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전구와 헤진 양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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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렸던 유년 시절, 어머니 바느질 바구니에 알전구가 담겨 있었다. 잘 어울리는 짝이었다. 헤진 양말과 필라멘트가 끓어진 알전구. 요즘 세대에게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이다.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이 두 가지에 무슨 함수관계가 있을까. 몇날 며칠 생각해 봐도 해석하기가 불가능한 고난도의 방정식임에는 틀림없겠다. 그러나 한국의 중‧장년세대는 이 두 가지 물건을 떠올리면 빙그레 웃음을 띠며 아득한 유년시대로 돌아갈 것임에 틀림없겠다.
지금의 풍요로운 시대에는 상상 불가능한 일이겠다. 하지만 6,70년 개발연대에 유년시절을 보낸 한국인들은 대부분은 헐벗고 굶주렸다. 미국에서 원조하는 강냉이죽을 꿀꿀이죽이라고 자조하며 학교에서 타다 먹었다. 부대찌개는 다 아는 얘기이고 하얀 세탁비누같은 탈지분유를 먹고 배탈났던 세대가 지금의 중장년세대다. 그 뿐인가. 도시락을 싸지 못해 점심은 아예 굶었으며 필통은 커녕 몽당연필 하나가 유일한 필기구였다. 그나마 품질이 조잡해 침을 묻히지 않으면 쓰여지질 않아 공책이 찢겨졌다. 헐벗기도 마찬가지, 엄동설한에도 요즈음 같은 거위털 방한복은 물론 없었다. 장갑도 털모자도 귀했다. 그나마 여유있는 집에서나 겨우 털모자, 장갑이 있었을 뿐 모두가 헐벗고 헐먹었던 간난한 시절을 거쳐왔다.
필라멘트가 끓어진 알전구는 그 시절 할머니, 어머니들에게는 귀중품이었다. 이 폐 알전구가 요긴하게 쓰인 곳은 헤어진 양말 꿰매기였다. 지금같은 따뜻한 울양말이나 면양말이 귀하던 시절, 잡아당기면 먼지가 풀풀나는 나이롱 양말이 한겨울 추위를 막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조악한 품질로 며칠 못가서 헤졌다. 양말이 헤지면 한국의 어머니들은 어렵게 구해 온 필라멘트 끓어진 알전구를 양말 속에 집어넣고 희미한 불빛 아래 꿰매곤 했다. 그러나 이 아름답고 희생적인 한국의 어머니상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다. 모두가 풍요롭다. 한국인들의 소비는 나라밖 어느 국민들보다 훨씬 넉넉하고 때론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필자는 최근 오랜만에 충격 속에 알전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지난해 여름 방학 미국에서의 일이다. 유학시절 같이 공부했던 미국인 동창생 집에 초대받아 갔을 때였다. 집에 들어서 소파에 앉으려는데 양말과 알전구가 담긴 바구니가 구석에 놓여 있었다. 놀랍게도 그 바구니에는 헤진 양말이 있었다. 나는 그 알전구를 보자마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의 하나인 미국에서, 그것도 중산층인 대학 교수집에서 알전구로 양말을 깁고 있다니. 나의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식탁 옆 GE냉장고는 문아래 부분이 녹이 슬어 너덜너덜했다. 30년째 사용이라고 했다. 미제가 튼튼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30년 나이 냉장고는 그래도 놀라웠다.
하기야 우리 집 냉장고도 25년을 넘겼다. 유학시절 구입해 이사짐에 부쳐 온 냉장고다. 이 냉장고가 종종 골칫덩어리다. 어쩌다가 집에 온 친구들은 냉장고를 보고는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군데군데 녹슬은 골동품 냉장고가 꼴불견이라고 바꾸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전기사용료가 국산보다 두 배는 나온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래도 난 바꿀 생각이 없다. 설사 경제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아직 쓸만한 정든 냉장고를 내다 버릴 생각은 조금도 없다.
우리는 너무 빠른 시대와 빠른 변화 속에 살고 있다. 소비도 빠르다. 일회용이 넘치는 시대다. 유럽 탐험가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짐꾼으로 앞세워 쉬지 않고 나아갔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 원주민들이 꼼짝도 않고 주저앉았다. 화가 난 탐험가가 이유를 다그치자 원주민들은 요며칠 너무 빨리 왔다. 우리 영혼이 우리를 따라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답했다. 알려진 얘기다. 무슨 일에나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번 설이 지나면 또 봄이 올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고, 목련이 피고 지고, 그렇게 세월은 또 간다. 이 빠르고 빠른 삶, 찰나같은 인생길, 조금만 천천히 가보면 어떨까. 문밖에 봄이 서성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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