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위기와 트럼프식 통북봉남(通北封南)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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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독도 상공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고립무원(孤立無援)에 처한 한국 안보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중·러의 군용기들이 한국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유린하고, 러시아 조기경보기가 한국의 영공을 침범했다. 한국이 전투기를 발진시키자 일본이 “독도 상공은 일본의 영공”이라며 전투기들을 출격시키고 외교채널을 통해 한국에 항의했다. 그 와중에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줄기차게 계속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한국을 더욱 아프게 한 것은 동맹국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면죄부를 주면서 한국 안보에 대해서는 무신경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를 두고 ‘트럼프식 통북봉남’이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즉, 외교적 성과를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직거래를 위해 동맹과 한국을 패싱(Passing)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바야흐로 한국의 안보가 주변 4국으로부터 압박을 받는 중에 동맹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오면초가(五面楚歌)의 누란지위(累卵之危)에 처한 것은 사실인 것이다. 그럼에도 한미동맹을 경시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자랑(?)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어떤 대북 구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시진핑 주석의 중국은 중국몽(中國夢)을 앞세우고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핵을 두둔하는 ‘속편 항미원조(抗美援朝)’를 착수한 것은 수년 전이었다. 이후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북핵을 제재하는 안보리 결의에 동참하면서도 뒤로는 평양정권의 생존을 지원하고 북핵을 두둔하는 이중플레이를 계속해왔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돌파하기 위해 ‘약한 고리’인 한국을 때리는 항미격남(抗美擊南)을 강화해왔는데, 중국의 일방적인 사드(THAAD) 보복이 그 사례였다. 이러한 때에 문재인 정부의 친중(親中)·반일(反日) 기조와 아베 정부의 대일본주의(大日本主義)가 부딪치면서 빚어내는 한일 갈등이 동맹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트럼프의 통북봉남을 더욱 부추길 수 있음은 한국을 더욱 아프게 하는 일이다.
동맹위기는 ‘문재인-트럼프 합작품’
미국은 동맹을 평가할 때 통상 다섯 가지의 기준을 사용하는데, ▲이념적 상응성, ▲전략적 가치, ▲공동주적의 존재 여부,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에의 참전, ▲국방비용의 규모 등이 그것들이다. 한국은 이 5대 기준에 모두에서 이탈하고 있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가 ‘통북(通北)·친중(親中)·탈미(脫美)·반일(反日)’이라는 좌파적 수정주의 기조를 고수함에 따라 한미 정부 간 이념적 상응성(ideological competibility)은 소멸되거나 상당 부분 희석되었고, 문 정부가 ‘평양으로 향한 외길’ 정책을 고수하면서 북한 정권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함에 따라 한미가 함께 대처해야 할 공동주적 개념도 소멸되고 있다.
또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적극 동참하는 일본과는 달리 한국은 이 전략에 불참하면서 중국에게 ‘3불(不)’을 약속해주었다. 미국이 평가하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감소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게다가 한국은 베트남 전쟁 이후 유의미한 규모의 전투부대를 파병하여 미국의 전쟁을 도운 적이 없다. 한국과 비슷한 안보위기국인 이스라엘의 국방비가 GDP의 5% 수준인 것과는 달리 한국의 국방비가 전쟁 위험이 없는 서유럽 국가들과 비슷한 2.5%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 이 또한 미국이 보기에는 인상적이지 않다.
물론, 동맹 위기가 초래된 배경에는 ‘트럼프 요인’도 있으며, 이런 점에서 현 동맹 위기는 한미 합작품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면서 당선되었고 취임 직후부터 한국을 ‘무임승차국’으로 몰아붙였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동맹정책의 기조가 ‘On-Shore Balancing (적극적 개입)’에서 ‘Off-Shore Balancing(소극적 개입)’으로 바뀌면서 미국은 피를 흘리거나 돈을 써야 하는 개입을 자제하고 동맹국에게 가급적 많은 부담을 떠넘기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문 정부의 좌파적 수정주의가 미국의 인색해진 동맹정책에 합류하면서 한미동맹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며, 이런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의 거침없는 통북봉남 언행들을 가능하게 한 하나의 배경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일 갈등으로 한미동맹 위기 심화
현재의 한일 갈등은 2018년 11월 한국 법원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 출발점이었지만, 이후 양국 간의 감정싸움은 ‘확전의 사닥다리(ladder of escalation)’를 타고 무역전쟁과 안보갈등으로 확대되는 중이다. 한국은 일본의 ‘화이트 리스트 한국 배제’ 결정에 대응하여 8월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파기’를 발표했고, 8월 25~26일에는 이지스 구축함과 육군 특전사까지 동원된 확대된 규모의 ‘독도 영토수호 훈련’을 실시했다.
일본은 8월 28일부터 ‘화이트 리스트 한국배제’를 시행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는 ‘과거사 및 독도관련 다툼’과 ‘안보·경제 협력’을 분리하여 대응할 것은 대응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는 신중론자들의 조언을 철저히 배제했다.
이후 한미관계에 파열음이 커진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일본을 한국방어를 위한 후방기지로 그리고 한·미·일 안보협력을 인도-태평양 전략의 린치핀으로 간주하여 한일 간 갈등에 대해 늘 중립적이고 조심스러운 중재자 역할을 해왔던 미국은 처음으로 한국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논평을 냈다.
