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려있는 정책플랫폼 |
국가미래연구원은 폭 넓은 주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다룹니다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타오른 촛불 민심, 다음으로 향할 곳은? - 그리스 광장정치가 일깨워주는 교훈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2월11일 18시26분
  • 최종수정 2016년12월12일 08시02분

작성자

메타정보

  • 49

본문

 이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일단 국회에서 결정되고 나니, 많은 국민들은 한편 안도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에는 아직도 다 삭이지 못한 분노와 식지 않은 잔열(殘熱)이 적지 않게 쌓여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역사상 유례가 드문 괴기(怪奇)한 부정 사건에 연루된 현직 대통령에 대한 징벌적 탄핵이다 보니 일반 국민들의 심경이 더 할 나위 없이 혼란스러울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상세한 전말이 서서히 밝혀질 터이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 만으로도, 일단의 관련자들의 탐욕스러운 입김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그들이 손길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지경이다. 우선 한 없는 개탄이 앞선다. 한 마디로, 이러한 국정 농단 사건은 일찍이 들어 본 적도 없는 희한(稀罕)한 ‘독직(瀆職)’ 사건이요, 실로 간교하고 사악한 부정 사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욱이 관련 범위로 치자면 실로 다양한 국정 부문에 걸쳐 있어서 가히 “총체적 부정, 총체적 파탄(Total corruption, Total collapse)” 이라고 할 만하다.


어찌 됐든, 국가 운영이 통째로 붕락(崩落)할 위기의 촌전에서 겨우 본령은 되잡아 놓았으니 이날 결정은 역설적으로 어쩌면 하늘이 준 행운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사태의 발전 경위를 자세히 살펴보면 민심의 역사(役事)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더 큰 과업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느껴진다. 즉, 어쩌면 여태까지 이룬 것보다 앞으로 이루어야 할 일들이 더욱 힘들고, 더욱 복잡하고, 더욱 중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모든 국민들의 마음 속이 대단히 무거울 것이라고 짐작된다. 여기서 굳이 ‘중대한 과업’이라고 칭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찬 • 반 여하를 떠나, 지금까지 국민들이 보여준 놀라울 정도의 인내와 단합과 질서를 강조하는 말이다. 이는 우리가 일찍이 보지 못한 성숙한 선진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럼, 이 시점에서, 과연 지금 우리가 처한 안팎의 환경을 감안해 볼 때, 거리로 표출하는 대립 상황을 계속 이어갈 여유가 있을까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단적으로, 지금 열화와 같이 타오르는 광장의 민심은 앞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 꼭 한번 되물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즉, 어느 때보다 냉철한 이성으로 국가 안위를 위해 심사원려(深思遠慮)해야 할 중차대한 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른다.

 

이제 모두 조용한 성찰(省察)을 시작할 때
한 마디로, 이 엄청난 대중적 거사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광장의 민심은 더 할 수 없이 위대함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우리 역사에 또 하나의 큰 매듭을 지어 놓은 것이기도 하다. 아직 일련의 사건의 내막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더 드러날 폭과 깊이가 어디까지 갈지 가늠할 길은 없으나,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관련자들이 저지른 죄상을 낱낱이 들춰 내서 그에 합당하는 엄중한 벌을 내리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우리 사회가 입은 상처와 충격을 치유하고, 복구, 개선하는 일이다. 


