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대외정책 과제 <4>대(對) 일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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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정책의 변화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은 대일정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강제징용문제라는 시한폭탄이 있음에도 한일관계를 방치하여 최악의 상황을 만들었다. 문 정부가 집권 후반에는 일본과의 대화를 주장하였으나, 실질적 대화는커녕 일본으로부터 냉대를 받았다. 문 정부의 대일정책 실패는 북한 문제를 우선시하면서 일본을 협력자가 아닌 방해자로 보는 인식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 문 정부가 대일정책을 방기함으로써 한일관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역전되는 기막힌 현상이 나타났다. 이로 인해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어겼다’. 또한 '한국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였고, 문 정부와의 대화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임으로써 한일관계 개선은 어려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일협력을 중시하고 있어 최악의 한일관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은 분명하다. 윤 당선인은 외교정책 중에서도 한일협력의 우선순위가 높고, 한미일 협력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리고 한일관계를 국제관계속에서 중시한다는 점에서 문 정부와는 차별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윤 당선인이 주장하는 글로벌 중추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교가 남북관계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시급한 과제는 갈등의 한일관계에서 협력적인 관계로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윤 당선인은 후보자 시절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포괄적 협상을 주장하며 과거사 문제의 현안을 풀 의지를 보였다.
또한 1998년의 김대중 오부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을 업그레이드시켜 새로운 한일협력 시대를 만들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문 정부와는 달리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면서 한일안보협력에서도 적극적이다. 윤 당선인은 미국에 이어 기시다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취임 후 한미일 3국이 한반도 사안 관련 공조를 더욱 강화를 주장한 것에서도 한일협력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 동안 한일 양국은 미중전략경쟁시대에 같은 외교적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한일협력의 시너지 효과를 살리기는커녕 도리어 서로의 국익을 훼손하는 상황마저 나타났다. 윤 당선인은 문 정부의 중국과 북한에 치우진 외교정책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한미일협력의 강화를 통해 전략외교를 복원하고자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서 신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신정부의 장애요인
윤석열 정부가 발족하면 한일간에 실질적 대화 채널을 복원할 것으로 보이며, 지금까지 반일 정서에 밀려 주저해왔던 한미일협력의 과제(한일지소미아협력, 인도태평양전략, 쿼드, CPTPP등)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윤 당선인이 쿼드 참여를 공개적으로 밝힌 만큼 한미일협력이 확대되면서 대중국견제, 북한에 대한 강경자세로 변화될 가능성이 높다. 즉 미국과 협력을 바탕으로 한일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한일관계 개선이 급진전하기는 어려움이 있으며, 성공적으로 한일협력이 정착될지도 미지수이다.
우선 대통령 선거에서 근소한 차로 승리한 것이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족주의적 경향이 강한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을 차지한 현재 상황에서는 야당과 협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사사건건 반대하면 정국은 혼란으로 이어지며 대일 전략외교도 원활히 추진할 수 없다. 앞으로 2024년 총선거에서 여소야대의 국회를 정상화하지 않고는 윤 정부의 대일 전략외교는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또한 문 정부 하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반일시민단체들도 대일정책의 걸림돌이 된다. 선거 막판에는 윤미향 의원을 제명한다는 결의를 하면서도 여전히 정치권은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고 있다. 보수정권하에서는 대일강경 시민단체와 피해자 설득이 무엇보다 어려운 과제이다.
게다가 현재 일본정부의 강경한 태도도 한일관계의 개선을 방해하는 요인이다. 일본 내에서도 윤 당선인에 대한 기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윤 후보의 당선은 일본 여론과 정치권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에서 탈피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의 ICBM 도발 예상, 그리고 바이든 정부의 한일관계 개선 요구 등으로 인해 일본정부도 한일관계 개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은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한일관계의 개선은 한국 신정부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일본정부가 지금처럼 '한국이 제안을 가져와야 한다'는 강경자세를 유지하면 윤 정부는 반일 여론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일본의 협조도 매우 중요하다. 일본의 여론이 일방적으로 한국만 문제라고 생각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풀기 힘들다. 신정부는 일본도 기존의 태도를 바꿔 신정부의 노력에 힘을 보태지 않는다면 한국 국민이 수용하기 힘들다는 점을 이해시켜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대일정책의 방향
신정부는 전임정권들의 대일정책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일관계 개선을 서두르다가 국내적 합의를 무시하여 역풍을 맞은 박근혜 대통령, '털끝만치도 반성을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여 한국으로부터 반발을 받은 아베 총리, 피해자 중심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피해자와의 소통을 경시한 문재인 대통령, 한국과 정상회담조차 거부한 스가 총리의 실패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양국 정상들의 이러한 실패는 결국 반일과 혐한의 국내정치상황을 부추기면서 '국익을 위한 전략외교'는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한일관계 개선의 핵심은 한국의 국내 피해자 대책, 일본의 사죄와 반성, 대화, 그리고 국민들의 한일개선에 대한 합의가 될 것이다.
