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의 파리 구석구석 돌아보기(8)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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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빠리 구석구석 돌아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어느덧 만 일주일이 지나고 있습니다. 그동안 몇몇 분들이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시며 이런저런 제의도 해 주셔서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제가 어제같이 파김치가 되면서도 이 프로젝트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분들의 관심과 성원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하튼 저는 가능한 한 이른바 '잠수타기'를 하기로 결심하고 빠리에 왔습니다만, 빠리에 계신 이장혁 교수께 포착되어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음은 어제 말씀드렸습니다. 앞으로 남은 3주간도 가능한 한 그 기조를 유지해 가고자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애써서 약속하여 만나는 시간은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저희 두 부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발품을 팔며 빠리 구석구석을 돌아다녀 보는 것입니다.
오늘은 '아련한 옛 추억으로의 여행'을 테마로 삼을까 합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오늘도 파김치가 되도록 돌아다니다가는 지레 한 사람이 쓰러져 눕겠다는 걱정 때문이고 (그래서 가능한 한 지하철, 기차 등을 많이 타면서 쉬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하튼 옛날 살던 곳은 시간이 되면 들러야 하니 쇠뿔도 단숨에 뽑자라는 심정 때문입니다. 아련한 추억 여행의 목적지는 Garches (가르슈)라는 교외 조그만 도시입니다. 저희는 1997년 9월부터 1999년 9월까지 만 2년간 그곳에 살면서 저는 파리 16구에 있는 OECD 무역국에 자동차로 출근하고, 큰 딸은 이웃 St Cloud 시와의 경계에 있는 American School of Paris에 다녔으며, 더 어린 둘째딸과 아들은 프랑스 초등학교에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다녔습니다. 당시 저는 가능한 차로 아침에 큰 딸을 학교에 반드시 데려다 주었고, 두 작은 아이들도 가능한 한 아침에는 데려다 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집에 큰 불편이 없었었는데, 시내에서 다소 먼 언덕 위에 있는 집과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를 매일 두 차례 오르내렸던 아내는 이 집에 많은 애환이 서려 있다고 하네요. 여하튼 그 집을 찾아 나서기로 했습니다. 구글 지도의 도움을 받아 가면서. 어제 정신이 들었을 때 잠시 찾아본 대중교통 루트는 만만치 않은 코스였습니다. 특히 차를 몰고서만 다녔던 곳이라 대중교통에 덜 익숙하여 더욱 그러했습니다. Garches 외곽에 있는 집을 찾아가는 길과 (메트로 두 노선 갈아타고, 마지막엔 교외 버스) 초등학교가 있는 시내에서 다시 빠리로 돌아오면서 제가 근무했던 OECD를 찾아가는 길이 (교외선 기차와 시내 메트로 한 노선 이용) 대단히 다른 길이었습니다. (사진 참고) 마지막으로 OECD 근처에서 호텔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까지 상당히 복잡하고 많은 교통수단을 환승하며 다녔습니다만,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나비고 패스 덕분에 이 모든 복잡한 루트를 모두 무료로 다닐 수 있었습니다.
오고가는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버스안에서 바라본 에펠탑 등 풍경도 담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길을 가니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겠지요. 제가 마지막 버스 번호를 잘못 기억해서 한 버스는 보내 버리고 15분 뒤 버스를 탄 것은 애교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착역 Garches 집을 찾아 언덕을 오르면서 20년 전 기억을 더듬으니 그렇게 좋은 기억력을 가진 아내가 큰 실수를 했습니다. 집이 교차로에서 바로 붙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엉뚱한 집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고 억지로 기억을 되살려 내려고 애쓰느라 15분 정도는 허비하다가 고개를 내민 주인한테 저희가 20년 전에 이곳에서 살아서 그 추억을 더듬으러 왔다고 하는 인사까지 했습니다.
그러다가 30m 정도 더 전진했더니 그만 정확히 우리가 살던 집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반가왔던지. 애기들처럼 좋아하며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는데 정문이 열리며 나오던 키큰 프랑스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우리가 2층에 살던 때에 1층에서 살던 Pradel씨였습니다. (눈썰미가 좋은 아내가 실수를 한 것은 이 분과 만나려고 한 짓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막 빠리로 볼 일을 보러 가는 길인 사람을 잡고 인사를 하니 금방 알아보며 'Kim씨 가족 아니냐?'고 합니다. 아내가 그 집 아들들 '프랑수아'와 '기욤' 이름을 대자 그만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경계의 담은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집 뜰을 둘러볼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들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빠리 볼 일 때문에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뜰에 있는 조그만 광의 냉장고 문을 열고서 맥주, 물, 리모네이드 등 무엇이든 자기 집처럼 쓰라고 하네요. Pradel씨는 저희들과 사진도 찍고 이메일을 교환하고는 아쉬운 듯 빠리로 떠났습니다. 큰 아들 프랑수아는 미국 LA에 거주한 지 4년 되었고, 작은 아들 기욤도 빠리 근교 르발로와에서 산다는 얘기도 해 주었는데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는지 기적같았습니다. 저희는 벅찬 가슴을 달래며 시원한 리모네이드를 연신 들이켰습니다. 그리고 낯익은 주차장 (셔터가 있는 개별 주차장), 차 들어오는 문, 그리고 Pradel씨댁 그네, 탁구대 등 (우리 아이들도 이용한 바 있는 시설물들) 모든 것들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그 집 위층에 누군가 살고 있음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집을 나온 뒤에야 저희는 영낙없이 동화 속 세계로 들어갔다 나온 감회에 젖었습니다.
