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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통상 연계의 본질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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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23년11월26일 17시03분

작성자

  • 김성우
  • 대통령직속 탄소중립녹생성장위원회 위원,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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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사회의 환경과 통상이 연계되는 추세는 주목할 만하다. WTO협정(다자간 무역협정)이나 증가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은 관세장벽(tariff barrier)을 낮추었지만 각 국은 비관세장벽(non-tariff barrier)을 도입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는 흐름속에서, 미국과 EU를 중심으로 통상과 환경이 연계된 친환경 통상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환경 중에서도 산업과 연관성이 가장 높은 기후변화의 통상 연계가 두드러진다. 접근방식을 보면 미국은 인센티브 기반 정책에 중점을 두지만, EU는 규제와 인센티브 기반 정책을 모두 활용하고 있다.

기후-통상 연계 본격화

1992년 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이후 국제사회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왔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기후위기의 원인인 탄소배출의 감축이 충분하지 못해, 대기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매년 최고 신기록을 세우고 있고, 지구촌의 극단적 이상 기후는 점점 심해져 가고 있다. 세계적 공통이익 보다는 자국의 개별이익이 먼저였고, 장기적 효용 보다는 단기적 혜택이 우선시 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통상정책과 탄소배출을 연계하는 조치들이 본격화 되면서, 산업육성 측면에서 자국의 개별이익에 부합하면서도 탄소감축 측면에서 세계적 공통이익에 기여하는 정책들이 최근 구체화 되기 시작해, 과거와는 다른 결과가 기대된다. 

이러한 기후-통상 연계는 미국와 EU의 티키타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발효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관련 지난 3월에는 전기차 세액공제 세부지침이 발표됐고, 5월에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미국산 철강 및 부품 사용할 경우 IRA 보조금 10%를 추가로 지급하는 하위규정도 공고됐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EU도 지난 2월 그린딜 산업계획을 발표한 후, 보조금 확대 및 탄소중립 산업육성 등을 위한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 탄소중립산업법, 핵심원자재법 초안을 공개하고 입법절차에 들어갔다. 더욱이 5월에만 프랑스가 2025년까지 재생에너지설비, 히트펌프, 배터리 제조사의 자본지출(CAPEX) 중 20~45%를 지원하는 내용의 녹색산업법안을 발표했고, 독일도 2030년까지 산업용 전기요금에 대해 사용전력의 80%까지(€0.25/kWh€0.06/kWh) 보조금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탄소배출 감축과 관련된 투자프로젝트를 정부가 강력하게 지원함으로써 Netzero Leakage(탄소감축산업의 해외유출)을 막고 자국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공방이다.

 한편 올해 입법절차를 마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10월부터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CBAM은 국가별로 제품의 탄소배출량이 달라 제품 제조시 달리 지불한 탄소가격을 수출입시 국경에서 유사한 탄소가격이 되도록 가격을 부과하는 제도이다. 관련하여 미·EU 무역기술위원회는 지난 3월 ‘지속가능한 철강과 알루미늄을 위한 국제 협정’을 발표하고 2024년 초 ‘철강 공급과잉 해소 및 탈탄소화’를 위한 협상 결과물을 마련할 예정이다. 이는 EU CBAM과 유사한 조치를 미국을 포함한 마음이 같은 소수 국가의 그룹들이 함께 추진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즉, 탄소배출이 많은 철강이나 알루미늄 등의 제품을 EU 및 미국 등 소수 국가그룹에서 수입할 경우 국경에서 탄소가격을 부과해 Carbon Leakage(탄소배출산업의 해외유출)을 막고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상술한 기후-통상 연계 정책의 배경에는 자국 산업 육성과 탄소 배출 감축이 동시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는 단기적 자국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기존의 탄소감축 조치와 달리 초당적 협력도 비교적 용이하다는 측면에서 정책의 지속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아직 하위규정이 확정되지 않았거나 심지어 입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음에도, 이미 일부에서는 정책 효과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국 비영리단체(Climate Power)에 따르면, IRA 발효 후 6개월간 전세계 회사들이 31개 주에 걸쳐 약 900억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투자 프로젝트 추진을 발표했다. EU도 IRA에 대응하는 그린딜 산업계획과 더불어 2035년까지 내연기관차 퇴출 등의 강력한 탄소중립 이행정책에 힘 입어, 대만 배터리 제조기업 Prologium이 프랑스 북부 됭케르크에 52억유로 규모 공장을 짓겠다고 5월12일 발표했고, 또 다른 배터리 제조사인 스웨덴 Northvolt의 경우 IRA로 인해 새로운 공장을 미국에 건설하려던 안을 철회하고 독일 투자로 선회한다고 5월13일 발표했다. 기후-통상 연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EU의 그린딜 산업계획과 후속 법제화