미 국무부는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대해 ‘유감과 실망’을 표방하고 “주한미군을 위험하게 만들고 한미 연합방위 체제를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우려했으며, 한국 정부에게 지소미아가 종료되는 11월 22일 이전에 파기를 철회할 것을 권고했다. 미 국무부는 한국군의 독도 방어훈련에 대해서도 “시기와 메시지, 그리고 규모가 비생산적이고 한일 간 문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독도 분쟁에 개입하여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독도를 ‘리앙쿠트 암초(Liancourt Rocks)’로 호칭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8월 28일에는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이 해리 해리스 미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한국정부에 대한 공개비판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한국의 차관급 공직자가 미 대사를 초치하여 항의성 요구를 하고, 이를 외부에 공개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는 강대국과 상대적 약소국 간의 비대칭 동맹이 작동되는 기본 이치와 한국이 처한 불리한 안보현실을 무시한 무책임한 처사로서 워싱턴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었다. 이 사태는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폄하 발언을 견제해온 지한파(知韓派) 미 정부관리, 정치인, 전문가들로 하여금 한국에 대해 등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트럼프의 통북봉남(通北封南), 어디까지가 진실인가
트럼프 대통령의 동맹폄하 발언과 김정은 위원장과의 브로맨스(bromance)를 과시하는 발언들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한국을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지목했고, 2017년 한국에서 대선이 열리던 시기에 한국이 사드 배치에 드는 10억 달러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발언하여 사드 배치를 지지하던 한국의 우파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2018년 제1차 미북 정상회담 무렵부터 ‘김정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부쩍 강조했고, “비용이 많이 드는 한미 연합훈련은 필요 없다”, “언젠가 주한미군을 본국으로 불러들여야 한다”는 등의 발언으로 한국인들을 긴장시켰다. 이런 언행은 2019년 2월 제2차 미북 정상회담이 ‘No deal’로 끝난 이후에도 불변이었고, 실제로도 방위비분담금의 파격적인 증액 요구, 주요 한미 연합훈련의 축소 또는 중단 등이 뒤를 이었다. 미 전략자산들이 한반도에 전개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트럼프식 통북봉남 언행은 북한이 2019년 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한 이후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북한은 5월 4일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발사한 이래 8월말 현재까지 아홉 차례에 걸쳐 신형 미사일과 미사일급 신형 방사포를 쏘았지만, 트럼프 대통령 매번 “단거리 미사일은 미국을 위협하지 않으므로 불쾌하지 않다,” “나와 김정은 위원장의 관계는 매우 좋다” 등의 언급을 했다.
8월 27일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독일·영국·프랑스 3국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할 때에도 미국은 불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모든 발사’를 금지한 안보리결의 1874호(2009.6.12.)의 존재에 대해서는 개의하지 않았다. 바야흐로, 미국 대통령이 2만8천여 명의 미군과 20여만 명의 미국인이 체류하는 동맹국 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시위에 면죄부를 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솔한(?) 동맹폄하와 김정은 위원장을 추켜세우는 통북봉남 언행에 대해서는 한미 조야에서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그런 언행이 재선 경쟁을 앞두고 ‘북핵 타결’이라는 외교적 성과가 필요한 정치적 상황이 돌출발언과 즉흥적 결정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과 맞물려서 발생하는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이런 인사들은 한미동맹의 위기와 미국 행정부의 통북봉남 성향도 트럼프·문재인 정부가 퇴임하면 상당히 개선되고 동맹이 원래의 결속력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미국의 희생을 수반하는 지도력 발휘와 동맹수호에 반대하면서 미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사실을 들어 신고립주의적 ‘소극적 개입’ 정책이나 한미동맹 경시 기조는 향후에도 ‘대세’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런가 하면, 트럼프식 통북봉남이 북한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전략’을 숨긴 고도의 위장술일 수 있다고 보는 제3의 시각도 있다. 예를 들어, 거창한 칭찬으로 젊은 북한 지도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뒤로는 빅딜을 통한 북핵 해결이나 예방적 선제공격(preventive strike)을 통한 북핵 제거를 기획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분석이 사실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겉으로 내보이는 언행과는 달리 실제로는 미국의 지도력을 강화하면서 효과적으로 동맹을 관리하는 대전략가이며, 그의 통북봉남 언행도 ‘대전략의 일부’가 된다.
물론, 현재로서 이런 분석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을 포기하기 싫은 사람들의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일 수도 있다. 지금도 적지 않은 우파 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코앞에 위치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모르지 않을 것이어서 결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간직한 채 매주 토요일마다 태극기 집회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 각하에 대한 경례’를 엄수하고 있다.
트럼프식 통북봉남(通北封南)은 극복 대상
어쨌든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통북봉남 언행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트럼프식 통북봉남이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또는 일시적 현상이든 향후 대세가 될 수 있는 현상이든, 한국은 동맹위기를 이겨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트럼프식 통북봉남도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당위성은 한미 양국의 현격한 입지 차이에서 출발한다. 한미동맹의 파탄은 미국에게 있어서는 ‘유의미한 전략적 손실’일뿐 국가생존이나 세계전략에 치명상을 주는 것이 못되지만, 한국에게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생사(生死)를 판가름하는 기로가 될 수 있다. 발전된 한중(韓中)관계가 한미동맹을 대신하여 전쟁을 억제하고 한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해줄 수 있다면 또 하나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겠지만, 중국은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로서 한국의 주된 위협인 북한의 군사동맹국이어서 한국을 위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문재인 정부가 취하고 있는 ‘통북(通北)·친중(親中)·탈미(脫美)·반일(反日)’은 한국의 미래를 담보하는 선택이 되지 않는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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