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내수 부진; 의미와 시사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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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리 경제는 회복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지만 그 활력은 극히 미미한 모습이다. 작년 3/4분기 이후 경제성장률이 소폭 높아지고 있다. 2023년 전반기에는 경제성장률이 0.9%에 불과하였으나 3/4분기 1.2%, 4/4분기 2.2%로 높아졌다. 이와 같은 성장세 확대는 수출 증가에 힘입은 것인데 1/4분기에 감소하였던 수출이 2/4분기 상승세로 전환하고 4/4분기에는 증가율이 10%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4/4분기 경제성장률은 2.2%에 그쳤다.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극히 부진하였기 때문이었다.
내수 동향을 보면 소비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되는 가운데 투자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코로나 사태 이후 회복기에 4%대의 증가율을 보인 소비가 작년 2/4분기를 기점으로 0.5% 내외 증가로 위축되었다. 투자 부진은 더욱 심하여 작년 하반기 중 투자 증가율은 마이너스 수준을 기록하였다.
이 글에서는 최근 내수 부진의 의미와 시사점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1. 우리 경제의 성장 패턴 변화
우리 경제는 1960년대 이래 경제개발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출 지향형 성장 전략을 택하였다. 그 결과 수출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고 내수 신장률은 국민소득 증가율보다 낮은 모습으로 성장하여왔다.
이와 같은 전통적인 경제성장 패턴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0년대 중반이었다. 즉 2010년대 후반에는 내수 신장률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졌다.<앞의 표>에서 보면 2015~2019년 기간 중 평균 경제성장률은 2.8%였는데 내수는 3.4%씩이나 늘어났다. 반면 수출 증가율은 1.9%에 불과하였고 심지어는 수입 증가율(3.2%)보다 낮아졌다.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는 이제 대외부문(순수출)이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단계는 지난 것으로 평가된다. 수출주도 경제성장 전략이라는 말은 적어도 지금의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하겠다. 201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수출 증가율이 낮아진 것은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이 대부분의 제조업종에서 우리나라를 추격한 결과 우리의 수출시장이 잠식당한 것이 그 핵심 원인이다.
2. 코로나 위기 이후의 새로운 경제성장 패턴
코로나 위기 이후 2021~2022년 기간 중의 회복과정에서 수출과 내수 중의 하나가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뚜렷한 패턴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적으로 대외부문은 경제성장에 중립적이고 내수에 의해 경제성장률이 유지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2010년대 후반기 형성된 내수 주도 경제성장 패턴에 변화가 나타날 조짐이 나타났다. 내수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낮아짐으로써 외양상으로는 과거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패턴으로 회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수출이 회복세를 보이기는 하였지만 내수가 부진해지면서 경제성장률이 한 단계 더 낮아지는 추세이다. 과거 수출주도 경제성장 패턴에서는 수출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기는 하였지만 내수도 견조한 증가세를 유지하여 높은 경제성장률을 뒷받침하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동안 그럭저럭 유지해오던 내수 증가세가 현저히 둔화된 데다 아예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할 정도로 극히 부진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내수부진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수요 항목별로 성장기여도 추이를 정리하였다. 성장기여도는 각 항목의 기여율(GDP 변동폭에서 그 항목의 증감이 차지하는 비중)에 경제성장률을 곱하여 산출하였다.
먼저 순수출의 성장기여도를 살펴보면 2022년 하반기 이후 2023년 2/4분기까지 마이너스를 보이다가 작년 2/4분기 이후 플러스로 돌아섰다. 그리고 4/4분기에는 순수출의 성장기여도가 3.1%p까지 높아졌다. 그와는 반대로 내수의 성장기여도는 작년 2/4분기 이후 급감하여 3/4분기부터는 마이너스로 전환하였다. 2023년 3/4분기에는 경제성장에 대한 내수의 기여도가 마이너스(–0.2%p)로 돌아섰고 4/4분기에는 –0.8%p로 더욱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내수 항목 중에서는 소비의 성장기여도가 가계소비의 부진에 주로 기인하여 2023년 2/4분기 이후 현저하게 둔화되었다. 그와 아울러 투자의 성장기여도는 최근에 마이너스로 전환하였다. 건설투자와 시설투자가 동시에 부진한 가운데 재고마저 소진되고 있다.
성장기여도는 숫자가 작아 추세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 문제를 보완하기 위하여 다음의 그림으로 장기간의 흐름을 추적해보았다. 2017년 1/4분기를 기점으로 각 항목의 절대규모를 지수화하여 각 항목의 장기 추세를 그림으로 나타내었다.
<다음 그림>에서 국내총생산(GDP, 계절조정 불변가격 기준)을 중심으로 그 이상 빠르게 늘어나는 항목은 지적재산권투자가 유일하다. 나머지 항목들은 GDP에 비해 더디게 늘어남으로써 상대적으로 부진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각 항목별로 그 움직임의 양상은 사뭇 다르다.
건설투자는 2017년을 기점으로 절대규모가 감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회간접자본의 건설이 사실상 완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데다 주택건설마저 주택공급 억제 정책 등으로 인하여 부진하였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게다가 최근 들어 건설투자 규모가 더욱 위축되는 모습이다.
