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사업의 ‘대적(對敵)사업’으로의 전환과 한국정부의 과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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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세종연구소가 발간한 [세종논평 No.2020-16](6.23)에 게재된 것으로 연구소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편집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6월 4일 대남 담화 발표 이후 남북한 관계가 급속히 냉전시대의 적대관계로 전환되고 있다.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은 담화를 발표해 대북 전단을 살포한 탈북민들에 대해 이들이 ‘최고 존엄(김정은)’까지 건드리고 핵문제를 걸며 ‘무엄하게 놀아댔다’고 맹비난했다. 그리고 “못된 짓을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 본 척 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다”고 하면서 남한정부도 비판했다. 또한 한국정부가 응분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개성공단 완전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위협했다.
이에 통일부와 청와대는 즉각적으로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이를 입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이 같은 타협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지난 6월 5일 북한의 대남정책결정기구인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는 대변인 담화를 발표해 대북 전단 살포 사건을 통해 “적(敵)은 역시 적이라는 결론을 더욱 확고히 내리였다”(강조는 필자)고 주장했다. 그리고 “남측과의 일체 접촉공간들을 완전 격폐[서로 통하지 못하고 따로따로 갈라지게 사이를 가로막는 것]하고 없애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들을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강조는 필자)고 하면서 남북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6월 8일 개최된 북한의 대남사업 부서들의 사업총화 회의에서 당중앙위원회의 김영철 부위원장과 김여정 제1부부장은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對敵事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들이 이 회의에서 남북 간의 모든 통신연락선(通信連絡線) 완전 차단을 지시함으로써 6월 9일 12시부터 청와대와 북한 당중앙위원회 본부청사 간의 핫라인을 포함해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연락채널이 끊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북한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4ㆍ27 판문점선언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로 간주되었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지난 16일 폭파시키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지난 17일에는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 발표를 통해 금강산관광지구와 개성공업지구에 연대급 부대들과 필요한 화력구분대 전개, 비무장지대에서 철수하였던 민경초소들의 재진출 전개, 접경지역 부근에서의 각종 군사훈련 재개 등의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월 4일 김여정의 담화 발표 이후 한국정부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강력한 규제 의지를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처럼 대남 적대 정책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북한의 최근 행동이 단순히 대북전단 살포 때문만은 아님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남북관계가 곧바로 개선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남북관계의 완전 단절을 선택한 데에는 문재인 정부와의 대화에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판단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여정은 13일 담화를 통해 “2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당장에 해낼 능력과 배짱이 있는 것들이라면 북남관계가 여적 이 모양이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한국정부가 북한에게 남북 적대관계보다 협력이 더 이익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남북관계의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다.
향후 북한 군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개성공단 내 한국 공장시설들과 김정은 위원장이 작년에 철거하려고 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한 금강산 내 남한 관광시설 철거에 신속하게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으로서는 개성공단의 재가동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에서 4년 넘게 ‘쓸모없이 버림받고 있는 개성공업지구’를 언제까지나 현재의 상태로 방치해두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한국정부 책임론’을 계속 제기하면서 개성공단의 완전철거에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의 스텔스 전투기 도입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해 왔는데 이번 기회에 개성공단 지역에 다시 군부대를 배치함으로써 서울에 대한 타격 능력을 더욱 강화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북한은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를 복구하고 서해와 동해에서의 포사격과 미사일 발사 실험 그리고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훈련도 재개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차제에 남한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중국 및 러시아와의 인적교류와 경제협력을 서서히 재개함으로써 체제의 생존과 발전을 모색해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므로 당분간은 한국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든 남북관계 악화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한국정부는 이 시점에 기존의 한반도 비핵화 정책과 대북 정책에 문제점은 없었는지 기존의 정책을 냉정하게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비핵화는 그렇지 않아도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였지만 2019년 북미 협상의 결렬로 인해 더욱 더 비현실적인 목표가 되어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만약 한국정부가 이성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라는 거의 실현 불가능한 목표보다 북한의 ‘핵 억지력 강화’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을 우선순위에 두는 방향으로 외교안보정책을 조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한다면 미국과 먼저 ‘비핵화’의 개념과 방법에 대해 포괄적인 합의에 도달하고, 남ㆍ북ㆍ미ㆍ중의 4자 정상 및 실무회담을 개최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및 대북 제재 완화 문제에 대해 합의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국정부 내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추진할 ‘컨트롤 타워’도, 집단적 노력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갈수록 더욱 고도화되어 북한 비핵화는 완전히 불가능한 목표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심 대남 관계자들은 공개적으로 한국정부를 ‘적(敵)’으로 간주하고 ‘결별’을 선언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은 개별관광과 같은 작은 협력사업을 통한 ‘남북관계 발전’보다 ‘남북 적대상황의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는 방향으로 시급히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강경하게 나오면 우리도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남북관계가 ‘적대관계’로 전환되면 남한뿐만 아니라 북한도 같이 피로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북 개별관광’ 같은 이벤트성 사업의 추진을 넘어서서 어떻게 남북한 간 신뢰를 회복하고 소통을 강화하며 상호 이익이 되는 협력적 관계를 구축할지 실현가능하고 국제사회도 동의하며 북한도 관심을 가질 남북협력 방안에 대한 큰 그림을 마련해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과거에 대남 강경정책을 추구하다가도 그것이 북한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갑자기 유화정책으로 전환했다가 다시 강경정책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개성공단의 완전철거 및 금강산관광지구의 남측 시설 철거 후 다시 대남 유화정책으로 선회할 가능성이 있다. 그때에 한국정부는 어떻게 남북 간에 신뢰를 회복하고 군사적 긴장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이끌어낼지 지금부터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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