주요 기후-통상 연계 정책들을 하나씩 자세히 살펴 보자. 상술한 바와 같이 지난 2월1일 EU 집행위원회는 ‘탄소중립시대를 위한 그린딜 산업계획(A Green Deal Industrial Plan for the Net-Zero Age)’ 계획안을 발표했다. 이는 총 2,500억 유로 규모로 즉각적인 세액공제와 청정 산업에 대한 보조금을 제공함으로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이다. 그린딜 산업계획은 EU의 넷제로 산업 경쟁력을 고취하고, 기후 중립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며, EU의 제조능력 확장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동 계획은 기존의 유럽 그린딜(European Green Deal, EU 기후변화 대응정책 및 지속가능한 경제를 위한 로드맵)과 REPowerEU (에너지 안보 향상과 지속가능한 에너지 공급 방안 마련을 목표로 하는 행동계획)를 보완하며, ①예측 가능하고 간소화된 규제 환경, ②재정 지원 가속화, ③기술 향상, ④탄력적인 공급망을 위한 개방 무역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먼저, ‘예측 가능하고 간소화된 규제 환경’을 위해, EU집행위원회는 탄소중립산업법 (Net-Zero Industry Act) 제안 계획을 발표했다. 동 법은 산업 역량을 식별하고, 신속한 전환에 적합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제공하며, 간소화되고 신속한 허가를 가능하게 하며, 기술의 스케일업을 지원하기 위한 표준을 개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또한, 위원회는 주요 원자재에 대한 충분한 접근 보장을 위해 중요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을 보완하며, 소비자들이 더 낮은 가격에 재생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력 시장을 개편하겠다고도 밝혔다.

 두 번째는 ‘재정 지원 가속화’로, 유럽에서의 청정 기술 제조업에 대한 투자와 재정 지원 가속화를 위해 공공 및 민간에서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회원국들이 녹색 전환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부여하고, 공평한 경쟁의 장을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EU집행위원회는 회원국들과 임시 국가 지원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emporary State aid Crisis and Transition Framework, 경제 지원을 위해 국가 지원 규칙에 유연성을 부여하는 개정안)에 대해 협의하며, 일반 적용 면제 규정(General Block Exemption Regulation, EU 정부가 집행위의 허가 없이 기업에 공적 자금을 지원)도 그린딜에 맞추어 수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EU 자금 사용에 있어서, 단기적으로는, REPowerEU, InvestEU (전략적 투자에 대한 민간 투자를 장려하여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설립한 펀드), Innovation Fund(온실가스 감축기술의 사업화 및 상용화를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펀드)를 통해 신속한 표적 지원을 제공할 것이며, 중기적으로 위원회는 유럽 국부펀드(European Sovereignty Fund)를 통해 투자 요구에 대한 구조적 해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 번째 요소는 ‘기술 향상’이다. 위원회는 모든 직업의 35~40%는 녹색 전환에 의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위한 기술 개발은 유럽 기술의 해(European Year of Skills)의 우선순위라고 언급하였다. 위원회는 넷제로 산업 아카데미(Net-Zero Industry Academies) 설립을 통해 사람 중심의 녹색 전환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전략 산업에 대한 고급 기술 및 신규 기술 습득 (up-skilling)과 업무 전환을 위한 신기술 습득 (re-skilling)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탄력적인 공급망을 위한 개방 무역’ 부문에 대해 위원회는 공정 경쟁 및 개방 무역 원칙에 따라, 녹색 전환을 위해 세계 각국과 협력한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다. 위원회는 이를 EU 파트너 국가들 및 WTO와 함께 수행해야 할 작업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를 위해 EU는 파트너국가들과의 FTA와 기타 형태의 협력을 계속 발전시킬 것이며, 중요원자재클럽(Critical Raw Materials Club)을 구성하여 글로벌 공급망 안보를 위해 풍부한 자원을 보유한 국가들과 원자재 소비국을 한 클럽으로 모으는 방안을 제안했다. 또한, 동 부문 달성을 위해 위원회는 청정 기술 부문의 불공정거래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고, 역외보조금이 단일 시장의 경쟁을 왜곡하지 않도록 보장하는 도구를 사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 계획은 EU의 친환경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발표한 것이다. 이번 계획은 EU의 공공자금뿐 아니라 민간 자금까지 조성해서 지원되는 계획이지만, 새로운 자금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기존에 조성된 자금의 지출을 조정해서 그린딜 산업을 지원하려는 계획으로 풀이된다. 관련해서 체코, 덴마크, 핀란드,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등 7개 국가는 녹색 산업 육성을 위한 새로운 EU 기금 조성에 대해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며,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국가도 유사한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회원국 간 보조금 지원 격차로 인한 단일시장 균열 우려를 제기했으며, 미국과의 보조금 경쟁은 불필요한 노력이며 감정적인 우려에 기초한 것이므로 보조금 규제 완화는 단기적으로만 시행되어야 한다는 입장도 존재한다. 그린딜 산업계획은 전체적인 ‘계획’만 발표된 단계로서, EU 정상회의 등의 논의를 거쳐 구체화된다.

