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망하게 하는 확실한 법칙-혼군 #10 : 정통의 전량(前涼)을 실질적으로 무너뜨린 장조(e)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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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군(昏君)의 사전적 정의는 ‘사리(事理)에 어둡고 어리석은 군주’다. 암주(暗主) 혹은 암군과 같은 말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혼군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오히려 혼군이라는 용어의 의미 자체를 흐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통틀어 사리에 어둡지 않 은 군주가 몇이나 될 것이며 어리석지 않은 군주가 몇 이나 되겠는가. 특히 집권세력들에 의해 어린 나이에 정략적으로 세워진 꼭두각시 군주의 경우에는 혼주가 아닌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혼군 시리즈에서는, 첫째로 성년에 가까운 나이 (17세) 이상에 군주가 된 사람으로서 둘째로 상당 기간(5년) 군주의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군주의 역할이나 올바른 정치를 펴지 못한 군주로써 셋째로 결국 외부 세력에 의해 쫓겨나 거나 혹은 제거되거나 혹은 돌연사 한 군주로써 끝으로 국가의 존립기반을 크게 망쳐 놓은 군주를 혼군이라고 정의하였다. |
(25) 장준 칭왕 거부(AD332)
자력은 아니었지만 전조의 멸망으로 잃었던 하남 땅의 대부분을 회복했고 또 후조와의 우호관계도 수립되었으며 석륵이 황제를 칭하는 상황이니 전량의 관료들은 장준에게 왕(양왕)을 칭하기를 권고했다. 그러나 장준은 겉으로 위무제(조조)나 진문제(사마의)의 예처럼 고사하면서 진주와 양주의 총수 대리라는 뜻을 가진 ‘영진양이주목’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 칭왕은 신하된 사람이 할 말이 아니다.
감히 이 말을 다시 꺼내는 자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내에서는 모두 그를 양왕이라 불렀고 둘째 아들 장중화를 세자로 책봉했다.
(26) 포홍의 전량 귀부와 후조 석호 투항(AD333)
AD332년 석륵이 갑자기 병으로 죽게되자 저족 두목 포홍은 옹주자사를 칭하면서 후조에게서 나와 전량에 귀부했다. 당시 전량은 국세는 떨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서진 조정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하북의 가장 큰 나라였으므로 포홍도 야만스런 석호보다는 전량에게 몸을 당분간 의탁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후조의 석랑은 낙양에 주둔했고 하동왕 석생은 관중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쿠테타로 집권한 석호에게 모두 반발하고 있었다. 석랑과석새은 AD333년 10월 석호를 공격함과 동시에 동진에 귀부할 것을 선언했다.
화가 난 강력한 석호는 태자 석수를 업성에 두고서 직접 석생과 석랑을 공격했다. 낙양의 석랑을 체포하여 월형(발꿈치 자르는 형벌)한 다음 목을 베어버렸다. 관중의 석생은 처음에 선방하여 전투에서 이겼고 석호는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선비족이 석호를 대대적으로 응원하여 석생에게 반격을 가했고 패한 석생은 산으로 도주했다. 석생의 무리인 장안수비군 장영을 석호가 격파하여 참수하고 또 장군 맞추를 파견하여 옹주의 포홍 토벌에 나섰다. 견디지 못한 포홍은 2만 호 거느리고 석호에게 항복했다.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석호는 포홍을 정중하게 영접했다. 포홍의 요구에 따라 저족과 강족 10만 무리를 관동(하남성)에 이주시켜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이 세력들이 20여년 뒤 전진을 건국하는 바탕이 된다.
(27) 장준의 동진 접촉(AD333)
관중의 새로운 패자 후조의 지도자 석호는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중원을 장악해 나갔다.표면적으로는 관계가 나쁘지 않지만 언제 공격해 들어올지 모르는 나라가 후조였다. 그럴 경우 전량은 동진의 지원이 필요했다. 장준은 성나라 이웅에게 길을 빌려 건강에 표문 올리려 했지만 이웅이 거절했다. 장준은 이웅을 다독거리기 위해 장순을 보내 성에 번방을 지칭하면서까지 길을 빌려고 했다. 장준이 자세를 한껏 낮추고 부탁하자 이웅은 허락을 하는 척 하면서 장준이 보내는 배를 전복시킬 계획을 세웠다.
이웅이 장준의 계획을 반대한 이유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그 계획에 대해 충분히 위협을 느낄만했다. 동진에 매우 충성적인 전량이 동진과 결합하여 양쪽에서 협공하면 성한은 버틸 수가 없는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촉 사람 교찬이 이웅의 계획을 장순에게 밀고해 왔다. 그 정보를 입수한 장순이 성의 이웅에게 간곡하게 말했다.
“ 저의 주군(장준)이 저를 보내어 건강으로 가는 길을 허락받게 한 것은
폐하께서 충성스럽고 의로우시며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을 이룩하게 할 사람으로 보았던 때문입니다.
만약에 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있다면
저자에서 죽여야 된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십시오.
‘양주에서는 옛 덕을 잊지 못하여 낭야(동진 설립자 낭야왕 사마예)와
서신을 교환하려고 하니 주군은 성스럽고 신하는 총명하여 이를 죽인 것이다‘
그러면 의롭다는 소리가 널리 퍼져 천하가 두려워할 것입니다.
지금 강 물에 쳐 박아 죽이신다면
위엄과 형벌이 드러나지 않으니
어찌 천하에 드러내기 충분하겠습니까?“
이웅이 깜짝 놀라는 척 모르는 척 시침떼며 말했다.
“어찌 그런 일이 있겠소?”
