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점심’ 경제학”의 종말; 어느 유명 경제학자의 경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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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新)자유주의 부류의 경제학자이나 진보적 성향으로 잘 알려진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시카고대학 Booth 경영대학원 교수(인도중앙은행(RBI) 총재 및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임)가 최근, 지금 각국에 횡행하는 ‘포퓰리즘’ 정치 풍조(風潮)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짧은 논설(Project Syndicate) 한 편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Covid-19 팬데믹 사태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부득이 재정지출을 늘려가며 대응하고 있는 실정이나, 일부 지도자들이 이런 국면에 편승해서 무책임한 재정 확장을 감행하고 있는 현실을 지탄한다.
우리나라도 마침 선거철을 맞아, 각 진영은 장차 부담해야 할 재정 형편은 제대로 헤아리지도 않고, 현 시점에서 방대한 재정 지출이 소요되는 선심성 공약들을 앞다투어 내놓고 있다. 비록 자유 보수 색채가 기본인 경제 이론가의 견해이기는 하나, 일반 국민들이 이를 참고해서 지금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 각종 정책들을 잘 헤아려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데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자 논점별로 정리한다.
■ “경제 정책이란 ‘치러야할 고통’과 ‘기대하는 이익’을 조정하는 것”'
개별 주체들의 경제 행위가 됐건 정부 당국의 경제 정책이 됐건, 모든 경제 활동에는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응분의 이득을 기대할 수가 있다. 라잔(Rajan) 교수는 “현명한 경제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언제나 현 시점에서 희생해야 하는 고통(pain)과 장래에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이득(gain)이라는 서로 상충하는 두 가지 요소를 균형을 이루도록 조정하는 과정” 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런 개념은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명제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정치인들의 정책 의사결정 과정의 비합리성 및 단기 성과 중심적인 습성을 우려한다. 그는 “흔히 선출된 정치 지도자들은, 항상 어떤 정책을 집행한 결과로 장래에 치러야 할 것으로 예견되는 부담이 자신들이 현직에 있을 동안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상정하면서, 자신들의 현재 유권자들에게 곧바로 빠져들기 쉽다” 고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더욱 심각하게 모순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은, 어떤 경제 정책의 실행을 위해 현 시점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사람들과, 그 정책 실행의 과실로 이득을 보게 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문제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선진화된 경제 사회에서는, 필요할 경우에 정치 지도자들이 어려운 의사결정을 하도록 강제하는 절차를 제도화해 놓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강화하거나, 예산 적자의 법정 상한을 설정해 놓은 것 등이다. 중요한 것은, 각 정당이 자신들의 당면한 정치적 우선 사안들은 개의치 않고 이런 제도를 만들고 지지한다는 컨센서스를 이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많은 신흥시장 국가들이 아직도 위기를 반복하는 원인의 하나는 이러한 컨센서스를 이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역사를 살펴보면, 선진 경제에서도 마찬가지로 고통을 감내하기를 꺼리는 사례가 종종 나타나고 있고, 이는 아마 이들의 정치적 컨센서스가 해이해진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 “정책 수립에 정치가 개입되면 컨센서스를 이루기가 어려워져”
지금 글로벌 금융시장은 또 다시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안한 시장 상황의 배경에는 미 연준(FRB)이 장래에 인플레이션을 수속하기 위해 통화정책을 상당히 긴축할 것이라는 우려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들은 아직도 자산 가격이 상당히 하락하는 경우에는 미 연준이 완화적 자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만일, 연준이 이들 기대가 옳았던 것으로 확인하는 경우에는 향후 금융 여건의 정상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시장 투자자들이 연준이 금융시장 활황을 연장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1996년 말에 그린스펀(Alan Greenspan) 미 연준 의장은 금융시장의 ‘비(非)이성적 활황(irrational exuberance)’에 대해 경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시장은 이런 경고를 무시했고, 뒤에 이것이 정확했음이 증명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당시 연준은 그린스펀(Greenspan) 의장 발언에 정계가 거세게 반응하자 주눅이 들어 아무런 조치도 못했다. 그리고 2000년에 주식시장이 붕락하자 연준은 금리를 인하했고, 경기 둔화는 그저 완만한 수준으로 끝날 수 있었다.
