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믿음[信]을 잃고 일본은 예의[禮]를 잃었다” - 韓 · 日 분쟁을 바라보는 일본의 일부 識者들의 제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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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양국에 정권이 바뀐다 해도 원래로 돌아가기가 어려운 근본 인식의 문제”
- “악순환 고리를 잘라 내기 위해서 정치적 우위를 겨루는 ‘포퓰리즘’을 탈각해야”
- “이럴 때일수록 양국 정상들이 담대한 각오로 만나 원대한 국익을 논의해야”
지금 韓日 관계가 197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져,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을 불허하는 상황이다. 양국 간에 가로놓인 ‘怨恨’의 근원이 오랜 역사를 통해 쌓여 온 것이 분명하나, 가까이는 日帝 치하에서 일어난 강제 동원 위안부 및 강제 징용 근로자들에 대한 배상 문제와 관련한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발단한 것이다. 일본이 판결에 대한 보복으로 수출 규제 강화, 이어서 한국이 GSOMIA 파기 선언하는 등, 급기야 안보 문제로 옮겨가는 심상치 않은 전개다.
이제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방사능 오염 수 방류 문제, 내년 도쿄 올림픽 참가 문제 등, 당초 쟁점과는 거리가 먼 다른 일반적인 사안들로 번져가며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나,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양국은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경제 · 통상 등의 광범한 분야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과연 지금 양국 관계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고, 이런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양국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사안이 광범하고 심대하다는 점에서 양국 모두, 만족할 만한 묘책을 찾기가 결코 쉽지 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마침,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은 최근 양국 관계의 심각한 상황을 타개하고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취지에서 일본 내 韓 日 관계 전문가들의 다양한 견해를 연재한 적이 있다.
국민들 감정이 극도로 격앙되어 있는 엄중한 상황일수록 양국은 상대방의 현안에 대한 인식 방향과 관점들을 소상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할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우리가 일본 사회의 평균적인 입장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는데 참고하도록 하기 위해, 아래에 이 연재 논설들의 내용을 근간으로, 일본 등의 식자들이 현 韓 日 관계 악화 국면을 바라보는 시각과 제언들을 요약, 정리한다.
■ “韓 · 日 대립의 근원은 국민들의 바탕에 쌓여온 역사 인식 차이”
한국과 일본; 지리적으로도 아주 인접해 있는 두 나라 사이에 끊임없이 분란이 생겨나는 가장 큰 이유로 우선 양국 국민들 가슴 속에 깔려 있는 역사 인식의 차이를 지적한다. 한국인들 가슴 속에는 오랜 세월 異민족의 침탈과 지배를 받아온 처지에서, 특히,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전후하여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아온 것에 대해 천추에 씻을 수 없는 고통, 슬픔, 분노 그리고 ‘한(恨)’을 품고 있다.
사실, 明 · 淸 시대를 비롯하여 보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한국을 지배했던 중국에 대해서는 그다지 절절한 한(恨)을 품고 있지 않은 것은 중국은 한국을 직접 지배하지 않았고 문화적으로도 우위에 있었던 까닭이 있다. 반면, 일본은 조선의 강제 병탄(倂呑) 이후 직접 식민 통치를 통해 믿기 어려울 깊은 상처를 주었고, 이 때문에 문화적으로 열위라 할 수 없는 일본에 유독 깊은 한(恨)이 쌓여 온 것이다.
이렇게 양국 간의 오랜 역사적 경과를 따져 보면, 이번에 일본이 자기들 말로 ‘수출 관리 규제 강화’ 조치를 취하고 한국을 ‘화이트國’에서 제외하자, 한국이 이에 반발하며 일본이 또 다시 한국을 침탈하려는 것이라며 울분을 토로하는 것은 일찌감치 대항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사고가 작동한 것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한국이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여 韓 美 日 정보 소통을 원활하게 유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체결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자국의 이익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중단하는 행동으로 나온 것도 일본을 향한 한국의 이러한 수단 ·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결연한 의기(意氣)를 담은 강력한 대항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일관되게 부인하나, 이번에 한국에 대해 ‘수출 관리 상의 규제 강화’ 조치를 취한 것은 분명 한국에서 이에 앞서 내려진 대법원 판결에 보복하는 조치임이 확실하다. 바로 그 배경에 깔려 있는 것이 이제 더 이상 한국에 의해 얕잡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일본의 속 마음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현 집권 정권이 바뀌고 외형적인 정세가 다소 변화한다고 해도 쉽게 바뀌지 않을 이러한 ‘대결과 반감’ 의식이 긴 역사를 통해 뼛속 깊이 흘러내려온 것이다.
