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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게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실천을 기대한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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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4월13일 19시22분
  • 최종수정 2018년04월13일 19시34분

작성자

  • 이상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단국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원,前 중앙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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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식 금융감독원장 추상 같이 처리해야 정국 정상화된다.
  “지독하다 지독해. 지상에 사는 인간의 한심한 꼴을 보라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사람들의 탐욕적 행태를 비웃으며 하는 말이다. 이 장면을 떠올린 것은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이중성이 지독하고, 그를 감싸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태도가 한심해 보여서다.    

 김 원장은 국회의원 시절 정의의 사도인양 행세했다. 국회 정무위에서 공무원과 공공기관 관계자들의 작은 잘못도 추상 같이 나무라며 ‘정의, 또 정의’를 외쳤던 그의 별명은 ‘저승사자’였다. 그런 그가 의정활동을 하면서 ‘말 따로 행동 따로’의 행태를 보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회에서 관행도 잘못된 것이면 철폐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이가 자신의 문제가 드러나자 ‘관행’이라며 어물쩍 넘기려 하고 있으니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한층 큰 것 같다. 오죽하면 그의 친정인 참여연대조차 “비판받아 마땅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 매우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냈겠는가.

 

 이젠 정의당도 등을 돌렸다. 정의당까지 그의 자진 사퇴를 당론으로 채택하며 이른바 ‘데스 노트’를 제시했으니 사면초가(四面楚歌)가 아닌가. 김 원장이 그리 오래 버티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가 금융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개혁해야 하는 그 중요한 자리를 지키면서 시간을 끌면 끌수록 국민은 분통 터질 것이고, 청와대와 민주당의 부담은 커질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3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의 청와대 회동을 계기로 김 원장을 속히 경질하든지, 자진 사퇴시키든지 해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이 문제를 훌훌 털어버리는 것이 국정의 안정을 꾀하는 길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참여연대도, 정의당도 등 돌린 김 원장의 행태는 과연 정의로운가?

 김 원장은 의원 시절 피감기관장들에게 “관련 기업들로부터 출장비용을 지원받는 것은 명백히 로비를 받는 것이고 접대 받는 것이다”, “기업 돈으로 출장 가서 자고, 밥 먹고, 체재비 지원받는 것이 어떻게 정당하냐”라고 여러 차례 따진 사람이다. 그랬던 그가 버젓이 소관 상임위(정무위) 피감기관은 물론 정무위 눈치를 봐야 하는 은행의 예산 지원을 받아 세 차례나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공무임을 강조하며 공무에 필요한 일정만 소화했다고 해명했지만 공무와 무관한 관광도 여러 번 즐긴 것이 확인됐다. 출장도 문제가 있는데 거짓말까지 했으니 그에게 참된 정의 관념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2015년 5월 그의 9박 10일 미국·유럽 출장과 수행한 인턴의 여행 경비까지 모두 3077만원을 지원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과 관련해 김 원장은 “(출장 전후에) KIEP가 요청했던 유럽사무소 예산을 국회 심의과정에서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를 근거로 청와대는 “(KIEP)의 실패한 로비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원장에게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면죄부를 주려했다. 그러나 출장을 다녀온 뒤 김 원장, 즉 당시의 김 의원은 예산 소위원회 회의에서 KIEP 유럽사무소 관련 예산을 부대의견에 넣자고 했다. “내년에는 예산을 반영하자”고 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KIEP 돈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KIEP를 위한 로비활동을 국회에서 했다고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언행을 한 것이다.   

 

 거짓 해명으로 매 더 벌어

 미국과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를 방문한 문제의 이 출장에서 그는 관광지 여러 곳을 찾았으며, 관광을 위한 렌터카와 가이드 비용도 KIEP로부터 지원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동행한 비서가 ‘석사출신의 정책비서’라고 그는 설명했으나 사실은 ‘정책비서가 아닌 인턴’이었고 학력도 석사가 아닌 학사여서 역시 거짓해명이란 지적을 받았다.


 김 원장은 2014년 3월의 우즈베키스탄 출장과 관련해서도 거짓말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의원 시절이던 당시 한국거래소(KRX) 부담으로 보좌관(홍일표 현 청와대 선임행정관)과 함께 다녀온 이 출장에 대해 김 원장은 ‘2박3일 간의 공무상 출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론 4박6일 출장이었고, 공무를 본 날은 하루뿐인 걸로 드러났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피감기관 예산으로 해외출장을 가면서 수행원을 대동하고 그 비용까지 피감기관에 안긴 사례는 거의 없다. 정세균 국회의장도 “22년 간 정치를 했지만 그런 출장은 처음 본다”고 했다지 않은가.


 김 원장은 2013년 이후 우리은행의 중국 화푸빌딩 매각에 대해 헐값에 팔았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그랬던 그가 2015년 5월 우리은행 지원(480만원)으로 중국·인도를 방문했고, 해명과는 달리 관광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것이 갑질 외유가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이 정의냐”라며 야유가 나오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후원금 모금과 사용에도 수상한 점 수두룩

 국회의원 후원금 모금 관련해서도 김 원장은 몇 가지 의심을 사고 있다. 그가 의원 시절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의 아내에게서 1인 한도 최고액 후원금(500만원)을 받은 것과 이후 그가 조 전 부사장과 경영권을 두고 싸워온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에 대한 금융감독원 조사를 요구한 것에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그 하나다. 그가 2013년 국회 국정감사에서 효성그룹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삼정KPMG를 비판하고 나서 한 달 쯤 뒤에 이 회사 부회장으로부터 4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은 점, 이 후원자가 2013년 이후 지난해까지 고액 후원을 한 국회의원은 김 원장 뿐이라는 점 역시 수상하다. 2012년 팬택씨앤아이 부회장에게서 500만 원의 후원금을 받은 김 원장이 2014년 국정감사에서 법정관리 상태에 들어간 이 회사를 두둔하는 발언을 한 것도 ‘돈의 영향’을 의심케 하는 의혹 중 하나다.