우선,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는, 아무리 분노한 민심이라 한들 전문적 수사 및 법적 처리 절차에 속하는 영역까지 다 파헤칠 방도도 없고, 또 그렇게 처단할 합법적인 수단도 없다. 이미, 이들의 죄상을 밝혀내고 법적 응징을 담당할 특별 사법 기구가 적법하게 꾸려진 마당에, 일단 이들 사법 기구에 맡겨 놓는 것이 효율적이기도 하고 또한 순리이기도 하다. 적법하게 권한을 위임 받은 사법 종사자들이 정해진 법과 올바른 양심에 따라서 정도(正道)를 지켜 처결해 가면 될 일이다. 혹여, 이 절차에 대해 일부 성난 집단의 자의적인 함성이 미치게 하는 것은 자칫 백해는 있어도 일익도 없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한편, 국민들이 선택하여 권력을 위임한 현 집권 정치 세력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 세력을 세우는 것이 또 하나의 관건이다. 기본적으로는 이 방면에서도 혹시 일련의 사건에 관여한 자들이 저지른 비행(非行)이 밝혀지면, 밝혀지는 대로 법에 정한 형사 소추 절차를 밟아 처단해 나가면 될 일이다. 그리하면, 자연스레 각 정치 집단들의 진퇴와 성쇠가 가려질 것은 분명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사라지는 집권 세력을 대체하여 새롭게 권력을 담당할 집단도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정도(正道)로 선거를 치러 다시 뽑으면 될 일이다. 그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을 이치다. 이렇게 마구 흐트러진 상황에서 조금은 낯뜨거운 표현이나, 소위 민주적인 법치국가라고 자처해 온 이 나라에 별다른 뾰족한 대안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멸사(滅私)의 단심으로 새로운 세력을 창출해야
혹자는 이런 법에 정한 정상 절차에 따라 나타날 수 있는 어느 특정한 결과에 대해 우려하기도 한다. 일면, 그런 현실적 고민과 우려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나, 그러면 그럴수록, 남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류에 편승하여 간단히 이득을 챙기려는 얕은 속셈을 버리고, 각자가 나름대로 대의를 찾아 힘을 다해 궁행(躬行)한다면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본디 민주주의라는 것이 절차의 선(善)도 추구하는 느리고, 복잡하고, 귀찮은 제도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그것이 소위 보수이건 진보이건, 좌 쪽이건 우 쪽이건 간에, 어느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의 정합성 혹은 유불리를 자의로 예단하여 특정 개인 혹은 집단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입지를 보장해 주기 위해 법률이 정한 절차를 임의로 조절, 변개(變改)하는 행위 또한, 지금 우리가 이토록 개탄하고 있는 사회 규율을 일탈한 사건들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 아닌가?


즉, 이 나라에 아직도 나라의 명운을 걱정하고 후손들의 안녕과 번영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자각이 있는 정치인들이 남아 있다면, 그들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합당한 결사(結社)를 위해 사사로움을 떨쳐버리고 분연히 나서서 근구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기필코 새 시대에 부합하는 결사체를 규합해 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들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필연적 요구이다.
이 과정에서, 온 나라가 이 지경까지 참혹하게 파탄 나는 동안, 혹은 방관하고, 혹은 동조하며 일신의 영달을 추구해 온 부패한 인사들을 빠짐없이 솎아내는 작업도 반드시 병행해야 할 것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유권자 시민들이 대오 각성하여,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서비스를 가장 충직하게 제공할 진정한 대리인이 누구인지 똑바로 선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 정권의 포퓰리즘이 몰고온 파탄 ; 그리스의 참상
 현직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탄핵 소추 결정으로 향후 우리나라에는 복잡 다기한부문에 예상하기 어려운 많은 시련과 도전들이 생겨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남의 말을 할 처지는 못되지만, 무엇보다도 이 나라와 경제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 것인가를 점쳐 보기 위해 다소 간 교훈이라도 얻을 요량으로 다른 나라의 유사한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2010년 이후 경제 및 재정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그리스 경제와 역시 최근에 부정한 좌파 정권이 몰락을 경험한 남미 최대 경제 대국 브라질 경제의 경험을 참고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유용할 것이라고 본다. 


먼저, 그리스 경제는 1950~80년 대까지는 당시 세계 최고의 경제 성장을 하던 일본에 다음 갈 정도의 호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유럽에서 최고의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어 타국의 수범 사례일 정도로, “그리스의 경제적 기적(奇蹟)”이라고 불리워졌던 시기였다. 그러던 그리스 경제가 200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급전직하 나락의 길로 떨어져 최근까지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그리스 경제 상황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외형적 수치를 들어보면, GDP 성장률은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실업률은 무려 23%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 가운데 청년 실업률은 놀라울 정도인 60%를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출도 계속 감소하여 경상수지도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최근 어려움에 처한 그리스 경제를 특징 지우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재정 관련 지표라고 할 것이다. 정부 예산 적자는 2015년 기준 130억 달러를 넘어 GDP의 7.5%에 달하고, 최근 기준으로 정부 부채는 무려 GDP의 180%에 육박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매년 정부 지출은 수입(收入)을 초과하고 있으나, 경상수지마저 적자를 이어가고 있어 정부 부채는 쌓여가고 대외 부채도 또한 눈덩이처럼 늘고 있는 형국이다.

 

과도한 복지 확대가 부른 적자 경제의 굴욕
한편, 구조적인 측면에서, 그리스는 EU 회원국이면서 유로화 통화동맹인 EMS 가맹국이다. EU가 정치적, 사회적, 사법적 통합을 지향하는 공동체 협약이라면, EMS는 유로화를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공통 중앙은행인 ECB에 의해 시행되는 통화정책을 수용하는 통화동맹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그리스는 EU 회원국으로써 경제 및 재정 운용에 관한 “성장과 안정에 관한 협약(SGP)”, 그리고, EMS 회원국의 자격을 정한 “통화 전환 규준(Convergence Criteria)”을 충족할 의무를 가진다. 