■ “양국은 외교에 경제 · 안보를 연계, 이미 『禁斷의 手』를 쓴 셈”
이와 함께, 현 대치 국면을 주저없이 만들어 낸 배경에 숨어있는 또 한 가지 측면은 양국의 현 집권 세력들이 서로 상대방 국가 및 정부를 對함에 있어서 자신들의 국내 정치 상황의 연장으로 상대방에게 타격을 안겨주려는 의식이 작동했던 것이나, 이를 억지(抑止)하기 위한 이성적 수단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 지지 그룹은 소위 ‘386’ 세대로 불리는 진보주의 색채가 강한 세력이 중핵이다. 이들은 이미 40, 50대 세대가 되어 있고, 이전 세대와 달리,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쟁취했다는 의식이 강하다. 이들과 장년 층이 주축을 이루는 보수 세력과의 인식의 뿌리깊은 이른바 ‘보 · 혁(保 · 革)’ 대립은 첨예하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전임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의 업적을 하나하나 부정하고 있는 것처럼 文 정권도 과거의 朴 정권 시절의 업적을 근간으로부터 부정하고 있다. 이들은 원리주의적 완고(頑固)함을 가지고 있어 외교적인 협조주의가 파고 들어갈 여지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朝日)
이 점은 일본에도 마찬가지다. 아베(安倍) 총리를 중심으로 한 현 집권 자민당 권부의 압도적 존재감 앞에서 외교적 접근법이 끼어들 여지가 얼마나 있는 것인지 지극히 의문시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지금 한국과 일본의 집권 세력 간에는 극한적 대결 일변도 자세로 충돌을 벌어지고 있고, 이미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도 아직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답답한 상황이 무작정 이어지고 있다.
한편,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중대한 사실은, 韓 日 분쟁 격화로 東 아시아 지역 내의 균형 및 안정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핵 무기를 보유한 ‘破綻’ 국가 북한을 비롯해서, 주변 중국, 러시아 등 적대 세력들에 대항하는 韓 美 日 3국 동맹을 주축으로 하는 지역 안보 구도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양국은 이런 난국에 처해, 단순한 융화(融和)주의를 넘어서서, 보다 과감하게 시공(時空)을 넓혀, 다각적 · 포괄적 · 전략적으로 상황을 판단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 “한국은 믿음[信]을 잃고, 일본은 예의[禮]와 명분을 잃었다”
“한국이 이번 사태에서 잃어버린 가장 뼈아픈 손실은 민주주의 룰이나, 국제 사회의 일반적 관행이라는 관점에서 보아 거리가 먼 행동을 계속해 온 결과, 한국이 일본에 가장 중요한 동반자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을 인식을 심어 준 점이다.
한편, 일본은 한국에 대해서 국가 간에 존중해야 할 ‘禮儀’나 ‘大義’ 및 ‘名分’을 상실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전에 일본은 민주주의적 규범이나 국제적 관행을 충실하게 준수하며 행동해 왔으나, 지금은 그런 관행을 송두리째 내던져 버리고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행동으로 일관해 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외교적 겸양에서 벗어나는 행동도 불사하고 있다. 실제로, 자유무역은 일본이 종전에 대외 통상에서 가장 중시해 왔고, 가장 큰 수혜를 받아온 핵심 가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베(安倍) 정권은 트럼프 정권과 다를 바 없이 정치 · 안보를 앞세워 이런 소중한 핵심 가치를 서슴지 않고 저버리고 있다. 결국, 한국은 믿음(신)을 잃었고, 일본은 예의[禮]와 명분[建前]을 잃고 말았다.” (朝日)
양국은 외교 관계의 심각한 손상은 차치하고라도, 실제 경제적 측면에서 이미 적지 않은 손실을 감내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강화로, 양국 기업들의 兩 방향 교역 활동도 절차가 복잡하게 되어 이에 대응하기 위한 인력과 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이 꾸준히 벌이는 일본 제품 불매(No Japan) 캠페인 영향으로 한국인들에 인기가 높은 규슈(九州), 홋카이도(北海道) 등 지역 관광 사업을 중심으로 심각한 타격이 나타나고 있다는 미디어 보도도 연일 이어진다.