시설투자는 GDP와 추세가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심한 기복을 보이고 있다. 적어도 2022년 하반기 이후에는 그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가계소비는 코로나가 확산한 2020년에 극히 부진하였다. 그 이후 빠르게 회복하기는 하였지만 GDP 수준에 육박할 정도로 호조를 보이지는 못하였다.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가계소비는 GDP에 비해 증가속도가 느렸다.
3. 내수 부진의 원인
내수 항목별로 그 부진 배경을 간략히 정리하고자 한다. 정교한 분석 틀에 기초하기보다는 정황적 요소들을 대략적으로 짚어보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가. 가계소비
GDP와 가계소비의 괴리 문제는 생산국민소득이 처분되어 소비로 이어지는 단계에서 소득이 누출되어 야기될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을 점검하기 위하여 GDP와 가계가처분소득의 추세를 비교하였다(앞의 그림 중 오른편 그래프 참조). 그 결과 두 변수의 추이는 장기간에 걸쳐 거의 일치한다. 이로 미뤄보면 소득의 누출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럼에도 가계소비는 가계가처분소득에 비해 지속적으로 더디게 늘어났다. 달리 말하면 가계소비의 규모가 가계가처분소득에 비해 시일이 흐를수록 적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소득에 비해 소비가 적어지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선 소비성향을 줄이는 방향으로 인구구조가 변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급속한 고령화의 진전으로 저축이 늘고 소비가 위축될 여지가 많다. 소비 주축 계층의 고용 사정이 악화되는 것도 문제이다. 청장년층의 고용이 전반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인구구조면에서 이 계층의 인구수가 감소하는 데 더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근로 여건 변화로 소비 패턴에 변화가 초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주52시간제 실시, 근로시간 단축 등을 계기로 워라벨을 점차 중시하는 풍조가 형성되고 있다. 직장을 중심으로 한 회식 등이 현저히 줄고 그 대신 가정을 위주로 소소한 소비 경향이 정착되는 경향이다.
비소비지출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소비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주거비 교육비 등의 지속적인 증가, 가계부채 누증에 따른 원리금 상환 부담 가중, 건강보험 등 경직적 지출의 확대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가계부채가 GDP의 100%, 가계가처분소득의 160%를 넘어서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최근에는 거시경제여건이 악화된 것도 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배경으로 고물가 고금리 현상이 조성됨으로써 소비가 더욱 위축되는 모습이다.
나. 투자
최근 투자 부진의 배경을 설비투자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건설투자 부진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설비투자는 업황과 경기전망, 그리고 금융시장 여건과 거시경제 환경, 경제정책 방향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우 반도체 산업의 비중이 높아 반도체 경기에 따라서도 설비투자가 큰 폭으로 변동하는 특징이 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2022년 하반기 이후 투자부진은 세계 반도체 경기의 둔화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근래 경제정책과 관련한 불확실성도 크게 높아진 것으로 계측되었다. 세계 주요국가를 대상으로 측정한 경제정책불확실성 지수(economic policy uncertainty index) (https://www.policyuncertainty.com)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0년대 이후 정책불확실성이 평균적으로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래 그림>은 2023년 11월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한 경제정책불확실성 지수이다. 2016년 대통령 탄핵 이후 이 지수가 큰 폭으로 등락하였고 2019년 한일간 갈등으로 더욱 상승하기도 하였다. 2022년 3월 대선 이후 이 지수가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정리하면 설비투자가 큰 기복을 보이는 가운데 근래 저조한 것은 경기 둔화, 수출 부진 등 경기 요인에 더하여 경제정책불확실성 등의 경제외적 요인도 가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4. 몇 가지 시사점
최근의 내수 부진이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조만간 개선될 것인가? 내수 부진의 원인들을 감안하면 경기 요인 이외에 구조적 요인(인구 및 고용구조 변화, 가계부채 증대, 세계무역 체계 변동 등)들이 상당히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판단에 따르면 앞으로 내수가 활기를 되찾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요 경제전망기관들이 금년과 내년도 우리 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2% 내외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성장률은 경기 회복으로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이 정도의 경제성장률이 의미하는 바는 반도체 수출 등 일부 항목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가계소비 등은 상당히 부진하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소비나 투자 등 경제성장률보다 더 빠르게 증가하는 호조는 당분간 예상되지 않는다 하겠다.
이러한 예측을 기반으로 최근의 내수부진이 장기 불황의 전조가 아닌지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지금의 내수 부진이 우리 경제의 장래에 대해 심각한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장기불황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이를 피하기 위한 특별 대책들을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하겠다. 그 대책들은 우리가 지난 시절 추진해온 경제정책들과는 차원이 달라야할지도 모른다. 그동안의 여러 유형의 경고와 징후에도 불구하고 실효성 있는 방안들은 강구되지 못하였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근본적인 처방을 물색하고 그것을 꾸준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 그 구체적인 방안들을 찾는 데 중지를 모으기 바란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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