최근 그리스는,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재정 악화 및 거시 경제 조건이 이러한 규준에 훨씬 미달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다른 회원국, 채권 국가 및 국제 기관들의 신용을 완전히 상실한 상황에 처해 있다(CDS 스프레드 급락). 이에 따라, 그리스는 이제 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취약한 국가가 되었고, 급기야, 다른 EU 회원국들, ECB 및 IMF 등으로부터 수 차례에 걸친 구제금융에 의존해서 겨우 연명해 가고 있는 유럽 경제에서 가장 위험스럽고 가련한 처지로 전락한 형국이다.

 

6c77d781670adb9e24e3a09d42dfe5f4_1481453

이렇게 그리스가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만성적 재정적자 누적을 꼽는다. 1980~90년대 사회주의 정권의 장기 집권 시절에 형성된 공공 부문의 과도한 팽창이 낳은 결과이다. 공공 부문의 과도한 인력 채용, 높은 임금 인상률, 과도한 사회보장 등, 포퓰리즘 정치 관행을 지속한 결과, 이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단적으로, 노동 인구 10명 중 4명 꼴로 공공 부문에서 일하는 소위 공무원이라는 사실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공공 부문 종사자의 25% 가량이 과잉 인력으로 추정되고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지금 그리스 경제가 겪고 있는 위기 상황은 이를 테면 사회주의 정권 하에서 횡행한 복지 포퓰리즘에 기인한 ‘재정 위기(public debt crisis)’로 볼 수 있고, 여기에서 정부는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대중 집단의 요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이끌려 가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심지어, 현 티프라스(Tsypras) 정권이 국가 부도를 막기 위해 채권자들과 구제금융 협상을 벌이고 있는 중에도, 세금 인상 및 사회보장 삭감 등 구조조정의 고통을 거부하는 데모 인파가 수도 아테네 거리를 밤낮으로 뒤덮고 있던 상황이 전세계에 비쳐지고 있던 것은 기억에도 생생하다. 


지금은 일단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고 문제가 봉합되어 소강 상태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2010년부터 불과 5년 남짓 짧은 기간에 세 차례에 걸친 채무 재조정 및 구제금융을 받는 치욕을 경험했다. 그리스 국민들은 이러한 채무 재협상에 대해 공공 근로자들마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려 항거했으나, 종국에는 더욱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조건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좌파 세력의 타락이 낳은 또 하나의 비극; 브라질의 혼돈
참으로 묘한 일치이나, 지난 9월, 남미 브라질에서도 호세프(Dilma Rousseff) 대통령이 각종 비리와 부정을 저질러 의회에서 탄핵 소추가 결정되고 법원의 최종 판결로 치욕적으로 자리를 떠나는 정변이 벌어졌었다. 호세프 대통령은 빈민 노동자 출신 좌파 ‘노동자 당’의 리-더였던 룰라(Lula) 대통령의 뒤를 이어 브라질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여걸이다. 독재에 항거하여 게릴라 활동을 하면서 탄압을 받기도 했던 그가 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던 상황에서, 거대한 부정 스캔들에 휘말려 국민 대중의 지지를 잃고 권좌에서 실추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정권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좌파 정권의 두 최고통치자들이 함께 연루된 국영 석유회사를 둘러 싼 거대한 부정 스캔들이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측면에서 보면, 수 십년 만의 극심한 경기 침체 위기와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으로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을 사고 있던 것이 배경이다. 즉,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사상 최악이라는 경제 침체와 거의 파탄에 직면한 국가 재정 상황을 들 수 있다. 물론, 이 재정 파탄은, 앞서 소개한 그리스의 경우와 흡사하게 사회보장 확대 일변도의 포퓰리즘 좌파 정치의 방만한 재정 운용의 결과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현재 브라질 재정 적자 규모는 사상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9월의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정도 표면적으로는 부정 및 뇌물 사건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2000년대 초부터 시작된 포퓰리즘 풍조에 대한 질책이고, 좌파 정권의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정치 염증을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최고 지도자들이 사익 추구에 몰두한 부정 부패, 포퓰리즘에 편승한 사상적 오만, 방만한 재정 운용을 일삼은 무능으로 실각한 전형적 정치 파탄 사례가 된 것이다. 