앞으로 한일 양국이 윈윈하기 위해서라도 과거사문제는 관리하며, 이익은 확대하고, 전략은 공유해야 한다. 한일 양국의 정치권이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에서 벗어나야 전략외교는 강화될 수 있다. 현재의 한일관계는 국내정치를 이용하는 ‘나쁜 학습효과’로 인해 한일 모두 상대방에 굴복하여 타협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대일정책의 목표를 ‘과거사 문제의 완전한 해결’에 두어서는 문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 과거사문제의 해결은 장기적인 과제로 인식하고 한일 양국의 신뢰 회복을 통한 갈등관리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한일 양국은 해묵은 과거사의 늪에서 탈피하여 협력에 필요한 부문에서는 과감하게 손을 잡아야 한다. 과거사문제 해결은 한국이 어떤 수준의 해결을 원하고 어느 수준까지 합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들 일본의 태도를 문제로 삼지만, 관리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한일관계는 개선될 수 있다. 따라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대화의 물꼬를 터는 것이 한일관계에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빨리 성과를 내기 위해 조급해서는 안된다. 시간에 쫒겨 국내대책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한일 경제 협력에서는 양국간 대립이 있더라도 이익을 증진시켜야 한다. 국제관계의 대응에서도 한일 양국의 전략적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한일 양국은 대북문제에서 방법론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협력의 전략적 자세를 포기하여서는 안된다. 이제까지 대북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전략 차이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생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한일 양국이 중국문제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윤 당선인의 중국에 대한 외교정책을 생각하면 한일 양국이 협력해야 할 부분은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바이든 정부가 중시하는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여 국제관계에서 한일 양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관리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신정부는 한미일 동맹의 가장 약한 고리인 한일관계를 견고히 하면서 한일 양국이 동북아 질서에서 강대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의 국제질서를 지키는데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책 제언
한일 양국의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정상간의 합의를 통한 톱다운 방식이 효율적이다. 우선 양국 정상이 빨리 만나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한 정상간의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 일본에 특사 파견도 좋고, 셔틀외교의 복원도 바람직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한일 정상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시그널만으로도 한일관계의 해빙기는 시작될 수 있다. 그리고 한일 정상간의 공통인식을 바탕으로 각 분야에 확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5월 윤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 기시다 총리가 참석하여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고이즈미 총리, 2008년 2월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에 후쿠다 총리가 참석한 것이 그 예이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의 5월말 일본방문시기에 한미일 정상회담과 한일정상을 추진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다. 하루빨리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의 쟁점인 일본의 대일 수출규제 해제와 지소미아 복원 등도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야 한다. 현재처럼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는 톱다운 방식의 한일정상회담에서부터 물꼬를 터야 한다. 한일관계에서도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새로운 안보환경의 변화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한일 양국에게 새로운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새로운 국제관계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은 전략적 대화를 강화해야 한다.
지금 한일관계에서 시급한 현안은 강제징용문제의 현금화조치이다. 최근 법원의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매각 명령을 보더라도 한일의 대립은 위기 직전이다. 윤 정부는 한일 악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문제를 관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피해자들(위안부, 강제징용)과 대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 한다. 5월말까지 신정부의 관계자는 강제동원 원고 측과 수시접촉을 통해 대위변제의 선택지를 열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 측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여 일본 피고기업과의 만남도 주선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윤 정부가 피해자를 위한 대화와 보상조치에 노력을 한다면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즉 윤 정부는 일본과의 소통을 하면서 피해자 대책을 보완하는 양면전략이 필요하다. 일본도 한국의 일방적인 조치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한국과 함께 동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즉 일본은 '사죄와 반성'을 포함한 상징적인 조치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대안으로서는 윤 정부는 강제동원 판결배상금을 정부나 기업이 대위변제를 할 방법을 모색하고, 일본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상징적인 조치를 만들어 타협하는 것이다. 대위변제의 대상은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자에 국한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이면서 화해치유재단의 기능을 살림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의 본질은 일본 측의 사죄를 바탕으로 피해자의 존엄과 명예회복, 그리고 치유가 목표이다.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일본이 낸 출연금 중 남은 56억 원과 한국정부가 여성가족부 양성평등기금에 예치한 103억 원을 합쳐 한일양국 정부가 위안부의 유족에 대한 보상지급을 실행하고 후속조치로서 연구, 명예회복을 위한 교육, 그리고 위안부 역사관을 건립하여 상징사업을 지속하는 것이다.
윤 당선인이 주장하는 일본과의 포괄적 접근이 되기 위해서는 단계적으로 일본과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무시하면 다시 한일관계는 갈등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우선 한일 정상회담에서 방향성을 만들고 현재의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악화를 하지 않는다는 신사협정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 양국이 문제를 순차적으로 해결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을 만들어 포괄적인 선언을 해야 한다. 또한 한국의 여야가 합의한 과거사 특별법을 통해 과거사문제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끝>
※ 이 글은 세종연구원이 발간하는 [정세와 정책 2022-4월호 제20호] 에 실린 것으로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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