그린스펀(Greenspan) 연준 의장은 전년에 있었던 상하 양원 합동경제위원회에서의 증언에서 “연준은 자산 가격 활황으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경제적 후유증을 막아낼 수는 없다고 해도, 완전히 붕락(崩落)하는 것을 완화할 수 있거나, 희망하기로는 다음 확장기로 전환하는 것을 용이하게 할 수는 있다” 고 주장했었다. 이는 결국, 연준이 시장 거래자들 혹은 은행가들을 향해, 만일 그들이 유사한 자산 종목을 두고 집단적으로 투기 행동을 하기만 한다면, 상방(上方) 이득 향유 기회는 제한하지 않으나, 그들의 투자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경우에 입을 수 있는 하방(下方) 손실 위험은 제한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 준 셈이 되고 말았다.
그런 발언 뒤에 이어졌던 연준의 시장 개입 사례들은, 연준이 금융시장에 완만한 자세로 대응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듦으로써 이런 확신을 더욱 확실하게 굳혀 주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은 당시보다도 훨씬 엄중한 긴축 정책이 필요한 시기이고 이에 따른 고통도 훨씬 극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방향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는 일반 대중의 컨센서스를 달성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다.
■ “재정 당국도 각 주체의 고통 부담을 촉구하는 자세로 임해야”
통화정책 뿐만 아니라 재정정책에서도,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정책 수단이라고 현혹하는 과오를 범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Covid-19 팬데믹 사태로 인해 가장 심하게 타격을 받는 가계들을 특정해서, 예를 들어, 실업 급여를 보다 광범하고 그리고 보다 후(厚)하게 지출하는 등 방식으로 재정을 집행해야 할 것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실제로 재정 집행은 ‘타깃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 좋은 예로, 미 의회는 수 조 달러에 달하는 대규모 긴급 예산을 의결했으나, 이는 결국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방식이 되고 말았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면, ‘고용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의 경우에 재정 자금이 무려 8,000억 달러나 집행됐으나, 이는 미국의 모든 소기업(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지급됐다. 그러나, 지급 효과는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MIT 대학 오토(David Autor) 교수 팀의 추산으로는 이 PPP 프로그램은 엄청난 숫자의 소득 17만달러~25만7천달러에 달하는 ‘연 고용(job year)’이 사라진 대가로 겨우 2~3백만개 ‘연 고용’을 겨우 14개월 동안 보전하는 데 그쳤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보다 더 나쁜 결과는, 재정 자금의 단 23~34% 만이 채권자들, 기업 소유자들, 그리고 주주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고용지원 프로그램(PPP) 지원 자금의 3/4 정도는 상위 1/5에 해당하는 소득자들에 돌아간 셈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은 그렇게 지원하지 않았다면 파산했을 수도 있었을 일정 수의 기업들을 구제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 하는 점이다. 자본가들이란 원래 자신들이 장래에 얻을 것으로 기대하는 이득을 위해서 실패할 경우의 손실을 자진해서 감수하는 것이다. 더구나, 많은 소기업들은 조직화된 자본이 아닌 소규모 형태로 운영되는 실정이다.
■ “아무리 위기라도, 고통을 감당할 수 있는 주체는 감당하게 해야”
지금은 지구 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와 싸우는 위기 상황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수많은 자영업자들이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욱 엄연한 사실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업종에 따라서, 혹은 개별 기업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는 타격의 정도가 덜 심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오히려 이전보다 호황을 구가하는 경우도 있는 사실이 종종 전해진다.
따라서, 자영업자들이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가 주는 고통을 정부가 나서서 재정 자금으로 구제한다고 해도, 이러한 고통 부담 능력의 불균등한 상황을 감안해서, 보다 효율적으로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효과적일 것이다. 한 가지 대안으로는, 타격을 입는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판단해서 지원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도 유용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일방적인 급부(給付)성 지원보다는 여신(대출) 형태의 지원 방안이 보다 적합할 것은 물론이다.
