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강세, 경쟁력 강화 기회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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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화 가치가 폭등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말 달러당 1,207원이던 환율이 최근 1,085원으로 10% 급락했다. 원화 값의 가파른 상승세는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수출업체에 비상이 걸렸다. 현대•기아차의 대미 수출비중은 전체 수출 물량의 30%다. 결제통화가 달러이다 보니 파는 물량은 종전과 같은데 매출금액이 크게 줄게 된다. 반면 수입업체는 표정관리 중이다. 원자재 수입가격 하락으로 채산성 개선 기회다. 국내 소비자의 해외 구매력(인터넷을 통한 직구거래)은 종전보다 훨씬 강화됐다.
□ 미 연준(Fed) 기준금리 연내 인상은 기정사실이다. 원화 값은 하락압력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도 원화가 강세를 지속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경제를 ‘긍정’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 성적표가 ‘원화 강세’다. 주요 거시경제 지표 움직임이 원화가치 상승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금년 3분기 GDP 성장률(3.6%)이 2014년 1분기(3.8%) 이후 최고다. 9월 경상수지 흑자가 122억 달러로 사상 최대다. 5년 7개월째 내리 흑자 행진이다.
□ 수출호조의 핵심동력은 반도체다. 반도체 경기의 호황국면이 앞으로 최소한 1~2년간은 유지될 전망이다. 반도체 사이클 상승지속에 대한 국제투자자들의 기대가 원화 값을 5% 정도 밀어올리고 있다. 골드만 삭스, 제이 피 모간 등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최고위급 이코노미스트들의 추정이다. 외국인 증권자금(채권 10.8조원, 주식 10.3조원) 유입도 순조롭다. 북한 리스크가 걸림돌이 되지 못하는 모습이다. 채권자금이 10조원 이상 유입된 건 2010년 이후 처음이다.
□ 원화 강세 상황에서 정책당국이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① 우선 중소 수출기업이 처한 어려움을 직시해야 한다. 외국인은 투자대상이 국내 수출대기업이라 한국시장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와중에 수출 중소기업이 희생양이 될 수 있는 구조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경기호황의 포장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반도체 착시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650개 주요 상장기업의 2017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78조원이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 두 개 회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648개 중견기업의 영업이익 총액이 마이너스 2조원으로 곤두박질한다.
문제는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초특급 기업에 적용될 환율을 중소수출업체가 감내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다. 1959년 북해에서 천연가스가 발견된다. 대규모 천연가스 수출자금이 네덜란드로 유입된다. 처음에는 큰 복덩어리 인줄 알았다. 그런데 굴덴화(네덜란드 화폐) 강세가 이어지자 중소 수출기업에 악재가 됐다. 더욱이 달러화 유입으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자 노조가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기업이 버티면서 사회불안으로 증폭되고 결국 경제성장도 물거품이 되었다. ‘네덜란드병’(Dutch Disease)이라 부른다. 우리나라가 네덜란드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경고가 있다. 골드만 삭스 보고서다.
중소수출기업의 일자리를 지키는 지원방안이 절실한 이유다. 원화 강세로 쩔쩔매는 수출업자를 상대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생산성부터 높이라’고 정부가 주문한다면 기업이 수긍할까. 목숨이 경각을 다투는 환자에게 건강에 좋은 보약이나 처방하는 무책임한 대응이다. 코미디 같지만 드라마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에 수출기업들이 당면한 고통을 호소하며 환율절하를 간청했을 때 정책당국은 대안으로 ‘생산성 10% 향상’을 내세웠다.” (최중경, 월간중앙, 2015년 7월17일)
다행히 산업통상자원부는 11월 20일부터 환율변동 보험지원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원화강세로 고민 중인 중소•중견 수출기업의 걱정을 덜어주려는 취지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도 원화 강세로 채산성 악화 기로에 놓인 중소수출기업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차제에 주요국 중앙은행에 비해 왜소한 중소기업대출 관련 지원제도를 획기적으로 보강해야 한다. 2013년 영국 중앙은행은 시중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순증액에 대해 10배를 지원하기도 했다.
② 환율 움직임에 대한 시장의 기대를 적절히 관리하는 것도 당국이 유념할 부분이다. 환율이 급락하는데 당국이 속수무책이라는 인식이 믿음으로 굳어지면 환율 하락에 베팅한 투기세력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2004년 조선업체들의 대규모 선물환매도 열풍이 한 예다. 원화 강세가 이어지자 조선업체들은 환율 하락에 풀 베팅했다. 선박수주 시점에 미리 선물환을 대거 매도한 거다. 이로 인한 단기외화부채 급증이 2008년 글로벌 위기 굴레를 벗어나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 뼈아픈 교훈을 낭비해서야 되겠나. 외환당국이 환율관리에 과감히 못 나서는 건 미국 눈치가 부담이 돼서다.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을까 찝찝하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 환율 문제시비로 덜커덕 거리면 불편하다. 하지만 환율 변동 폭이 누가 봐도 과도하다면 관리가 필요하다. 미 재무부 환율보고서가 문제 삼는 건 ‘연이은 일 방향 시장개입(persistent one-sided intervention)’이다. 외환시장 급변동을 안정화시키는 데 미 재무부도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자의적인 환율 조작이 아닌 속도 조절은 외환당국 본연의 책무다. 투기세력으로부터 경제를 보호하는 주권국가의 정책이다.
③ 원화 강세가 과도한데 개의치 않고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지 한국은행은 고민해야 한다. 원화강세가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을 우려가 있데 금리마저 올리면 경기회복 모멘텀을 죽이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 중소수출기업이 겪는 고초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과 한국 간 기준금리가 역전되면 외국인 투자자금이 유출될 거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작년 미 연준이 세 차례 금리를 인상했어도 우리나라로 자금유입 추세가 강하게 유지됐다.
④ 원화 강세 시기는 내수 경기부양을 추진할 적기다. 수출과 내수의 균형 성장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의 성장은 대외부문에 과도하게 의존한 측면이 있다. 때마침 ‘사람중심 경제’를 지향하는 새 정부의 국정 핵심과제는 내수경기부양과 직결되어 있다. 2010년 일본은 초 엔고(円高) 상황을 맞았다. 일본정부는 엔화강세가 초래하는 경기침체를 내수시장의 적극적인 확대로 맞대응했다.
⑤ 내국인의 해외투자 확대를 획기적으로 유도하는 것도 원화 강세국면에 걸맞은 정책대응이다. 기술력을 갖춘 외국업체 인수합병(M&A), 민간의 해외증권투자 등이 늘어나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
□ 환율등락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다. 원화강세를 구조조정 촉진 계기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경쟁력 강화 기회로 활용함이 최선의 환율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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