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환율압박 수위 높아졌다…‘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의 득과 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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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재무부의 4월 ‘환율보고서’는 종전과 사뭇 다르다. 한국만 콕 짚어 ”투명하고 시의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개입 내용을 신속히 공개하라”고 ‘권고’했다. “한국이 취한 조치를 계속 면밀하게 감시”하겠다는 엄포도 곁들였다. 꼬투리 잡히는 일 없게 조심하라고 옥죄는 모양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표현은 점잖게 ‘권고’지만 강도가 한 층 높아진 압박이다.
<※환율보고서:교역촉진법(2015년)에 의거 재무부가 연 2회(4월, 10월) 의회에 제출.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은 ①대미 상품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②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초과 ③외환시장 달러 순매수 비중 GDP 대비 2% 초과 등 세 가지다. 모든 요건을 충족하면 환율조작국, 두 가지에 걸리면 관찰대상국이다. 우리나라는 관찰대상국이다 >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보인다. ①공개 주기 선택, ②외환 매도‧매수 내역의 순액(純額) 또는 총액(總額) 공개 방식 등이다. 우선 공개 주기를 보면 나라마다 천차만별이다. 유럽중앙은행(ECB), 홍콩통화청은 당일 공개한다. 일본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매월 공개다. 미국은 분기별 공개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부속선언문(2015년)은 「분기별로 3개월 시차」를 둔 공개를 원칙으로 제시했다.
더 민감한 사안은 개입내역 공개를 총액으로 할 거냐, 순액으로 할 거냐다. 양자 간의 차이는 엄청 크다. 예컨대 중앙은행이 4월초 10억 달러 매입하고 월말에 10억 달러 매도했다면 순매도/순매수 규모는 제로(0)다. 어느 시점에 얼마를 사고 팔았는지 노출이 안 된다. 미국 영국 등이 외환시장에서 사고 판 내역을 플러스 마이너스한 후 순액만 공개하는 이유다. 반면에 매수·매도를 총액으로 공개하면 외환당국의 투자패턴을 투자자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칫 먹잇감이 될 수 있다. 마치 노름판에서 내 손에 쥔 ‘패’를 상대방이 알게 되는 상황인 거다. 공개주기가 짧은 경우 외환당국의 시장개입 패턴(외화 매수/매도 행태)은 더 자주 노출된다. 환투기 세력이 악용할 기회가 커진다.
미 환율보고서 지적을 흘려듣고 이제까지의 비공개원칙을 마냥 고수할 때는 지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개입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당황스러웠던 ‘1988년 사태’가 생생하다. 외환시장에 개입했다며 미국이 우리나라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거다. 대미 환율이 20% 폭락(원화 강세)했다. 환율조작국에서 벗어나는 데 2년 걸렸다.
그래도 미국 압력에 떠밀려 마지못해 공개하는 건 그림이 안 좋다. 차라리 공개를 주도해 오해를 불식시키는 게 낫다. 6개월 마다 반복되는 조작의혹국가 리스트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도 득이다. 다만 미국 요구를 넙죽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 외환당국·전문가·학계 등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조약에 따른 공개방식을 거론한다. 분기별 시장개입정보를 6개월 단위로 순액기준으로 발표하는 안이다.
개입정보 공개 이후 예상되는 부작용도 염두에 두고 대비가 필요하다. 우선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걱정이다. 정보공개 부담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외환당국이 필요한 조치를 적기에 취하지 못하고 멈칫거릴 수 있다. 원화 값의 상승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거다. 당연히 환율 변동성도 확대된다. 결과적으로 수출기업에는 부담이 된다.
다음으로 당국의 환율정책 운신 폭이 좁아든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2003년~2007년 조선사, 자산운용사 등의 선물환매도 급증이 한 예다. 원화강세 기대가 일방향으로 강하게 형성된 결과다. 원화 강세에 베팅한 환투기 세력이 눈덩이처럼 커졌다. 쏠림현상인 거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이 개입내역 공개를 부담으로 느끼면 과열 분위기를 다스리는데 눈치 보일 수 있다. 차후 수습 비용이 기하급수로 폭증하는 게 눈에 보여도 당국은 미세조정(smoothing operation) 에 나서지 못하고 어정쩡한 입장에 놓일 수 있다.
원화의 경우 거래 유동성 규모가 작아 쏠림현상에 노출될 우려가 상대적으로 더 크다. 전세계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달러화 파운드화 등 기축통화와 다르다.
미국 요구는 한 마디로 ‘원화절상을 막기 위한 시장개입을 자제’하라는 거다. 수출액을 국민총생산(GDP)로 나눈 ‘수출의존도’를 보면 2016년 말 현재 한국이 35.1%다. 일본(13.1%) 중국(19.1%) 인도(11.7%) 보다 높다. 시장개입으로 원화강세를 피해 보려는 인센티브가 한국이 다른 나라보다 일견 더 커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통계는 절반의 진실이다. 최근 한국의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 확대로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력이 줄고 있다. 수출증대를 노리고 인위적 시장 개입을 통해 원화 약세를 유지할 실익이 작은 거다. 결국 그동안의 시장개입은 과도한 변동성을 누그러뜨리는 데 방점이 있었다는 점이다.
급격한 외환시장 쏠림은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경제부총리도 “환율주권은 분명히 우리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환율주권은 양보의 대상이 아니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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