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정치 청산의 관건은 정확한 진단과 매력적인 대안이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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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과 ‘운동권정치’가 반민주당·친국힘당 정치세력의 공적(公敵)처럼 되었다. 이들 청산이 시대정신처럼 되었다. 격한 반발이 잇따른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취임수락 연설(2023.12.26)에서‘운동권 특권정치’ 청산을 거론하자, 대표적인 86운동권 출신 정치인 임종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함부로 돌 던지지 마라”면서 격렬하게 반발했다.
“12.12 군사 쿠데타와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저항했던 우리의 삶을 함부로 대하지 마라. 내가 원해서 군화발에 채이고 감옥에 가고 친구를 먼저 보낸 것이 아니다. 나의 꿈은 그저 소박한 공학도였다. 평범한 일상을 무너뜨리며 그들이 쳐들어왔고 무서웠지만 도망가지 않고 견뎌냈을 뿐이다. 견디고 회복하고 이겨내기 위해 날마다 두려움과 맞서며 거리로 나섰던 것이다. 그런 삶들이 모여 6월 항쟁이 되었다. 박종철을 잃고 이한열을 잃고 민주주의를 얻었다.(중략) 다른 이의 희생으로 일상을 지키고 평생 검사만 하다가 권력에 취해 마구 휘두르는 당신들에게 충고한다.그 입에 함부로 기득권이니 특권이니 하는 낯 뜨거운 소리를 올리지 마라”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2월12일 mbc라디오 인터뷰(김종배의 시선 집중)에서 “운동권 청산”론을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했던 친일파들의 논리와 똑같다”고 말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못 받다 보니 해방 후 전문 관료가 필요한 자리에 일제시대 검찰, 순사들이 영전했다”면서 “지금 검사 출신이 (정치에) 진출하려고 민주화 운동을 폄하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20대 초부터 지금까지 종북주사파 운동권과 가장 치열하게 싸운 사람 중의 하나인 곽대중(전 전남대 총학생회장)도 한동훈 위원장이 강조하는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피력했다. 모름지기 여당의 대표라면 청산이나 타도 보다 통합을 고창하고, 민생과 안보 비전을 제시하며, 안정감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작년 7월부터 ‘운동권정치 청산과 제2중흥시대 개막’ 을 개념화 이론화 하고 주창한 사람으로서 <운동권정치 청산 10문 10답>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혼동하고 있는 것 몇 가지만이라도 얘기하려 한다.
1. 운동권과 운동권정치는 무엇이 다른가?
운동권은 사람을 말하고, 운동권정치는 정신과 방법 혹은 노선과 행태를 말한다. 운동권을 사전(辭典)적으로 정의한다면, 1960년대 ~ 1990년대의 대략 30 ~ 40년 간 한국 정치를 뒤흔든 장외·비제도권 정치세력이다. 운동권은 문자 그대로 권(圈)으로 경계가 모호하다. 문장화된 강령도 지휘체계도 없다. 하지만 이심전심으로 공유하는 역사관, 세계관, 가치관의 총체인 이념과 노선은 있다. 이를 80대 백낙청·함세웅부터 70대 문재인·이해찬과 86운동권 송영길·이재명·조국·임종석·김어준과 30·40세대 김남국·양경수(민노총위원장) 등이 공유한다. 이를 진실과 균형잡힌 생각으로 허물지 않으면 2024년생 아기도 공유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들면 노화되어 사라지는 운동권(사람)이 아니라, 종교처럼 세대전승하는 불멸의 이념과 노선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2. 운동권 이념과 노선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 노선의 원형은 1990년대 초 재야운동권의 총연합단체인 전국연합과 2000년 이후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강령에 어느 정도 문장화되어 있다. 이 노선의 근간은 1979년에 제1권이 출간된 『해방 전후사의 인식』 시리즈가 설파한 역사관인데, 이해찬이 기획·출판하고 유통시킨 책이다. 이해찬은 7선 의원에, 2020년 총선 압승의 주역(당대표)에 노무현정부 책임총리, 김대중정부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이해찬 회고록』(2022)에서 대한민국은 “여야 정치세력이 항일세력이 아니었고 상층에 친일, 친미가 주류”여서 “자주적인 정부”가 될 수 없었고, 여기서 수많은 문제가 발원했다는 대학생 시절의 역사·현실 인식을 가감없이 드러냈다. 문재인 전대통령은 ‘해전사’가 주조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1월에 출간한 『대한민국이 묻는다 - 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21세기북스)에서 그의 역사인식을 잘 보여 보여준다.
