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愚話)와 체제경쟁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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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느 정치경제사회에 거주하느냐에 따라 행동양식이 다르다. 좀 오래된 우화가 있다. 두 마리 암소를 가진 사람을 가정하자. 시장경제(자본주의)에서는 암소 한 마리를 시장에 내다 팔고 수소를 산다. 송아지가 줄줄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사회주의에서는 한 마리를 이웃에 주라고 지시한다. 공산주의에서는 두 마리 모두 국가에 바치고 우유 배급소 앞에 줄서서 기다리라고 한다. 무정부사회에서는 암소를 지키려 저항하고 남의 집 암소까지 넘본다. 결국 각자가 만인(萬人)을 상대로 싸운다. 북한의 김씨 왕조사회에서는 두 마리 모두 공납하고 기대하던 우유배급마저 끊긴 셈이다. 장마당 시장에 나서서 단속요원에게 수시로 뇌물을 뜯기며 어렵사리 삶을 이어간다.
소개한 우화의 문제는 모든 사람이 같은 밑천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데 있다. 사회주의에서는 무차별하게 모든 교육과정을 국가가 관장한다. 북한사회에서는 세분화된 신분토대에 맞추어 교육하고 인력을 배치한다. 직업선택이 자유로운 시장경제에서는 개개인이 스스로 적성에 맞는 교육 훈련을 받아 밑천을 마련한다. 그 결과 얻는 밑천(인간자본)이 암소가 되기도 하고 병아리가 되기도 한다.
DJ 정부시절 대북정책을 추진하면서 햇볕 우화가 자주 인용되었다. 길가는 행인의 옷 벗기기 시합에서 드세게 바람을 몰아친 먹구름을 누르고 따스한 햇살이 승리했다는 이야기지만, 맹점은 양산 따위 빛 가리개를 준비한 행인에게는 속절없다는데 있다. 햇볕 우화에 도취해 북한이 미사일과 핵개발에 매진하는 일을 모른 체 하다가 남쪽은 이제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광복이후 70여년 진행되어온 한반도 경쟁으로 이제 체제의 피로증세가 쌓이고, 무질서가 가속화되고 있는 조짐이 보인다. 지난주 국군의 날 대통령 기념사에서 북한의 체제균열과 내부동요가 지적되었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지속하는 동안 굶주림과 폭정에 지친 주민들의 탈북이 꾸준히 이어지더니 최근에는 핵심간부들조차 이탈하기 시작했다. 북한 붕괴가 우리의 간절한 희망사항이긴 하지만, 균열이 붕괴로 이어지기까지는 요원하다.
나라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요인이 무엇인가? 외침인가, 내부붕괴인가? 후자일 공산이 크다. 우선 남한체제부터 온전성 여부를 짚어봐야 한다. 무엇이 국가인가? 영역(국토), 국민, 주권을 흔히 국가의 3요소라고 한다. 바다와 도서는 주변국의 탐욕스런 눈길을 받고 있지만 한반도의 반쪽 국토는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에도 불구하고 아직 건재하다. 2015년초 인구수는 5천1백만이 넘어서 북한을 곱절로 압도하지만 최근 출산율 저하와 급속한 고령화로 현재 인구구조 항아리가 길쭉 훌쭉해졌다. 경제활동인구 감소에 따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이 의문시되고, 인적자원 감소로 병력자원도 우려된다.
북한은 평양주민 등 충성집단을 대상으로 선물 공세형태의 당근으로 어르고, 불복종하면 가차 없이 처형하거나 수용소에 보내는 강철 채찍으로 정권을 유지시킨다. 궁지에 몰리면 남한을 겁박할 최후의 무기, 핵(核)주먹을 키우고 있다. 강압 없이 민의를 모아 다스리는 대한민국에는 그런 강력수단이 필요 없다. 유사시에는 태평양 건너 세계 제1군사 대국의 지원을 얻는다.