바로 이어 3월에 동 계획에서 언급됐던 후속 법안이나 정책들이 공개 되었다. 먼저 3월 9일 ‘한시적 위기 및 전환 프레임워크’(Temporary Crisis and Transition Framework, TCTF)가 채택되었는데, 이로서 EU 친환경 기업이 역외로 이전할 위험이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해당 기업이 제3국에서 받을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규모의 보조금을 EU회원국이 지급할 수 있도록 즉시 허용하는 것이 골자다. 이어서 3월 16일 탄소중립에 필요한 장비나 설비의 역내 제조를 촉진하는 '탄소중립산업법(Net Zero Industrial Act, NZIA)'과 필수 원자재 자급률을 높이는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 CRMA)' 초안을 공개했는데, 향후 유럽의회 및 EU 이사회와의 협의 등 입법 절차를 거치게 된다.

미국의 IRA

이러한 EU의 긴박한 움직임은 자국내 청정기술 산업에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의 선두주자 자리를 내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 등 친환경 수송, 해상풍력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그린수소 활성화 등 산업 탈탄소화 등 클린테크 분야를 집중 육성했지만, IRA로 인해 관련 투자가 미국으로 쏠릴 것을 걱정하고 있다. 더욱이 IRA로 미국 친환경에너지 가격이 싸지면 철강, 화학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도 미국으로 따라갈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 상황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IRA가 의회를 통과한 후 6개월 후 그 성과를 살펴 보면, EU의 우려가 이해도 된다. 동 기간에 900억달러에 달하는 친환경기술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는데, 이는 약 100,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 20건에 달하는 친환경기술 공장 신설 발표 중에는 작년 10월 BMW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17억달러 규모 전기차 설비 투자도 포함되어 있고, 한화큐셀의 조지아주 25억 달러 규모의 태양광 공장 증설도 들어 있다. 올해 초 포드가 미시간주에 35억달러 규모의 배터리공장 건설을 발표했고, 지멘스가메사도 뉴욕주에 5억달러 규모의 해상풍력 터빈공장 계획을 공개했다. 2030년까지 1조달러 규모의 친환경에너지 투자 및 백만개 일자리 창출까지 전망하고 있다. 반면 EU는 IRA에 버금가는 규모의 펀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지원 받는 절차가 까다롭고 세제도 EU 회원국별로 상이한 현실적인 한계로 인하여, IRA와의 체감 혜택 차이가 크다.

그렇다면 IRA는 어떻게 탄생했고 어떤 내용인지 자세히 살펴 보자. 작년 8월 미 상하원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와 법인세 조정 등의 내용을 담은 ‘Inflation Reduction Act(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가결했고, 바이든 대통령이 같은 달 서명함으로서 공포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주요 온실가스 배출원인 발전과 수송 부문에 대한 온실가스 감축 지원은 몰론 산업 부문 지원에도 초점을 맞춰 기후변화 대응에만 3,693억 달러를 투입하는 내용이 주요 골자다. 순이익이 큰 회사에 최소 법인세율을 적용하고 자사주매입시 일정비율로 부과금을 징수하는 등 재원을 마련하는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 보면, 연방 기준을 초과하는 메탄 배출에 대하여 톤당 900 달러(2026년부터는 1,500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고, 탄소포집 및 저장시 이산화탄소 톤당 50~85 달러가 지원된다. 태양광, 풍력, 배터리, 지열, 원자력, 바이오가스 설비를 설치할 때 약 300억 달러로 10년간 세제지원하고, 에너지공급 회사들의 청정에너지 전환에도 추가로 300억 달러를 지원한다. 또한 60억 달러로 화학, 철강, 시멘트 등 고배출 업종의 저탄소 전환을 돕고, 105억 달러는 수소, 바이오연료, 친환경항공유 및 대체연료를 지원한다. 특히 전기차나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제조설비 건설에도 100억 달러를 지원하고, 270억 달러는 지붕태양광 등 청정에너지사업 금융지원을 위한 녹색은행에 할당할 뿐만 아니라, 농림업 및 지역사회 지원 등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개인이나 가정에 대해서도 (가격 및 수입 제한이 있긴 하지만) 전기차 및 수소차 구매시 7,500 달러를 지원하고 중고차 구매시에도 4,000 달러를 지원하고, 히트펌프 및 업그레이드보일러 혹은 절연처리 등 에너지효율증대를 위한 집 수리나 구매시 1,200~8,000 달러를 지원 한다.