이어서 연립 브라질민주행동당(BDMP) 출신 테메르(Michael Temer) 부통령이 대통령 직을 승계하여 2018년까지 잔여 임기를 채우게 되어 있으나, 그도 부패 고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등, 예외 없이 브라질 정계에 만연한 정치 자금 스캔들로 흠집이 많은 인물이다. 그러하니, 정치적 카리스마도 없고, 국민들의 신임도 낮은 잠정 대통령이 과연 국영기업들의 민영화 및 구조조정, 정부 예산 균형을 위한 사회보장 혜택 감축 및 복지 지출 삭감 등을 단행해야 하는 재정 개혁을 완수해 낼 수 있을지 대단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당연히 외국 자본은 물밀듯이 빠져 나가고, 남미 최대 규모 경제는 지금도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한국 경제를 엄습해 오는 위기의 먹구름들 
광장에서 불타오른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의 결정을 성취한 지금 시점에서, 한시도 지체할 여지가 없이 급박하고 몹시 우려되는 것이 다름 아닌 우리 경제 현실과 앞으로 진행 방향에 관한 문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지적해 오는 바이나, 지금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전방위에서 총체적 위험에 봉착해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만큼 지금 우리는 우리 경제가 처한 현실을 어느 때보다 냉정하게 평가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우선, 눈앞에 닥쳐 있는 시급을 요하는 사안들을 훑어 보더라도, 성난 맹수보다 무서운 엄청난 과제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가장 긴급한 것이 언제 폭발해도 이상할 게 없는 지경에 이르러 있는 가계부채 문제다. 한계 채무자 부류의 상환불능 가능성은 이미 한계점을 넘어서 있어, 만일, 신용 수준이 가장 취약한 이들 개인 및 영세 중소상인 차주들의 대량 디폴트 사태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연이어 금융 시스템 리스크가 현재화 할 것이고, 정부 구제금융에 의한 자본 재구성, 이를 조달하기 위한 국민 세금 부담 가중, 이에 따른 자본 유출 등 일련의 연쇄 작용이 몰고 올 상황은 끔찍하기까지 하다. 이를 방비할 대책이 정말 절박한 상황이다.


이에 못하지 않은 또 다른 긴급 사안이 조선, 해운 등 부문의 부실기업 및 취약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이다. 여기에는 정부의 직접적인 조정, 지원 및 개입이 불가피한 작업이나, 전대미문의 괴이한 일은 지금 국가의 경제 정책을 총괄할 정부 관료 체제가 그야말로 해괴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이제 두 명의 총리 문제는 겨우 해소되었다고 하나, 아직도 누가 경제부총리인지 헷갈리는 망측한 상황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필자의 생각은 황 대통령 권한대행이 가장 우선하여 결정해야 할 일은 제만사하고 이 국면에 가장 합당한 경륜과 지도력을 갖춘 걸출한 인물을 찾아내서 새로운 경제부총리로 임명하는 일이라고 본다.

 

쏟아지는 다양한 욕구를 슬기롭게 조정해야 
우리는 일찍이 시민의 집단적 힘으로 정권을 무너뜨리고 난 뒤 예후가 어떤 것인지 절실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1960년대 초 4.19 혁명과 이어진 정권 교체 시기의 대혼란을 기억하는 것이다. 당시 정권을 넘겨받은 민주당 정권은 성난 각계 시민 그룹들의 화산이 터진 것처럼 분출하는 집단적 요구를 도저히 감내하지 못하고 급기야 군사 정변의 빌미를 제공한 비극적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같은 엄중한 전환기를 당하여, 정부 담당자들은 물론이고, 정치를 담당하는 의회로부터 개별 경제 주체인 개인, 기업 등 모든 주체들은 이런 다양한 욕구 분출을 가장 공정하고 효율적인 방도를 찾아 인내하고 조정하고 화합해야 할 때이다


이번 사태에서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국가의 최상 구조를 담당해 온 관련자들이 보여준 파행적인 행태는 능히 "이게 정말 나라인가?" 하고 자조하기에 충분하다. 기업도, 관료 조직도, 심지어 고상한 가치를 추구해야 할 학문, 문화 영역마저 추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으니 선량한 백성들은 정말 도탄에 빠져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이러한 비정 세력이 준동하는 동안 수많은 공직 관련자들이 동조, 타락(墮落)을 일삼아 왔으니 모두 나서서 그렇게 외칠 만도 하다.