근래 남한에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모으는 구심력보다 흩뜨리는 원심력이 도처에서 위세를 부리고 있다. 공동체의 상징적 구조물에 균열이 생겼다. 사회기강을 바로 잡아야 할 검찰 얼굴이 먹칠 당하고, 정론을 펴야 할 언론기관들은 로비 그물망에 얽혀 필봉이 힘을 잃었다. 이름에 어울리는 정파가 없다. 보수진영은 이익추구, 보신주의, 책임회피에 급급해 지켜야 할 정통가치를 망각하고 있다. 사회의 정화제나 균형추가 되어야 할 진보진영도 친북이념으로 무장한 인사들의 입김에 휘둘려 후진과 전진을 혼돈하고 있다. 여의도 국회는 불임(不姙)의 정치게임에 몰입하고 있다.
지역이기주의가 가장 큰 국방문제까지 감염시켰다. 국방을 전국 227개 시군(市郡)단위로 골고루 분할할 수 없다. 지금 사드 배치 논란으로 전국의 안전이 북한 미사일 공세에 벌거숭이로 노출 되고 있다. 주권은 대외적인 개념이지만 대내적으로 공권력 확립의 기초가 든든해야 힘을 받는다. 가두 시위장에서 매맞는 대상이 데모꾼이면 뉴스이고, 경찰이면 노 뉴스이다. 무정부상태가 저만치 다가온다. 공권력의 행사는 물론 적법하고 신중해야하지만, 공권력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고서는 공공질서는 모래성이고 아무도 승자는 없다.
정부의 신뢰회복이 긴급하다. 존경심이 샘솟으면 물 흐르듯 국민의 신뢰가 불어난다. 이방인조차 숙연히 경의를 표하게 되는 하노이 시내 세 칸짜리 호찌민 거처를 기억하자. 월남 정부가 전시효과를 노려 설치했겠지만 그쯤 되면 미니멀 라이프의 표본이 아니던가? 누구처럼 아방궁을 짓지 않아도 존경심이 절로 생긴다.
근세 역사에 평화로운 정권교체이후 굶어죽은 전직 국가수반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 오해 소지가 다분한 미르재단, K스포츠를 구상한 무리가 가까이 있는가? 멀리 두고 있는가?
현재 재임 대통령이 물려줄 주요 유산은 아마도 유형의 것보다는 무형의 것으로 보인다. 청렴결백이 그의 으뜸 덕목이 아닌가? 바로 이점에서는 평양의 김씨 집안은 물론 서울의 어느 전직 대통령 보다 경쟁력이 있다.
서울과 평양은 뜨겁게 경쟁을 벌려왔다. 국민을 보다 잘 살게 만들기 경쟁에서 북한은 포기한 듯, 그저 붕괴하지 않고 버티기에도 힘겨운듯하다. 남한도 느긋할 상황이 아니다. 내부의 잠재적 붕괴요인들을 점검해야한다. 지반침하를 막아야 강하고 풍요로운 나라를 만드는 경쟁에 승리할 수 있다. 경쟁승리는 분명한 피아(彼我)식별에서 비롯된다. 부조리 척결이 사회를 건실하게 만들고, 숙군(肅軍)이 강군을 만든다. 자칫 우군끼리 총질로 번질 우려가 있지만 그것을 잠재울 대의명분이 뚜렷하면 된다. 대의(大義)는 소의(小義)에 우선한다. 현재 우리사회에는 굽히기를 거부하는 각양각색의 소의들이 나라일의 우선순위를 그릇치고 있다.
국면을 크게 보고 지지기반을 넓혀가야 한다. 그러려면, 작은 이견(異見)일랑 일단 보류해두고 큰 눈으로 공통점을 찾아가는, 구동존이(求同存異) 정신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요즘은 자해(自害)행위로 보일 수도 있는 사건•사고 보도로 대중매체가 도배된다. 국민은 관음증(觀淫症) 재미에 빠져들어 대국의 형세 읽기에 혼선을 격고 있다. 크고 긴급한 일들이 산적한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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