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의 한국 잠룡님 전 상서(前 上書) <4> 분신(分身)을 잠룡 때 길러두어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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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25년’ 중에 딱 한번 일본경제가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거센 당내 저항을 극복하고 5년 5개월의 총체적 구조개혁으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고이즈미 내각(2001~2006년) 때가 바로 그 때였다. 저성장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개혁 리더십의 위기를 맞고 있는 한국의 장래를 자기에게 맡겨달라는 잠룡들에게, 고이즈미가 편지로 전하는 충언을 한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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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3> 분신(分身)을 잠룡 때 길러두어라
비전과 정책을 공유하라
나라의 최고 지도자와 같이 일할 사람은 그와 한마음, 한 뜻이어야 한다. 그들이 나랏일을 맡기 전에, 나라의 과거와 오늘을 어떻게 보는지, 나라의 미래를 어떻게 내다보는지, 그런 내일을 어떻게 이룩할 것인지 등, 통치이념과 정책관 그리고 주요 개혁과제를 최고 지도자와 철저하게 공유해야 한다.
그들은 집권을 앞두고 하루아침에 고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명망과 인기를 기준으로 급조해 낼 ‘자문단’ 같은 인물들도 아니다. 지도자와 정책과 통치이념을 같이 펼칠 그들은 집권하기 전에 오랜 시간을 두고 엄선해 두어야 한다. 언젠가 집권하였을 때 국가경영을 같이할 그 인물들은, 평소에 눈을 뜨고 귀를 열어놓고 고르고 또 골라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과 나랏일을 논의하라, 집권하기 전에. 이해와 득실로 엮인 인맥이 아니라 정책과 통치이념으로 묶인 인맥을 지도자가 되기까지 그 정치가의 일생을 통해 구축해야 한다.
집권하기 전에 나에게는 훗날 집권 후 경제재정 자문회의 담당대신, 금융상, 총무대신을 맡긴 다케나카(竹中平蔵) , 공기업 개혁과 도로공단 개혁의 심의기구를 주도하게 한 이노세(猪瀬直樹), 그리고 자민당 안에서 나의 핵심적 지지 그룹으로서 나의 3번째 총재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낸 아베( 安倍晋三) 등 ‘7인의 사무라이’가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나와 정책과 통치이념을 같이했던 인물들이었다. 지도자의 분신은 리더에 의해 키워진다. 그들은 리더가 그들에게 갖는 믿음을 먹고 자란다. 행정부처이든 여당이든, 조직 내에서 그들이 갖는 능력과 영향력은 리더가 그들의 생각과 능력을 얼마나 높이 평가해 주느냐에 달려 있다. 누가 실세냐, 다음 주자는 누구냐 등에 관한 눈치 보기가 생존의 기본능력인 관료와 정치인들을 움직이려면, 그들 분신에 대한 리더의 믿음은 가급적 자주, 공개적으로 알려져야 한다.
집권 하고 난 후 자천타천(自薦他薦)으로 몰려오는 인물들은 아무 정책, 아무 부처, 아무 자리나 좋으니 자리만 달라고 할, 등골 없는 ‘철새’이거나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는 인물이기 십상이다. 주요 정책이나 통치이념을 같이하는 인물이나 파벌이나 지역출신 인사가 아니면, 내각이나 여당에 정책이나 개혁 추진과 관련된 자리를 맡기지 말아야 한다.
‘탕평’이나 ‘거국내각’ 또는 ‘소통’ 또는 ‘화합’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정책 추진과 관련된 역할을 맡기면 안 된다. 그런 인물들은 언젠가, 국가 최고 지도자가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들이 그의 정책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 국민의 지지도 사라지게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또는 차기 지도자가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순간, 그들은 새 실력자 쪽으로 돌아서기 마련이다.
한번 믿고 나랏일을 맡겼으면 그 과제가 완수될 때까지 믿고 맡겨라. ‘쇄신’이든 ‘국면전환’ 등을 명분으로 그들을 내치라는 외부의 ‘충언’은, 자기나 자기 세력의 일원을 써달라는 ‘교언’(巧言)이기 쉽다. 당신이 힘을 잃었을 때에 개각 요구를 하는 무리는 (인사권조차 자기 마음대로 행사할 수 없을 정도로) 리더의 권위를 무너뜨림으로써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세력이기 십상이다. 더더구나 반대세력의 개각 요구는 리더의 개혁체제가 허물어지는 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려는, 공개적 저주일 뿐이다.