이와 같이 미국 역사상 청정에너지 및 기후프로그램 관련 최대 투자 규모의 기후대응 법안은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고 기존에 유사한 내용으로 입법을 추진하던 5550억 달러 규모의 Build Back Better 법안이 의회 반대에 부딪히자 우선 합의된 인프라 관련 내용을 분리해 별도 법안으로 처리했다. 문제는 의회내 합의가 어려운 기후대응 조치였는데, 미국 역사상 최악의 기후위기에 중국 견제 포함 에너지 안보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교착 상태였던 법안 가결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한편 동 법의 내용은 미국내 청정 에너지 산업 활성화를 기반으로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예산 지원이지만, 법안의 이름에는 당시 9% 대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을 잡아 지난 11월 중간선거 전에 완화 효과를 앞세워 정치적 입지를 다져야 하는 절박함이 반영된 것이다. 세금을 더 거둬 산업에 자금을 지원해 정부 지출을 줄임으로서 인플레이션의 장기적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미국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에 따르면, 이번 법의 시행으로 2030년까지 미국이 감축해야 할 기준배출량(2005년 기준 66억톤)의 약 10%인 5.5억톤~7억톤을 감축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40%의 온실가스 감축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 본 것인데, 파리협정에 의해 미국이 약속한 50~52% 감축을 달성하기 위한 절대적인 초석이다. 

그러나 IRA를 통해 경제탈탄소화는 물론이고 러스트벨트활성화 및 중국공급망의존감소도 노리고 있는 미국도 막상 이행을 시작하니 고민이 많다. IRA 이행 과정에서의 동맹국반발, 인력수급차질, 프로젝트인허가지연, 혁신성방해, 재생에너지가격상승 등은 선결되어야 할 숙제다. 일부 해외 공급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도 난제다. EU의 경우도 이행단계에서는 주요 산업의 누출을 막기 위해 이미 도입된 탄소가격제도 및 코로나회복기금 등의 집행을 효과적으로 집행해야 하는 고민은 있다.

기후통상 연계의 배경과 기술에의 영향

IRA에 대응하는 EU그린딜 산업계획 외에도, 기후-통상 연계의 대표적인 조치로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를 꼽을 수 있다. 서론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철강, 시멘트, 알루미늄, 비료 등 특정 수입품에 대해 생산국의 탄소가격과 EU의 탄소가격을 부과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지난 10월부터 2년간 시범사업을 거쳐 2026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관련하여, 서론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과 EU가 내년 체결을 목표로 지속가능한 철강과 알루미늄을 위한 국제 협정(Global Arrangement on Sustainable Steel and Aluminum, GASSA)도 추진하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명분으로 중국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추가로 관세를 부여하는 협정인데, 유사한 목적의 협상 결과물을 마련키로 지난 3월 10일 미-EU 정상회의에서 합의했다.

 더욱이 미국이 시작한 자국 친환경산업 지원 경쟁이 EU를 넘어 국제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영국의 경우 미국과 EU의 지원 정책으로 인해 선두주자로 자리잡은 해상풍력에 이어 차세대 탄소중립 기술들인 CCS, 배터리, 수소 포함 상업화 직전 기술들의 유출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고, 서론에서 상술한 바와 같이 독일이 최근 자국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계획을 발표해 풍력터빈 및 태양광패널을 독일에서 제조하도록 지원할 예정이고, 프랑스도 이를 위한 입법절차에 들어갔다. 

이러한 기후-통상 연계의 배경에는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려는 목적과 탄소배출을 감축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는 목적이 병존한다. EU TCTF로 예를 들면, EU외 다른 국가에서 보조금 주는 경우 EU산업 보호 위해 보조금 수준을 유사하게 맞춰 줌으로서, 탄소감축산업의 유출을 막아 자국내에서 육성하려는 것이다. EU CBAM의 경우도, 결국 EU외 다른 국가에서 탄소를 배출하며 생산된 제품을 수입할 경우 국경에서 세금을 부과해 EU내 산업경쟁력도 보호하고 수출국의 탄소감축도 유도하려는 것이다. 탄소배출산업의 유출을 막기 위함이다. 이와 같이 기후-통상 연계 정책은 탄소감축규제 등 다른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달리,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면서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국제적 명분도 챙길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특히, 글로벌 탄소배출의 구조를 살펴 보면, 미국과 EU가 배출을 감축하면 그 감축분을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배출 증가가 상쇄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과 EU 주도의 기후-통상 연계는 당분간 지속될 뿐만 아니라 본격 실행되기 시작하면 국제사회에 영향을 점점 더 크게 미치게 될 것이다.

