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예산안 유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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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지난 9월 6일 2020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작년에도 역대급 수퍼예산을 작성하더니(9.7% 증가), 올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번 예산은 작년보다 44조원이 증가한 총 514조원 규모로, 무려 9.3%가 증가한 것이다. 최근 경제성장률이 3%를 하회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면 이를 몇 곱절 넘어서는 문재인 정부의 예산 증가율은 가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다. 올해 늘어난 44조원 가운데 20.6조원은 보건·복지·노동 분야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일자리 관련 예산은 작년보다 4.5조원이 증가하였다. 그 외에 눈길을 끄는 항목은 최근 일본과의 경제마찰에 대응하기 위한 소재, 부품 분야에 대한 투자예산을 늘였다는 점, 4차 산업 육성 관련 예산이 증액되었다는 점 등인데, 증가율에 비해 늘어난 예산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아(2조 미만) 큰 의미를 갖는다 보기 어렵다. 요약하면 복지를 제외한 다른 분야의 예산증액은 구색 갖추기용이라는 인상이 짙다.
정부가 재정을 동원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의도자체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적 어려움의 상당한 원인은 정부의 미숙한 경제정책 때문이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시도를 칭찬하기는 어렵다. 애초에 검증도 되지 않은 이론(소득주도성장론)을 고집해가며 경제를 망쳐놓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은 경기부양용 재정투입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정학자의 관점에서 이번 예산안에 대해 우려를 지우기 어렵다. 세수여건은 나빠지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한 지출조정은 도외시한 채, 오로지 재정확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반도체 수출호황과 부동산 활황 등에 힘입어 세금이 많이 걷혔기 때문에 재정지출 증가를 감당해낼 수 있었지만, 내년에도 이러한 상황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렵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침체된 내수와 투자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며, 미중 무역분쟁, 일본과의 경제 갈등 등 안팎으로 쌓인 문제가 첩첩산중이기 때문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반도체 가격하락, 자산시장 침체 등도 세수에는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수입보다 지출이 크면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정지출 확대에만 매달리는 상황이다. 결국 부족한 돈은 국채발행 등으로 메울 수밖에 없을 것이지만, 국채는 이자지출이라는 추가적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재정적자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적자가 누적되면, 국가부채, 즉 나랏빚 역시 더 빠른 속도로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정부는 내년도 국가채무는 1년 사이에 65조 가량 증가하여 805조 규모, 즉 GDP의 40%에 육박할 것으로 내다보았으며(39.8%), 4년 후인 2023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1천조를 돌파하여 GDP의 46.4%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였다. 이는 현재의 상황을 전제로 한 예상치이지만, 문재인 정부의 정책기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아마 이 보다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심히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금번 예산안에 대한 또 다른 우려는 나랏돈의 쓰임새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현대 경제학에서는 경기침체 대응을 위한 확장적 재정지출에 대해 비교적 너그러운 편이다. 지금처럼 총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정부지출 확대가 총수요 활성화에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경기부양 효과는 기대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확장적 재정지출 정책이 적절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가급적 재정승수가 높은 부문, 즉 정부지출이 경제활성화에 미치는 효과가 큰 분야로 집중되어야 한다. 예컨대 같은 액수의 돈을 쓰더라도 재투자로 잘 이어지지 않는 1회성 소비부문 보다는, 지출의 전후방 연계효과가 큰 부문에 쓰는 것이 경제활성화에 더 큰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현금성 이전지출 위주로 구성된 이번 예산안은 경기진작 효과가 크다고 보기 어렵다.
2020년도 예산안의 문제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파격적으로 증액된 일자리 예산의 내용과 성격 모두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자리가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고려하면, 일자리 예산의 증액은 사실 반길만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번 예산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일자리 숫자 늘이는 데에 초점을 두었다는 인상이 짙다. 문재인 정부는 최근 취업자 수 증가가 40만 명대로 회복되자, 고용의 양적, 질적 개선이 가시화되고 있다며 자평한 바 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번듯한 일자리’라기 보다는 초단기 알바나 고령자 소득지원용 일자리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내용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가 직접 창출하겠다는 96만개의 일자리에는 단기성 노인일자리, 돌봄‧안전 관련 공공사회서비스 일자리 등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3조가 채 안되는 돈으로 1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면, 대략 일자리 1개당 연 소득이 3백만원 내외에 그친다는 말인데, 이 정도라면 결코 구직자가 바라는 양질의 일자리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역시 소위 ‘통계분식용 일자리 양산’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외에도 20만 명의 구직자에게 최대 6개월간 월 50만원씩을 주는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고령자 1인당 월 30만원씩 2년간 주는 ‘고령자 계속장려금’ 등을 새로이 도입한 것이나, 기초연금과 국민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전보다 더 많이 주기로 한 것들 역시 외형적으로는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 역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내는 정책들이다. 대개 이와 같은 성질의 복지지출은 한번 도입하면 재정형편이 심각히 나빠져도 중단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 지출규모가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와 같은 의무지출이 증가하게 되면 그때 그때 꼭 필요한 곳에 써야하는 재량지출 비중이 위축되기 때문에 재정의 경기대응 능력이 현저히 약화된다. 재정의 안정성이나 지속가능성이 모두 허물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대정신’이나 ‘국민의 요구’이라는 불분명한 명분을 내세워 충분한 숙고와 합의 없는 정책들이 덜컥덜컥 도입되는 것이다. 이번 예산안을 두고 ‘선거를 앞둔 선심성 포푤리즘’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나라살림을 바라보는 문재인 정부의 시각이다. 이 정부의 경제정책이란 도대체 나랏돈 퍼다 쓰는 것 말고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실현가능성이 없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돈을 쓰고, 그로 인한 정책실패를 덮기 위해 또 돈을 쓰고, 그것도 모자라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위해 겁도 없이 빚을 척척 내어가면서까지 돈을 쓰고 있다. 그동안 여러 정부를 보아 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유별나다 싶을 만큼 나랏돈 쓰는데 거리낌이 없다. 나날이 증가하는 재정적자나 국가부채는 도통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지도 않은 것 같다. 이러한 가운데 나라살림은 점점 더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다. 아마도 내년 초에는 또 이러저러한 이유를 내세워 또 추가경정예산이 필요하다는 말을 꺼낼 것이다. 걱정에 지쳐 이제는 절망스럽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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