 자국 내로 유치하기 위해 외국자본이 자국 내에서 올리는 소득에 대해 여러 가지 조세혜택을 경쟁적으로 제공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유해한 조세경쟁은 일시적으로 해당 국가에게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 심대한 세수의 손실을 가져오고, 실물경제에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며, 소득세의 회피 내지 탈세를 유발할 수 있다. 유해한 조세경쟁에 가담했다가 일시적으로 경제발전의 이득을 얻었지만, 궁극적으로 돌이키기 어려운 타격을 입은 국가의 대표적 예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 전후의 아일랜드를 들 수 있다. 오랫동안 서유럽의 빈국으로 지내던 아일랜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규제혁파, 자본시장 개방, 인적자원의 자질 제고’ 등의 정책을 동원하여 경제부흥에 나섰다. 그런데, 그 정책의 핵심에 ‘유해한 조세경쟁’이 있었다. 다른 나라와 체결한 조세조약에서 자국의 기업이 상대방 국가에서 올린 이자소득에 대해 자국만이 과세권을 갖는 조항을 둠과 동시에(예를 들면, 한.아일랜드 조세조약 제11조 제1항) 자국의 법인세율을 1998년의 32%에서 2003년 이후에 12.5%로 현저히 낮춤으로써(Section 21(1) of Taxes Consolidation Act 1997) 세계의 투자와 투기 자본을 끌어들였다. 실물경제 중심의 국가에 투자하거나 투기하는 세계자본의 도관 역할을 한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부터 2007년까지 연평균 6.5%의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렇게 몰려든 투기성 자본은 자산가격의 거품을 엄청나게 키웠고, 급기야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도래로 그 거품이 터지면서 IMF의 구제금융을 받기에 이르렀다. 극도의 긴축정책을 편 끝에 몇 년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서 250만여 명의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으며 아직까지도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들 간 ‘바닥으로의 경쟁’ 행위의 또 다른 하나는 경쟁국에 비한 환경규제의 상대적 완화 내지 환경오염 행위의 방치이다. 최근에 중국의 국영방송인 CCTV의 전 아나운서인 ‘차이징’(柴靜)이 ‘under the dome’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통해서 고발한 중국의 스모그 방치 정책을 대표적 예로 꼽을 수 있다. 이에 의하면, 환경당국자들은 매일 새벽 기준치의 500배에 달하는 매연을 뿜으면서 북경으로 들어오는 트럭들을 단속하지 못하는 이유로 "단속했다가는 자동차 회사들이 파산한다"는 경제적 사정을 들고 있고, 철강공장 굴뚝 오염을 단속하지 않는 이유로 "저 공장에서 월급 받는 사람이 10만 명이다"라는 답을 하고 있다. 또한 휘발유 기준이 느슨한 이유에 대해서는 "함부로 기준을 강화했다가 석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사회가 불안해진다"는 이유를 대고 있다. 요컨대, 먹고 살기 위해서는 환경규제는 실행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 대부분의 지역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례를 찾기 어려운 대기오염에 시달리고 있고, 이웃한 우리나라에도 그 폐해를 전이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 규제 면에서의 ‘바닥으로의 경쟁’은 그 이유로 들고 있는 경제발전을 지속적으로 지탱할 수 없고, 그 최종 종착지는 오히려 자국민의 생존 자체의 위협임은 이미 인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1952년 12월 영국 런던에서, 산업체와 가정에서 사용하던 석탄연료의 폐가스를 그대로 방치하는 바람에 때마침 나타난 저온 다습한 기후현상과 맞물려 유독 스모그를 발생시켜 12,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지금 세계 각국이 경제 침체 내지 저성장의 늪을 탈출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벌이고 있는 양적완화의 통화정책, 이자율 및 화폐가치의 인하 등도 일종의 ‘바닥으로의 경쟁’이다. 이러한 ‘바닥으로의 경쟁’은 분명히, 단기적으로는 가담 국가에게 이득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앞 다투어 동일한 경쟁을 무한정 펼치게 되면, 본래 의도한 정도만큼 목표한 효과를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새로운 거품의 형성과 붕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가져올 수 있음은 굳이 계량적으로 분석하지 않더라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바닥 지향적 경쟁을 통해 형성된 거품(과다한 자산가치, 과다한 부채, 과잉소비)은 반드시 터지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자본의 확충, 첨단기술의 개발 및 우수 노동력의 양성 등 기업과 국가경제의 성장동력을 제고하는 노력의 뒷받침 없이 ‘바닥으로의 경쟁’에 몰두하는 정책은 해당 국가 자신을 위하여서도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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