" 문형렬: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문재인: 상식과 정의 아니겠습니까?(중략) 해방 때 친일 역사가 제대로 청산되고, 독립운동을 한 사람과 유족들에게 제대로 포상하고 그 정신을 기렸어야 사회정의가 바로 서는 것이었죠. 친일세력이 해방되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떵떵거리고, 독재 군부세력과 안보를 빙자한 사이비 보수세력은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해나가고, 그때그때 화장만 바꾸는 겁니다. 친일에서 반공으로 또는 산업화 세력으로, 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라는 이름으로, 이것이 정말로 위선적인 허위의 세력들이거든요. 또 한 번의 기회를 놓친 건 1987년 6월항쟁 땝니다. (…) 하지만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회를 또 놓쳤죠. (…) 부패 대청소를 하고 그 다음에 경제교체, 시대교체, 과거의 낡은 질서나 체제, 세력에 대한 역사교체를 해야 합니다. (책 67~68쪽)"
해전사식 역사인식의 골자는 대한민국은 권력욕의 화신이자 권모술수의 달인인 이승만과 친일에서 친미·반공으로 변신한 비양심 기회주의 세력이 합작한, 태생이 더러운 나라라는 것이다. 또한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이라는 것도, 외채와 민중 수탈및 억압으로 이룬 모래성으로 보았다. 외자의존 수출지향공업화는 경제적 불균형과 대외 종속을 심화시켜 저발전을 구조화 할 것이라 보았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에 대한 무지와 중상모략은 한국경제의 놀라운 성과에 의해 산산조각 났으나, 이승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았다.
운동권정치의 주역은 숫적으로도 많고, 연령도 맏형이 60대 초반인 86운동권 정치인이다. 이들은 '해전사'식 역사인식을 토대로 하여, 조선의 주자성리학, 19세기 말부터 발흥한 민족주의, 러시아혁명부터 발흥한 마르크스-레닌주의, 1960년 이후 발흥한 주체사상, 서구 68혁명사조 등을 얼기설기 끌어모아 세계관을 구축했다. 하지만 현실적 적합성이나 논리적 정합성은 엄밀히 따질 지력도 없었고, 따지지도 않았다. 그냥 막연한 반대한민국, 반주류보수, 반자유시장경제, 반재벌 분위기에 편승했던 것이다. 이는 주류보수를 밀어내야 권력에 다가갈 수 있는 야당의 이해관계와 북한의 이해관계도 작용하였다. 그래서 86운동권의 세계관은 지중해 연변에 남아있는 그리스-로마 유적처럼 되었다. 초석 몇개, 기둥 몇개, 외벽 일부만 남아있다. 이승만과 대한민국에 대한 지독한 무지, 폄하, 왜곡에 뿌리박은 막연한 적대와 증오, 부정과 파괴, 쟁취와 타도, 오만과 독선의 정서만 남았다는 얘기다.
3. 운동권정치의 진짜 패악
운동권정치의 패악은 크게 도덕적 허물, 경제적 패악, 정치적 패악으로 삼분할 수 있다. 한동훈 국힘당 비대위원장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정치인과 논객들이 주로 질타하는 것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의 도덕적 허물이다. 그런데 이는 권력과 인간의 기본 속성이다. 시대도 초월하고, 세대·이념과도 상관없다. 아마 지금 운동권정치를 비판하는 젊은 정치인들도 세월이 흐르면, 적어도 변질, 타락, 고인물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권 출신 의원의 도덕적 허물에 대한 시비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기에 매섭게 질타해야 한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한국 정치판은 세대 교체, 다선의원 교체, 범법자나 부도덕한 인사 낙선·낙천, 당권파 패권주의 반대 혹은 비주류 공천학살, 여성 할당제, 전문직능 안배, 제3당 지지 등 갖가지 명목으로 끊임없이 물갈이와 인물 교체를 시도해왔고, 결과 1988년 이후 전세계에서 초선의원 비율이 가장 높은--대체로 40 ~ 60%--국회를 운영했지만, 대한민국을 쇠락·퇴행·자살로 몰아가는 치명적인 위기·부조리는 조금도 완화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진짜 문제는 운동권정치의 패악 중에서 특권·오만·변질·타락·부패 등은 어디까지나 패악의 깃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몸통은 한마디로 기업도 사람(아이)도 태어나기도 힘들고, 자라기도 힘든 조선(朝鮮)스러운 좌파국가를 만든 것이다. 동시에 정치가 사회통합은 주도하기는커녕, 파괴적 분열과 갈등을 주도하여, 치명적인 위기를 외면, 방치하여 자멸하는 국가를 만든 것이다. 요컨대 운동권이 타락하지 않고, 변질·부패하지 않고, 특권을 추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시대착오적 철학·가치를 버리지 않는다면 외교안보는 물론이고 경제·민생·미래를 파괴하게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운동권정치의 진짜 문제는 문정부가 보여주었듯이 시대착오적 철학·가치와 정책으로 국정과 의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치명적인 모순부조리; 저성장, 저출산, 고비용, 취업난과 대선불복, 국회폭정 등과 운동권정치의 상호관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과거사 시비나 도덕적 시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운동권정치가 압도적 책임이 있는 (정치·문화적 패악은 접어두더라도) 경제·사회적 패악만 말한다면 저성장, 취업난, 고비용, 저출산, 불평등·양극화, 노동시장의 불공정과 이중구조(직장의 계급화, 노조의 귀족화, 공공의 양반화), 산업인재의 양적 감소와 질적 저하, 지방소멸, 필수의료 붕괴 등 대한민국의 총체적 쇠락·퇴행·소멸 위기 등을 들 수 있다.