결국, 양국은 외교 관계에 경제 · 안보 문제를 연계시키는 “금지된 수(手)”를 이미 내밀어 버린 셈이 되고 말았고, 이에 따른 악영향은 이미 양국 기업들의 경제 활동 및 관광 여행 등 국민들의 일상 생활에도 광범하게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양국 정부는 아직 진지하게 사태 해결에 뛰어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양국 정부가 서로 상대방을 신뢰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때문이다.
■ “韓 · 美 · 日 관계 붕괴로 이득을 보는 측은 北 · 中 · 러”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양국이 현 상황을 이대로 무작정 끌고 가본들 무엇보다 북한이 이런 이반(離反) 국면을 자기들에게 유리한 정황으로 볼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중국, 러시아도 韓 美 日 3국 연계의 근간이 허물어지는 상황에 불만을 가질 턱이 없다. 따라서, 한국 일본 어느 쪽 국익에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가장 전형적인 사례로, 지난 8월 한국 정부가 오랜 고민 끝에 일본과 ‘GSOMIA’ 연장 불가 방침을 천명하자 동 협정 당사국인 일본에서 극렬한 비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공통의 동맹국 미국도 깊은 우려를 표했다. 韓 日 관계의 악화는 미국의 東아시아에서 패권(覇權) 전략에도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무렵, 中 · 러 군용機들이 동해 상의 韓 日 양국 防空識別圈에 진입하여 공동 경계 감시 활동 비행을 감행하는 전례 없는 사건이 발생하자 美 국무부 내퍼(Marc Knapper) 亞 · 太 담당 副차관보는 “韓 美 日 3국 간에 못을 박는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될 것” 이라고 경고한 적이 있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관계 개선을 도모할 책임이 있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다” 고 주문했다.
그러나, 美 정부는 韓 日 관계 악화에 거듭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트럼프 정권의 ‘해외 동맹 관계 輕視’ 및 ‘쌍무적 협상 重視’ 경향을 반영하여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극도로 자제하는 분위기다. 사실 GSOMIA는 미국이 적극 개입하여 韓 美 日 3국 안보 체제를 긴밀하게 하려는 전략의 근간의 하나로 구축했던 것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CEIP)의 쇼프(James Schoff) 연구원은 “향후 韓 日 관계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을 방지하는 노력을 기울일 것과 韓 美 日 안보 체제를 유지할 체제 구축”을 촉구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의 패권 저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이 승패를 확실히 가르는 ‘제로 섬’ 게임을 벌이는 것은 미국에게 최악의 시나리오” 라고 지적한다.
美 외교 전문誌 Foreign Affairs도 중국 지도자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韓 日 분쟁을 ‘하늘이 내려준 행운(godsend)’ 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특히, 이런 대치 정국은 미국이 두 동맹국들을 통제할 수 있는 여지를 희석시키는 한편, 중국이 핵으로 무장한 북한을 견제 및 통제할 많은 여지를 제공한다는 평가다.
■ “양국은 포퓰리즘 정치를 止揚하고 우호 관계 재구축에 노력해야”
다른 시각에서 보면, 북한이나 중국의 위협에 접하고 있는 일본 입장에서는 韓 ·美와의 방위 협력은 대단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일본 국내의 防衛 관계자들 중에는 韓 美 동맹이 일본에게는 일종의 ‘방파제(防波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견해가 강하다. 아무리 일본의 안보 전략이 美 日 동맹을 기축(基軸)으로 한다고 해도 한국이 일본과의 GSOMIA 파기를 결정한 것은 실질적 위협이 된다.
