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5> 부채 누적의 부작용 ① 단기적 관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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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정통경제학에서 부채는 주요 연구주제가 아니었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이렇다 할 경제위기가 없었던 데다 유량(流量)변수(flow variable) 위주로 경제를 다루어왔기 때문에 저량(貯量)변수(stock variable)인 부채가 경제 분석의 주요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채 문제에 관해 관심이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그에 관한 논의는 단편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럼에도 단편적인 논의들을 취합하면 부채 누적의 부작용이나 문제점을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본다. 이하의 내용은 그런 차원에서 부채 누적의 문제점을 정리하였다. 이 정리를 통해 부채의 문제점은 실로 다양하다는 점과 아울러 경제적으로는 고질적인 병폐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한 정책적 시사점도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기본시각>
부채 누적의 부작용을 인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은 비선형성(Non-linearity)이라는 것이다. 가계부채가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이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개념은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하나는 부채의 이중적 속성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효과의 증폭 메커니즘이다.
부채의 이중적 속성은 부채가 단기적으로는 긍정적 효과가 적지 않지만 그것이 누적되면 부작용이 더욱 부각되는 속성을 지칭한다. 부채가 별로 많지 않은 단계에서는 좋은 면이 많다. 그에 비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효과가 두드러지게 된다. <아래 그림>에서는 GDP 대비 가계부채 규모의 비율이 일정 수준, 즉 임계점을 넘어서면 부정적 효과가 더욱 많아진다는 것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다. 부채의 이중적 성격은 이와 같이 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부채 누적 정도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특성을 묘사하는 말이다.
한편 부채의 부정적인 영향은 임계점을 지나자마자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임계점을 지나고 나서도 부정적 영향이 드러나지 않거나 미미할 수 있다. 그에 따라 부채에 대해 경각심을 갖지 못하고 부채 누적의 타성이 그대로 이어지면서 부채가 누적될 수 있다. 그러나 부채가 누적될수록 부정적 영향이 점차 증폭되는 과정을 밟게 된다. 그리고 극심한 수준에 이르면 그 부작용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게 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경제시스템의 작동이 중지되거나 체제가 붕괴되는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게 된다. 이와 같이 부채 수준이 누적됨에 따라 그 부정적 측면이 점차 증폭되는 특성이 비선형적 부채 속성의 또 다른 모습이다.
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 이런 관점에서 가계부채 누적의 영향을 크게 나누어 개인적 차원, 거시경제적 효과,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 기타 사회적 영향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가계부채 누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개략적으로 정리한 것이 <다음 표>이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영향과 아울러 부정적인 효과도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단기와 장기로 나누어 그 영향을 구분하고 있다.
이제 각각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이하 서술에서는 주로 가계부채를 중점적으로 다루겠지만 때에 따라서는 일반적 차원에서 부채의 영향을 언급할 수도 있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겠다.
<부채 수준이 낮은 단계; 긍정적 효과>
부채 규모가 작고 그 누적 정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긍정적인 역할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 부채는 일시적 자금 과부족 충당, 일상생활이 단절될 위험을 극복하는 수단 등으로 활용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이 많다. 모든 사람들이 불확실성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금융 기능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절실하거나 절박한 사람에게 자금을 제공하는 통로가 부채라는 점에서 부채는 금융자원이 효율적으로 사용되게끔 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세계 경제는 이와 같은 금융(부채)의 긍정적 기능에 힘입어 경제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었고 성장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었다. 금융이 주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단계에서는 금융 자산과 부채의 축적을 금융심화(financial deepening)라고 표현한다. 이 말은 금융자산과 부채의 규모 증가가 동반되면서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 복지도 증진되는 과정이나 단계를 지칭한다. 선진국을 기준으로 하면 이 개념이 적용되었던 시기는 대략 1980년대 이전의 기간으로 볼 수 있다. 당시 부채라는 금융 수단이 없었다면 경제발전도 더뎠을 것이고 경제 불안이 실제보다 심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부채 누적 정도가 심하지 않은 단계에서도 부채와 관련한 부정적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다. 금융사기, 부정부패, 그리고 금융기관의 내부 부정 등이 그 예이다. 이런 현상들은 부채 수준의 과다 여부나 시대와 지역 등을 막론하고 항상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서 굳이 부채의 부정적 효과로 인식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부채가 누적된 단계>
부채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면이 더욱 부각된다 1).
앞으로의 논의는 이 단계에서 부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중에서 주로 부정적인 것을 다루게 될 것이다. 그 영향은 장단기로 나누어 살펴볼 텐데 장기와 단기의 구분은 대략적으로 다음의 기준을 적용하였다. 단기는 부채의 영향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경우를 상정하였다. 그에 비해 장기는 부채가 다른 요인들과 결합하여 그 영향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염두에 두었다.