운동권정치가 밀어붙인 대표적인 정책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최저임금 폭등-공공부문 폭증-고용의 경직화·철밥통화-주 52시간제와 경직된 근로시간 운영-친노조(노조원 늘리기와 노조에 대한 견제 장치 제거)등이다. 노란봉투법과 중대재해처벌법도 빼놓을 수 없다. 탈원전을 통한 원전생태계 고사도 빼놓으면 서러워할 것이다.
이 시대착오적 정책들의 근저에 흐르는 철학·가치는 무엇일까? 운동권정치는 약자, 피해자 의식에 찌들어 생산성과 임금, 위험과 이익, 비용과 편익(안전), 부담과 혜택, 노동권과 재산권, 환경보호와 경제성장 등 가치 간 조화와 균형 개념이 부실하다. 임금, 이익, 편익, 혜택, 안전, 고용안정(보호) 등을 늘리는 것을 자명한 진보요 개혁이요 정의라고 생각한다.
그 극단에 무상(공짜)시리즈나 반값시리즈가 있다. 임금과 고용 등 근로조건을 생산성이나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노사 간 역관계 문제로 바라본다. 그 결과 주로 대·공기업 조직노동과 국가의 보호를 받는 규제산업·면허직업 종사자와 공공부문 종사자 등 힘센 집단의 권리·이익은 생산성과 상관없이 상향되면서 힘없는 집단(청년·미래세대, 하청기업, 영세자영업, 비정규직, 납세자 등)에 대한 사실상의 약탈을 자행해 왔다.
노조는 약자의 권익 쟁취에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라, 생산성에 비해 월등한 권익을 누려온 강자가 더 많은 권익을 쟁취하는 무기로 된 지 오래인데, 노조에 대한 견제장치를 제거하고, 노란봉투법 등으로 무기를 늘려주려 하니 결과가 어떻겠는가? 노조는 주주 몫, 협력업체 몫, 비정규직 몫, 미래투자 재원 등을 빨아가면서 능력있는 기업들의 국내투자와 고용 의지을 고사시켜왔다. 이 결과가 바로 저성장, 취업난, 고비용, 저출산, 불평등·양극화, 노동시장의 불공정과 이중구조 심화 등이다.
4. 문제는 대안 비전과 정책이다.
이 문제들은 운동권과 문재인정부가 급속도로 악화시키긴 했지만, 최초로 만든 것은 아니다. 이 증상 혹은 질환들은 1987년 이후 정부의 이념 성향에 관계없이 경향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그런 점에서 유효기간이 지난 1987년 컨센서스가 대한민국병(만성질환)의 근본 원인이라면, 운동권정치는 이 병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역대 정부들은 이 병을 고치지는 못해도, 악화시키지는 않으려고 했고, 최소한 진통제라도 처방했다면, 운동권정치는 아예 독극물을 처방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정치·문화적 패악은 거의 전적으로 운동권정치가 만든 것이다.
운동권정치 청산의 관건은 우리 시대 치명적인 위기·부조리가 압도적으로 낡고 늙고 썩은 운동권과 운동권정치에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다. 운동권정치의 핵심 패악인 경제·사회적 패악과 정치·문화적 패악인데, 패악의 현상·증상과 이를 만든 정책·운동과 그 근저에 흐르는 철학·가치 간의 상호관계를 규명해야 운동권정치 청산 담론이 탄탄하게 정립된다. 더 나아가 2024년 총선 이후 창조할 새시대 비전도 도출된다. 낡고 썩은 것을 효과적으로 쓸어내기 위해서는 싱싱한 새것, 즉 새로운 대안과 대비시켜야 한다. 매력적인 새시대·7공화국 비전이 있어야 운동권정치가 효과적으로 청산된다는 얘기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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