라잔(Rajan) 교수는 동네에 있는 조그만 빵집이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 됐다고 가상하는 예를 든다. 그는 만일 이 빵집 주인이 Covid-19 사태로 인해 운영을 포기해야 할 위기에 당면했다면, 이 상점이 그간 받았던 경제적 손실을 종전의 실업보험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위기 정도를 완화 혹은 보전(補塡)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 가게가 동네에서 성가(聲價)가 높아서 평소에 단골 손님들을 많이 확보하고 있었다면, 장래에 Covid-19 팬데믹 사태가 종료되는 적당한 시점에, 혹시 필요하다면 필요한 만큼의 은행 대출을 받아서, 다시 문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상정할 수 있는 평균적 사고 방식은, 전례가 없는 시기에는 전례가 없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감각으로 무제한의 재정 지출을 감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 난 뒤에는 기존의 신중 모드의 정책을 추구한다는 컨센서스는 깨져버리고 말았다. 금융위기 당시에 확산된 월가(街)의 부유층들이 중산층보다 더 많은 제도상의 혜택을 받았다는 대중의 분노가 지속되는 것을 배경으로 양당 정치인들은 Covid-19 팬데믹 사태가 발발하자 흥청망청 재정 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다.
■ “파티 분위기가 들뜨기 전에 펀치볼을 거두는 게 연준의 책무”
지금 정치적으로 나뉘어진 진영 구분없이 무차별적으로 재정 자금 방출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예산을 근검 절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신파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들의 강직한 목소리는 일부 정치적 주장에 동조하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때만 되면 통화 증발을 통한 재정 지출 확대로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공짜 점심’ 정책들을 지지하는 괴짜 경제학자들이 나타난다. 이에 더해, 점차 많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저금리 상황에서는 재정 적자를 확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힘을 받아, 자신들의 경제 정책을 정당화하고 싶은 정치인들은, 재정 지출을 지모(智謀)있게 집행해야 하고, 금리는 낮은 수준에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부 학자들의 경고는 아주 쉽게 무시하고 만다. 오직 눈앞에 내거는 메시지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누구라도 자신들 생각과 다른 견해를 밝히는 사람들은 마치 ‘수행자들의 외침’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상황이 됐다.
역사적으로, 연준(FRB)에 부여된 임무는 파티(활황 장세) 분위기가 광란하는 상태로 들뜨기 전에 펀치볼을 치우는(긴축 전환) 것이고, 의회의 임무는 재정 적자 및 부채에 근신(謹愼)하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나, 연준이 시장으로 하여금 당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욕심으로 더욱 큰 리스크를 부담하게 됐고, 장래에 더욱 깊숙한 개입(금리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믿게 만들었다. 나아가 연준의 이런 행동은 의회로 하여금 중산층을 위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고, 결국 연준이 금리인상에서 물러설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준 결과가 됐다.
이러한 제반 상황들은 종전에 형성됐던 본래의 컨센서스로 돌아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연준이 금리를 충분히 인상하면 정부는 종전에 지출을 확대해서 생겨났던 기존 부채의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에 따라, 예를 들어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정책, 장래의 긴급 사태에 대응하는 정책, 기후변화 대응 등, 향후 각종 재정 지출에서 더욱 검약하게 될 것이다.
■ “모두가 ‘공짜 점심’을 바라면, 가장 어려운 사람들이 부담하게 돼”
언제 어디서나, 한 나라의 경제를 운용함에 있어서는 제한된 정책 수단 및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꾸려가게 마련이다. 따라서, 실제로 경제 위기에 당면해서는 가장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용돼야 할 것이지, 어느 정도의 고통은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까지 보호하는 데 사용될 것이 아니다. 즉, 한정된 자원으로 모든 이들이 겪는 위기의 재난을 구제하는 데는, 무엇보다 우선해서 현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할 것임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더구나, 정책 담당자들의 편의적 사고나 무책임한 의사결정은 절대로 금물이다.
라잔(Rajan) 교수는 마지막에 아주 평범한,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자연스러운 결론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만일, 모든 사람이 ‘공짜 점심’을 원하면, (이 점심값) 청구서는 궁극적으로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부담해서 치를 수밖에 없게 될 것(If everyone wants a free lunch, the bill eventually will be paid by those least able to afford it.)” 이라는 말이다. 지금 우리 모두 새겨 봐야 할 경구(警句)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 사회적 컨센서스가 잘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신흥시장 경제들은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교훈을 익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선진국 경제도 이를 다시 배워야 할 시기라고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새로 배워야 할 교훈도 많고, 다시 되새겨야 할 교훈도 하도 많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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