1. 단기 개인적 차원
상당한 부채를 안고 어느 경제 주체가 추가적으로 차입을 더 늘이고자 하는 경우를 가정해보자. 이 경우 제3자가 이 경제주체의 업황이나 재무상태를 판단함에 있어서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추가 차입을 계기로 이 경제주체의 재무상태가 열악하다고 평가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외부 자금 조달이 차입자에세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는 것을 일명 낙인효과(stigma effects)라고 한다. 이 상황에 이르면 이 경제주체와 거래하고 있던 사람들이 점차 거래를 축소하고 결국에는 거래가 단절되고 만다.
그리고 금융의 성격이 변한다는 문제점도 발생한다. 부채가 작은 경우 차입자는 충분히 이자를 상환하면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데 부채가 누적되면 이자 부담이 늘어남으로써 사업의 지속 가능성이 점차 낮아지게 된다. 이것이 Minsky가 얘기하는 투자의 성격 변화에 해당한다. 부채 수준이 낮은 단계에서는 사업성이 충분하기 때문에 “hedge financing”의 특질을 가지겠지만 부채가 많아지면서 그 사업의 지속성이 약화되고 부채를 갚을 능력이 저하된다는 점에서 “speculative financing”이나 “Ponzi financing”으로 그 성격이 바뀌게 된다. 결국 사업의 안정성이 부채 수준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된다.
2. 단기 거시경제적 효과
부채가 많아지면 이자 부담 증대로 일상적인 경제활동이 제약을 받을 수 있다. 가계의 경우 소비가 위축되고 자영업자는 투자를 줄이게 된다. 결국 가계부채 수준이 과도하게 많아지면 거시경제적으로 수요가 위축된다. “2020년 가계금융조사”에서 부채 보유 가계 중 67%가 원리금 상환이 부담스럽다고 응답하였고 부담을 느끼는 가구의 76%가 지출을 줄이고 있다고 응답하였다.
좀 더 심한 경우, 즉 부채를 상환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면 수요 위축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실제로 나타난 사례가 일본의 장기불황으로 볼 수 있다. 소위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이라 불리는 일본의 경우는 가계 빚이 늘고 자산 가격은 추락하면서 각 주체들이 부채를 축소하는 바람에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볼 수 있다(Koo 2011).
* Koo, Richard C., “The World in Balance Sheet Recession: Causes, Cure, and Politics,” Real-world Economics Review, No. 58, 2011.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미 가계부채로 인한 수요 부족 현상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가계는 부채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부터 가계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확대하고 있다.
<아래 그림>의 왼쪽 그래프를 통해 소비성향과 가계저축률의 장기추세를 살펴보면 소비성향(GDP 중에서 가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988년 이후 2002년까지 상승하는 추세였다. 그리고 이 시기 가계저축률(가계의 가처분소득 대비 저축의 비율)은 하락하였는데 1988년 25.4%에서 2002년 0.1%로 급락하였다. 이 시기에는 국민연금의 전면적 시행, 의료보험의 확충, 주택보급의 획기적 증가 등으로 저축 동기가 크게 약화됨으로써 소비가 매우 활발하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추세는 2002년을 기점으로 역전되었다. 2002년 이후 소비성향이 하락세로 반전되었다. 동시에 가계의 저축률은 오름세로 돌아섰는데 2020년에는 15% 수준까지 높아졌다. 2002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서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가계부채가 누적되기 시작하면서 가계가 소비 지출을 줄이고 저축을 늘이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가계부채 증대에 따른 민간소비 위축 현상은 경제성장률과 가계소비 증가율을 비교하더라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가계소비 증가율과 경제성장률의 격차는 1970년대 이후 줄곧 0,9%p 내외였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경제성장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이 격차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여야 한다. 2010년대에는 연평균 3.3% 성장하는 중에 가계소비는 2,5% 신장하는 데 그쳤다. 그 격차가 0.9%p에 불과하지만 그 격차는 경제성장률의 26%에 해당한다. 그 격차는 과거에는 10%에 불과하였다.
요컨대 우리나라는 가계소비가 경제규모의 확대, 즉 성장에 비해 갈수록 위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성장이론에 따르면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률과 민간소비 증가율은 같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그 격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이론적 예측과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데에는 가계부채의 누적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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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단계를 넘어서 금융이 확장되는 현상을 금융비대화(financialization)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용어는 주로 사회주의 경제학자들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하여 사용하고 있다.
<연재 순서>
1.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1> 무엇이 문제인가?
2.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2> 얼마나 늘었나?
3.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3> 누증의 원인
4.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4> 부채 수준과 질(質)에 대한 평가
5.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5> 부채 누적의 부작용 ① 단기적 관점
6.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6> 부채 누적의 부작용 ② 장기적 관점
7.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7> 부채 누적의 부작용 ③ 최악상황과 시사점
8.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8> 과거 대책의 연혁
9.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9> 종전 대책의 특징과 문제점
10.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10>현행 가계대출 총량 관리 방식의 문제점
11. 위기의 가계부채, 해부와 해법 <11> 바람직한 대책의 모색 ※ 이 제목은 집필과정에서 다소 변화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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