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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무의 행복한 로마읽기] <37> 로마의 전성기, 5현제(賢帝) 시대가 열리다(서기 96~98)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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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28일 17시46분

작성자

  • 양병무
  • 인천재능대학교 회계경영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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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원은 서기 96년에 네르바를 황제로 승인했다. 네르바 이후 로마는 100년 동안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때 로마를 통치했던 5명의 현명한 황제, 즉 네르바(96~98), 트라야누스(98~117), 하드리아누스(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를 5현제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였다. 여러 곳에 로마식 도시가 세워졌고, 속주민도 로마 문화의 혜택을 입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5현제 중 네르바를 제외하고 4명이 속주 출신 황제라는 사실이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에스파냐계 로마인이고, 안토니누스 피우스는 갈리아계 로마인이다. 5현제 시대에 대한 내용은 프리츠 하이켈하임의 『로마사』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5현제 시대를 연 네르바는 서기 96년에 66세의 나이로 황제가 되었다. 고령이고 아들이 없었으며 명문 귀족이었다. 더욱이 그는 군 출신이 아니고 원로원 사람이었다. 그래서 서기 69년에 일어난 사태처럼 군인들 간의 경쟁은 벌어지지 않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여 원로원이 그를 황제로 추대한 것이다. 

이런 네르바에게는 큰 걱정거리가 있었다. 15년 동안이나 재위하다가 궁중 측근에 의해 갑자기 살해된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대한 근위대와 군단의 압력이었다. 도미티아누스는 근위대의 신망이 높았다. 병사들 역시 봉급을 인상시켜주고 전선을 자주 찾아와 위문해준 도미티아누스를 그리워했다. 근위대와 군단은 황제 암살의 배후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강하게 요구했다. 

 

네르바가 1년이 넘도록 주모자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자, 근위대는 황제를 감금시키고 주모자를 색출하여 사형에 처할 것을 요구했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네르바는 결단을 내렸다. 고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인 트라야누스를 후계자로 삼아 공동 황제로 지명하기로 선언한 것이다. 이는 최초의 속주 출신 황제의 탄생을 의미한다. 트라야누스는 에스파냐 남부의 베티카 속주에 있는 이탈리카에서 출생했다. 네르바는 군단을 지휘해본 경험이 없고 민간 경력만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신망이 높은 트라야누스를 지명한 것이다. 

 

공동 황제로 지명된 트라야누스는 곧바로 수도인 로마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에 근위대장과 황제 감금에 책임이 있는 동조자 몇 명만 쾰른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살해되었다. 트라야누스는 근위대가 현직 황제를 감금하는 사태를 간과해서는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수도에 남아 있던 1만 명의 근위대 병사들은 네르바에게는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트라야누스를 존경하고 있었기에 그의 엄격한 조치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주 출신인 트라야누스가 황제로 지명된 것은 실력과 인품 덕이었다. 그는 로마 사회가 요구하는 경력을 사다리를 오르듯 차근차근 밟아 올라갔고, 회계감사관, 원로원 의원, 법무관, 군단장, 집정관, 고지 게르마니아군 사령관 및 게르마니아 속주 총독, 후계자 지명, 공동 황제 등을 거쳐 황제에 취임했다. 

네르바가 트라야누스를 양자로 삼아 황제로 선택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타키투스는 “네르바가 과거에는 양립할 수 없던 두 가지, 즉 원수정과 자유를 융합했다”고 말한다. 자유란 원로원의 자유를 뜻한다. 네르바는 원로원 의원들을 살해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밀고죄를 없앴으며, 로마와 이탈리아의 이익에 최우선의 가치를 매겼다. 그러나 행정력이 약했고, 군대 경험이 없었다. 그로 인한 심각한 어려움은 트라야누스를 후계자로 지명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었다.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가 만사”라는 인사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 사례다.

 

도널드 R. 더들리는 『로마문명사』에서 5현제 시대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했다. “네르바의 선택과 트라야누스라는 인물은 그 중요성이 적지 않았다. 소수의 광적 분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원수정의 필요를 받아들였다. 정계의 제1현안은 어떻게 하면 가장 탁월한 사람이 등장하여 프린켑스가 되느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양자 선택이란 방법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점은 특히 스토아파 사상가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 방법이 로마에게 가장 긴 기간의 선정을 가져다주었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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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28일 17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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