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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헌법 개정인가?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8년03월27일 18시04분
  • 최종수정 2018년03월28일 10시16분

작성자

  • 조장옥
  •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명예교수, 前 한국경제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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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4계절의 뚜렷한 구분은 대한민국과 같은 온대지방에 사는 인간이 누리는 특권이다. 모두가 누리는 특권 가운데 계절처럼 자연스러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 추웠기에 봄소식이 근래 어느 해보다 반갑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마당에 매화가 활짝 피었다. 죽은 듯이 겨울을 나다가 불현 듯 꽃을 피워내는 것을 보면 인간의 능력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엄연한 계절의 질서 앞에서 부족함 많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상념에 잠길 수밖에 없다. 

 

무슨 대단한 신자는 아니지만 아내와 함께 부활 사순기간에, 거처하고 있는 경주 인근의 성당을 순례하고 있다. 대구에 가면 계산성당이 있다. 계산성당이 공소의 형태로 처음 설립된 것은 1889년이다. 지금의 계산성당은 1902년에 완공된 유서 깊은 서양식 건축물이다. 대구대교구의 주교좌성당으로 서울의 명동성당, 전주의 전동성당과 함께 신앙뿐만 아니라 교회건축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신부님의 강론은 지당하신 말씀이었다는 기억뿐 이미 잊었지만 성당 앞마당에 여러 받침대를 거느리고 옆으로 누운 소나무가 인상적이었다. 위로 뻗지 못하고 옆으로 기어온 우리의 역사 같다고나 할까. 

 

계산성당 옆에는 역사적인 한옥이 두 채 보존되어 있다. 이웃한 이 두 채의 한옥은 시인 이상화와 일제시대 대구 거상 서상돈의 고택이다. 이상화는 일제하의 저항시로 널리 알려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저자이고 서상돈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한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상화는 시인으로, 교사로, 때로는 독립운동을 도모하다가 1943년 위암으로 43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리고 서상돈은 금연(禁煙)을 통해 자금을 모아 나라 빚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을 제창하였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실패하였다. 그는 1913년 63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모든 지식인이 모리배가 된 이익집단 국가 '朝鮮王朝'

 

​겨울, 당시에는 저택으로 알려졌을 이 고택들은 현대식의 높은 건물 아래에서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시대를 살면서 이상화나 그보다 먼저 서상돈이 느끼고 생각했을 것으로 짐작되는 고통을 헤아리면서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설계한 통치제도가 결국은 실패한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왕이 전제권력을 보유하면서도 신하가 반대하면 아무리 옳은 정책일지라도 실행에 옮길 수 없는 이상한 제도 아래에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나라의 거의 모든 지식인이 모리배가 되는 이익집단의 국가로 전락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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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는 한 나라의 발전에 필요조건이다. 좋은 제도가 존재한다고 나라가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그렇다. 모든 제도는, 그것이 악한 경우에는 더욱 그렇지만 선한 경우에도 악용의 여지는 항상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좋은 제도가 없이 나라가 성공하는 법은 없다. 대한민국의 성공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이론이 있다. 심지어는 일제의 식민통치가 제도의 이식을 통해 1960년대 중반 이후의 기적을 가능하게 했다는 소위 “식민지근대화론”까지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에서 경제발전단계마다 다른 역할을 하는 제도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를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애덤 스미스나 칼 마르크스가 제안한 경제발전의 단계는 일반적으로 모든 나라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 못 된다. 그만큼 나라마다 경제발전의 양태가 다르다. 그러나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르지만 경제발전단계를 찾아볼 수는 있다. 그리고 제도는 개발도상국의 경우보다 역설적이게도 경제가 발전하여 선진국에 진입하는 단계 그리고 그 다음에 더욱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금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지금의 제도로 국민의 1인당 평균소득이 선진국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으리라고 본다. 국가중심주의, 불완전한 사유재산제도, 권력의 집중, 노동력의 잘못된 배분 등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혁신해야할 제도가 한둘이 아니다. 

 

경제발전단계에서 제도의 유연성은 생존의 문제  

          

 개발도상국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축적이다. 노동자들이 이용할 기계·설비는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키는데 필수적이다. 그리고 자본축적에 선행하여야 하는 것은 교육이다. 기계·설비를 도입해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춘 노동자가 없다면 자본축적 자체가 무의미하다. 현대의 경제발전 사례에서 한국, 일본, 대만 등의 경제발전은 하나의 경제발전단계설로 모형화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이 나라들이 보유하고 있던 풍부한 양질의 노동과 낮은 임금에 따른 높은 자본생산성 때문에 초기 고도성장단계에서는 나쁜 제도의 나쁜 효과가 그리 나타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지금의 중국 또한 그렇다.  

 

그러나 선진국은 다르다. 모든 선진국에는 양질의 노동이 존재한다. 그리고 노동의 질이 우수하지만 노동은 이미 풍부하지도 않고 임금 또한 높다. 따라서 양질의 노동력 때문에 비교우위를 누리던 개발단계에서의 경쟁력만으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어렵다. 이때  좋은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도 제도의 유연성이 중요하다. 선진국에서 산업구조는 기술과 교역의 발전에 따라 빠르게 변한다. 그와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노동, 투자, 금융, 무역, 기술개발 등 모든 분야가 유기적이고도 유연한 제도를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과장해서 말한다면 현재 이 나라의 경제발전단계에서 제도의 유연성은 생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헌법개정, 집권 정파들의 이념을 첨가하려는 경직성은 안된다

​토지공개념, 경제민주화 강화는 매우 우려스러운 것

 

지금 헌법개정논의가 한창이다. 위에서 설명한 이유 때문에 헌법의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며 옳은 방향으로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왔거나 나올 개정안은 오히려 개악의 측면이 강한 것 같다. 심지어 집권당은, 나중에 철회하기는 하였으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 하겠다고 까지 하였다. 지난주 청와대가 발표한 헌법개정안에는 토지공개념과 경제민주화를 강화하는 조항들이 들어있다.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집권세력을 위시한 모든 정파들이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념을 첨가하려 하고 경직성의 원인이 될 조항을 주저함이 없이 추가하려 한다는 점이다. 과연 이들이 누구인가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연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헌법 개정은 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다. 누구를 위한 헌법의 개정이라는 말인가? 19세기 이조의 정치를 상고하라. 지금 그리고 미래의 백 년 동안 이 나라에  가장 필요한 제도를 만든다는 사명감을 가져달라. 헌법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으려 하지도 말라. 헌법의 전문은 역사성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매번 손대는 것이 아니라는 원로 헌법학자의 말을 귀담아 들으라. 지금 잘못된 헌법의 개정이 백 년, 이백 년 뒤에 이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라. 헌법은 제도이지 이념이 아니며 우리의 먹거리가 거기서 나온다는 것 또한 명심하라. 봄의 초입에 우리의 들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헌법 개정을 부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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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8년03월28일 10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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