깨끗하라, 자신도 내각도
국가 최고 지도자와 일할 사람은 깨끗한 인물이어야 한다. 바르지 못한 그들의 언행이 자칫 내각과 정책을 좌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깨끗하지 않은 인물은 배제하라. 여자 문제건 무엇이건, 스캔들이 있을 수 있는 자들은 처음부터 멀리 하라. 망언의 소지가 있는 자들도 내각과 당 집행부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내각은 정책 추진과 이념 실현을 향해 일치단결해 나아가는 집단이다. 망언, 스캔들, 부패 등으로 내각의 지지가 떨어져 정책 추진이나 이념 실현이 주춤거릴 여유가 없다.
내가 집권하기 전의 많은 내각 또 내가 퇴진한 후의 많은 내각이 총리와 각료의 망언과 오직(汚職) 사건 또는 스캔들로 흔들리거나 물러나야만 했다. 출범 시에 가졌던 큰 뜻, 나라와 경제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그 결의를 제대로 펼쳐 볼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쫓겨나고 말았다.
내 내각 직전의 모리(森)내각은 총리부터 망언과 망동을 되풀이했다. 집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일본은 신(神)의 나라’ 라는 망언으로 많은 이의 조롱을 받더니, 그 후 하와이에서 일본 훈련선과 미군잠수함이 충돌해 일본 훈련생 여러 명이 익사한 사고가 났다는 보고를 받고도 골프를 계속 치는 망동으로 내각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내려앉아 사임으로 내몰렸다.
내가 퇴임한 후의 아베(安倍) 내각은 ‘아름다운 나라’를 내걸고 출범했는데, 출범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각료들의 ‘아름답지 않은’ 언동 시리즈가 시작됐다. 정부세제조사회(政府稅制調査會) 회장이 관사에서 애인과 동거하다 발각되고, 같은 달에 규제개혁담당 특명대신이 허위로 정치자금 보고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 다음 달에는 비리 사건이 문부과학대신, 자민당 정조회장, 문부과학 부대신 그리고 농수산대신으로 번져나가 대신들의 사임이 줄을 잇더니, 결국 농수산대신이 자살을 하는 것에 이르고 말았다. 그때 20% 밑으로 떨어진 아베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다시 회복되지 못하고 하락을 멈추지 않았다.
아베 내각의 인사 실패는 근원적으로, 당과 내각 인사를 적재적소 원칙이 아니라 파벌 영향력 기준으로 한 데서 야기된 것이었다.
아소(麻生太郞)내각은 파벌의 밀실타협으로 총리를 옹립한 ‘원죄(原罪)’가 있다. 그 내각은 파벌의 의향에 맞추어 꾸민 내각 인사와 그 몰락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내각 발족 닷새 후 국토교통대신이 실언을 해 물러난 것으로 시작해, 각료의 망언과 비리 그리고 그에 따른 사임이 내각이 물러나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2009년 1월에는 내각부 정무관이 정부가 제출한 추경예산안 투표에 기권하여 파면되고, 2월에는 재무대신이 술에 취해 G7 재무장관 회의 후 기자회견 중에 잠이 들어 사임했다. 3월에는 규정 위반으로 재무 부대신이, 5월에는 여성문제와 의원세비 문제로 내각관방 부장관이 물러났고, 6월에는 일본우정사장 인사 문제로 총리와 충돌했던 총무대신이 후생노동성 정무관과 동반 사임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내 내각처럼 총리나 각료의 부정부패 또는 망언 등 문제가 없었던 것은 일본 정치사에 매우 드문 일이다. 국민과 야당 앞에 어두운 점, 부끄러운 점, 구린 점이 없어야, 국민이나 관료나 정치인으로부터 기본적인 신뢰와 내각의 권위에 대한 최소한의 인정을 받을 수 있다. 그래야 신념대로 통치할 수 있다.
나라 다스림에 나서기 전에 자신부터 다스려야 한다. ‘수신제가(修身齊家) 연후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했다. 그리고 늘 주변에 깨끗한 인물을 두어라. 깨끗함에 집착하면 유능한 인재를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 말은 스스로가 깨끗하지 못하거나 그런 부류를 주변에 둔 사람이나 하는 것이다.
내 정치, 내 내각의 경험은 그렇지 않았다. 깨끗하고도 유능한 인물은 널려 있다. 그런 인물이 간택 받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의 썩은 눈에 띄지 않아서일 뿐이다. 청렴하고 유능한 많은 이 중에 지도자와 국가과제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인물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ifs POST>
<순서>
왜 지금 개혁의 리더십인가?
제 1부 제대로 된 잠룡이라면
제 2부 대권을 잡고 나면: 개혁의 무대는 이렇게 꾸며라
제 3부 모두를 개혁에 동참시켜라
제 4부 논란이 많은 개혁과제를 택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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