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중심’ 국제회계기준, 세부지침 보완해야 - IFRS 시행 10년을 생각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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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2009년부터 국제회계기준을 선택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고, 2011년부터는 전면적으로 의무 적용하도록 하였다. 그 이유는 국제회계기준을 도입하여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투명성과 재무정보의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당시에는 커다란 저항 없이 도입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후 10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 기업의 회계투명성이 도입 당시 기대했던 만큼 크게 향상 되었는가? 아쉽지만 지금도 우리나라 회계투명성은 전 세계에서 최하위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대형 회계부정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며 국제회계기준 도입 당시 우리가 무엇을 간과하였는지에 대한 냉철한 고찰이 필요하다.
국제회계기준의 특징과 한국의 현실
국제회계기준의 특징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원칙중심(principle based)의 회계기준이라는 사실이다. 원칙중심회계에서는 회사에 관한 정보를 회사가 선택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이용자에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은 태생적으로 전 세계국가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도록 하려다 보니, 개별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무수히 많은 사안별로 일일이 처리방법을 제시할 수가 없으며, 결국 실제 회계처리시에는 담당자의 판단 및 추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면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나라는 회사의 회계처리 및 외부감사에 관하여 외부감사법이라는 특별법이 적용되고 있다. 그 오류에 대하여 형사 처벌로 직접 규제하고 있는데, 다른 선진국에서는 유사사례를 찾을 수 없는 강력한 규제시스템이다. 나아가 회계처리기준과 회계감사기준은 국회가 정한 법률이 아니라 민간전문단체가 정한 자율적 규정임에도, 이를 위반하면 최대 무기징역 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회계처리기준과 회계감사기준의 많은 부분이, 개별 사안에 대한 중요성 판단과 담당자의 추정 또는 예측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직접 형벌로 다루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취지에 맞는지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외부감사법은, 1981.12 제정 당시에는 회사, 특히 재벌기업의 신뢰성 및 회계처리능력이 그리 높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에 외부감사인(공인회계사)을 통하여 회사의 회계투명성을 확보하려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또한 당시 회계기준은 지금의 국제회계기준에 비하면 매우 단순한 규정 중심의 회계기준이며, 감독기관에서 내리는 유권해석이 사실상 판단기준이 되다 보니 회계기준 적용상의 문제는 그렇게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적용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은, 그 제·개정권한을 국제회계기준위원회가 갖고 있으며, 또 원칙중심 회계기준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의 감독기관이 그 유권해석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회계책임자와 감사인은 회계기준의 해석 및 적용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회계기준 또는 감사기준의 해석 문제는 사후에 감독기관의 조사 등의 과정에서, 재무제표 허위기재 또는 감사인의 부실감사로 확대될 수 있으므로, 기준은 명확하고 예측가능해야 하며, 담당자의 재량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논의되는 IFRS 15(신 수익기준)와 IFRS 17(보험업) 주목해야
이러한 의미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IFRS 15(신 수익기준)와 IFRS 17(보험업)은 시사 하는 바가 매우 크다. IFRS 15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수익관련 계약 조건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법적 권리와 의무를 분석하여 명시적 또는 암묵적인 수행의무를 식별하고, 개별 판매가격을 추정해야 한다. 의도적인 수익부풀리기 목적이 아니더라도, 경영자는 통상적으로 수익을 조기에 인식하려고 하기 때문에, IFRS 15를 자기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석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후에 이것이 재무제표 허위기재로 판명날 경우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다.
IFRS 17(보험업)도 마찬가지다. IFRS 17은 보험부채의 시가평가가 핵심인데, 이것을 적용하게 되면 현재보다 부채로 계상되는 금액이 매우 크게 증가하고, 준비금의 추가 적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세부적인 평가방법으로 여러 가지 대안이 인정되는데, 어떤 방법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부채 설정금액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험업은 금융산업으로서 감독기관의 상시적인 모니터링 대상이기 때문에, 국제회계기준에서 허용하는 여러 옵션 중 어떤 것을 적용할지 면밀히 검토를 해야 하며, 잘못 적용하는 경우 재무제표 허위 기재로 판명이 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국제기준 적용, 회계담당자가 판단하게 하는 것은 위험
원칙중심의 국제회계기준은 재무제표 작성자의 판단과 그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나아가 현재 감사인과 미래 감사인의 상이한 입장차이로 동일한 회계사건이 경우에 따라서는 재무제표 허위기재로 간주되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나라와 같이 회계처리기준 또는 회계감사기준의 위반을 직접 형사벌로서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국제회계기준을 단순히 회계책임자 또는 외부감사인이 알아서 판단하면 된다는 식으로 방치하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국제회계기준의 일부를 당장 도입하기 곤란하면 그 도입을 연기하든지 또는 그 도입을 일정기간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세부지침을 보완하고, 내부통제기능 대폭 강화필요
국제회계기준이 원칙중심 회계기준이라는 이유로 세부지침의 제정을 금기시하는 현재의 분위기는 당장에 쇄신되어야 한다. 즉, 우리나라의 회계전문가들의 치열한 논의를 통하여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에 대한 실무의견서 등을 공표하고,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회사 또는 감사인의 책임을 경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명확한 실무지침을 제시하여, 회계투명성과 재무정보의 신뢰성을 제고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도 과거와는 달리 회계전문인력을 확보하고 내부회계관리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국제회계기준의 제․개정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회계처리시 정확한 판단과 추정을 위하여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의사결정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내부회계관리시스템을 실질적으로 운영하여야 한다. 2017년 개정 외부감사법이 내부회계관리제도 운영실태에 대한 확인을 ‘감사’ 수준으로 강화하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여야 한다. 이것이 국제회계기준을 전면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의 올바른 자세이며, 그리고 2017년 회계개혁의 입법취지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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