미야모토유지(宮本雄二) 아시아 연구소 대표도, 현재 북한의 核을 중심으로 하는 군사적 위협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고, 중국의 軍備 확장 및 아시아 패권 노선이 선명해지는 상황에서 韓 · 美 · 日 3국 안보 체제는 긴요하다고 역설한다. 동시에, 한국은 3국이 연계하는 안보 체제 강화가 국익에 절대적 요소라는 컨센서스를 인식하고 안보 정책을 뒤흔드는 ‘포퓰리스트’ 정치를 배격할 것을 주문한다.
이와 관련, 최근 英 Financial Times紙는 일반적으로 일본 사회는 포퓰리즘에 잘 면역된 국가라고 알려져 있으나, 실은 국민들 이익을 표방하는 경우에는 포퓰리즘이 깊숙이 작동한다고 지적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일본의 독특한 ‘포퓰리즘’ 성향을 지적한 것이다. 정부 및 정치 세력들은 국민들 정서에 대단히 민감한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국민들의 이익을 반영하여(reflect-the-interest-of-the people)” 라는 大명제를 내건 독특한 형태의 포퓰리즘이 압도하는 사회라는 지적인 것이다.
앞서 소개한 아사히(朝日) 신문 연재 논설의 일부를 집필한 日本綜合硏究所 국제문제연구소 다나카히토시(田中 均) 이사장은 한국과 일본에 점차 대립의 악순환에 빠져 분란이 거듭되는 상황을 마다하지 않는 세력들이 존재하는 것을 강력히 경고한다. 양국에 존재하는 강한 ‘반한(反韓)’ 혹은 ‘반일(反日)’ 감정에 편승하여 정치적 우위를 굳히려는 일부 포퓰리즘(populists) 정치 세력들을 질타하는 것이다.
다나카(田中) 이사장은 향후 2~3 개월을 韓 日 관계를 재구축할 절호의 시간이라고 전망한다. 양국이 이 기간에 새로운 모멘텀을 찾지 못하면 ‘신뢰를 잃어버린 한국’과 ‘예의를 잃어버린 일본’은 국제 사회에서 고립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다. 나아가 여차하면 불의의 사태를 불러올 리스크도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 “양국이 공유해야 할 공통 인식 및 분쟁 해소를 향한 원칙들”
이어서, 다나카(田中) 이사장은 현재 양국에 가로놓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몇 가지 상황을 조성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우선 가장 최근에 분쟁 촉발의 계기가 됐던 강제 징용 근로자 배상 판결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원칙을 공유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한국 대법원의 독립적인 판결은 존중한다, 둘째; 개인들의 청구권은 소멸하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 셋째; 韓 日 기본조약에서 상대국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한 것을 확인, 넷째; 한국 정부는 강제 징용 근로자들에게 지불하고, 일본 기업들에게 지불 의무를 부담시키지 않도록 하여 현행 국내법과 국제법 간 저어(齟齬)를 해소할 것 등이다. 만일, 한국 정부가 이러한 원칙을 확인한다면 현재 韓 日 간에 가로 놓여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거의 해소가 될 것이다.
연후에, 다음에 예시하는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구체적 해결 방도를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韓 日 대립은 東아시아 지역 불안 요인이므로 양국은 지역 이익을 위해 대립을 해소, 둘째; 양국의 경제적 상호 의존 관계가 韓 日 관계의 기본이고, 이를 깨뜨리면 초래될 손실이 엄청나다는 인식, 셋째; 韓 日 양국은 근년 구축되기 시작한 안보 상의 상호 의존 관계를 더욱 확충(擴充)해 나아갈 것, 등이다.