그렇게 20년전 살던 옛집을 아쉽게 뒤로 하고, Garches 시내로 내려왔습니다. 30도가 넘는 날씨에 1Km 이상을 다시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 추억의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내 광장에서는 매주 열리는 토요 장날이 섰는데 막 파장하기 직전이라 식당에는 사람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스파게티를 둘 시켜놓고 시장 풍경도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작은 도시 장이라 그다지 볼 것은 없었습니다만... 에스프레스와 알롱제 커피 한잔씩 맛있게 마시고 그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를 찾아나섰습니다. 학교도 조금 변해서인지 아내가 분명하게 이곳이었는데 하는 기억을 되살리지 못해서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발길은 Garches 역으로. 이곳도 저희로서는 처음 와본 곳인데 지금까지 다녀본 교외 도시 역중에서 가장 잘 정리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빠리는 빠리 시내를 중심으로 동쪽에 다소 못사는 사람들이 살고, 서쪽에는 부유층이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내를 거닐어보아도 그 차이는 느낄 수 있습니다. 빠리 교외로 나가면 그 차이가 더욱 벌어진다고 하는데 이곳 Garches야말로 알짜 부자들이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중교통이 불편할수록 (차가 없는) 가난한 이민층이 들어와 살기가 어려운 셈인데 Garches가 그 조건에 딱 맞는 셈입니다.
돌아오는 길의 중심역은 빠리에서 지방도시 혹은 외국도시로 TGV가 떠나는 역 중 하나인 St Lazare역입니다. 저는 학창시절에 노르망디 지방에 있는 Rouen이라는 도시에 정착하였는데 빠리 1대학에 입학허가를 받고도 그곳 인심에 반하여 빠리외곽으로의 이사를 포기하고 열차로 학교를 다닌 바 있었으므로 (1주일에 2-3 차례씩), 이 역이 매우 익숙해진 셈입니다. 물론 역 풍경도 빠르게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OECD는 빠리 서쪽인 16구에 위치합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상대적으로 부촌에. 저는 근무하다 시내에 볼 일이 있으면 차를 두고 지하철을 이용하곤 했는데 그 지하철역 이름이 이곳을 거쳐간 한국 공무원들, 연구원들의 모임 이름이 되었습니다. La Muette (라 뮈에뜨). 지하철 오르내리던 자리도 추억이 남아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지하철 역 근처의 식당들 모습도 담습니다. 마지막으로, 토요일이라 굳게 닫혀 있는 OECD 건물 앞에서도 몇 장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OECD를 나서서 조금만 걸어가면 프랑스 사람들이 휴일이 되면 가장 많이 찾는 쉼터, 불론뉴 숲입니다. 이곳은 큰 연못도 있고 해서 경관도 좋고 도로망도 제법 잘 나 있어서 휴일에는 많은 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오는 곳입니다만,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지쳐버린 오후에 걸어서 거기까지 가기에는 다소 무리라고 판단해서 겉만 살짝 보기로 하고 들어갔는데 요란한 음악과 함께 떠들썩한 사람들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필리핀 주민들의 행사. 에어로빅 경연대회가 벌어지고 있어서 더욱 소리가 컸었나 봅니다. 그곳을 잠시 기웃거린 뒤, 몇 걸음 숲속으로 들어가 물을 마시고 가지고 간 과일을 조금 먹고나서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결국 오늘도 1만 5천보를 걸었습니다만, 다른 날보다 피로도가 낮은 것은 아마도 '아련한 추억으로의 여행'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희가 돌아다니는 동안 제 명함을 건넨 1층 집주인 Pradel씨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언제든 자기 집으로나 빠리에서 한번 만나 식사 한번 하자는 친절한 제의를 하면서 너무나 반가왔다는 인사를 하네요. 그 메일의 답신으로 저는 저희 둘의 사진과 Pradel씨 본인과 저희 둘 각각이 찍은 사진들 등 석 장을 보냈습니다.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마지막으로 Garches 시내에서 역으로 내려오는 길에 시청 근처 공원의 사람들이 가장 잘 보이는 장소에 세워져 있는 Garches 출신 세계 1, 2차 대전 희생자 영령 추모시설물 사진도 담아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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