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나아갈 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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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지금 3대 위기 속에 있다. 경제위기, 안보위기, 정치위기가 그것이다.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계적 환경의 변화와 우리 주체적 역량의 한계가 맞물린 데에 있다. 이 중에서 국내 역량의 부족은 가짜보수와 낡은 진보가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집단은 상대진영의 낙후성에서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찾아왔다. 그런 면에서 두 집단은 상부상조하고 있다. 국민들은 최선의 후보를 선택할 자유를 이미 잃었고, 상대적으로 덜 나쁜 후보만 선택할 의무를 갖고 있다. 이것이 그들이 이 나라의 정치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선진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보수와 진보 진영의 경쟁관계를 통하여 발전하여 왔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개인적 자유에 더 큰 가치를 두는가 아니면 집단의 이해에 더 큰 가치를 두는가의 선택에 의해 구분될 뿐이다.
보수의 제1 가치는 자유이다. 이 자유는 필연적으로 공동체를 향한 자유이다. 나의 자유를 추구한다고 해서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구속하는 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가 공존하는 사회는 여러 집단이 조화 속에서 공존하는 다원적 사회이다. 진보의 가치는 역사적 발전을 선도하는 집단과 기존의 이익에 집착하여 현상고착을 강조하는 집단 간의 갈등구조 속에 있다. 그러므로 보수는 포용적 세계관을, 진보는 배제적 세계관을 갖는다.
일례로, 독일의 보수정당이 추구한 「사회적 시장경제」는 「공정한 경쟁」에 방점을 둔다. 「사회적」이라고 함은 부차적이다. 공정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는 집단을 사회적 돌봄 (social care)을 통해 포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독일의 진보정당은 애초에 시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파악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일어날 수 없다. 과정의 평등만으로는 불균형이 시정되지 못하므로, 국가의 개입에 의하여 분배구조를 개선하고, 복지의 확충을 기함으로써 결과의 평등을 기하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이번 보수의 실패는 「공정성」을 확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모든 경기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할 때 공정성이 담보되면 그 경기의 결과는 공동선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보수의 기본 철학이다. 박근혜정부의 인사실패, 무도한 국회의원 공천, 그리고 비선실세의 존재와 전횡에 이르기까지 공정한 경기규칙을 세우지도 않았고, 지키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이번에 국정을 농단한 세력은 아무리 그들이 보수라는 것을 외쳐도 가짜보수이고, 보수라는 이름을 도용한 세력이다. 아무리 우리나라의 낡은 진보가 동학혁명시대 정도의 이념적 낙후성에 머물러 있다고 할지라도 최순실 사태로 인하여 이 나라 보수진영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가 이념적 건전성을 회복하려면 보수가 집착하는 개인적 탐욕을, 진보가 집착하는 비합리적 몰아세우기를 버려야 한다. 보수는 원래 애국주의일 수밖에 없다. 국가 전체의 발전, 그 발전을 위한 질서구축에 일차적 목표를 두기 때문이다. 진보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의 계급이나, 집단을 옹호하는데 존재이유를 찾기 때문에 가진 자와 힘 있는자에 대한 공격 수단으로 기존 질서의 흔들기를 전략적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 보수에 불어 닥친 최대의 위기는 보수의 본래 가치인 자유, 개방, 애국주의, 법의 지배, 질서의 확립 등을 버리고, 밀실 속의 유착, 비밀주의, 소수 집단의 독식, 사람에 의한 지배를 해왔기 때문이다. 이에 촛불의 민심이 광장을 뒤덮고, 군중의 감성이 합리적 담론을 삼켜버렸다.
이제 보수가 할 일은 보수가 가진 본래의 가치를 되찾고, 우리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선도적으로 수행하는 것이다. 1993년 문민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부패하고, 정경유착에 찌든 한국지배층의 문화를 한국병으로 규정하고 이의 극복을 신한국 건설의 과제로 설정하였다. 신한국 건설이란 ①정상화, ②투명화, ③합리화 였다.
정상화란 인적 지배를 법과 제도에 의한 지배로 바꾸는 것이고, 투명화란 금융실명제의 시행과 부정부패척결 등 전체사회를 투명하게 하여 부패가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합리화란 기본적으로 불로소득 대신 합리적 생산이 경제활동의 기본이 되게 하는 것이다.
올해 9월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지는 거짓말의 기술 (Art of the lie)라는 표지기사에서 소셜 미디어 시대의 “진실이 사라진 정치”(post-truth politics)에 대하여 대서특필하였다. 진실이 아닌 상징(social symbol)이 새로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세기 초 좌파진영의 교과서가 된 레닌의 인식론에 의하면 사실 (fact)이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입장에 의하여 설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진실인가는 역사적 맥락에서 탐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상징」 영역을 장악한 진보가 사실 대신 운동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진실」이 공교육과 사교육, 대부분의 언론기관을 통하여 「사실」을 대체하고 있다. 이 만들어진 진실이 미국의 경우에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선거과정에서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소셜미디어에 의해 “140자 이내의 짧은 글에 한정된 사고”가 대통령선거를 결정지음을 한탄하였고, “뒤틀린 마음의 정치 (politics of resentment)와 매도의 정치 (politics of accusation)"를 배격한다고 하였다.
소셜미디어로 무장한 한국의 대중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가짜 보수, 탐욕적 보수가 보수의 주류인 듯 행세하였기 때문에 대중으로 하여금 “뒤틀린 마음의 정치”와 “매도의 정치”에 솔깃하도록 만들었다. 이 땅에 제대로 된 보수세력이 있다면 대중의 분노가 촛불이 되어 탐욕적 보수의 주술적 지배를 불태우려 하는 지금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삼을 것이다.
이제 전 인류에게 지난 몇 백 년 간 경험해왔던 세계와 차원이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 새로운 문명과 호흡하면서 우리나라의 각 부문에서 세계적 기준에 맞춘 개혁을 도모하여야 한다. 그리고 보수의 본래 가치인 자유의 존중, 공정성의 확보를 바탕으로 우리사회를 정상화, 투명화, 합리화하는 개혁을 하고,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새로운 문명에 맞추어 우리사회를 개방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여야만 우리나라의 3대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ifs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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