요약하면, 한국 내 일부에서 韓 日 기본 조약에서 개인 청구권이 소멸되지 않았다는 법리적 주장이 존재하는 사실을 감안하여, 양국은 강제 동원 근로자 배상 문제를 둘러싼 분쟁 촉발 요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몇 가지 원칙들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수출 규제 강화 조치를 원래대로 되돌리는 동시에 한국도 일본과의 군사정보보호협약(GSOMIA)를 계속 유지해 갈 것, 등이다.
한편, 양국이 이러한 기본 인식을 공유하기 위해서라도 양국 외교 채널은 조속히 복원되어야 할 것이고, 이를 통해 진지한 대화를 다시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韓 청와대와 日 총리 관저 간에 정치적 대화가 없으면 문제들이 최종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이전에 외교 당국 간 실무 대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현재 걸려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은 그 만큼 어려워질 뿐이다.
■ “韓 日 양국이 지금 ‘해야 할 것들’ vs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말미에 몇 자 첨언하면, 아직도 당사자 세대가 적지 않게 남아 있는 한국 입장에서는 역사적 ‘怨恨’들을 시급히 그리고 말끔히 해결하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당면한 현실을 직시하면,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원하는 해결이 어려운지도 모른다. 우리는 절박하나 그들은 하등 서두를 이유도 없고 심지어 무시하려는 방자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여실히 목도해 온 바다.
흔히, 독일 지도자들이 2차 대전 중 저지른 죄상에 대해 몇 번이고 머리를 숙이며 무릎을 꿇고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가리키며 일본도 이들을 본받으라고 외친다. 그러나, 그런 외침이 막무가내인 상대방에게서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고 실질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 방도가 될지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아무리 정의로운 명분을 가진 일이라고 해도 오불관언인 상대방을 향한 일방적인 외침만으로는 한 치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어느 일방이 새삼스럽게 민족 정기(正氣)를 내세워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 · 통상 교류 관계를 홀연히 중단하고 절벽처럼 돌아설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한국은 도저히 전망이 서지 않는 엄중한 대치 상황에서 역사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하고, 어떤 측면에서는 위험하기도 하다. 1965년 한국의 군사 정권이 온 국민들의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다급하게 韓日 기본협정을 체결한 것 자체가 좋은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우리는 또 그런 과오를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울분과 한(恨) 만을 가지고 상대방을 압제할 방도를 찾는 것은 도무지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양국이 주고받은 공방은 이전부터 해오던 것들과 별반 다름없는 것들이다. 새로 드러난 역사적 사실도 없다. 이것은 싫든 좋든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양국 관계를 가로막고 있는 역사적 사안들에 대해 무리한 합의나 해결을 모색하기보다 ‘현상(現狀)에서 동결’하는 결정이라고 여겨진다. 비겁하게 문제를 소멸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불가해한 인식 차이를 현 시점에 봉인하자는 것이다. 엄청난 손실을 무릅쓰고 소모적 분쟁을 벌이는 상황 만은 피해야 할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를수록 좋은 것이 양국 정상들이 의연히 만나 적어도 정치적 동기의 역사 논란은 중단하자는 담대한 합의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종전에 묵시적으로 해오던 것처럼 ‘政經 분리’를 철저히 지켜가는 일이다. 이미 오래된 일이나, 양국은 1998년 당시 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小渕惠三) 총리가 서로 의기 투합하여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 체제를 목표로 “韓日 파트너십 선언”을 발표한 적이 있다. 각자 자기 나라의 여론을 설득해서 언제나 제자리를 맴돌고 있던 역사 문제를 뛰어넘어 전향적 자세로 나아갈 것을 다짐했었다.
일본이 2차 대전 직후에, 바로 전까지 상대해서 전쟁을 치렀고 종국에는 굴욕적으로 항복하고 만 미국과 주저없이 和親을 도모했던 무서운 흉중을 우리는 잘 헤아려 간파할 일이다. 때로는 실제로는 친하지는 않으나 ‘親交’는 유지하는 노력을 감내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선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들은 속성 상 자신들이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시키지 않아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사과하고 또 사죄할 민족이다. 그 때까지 우리는 오직 그들에게 비견할 힘과 지혜를 기르는 것이, 비록 느릴지 모르나 유일한 방도라는 생각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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