성한 사예교위 경건이 이웅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했다.
“장순을 머물러있게 하십시오.”
이웅이 물었다.
“ 전량의 장사(장사란 한 나라의 총리격인 중책)인데
어찌 그를 억류할 수 있겠소.
그대가 그를 좀 살펴보시오“
경건이 장순에게가서 이렇게 말했다.
“ 서늘할 때 까지 좀 기다리시지요”
장순이 대답했다.
“ 과군(자신의 주군을 낮추는 말)께서는
황여가 파천되고 재궁이 아직 돌아오지 아니하여
살아있는 백성들도 도탄에 빠져있어도 아직 이를 구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장순을 파견하여 정성이나마 상도(건강)에 전하려는 뜻일 뿐입니다..
예기가 중대하여서 하급관리를 대신 보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급관리가 가도 좋을 것이라면 아예 제가 오지도 않았을 것 아닙니까.
비록 화산이나 끓는 바다라도 직접 가야할 것인데
어찌 날씨가 덥다고 거리끼겠습니까?
이웅이 장순에게 물었다.
“ 귀주께서 영명하신 것은 세상을 덮고도 남으며
토지도 험하고 군사도 강한데
어찌 황제를 칭하며 즐기지 않으십니까?“
장순이 대답했다
“ 과군은 조부 때부터 충성과 곧음이 돈독했습니다.
원수와 수치를 아직도 갚지 못하였고
창을 베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형편(침과대단,枕戈待旦)인데
어찌 스스로 즐기는 일을 생각할 겨를이 있겠습니까?
이웅이 부끄러워하면서 말했다.
“ 나의 조부(이무) 또한 서진의 신하였다가
천하가 크게 어지러워진 뒤 이리로 피난 오셨소.
낭야가 위대한 진나라를 부흥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나아가 도와야지요.“
이웅이 후하게 장순을 대하고 건강으로 보냈다.
(28) 동진의 전량 존중(AD335)
서진이 장안을 함락당하고 패망했을 때(AD316년) 돈황 계리 경방은 강동으로 내려와 여러 차례 양주를 포용하여 연합작전을 펴야 한다고 간청을 올렸었다. 전량 장준이 보낸 장순이 도착하여 전량의 충성심을 읽게 된 동진 조정은 오래 전부터 전량과의 연합을 강조해 왔던 경방을 수시서어사로 삼아 장준에게 정서대장군을 임명하는 조서를 보내기로 하고 가릉 등 12명을 배속시켜 같이 동행하도록 해주었다. 건강에서 전량으로 가는 길은 장강을 거슬러 무한에서한수를 따라 북쪽으로 한중을 거쳐 내지로 들어가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동진 사신 경방이 장준에게로 가는 도중 양주(梁州, 지금의 섬서성 한중)에서 길이 막혔다. 경방은 가릉에게 조서를 넘겨주고 거짓으로 상인이라 하여 고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준은 부곡독 왕풍을 보내 감사의 회보를 올렸다. 이로써 전량과 동진의 우호는 확립되었다.
(29) 장준과 전량의 전성기(AD335-AD339)
장준이 집권(AD324)한 이후 전쟁은 그치고 전국이 평온해졌다. 장준이 직접 정치를 잘 챙겼으며 문무업무를 전체 통솔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등용했다. 따라서 백성들은 부요했고 군사는 강했다. 똑똑한 군주라는 칭송이 천하에 자자했다. 장준은 장수 양선을 서쪽으로 파견하여 구자(신강성 고차)와 선선(신강성 선선)지역을 정벌했고 언기(신강성 언기)와 우전(신강성 화전)이 고장의 전량에게 조공을 바쳐왔다. 장준이 진주와 옹주를 겸병할 생각으로 국호에게 상소문 올리라 지시했다.(AD335)
“ 석륵과 이웅이 죽었고
석호와 이기는 계속 반역하니
많은 사람들이 점점 쇠약해지면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먼저 난 사람들은 늙어가고
나중 난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니
주군(동진황실)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날로 식어가고 있읍니다.
청컨대 사공 치감과 정서장군 유량에게 칙령을 내리시어
장강과 면수(한수)에 배를 띄워 위아래가 일제히 거병하게 하십시오.“
모용황의 전연이 갑자기 부상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동진과 전량의 연합군은 결성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용황이 북쪽 유주지방에서 급격하게 세력을 확대해 가면서 강력한 후조와 연대하여 동진을 위협하고 있었으므로 장준의 거병계획은 성사되지는 못했다.
(30) 장준이 후조 석호에게 공물을 바침(AD340)
AD329년 전조를 멸망시키고 잠깐 동안 황실 조정 내부가 혼란했으나 석호가 잘 수습한 뒤 후조는 AD335년 경 부터 무서운 속도로 국력을 팽창시켰다. 동진과의 연대를 통해 관중을 도모하려했던 장준으로써는 오히려 후조와 우호관계 수립이 더 시급해졌다. 장준은 마선을 후조에 보내 우호관계 수립을 요청하고자 했다. 그러나 장준이 보낸 표문과 말씨가 매우 거만하고 거칠었으므로 석호는 마선을 죽이려 했다. 시중 석박이 그런 석호를 말렸다.
“ 지금 황제께서는 동진을 없애는 일이 급하십니다.
하서지역은 치우쳐있고 또 보잘 것 없는 땅이니
마음속에 두기에 모자랍니다.
지금 마선의 목을 베면 장준을 정벌해야 하는데
병력이 나뉘어 두 개가 되고
건강은 다시 몇 년이나 수명을 연장하게 됩니다.“
석호는 결국 마선을 건드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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