그러나, 이제는 큰 물줄기를 잡은 다음, 뒷일들을 수습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 지식이나 경륜이 필요한 단계인 것이다. 법을 어긴 사람들을 예리하게 도려내어 징벌을 가하는 일은 냉철한 사법의 영역이지 대중의 분노에 따라서 처리할 일은 아니다. 자칫, 외국의 한 언론이 그리스 사태를 표현한 것처럼 ‘방법이 없이 광분하는(Madness without Method)’ 우를 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이런 작업들은 권한을 위임 받은 전문 기구들이 그들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법대로 처결해 나가기만 해도 충분하다. 일반 대중은 일단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학자는 강단에서, 근로자는 일터에서!”

하도 오래되서 희미한 기억이지만 중학 시절에 배운 어느 교과서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이제 우리 일반 시민들은 차분히 각자의 중심을 바로잡고, 맡은 직분에 충실한 자세로 돌아갈 때이다. 동시에, 사람마다 가슴에 ‘방촌(方寸)의 인(刃)을 품고’ 부릅뜬 눈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면서, 때로는 그들의 노고를 격려하고 때로는 그들의 과오에 질책을 마다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 또한 순리이다. 


이 나라 주인을 자처하는 우리 시민들이 한참의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경거 망동을 일삼거나, 혹여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부분적 이익을 위해 거리에 배회하며 혼란을 불러오는 행동을 그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우리가 그토록 지탄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시민들 각자도 잠깐만 자신을 뒤돌아 보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무시로 자행해 온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제 각자는 남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도 이런 것들을 진솔하게 반성할 때이다.

 

이제 백척간두에 선 경제 재건에 힘을 합칠 때
우리 사회가 반드시 이번 일만으로 “망가졌다” 고는 생각하지 않으나,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참으로 여태까지 굴러온 게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국가 운영의 정도가 올바로 서지 않은 채 흘러온 것도 사실이다. 몇 차례의 기회를 갖기도 했으나, 번번히 구태로 회귀하는 해이(解弛)된 양태를 보여 온 것 또한 사실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종료 후 신생 독립국가로 다시 출발한 우리 나라는 지난 1980년대 무렵까지는 극심한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경제 지상주의’를 근간으로 숨가쁘게 달려왔다. 군사 독재 체제를 종결 시키고 소위 ‘87년 체제’ 를 쟁취하고 나서 이미 수 십년이 흘러가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민주공화정치의 본령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 아직도 고질적인 사회 갈등과 대립의 근원이 되고 있다.


구시대적 전체주의적 체제를 그리워하는 세대와 새로운 평등 사회를 갈망하는 세대 간의 충돌은 아직도 심각하게 부각되어 있는 그대로다. 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난국도 이러한 어긋난 구조라는 근원으로부터 표출되는 사회적 병상(病狀)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다. 공동 선을 추구하는 대의의 룰이 무너지고 개인의 경박한 사익을 추구하려는 일탈은 가벼운 냄비 근성으로 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나라도 개인도 분수를 찾지 못한 결과, 가당치도 않은 과시 풍조가 사회 전체를 천박한 문화에 빠져들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러한 비틀린 사회 풍조는 우리들 모두가 장기적인 노력으로 정제, 개선해 나가야 할 장기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당장 우리가 일상에서 직면해야 하는 경제 문제는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여유도, 비켜갈 틈도 보이지 않는 절박함 그대로의 상황이다. 이 시점에 가장 우려되는 바, 우리 경제가 처해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시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당장에 대응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부채 문제를 예로 들어 보면 우리 개인들이 얼마나 인내하고 각성해야 할 것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부채 규모를 감축하자면, 원금 상환을 강요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경기는 더욱 위축될 것이다. 그것도 어려운 경우에는 상환불능 상태로 빠지게 되고, 결국 은행 등의 대외 신용도 유지를 위해 정부가 나서서 막대한 규모의 구제금융 자본을 투입해서 자본재구성을 해야 할 것이고, 이는 오롯이 국민들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환경도 각 주요국 경제의 침체 지속, 미국의 금리 인상, 중국의 장기 불황 등, 코 앞에 닥친 것들만 열거해 보아도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은 어디에도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마디로 우리는 지금 대내외적으로 ​국가 장래의 명운이 걸린 ​절체절명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때에는 광장에서 불타오른 민중의 함성은 일시 자기 내면 속으로 침잠(沈潛)할 시기이다. 그리고, 그 열정과 단합을 그대로 발휘하여 백척간두에 선 국가경제의 재건에 힘을 합칠 때다. 

광장의 분노한 민중은 두 눈을 부릅뜨고 사악한 집단들의 근시안적 포퓰리즘을 단호히 배격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는 일에 모두 동참하여, 대오를 갖춰 매진할 때이다. <ifs POST>

 

49
  • 기사입력 2016년12월11일 18시26분
  • 최종수정 2016년12월12일 08시02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