 

 김 원장이 민주당 의원들과 함께 세운 더미래연구소 소장을 맡아 금융권 관계자들을 상대로 고액(350만∼600만 원) 강좌를 진행해 온 점, 19대 국회 임기 종료 전 남은 의원 후원금 일부(약 1300만원)를 쓰며 비서와 해외여행(소위 ‘땡처리 외유’)을 하고 온 점, 남은 후원금 중 5000만 원을 더미래연구소로 가게 해서 소장인 자신이 쓸 수 있게 ‘셀프 후원’을 한 점, 당이나 국고로 귀속돼야 할 후원금을 성향이 같은 다른 연구소나 동료 의원들, 보좌진에게 선심용으로 물 쓰듯 써버린 점 등도 그의 정의관과 도덕성을 의심케 하는 것들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감싸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아

 김 원장의 의원 시절 행태가 그가 그토록 강조했던 ‘정의’에 부합하지 않고, 소위 ‘관행’에 비쳐 봐도 지나친데도 청와대와 민주당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응을 하지 못했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민정수석이 확인한 결과 김 원장의 해외 출장은 모두 공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것이며,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런 청와대가 12일엔 중앙선관위원회의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며 질의서를 보낸 것은 ‘적법하다’는 주장이 국민에게 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이 김 원장에 대한 수사를 막 시작한 상황에서 청와대가 중앙선관위의 법적 판단을 받는 게 과연 타당한지, 청와대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선관위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피감기관이 지원하는 의원의 해외 출장에 대해 중앙선관위가 법 위반 여부를 따질 수 있는 건지 등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청와대가 공을 선관위로 넘긴 건 매우 구차해 보인다. 청와대가 스스로 판단해서 처리하면 그만이지 왜 논란의 소용돌이에 중립기관인 선관위까지 끌어들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어서다.

 

 혹시 속으론 여론에 놀라 김 원장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청와대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하는 등 문제의 조기수습에 실패했기 때문에 인사권자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면목을 살리기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김 원장의 의원 시절 문제되는 행위 중 어느 하나라도 위법이라는 객관적인 판정이 있으면 사임토록 하겠다. 피감기관 지원 해외 출장이 당시 의원들의 관행에 비춰 도덕성에서 평균 이하라고 판단되면 위법이 아니더라도 사임토록 하겠다”고 한 13일의 문재인 대통령 입장 천명은 김 원장 사퇴로 귀결될 퇴로(退路)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청와대가 12일 오후 느닷없이 문 대통령과 홍 대표의 회동을 갖자고 한국당에 요청한 것도 이런 출구전략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중앙선관위에 보낸 청와대의 질의서엔 또 다른 의도가 담겨 있을 수 있다. 김 원장에 대해 제기된 구체적인 사안이 아닌 피감기관 지원의 의원 해외출장 타당성 등 일반적인 것들에 대한 질의가 이뤄졌는데, 이에 대해 선관위가 일반적인 수준의 유권해석을 할 경우 청와대는 그걸 김 원장과 청와대의 체면 살리기 용도로 활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선관위에 질의서를 보냈다고 발표하면서 “김 원장이 일반적인 국회의원의 평균 도덕적 감각을 밑도는지 의문”이라며 마치 선관위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 같은 말을 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가 민주당을 통해 19·20대 국회의원 해외 출장 상황을 파악하고 “의원들이 피감기관(무작위로 고른 16곳) 지원을 받아 해외출장을 한 경우가 모두 167차례였는데 이 가운데 민주당이 65차례, 자유한국당이 94차례였다”고 밝힌 것도 유치하다. 그런 하수(下手)로 물타기를 한다고 해서 김 원장의 문제가 가려지지는 않을 것이고 국민여론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어서다. 만일 박근혜 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 김 원장과 같은 인물을 금융감독원장으로 기용했다면 지금의 청와대나 민주당이 “해임해야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겠는가. 이 정권을 겨냥해 ‘내로남불’이 심하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 청와대와 민주당은 성찰해 보기 바란다.

 

 청와대와 민주당엔 쓴 소리 하는 사람 없다

 김 원장의 후안무치(厚顔無恥)보다 더 큰 문제는 청와대와 민주당 안에서 문제를 냉철하게 파악해서 교정하려는 움직임이 없고, 쓴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없다는 점이다. 민주당에 “여론이 좋지 않다. 청와대에 전달해 주기 바란다”며 걱정하는 이들이 몇 있다고는 하지만 청와대와 당 지도부에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사람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대신 “금융개혁을 저지하려는 기득권 세력의 음모” 운운하며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프레임으로 야당과 언론을 공격하는 민주당 당직자·의원 중심의 전위부대만 요란을 떨 뿐이다.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 때의 새누리당처럼 ‘청와대 출장소’ 노릇만 하고 있으니 현재의 집권세력도 과거의 실패에서 배운 것은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글귀가 담긴 액자를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한다’는 채근담의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을 뜻하는 글귀다. 문 대통령은 이 말을 다시 새기면 좋겠다. 나의 편은 춘풍처럼 관대하게 대하면서 반대편에 대해선 추상 같이 엄격하고, 때론 지나치게 냉대하는 것은 아닌지 문 대통령이 깊이 성찰해 보고, 액자의 글귀에 걸맞은 판단을 한다면 김 원장에 대한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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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4월13일 19시22분
  • 최종수정 2018년04월13일 19시34분
  • 검색어 태그 #김기식 #문재인 #데스노트 #갑질 외유 #퇴로 #춘풍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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