본질적인 대응 방안은 역시 감축기술의 확보다. 기후-통상 연계는 기술에 크게 두가지 영향을 미친다. 하나는 기술가격에의 영향이고 또 다른 하나는 기술안보에의 영향이다. 외국의 저렴한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여 발생하는 비용상승으로 인해 기술가격이 상승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국 기술 개발이나 적용에 보조금을 지급하여 기술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IRA의 경우, 보조금으로 인해 선박연료나 암모니아에 사용되는 그린수소의 경우 기술가격이 약 50% 인하되는 효과가 발생하여, 결국 화석연료로 만든 선박연료 및 암모니아와 가격이 비슷해 지거나 오히려 저렴해 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기술안보 측면에서도, 중국이 청정에너지 관련 소부장의 기술 과점인 상황에서 EU CRMA는 청정에너지 전환에 있어 없어선 안 될 핵심 원자재(코발트, 백금, 티타늄 등)와 전략 원자재(알루미늄, 리튬, 니켈 등)의 제3국 수입 비중을 2030년까지 65% 이하로 내리는 것을 목표로 함으로써, 기술안보를 지향하고 있다.

우리의 대응

한국은 더 많은 에너지다배출 자산을 더 빠르게 탈탄소화 해야 하는 딜레마에 더하여,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기후-통상 연계 대응이라는 국제 흐름은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우리가 잘 하는 기술로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먼저 연계를 시작한 미국이나 여기에 대응하는 EU 등도 모두 블루오션을 향한 대변혁의 출발점에 서 있고, 결국 승부는 지원금의 규모 보다는 이행 속도에서 날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행 속도를 높일 정책적 수단은 있다. 예를 들어, 우리의 탄소가격제도는 그 어떤 나라보다 국가배출을 넓게 커버하고 있어(73%), 이를 통해 적절한 가격 시그널을 주고 그 재원을 가장 글로벌 경쟁력에 도움될 분야에 빠르고 쉽게 지원받도록 하는 환류 체계를 갖춘다면 탄소중립 이행 속도를 높이면서 기후기술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IEA 발표에 따르면 규제 및 금융 장벽이 제거되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5년내로 추가 25% 증가할 것이고 예상한 만큼, 규제개선 및 인프라지원도 이행 속도를 높이는 전제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과 EU 등은 국가 차원에서 주요 산업 육성 및 보호를 위해 방대한 양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의 IRA 후속규정과 최근 발표된 유럽 그린딜 산업계획의 후속법안들이 WTO 보조금협정 위반 여부에 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강행되고 있지만, 우리가 지금부터 이행 속도에 중점을 둔다면 충분히 시장을 선점할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과 더불어, 기업도 고민할 사안이 있다. 제품의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것이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사실이다. 국내 탄소감축 규정인 배출권거래제 때문이거나 ESG측면에서 투자자나 고객사의 감축 요구 때문이라기 보다는, 심화하는 글로벌 기후-통상 연계 흐름속에서 제품을 더 잘 팔기 위해서다. 통상에 기후가 연계되면서 원산지증명이라는 기존 기준에 탄소배출량이 추가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가 지난 9월 개편한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의 경우, 전기차 제조국 전력믹스, 부품탄소발자국, 재활용비율을 포함하고 있어, 화석연료 비중이 높은 전기를 사용해서 전기차를 제조하거나 탄소배출량이 많은 부품을 사용하는 전기차는 보조금에서 불이익을 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전기차에 사용될 철강도 탄소배출이 적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이미 석탄을 사용하는 고로 대신 수소를 사용하는 그린수소환원철로 전환하는 프로젝트가 28개 진행 중이고, 이는 년간 6천만톤의 저탄소철강을 생산할 예정이다.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 전기차도 팔아야 하고 냉연강판(자동차용 철강)도 팔아야 한다. 이제는 원가절감이나 규제대응 측면에서의 탄소감축이라기 보다는 기업의 판매 경쟁력을 위한 제품 탄소감축을 고민해야 한다. 기후-통상 연계 대상 제품은 전기차나 철강에서 시작으로 다양한 제품 및 소재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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