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청 시인의 문학산책 <44> 순교자의 묘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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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양촌리 시골집에 산다. 아내와 둘이 사는 시골 생활이라 격식 없이 산다. 새벽에 일어나 강릉 경포대나 서해안 안면도쯤 달려가 아침 요기를 하기도 하고, 오전 내내 잔디밭의 잡초를 뽑아주기도 한다.
세탁기의 빨래를 빨랫줄에 내다 넌다. 네 일, 내 일이 있을 수 없다. 맑은 햇살에 마른 빨래를 걷어 들일 때의 청량감이 참 좋다. 내 삶의 후반도 마른 빨래처럼 가벼운 모습이었으면. 아내가 강의하러 가고 혼자 남으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뜨락을 거닐고, 뒷산을 오르며 들판 논둑길을 걷는다.
좀 시간이 나면 ‘단내 성지’엘 간다. 산책길에 나서는 ‘단내성지’까지는 4km쯤 된다. 왕복 8km. 논둑길을 걸어 거길 가면 천주교 박해 때 순교한 다섯 성인이 묻힌 묘소가 있다. 종교적 신념을 위해 목숨을 버린 다섯 사람이 ‘성인’이 되어 거기 봉분을 남겼다. ‘성지’는 늘 호젓하다.
성모상이 놓여 있고 사목관 쪽에 묶인 개가 알은체를 한다. 묘소로 오르는 비탈에 순교자의 이름을 새긴 빗돌이 놓여 있다.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아니, 종교적 신념을 위한 순교는 그 선택이 오히려 쉬운 것이었을까. 하나의 신념만을 위해 단호하게 하나만의 선택을 한 순교자들에게 ‘배교’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순교를 통해 획득하게 된 천국의 열망이 너무나 확연한 것이었으므로. 그렇다면, 종교적 신념을 지니지 않은 나는 어떤가. 내가 순교를 한다면 무엇을 위해 죽을 수 있을까. 나는 시를 위해 나를 버릴 수 있을 것인가. 나도 한때 시를 위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내 나이 스물 다섯, 여섯 때였다. 그때 나는 좋은 시 몇 편만 쓸 수 있다면 죽어도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채 요란한 이명과 싸웠다.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형편 없이 야위어가던 때가 있었다. 꿈속에서도 시를 썼었다.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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