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업에 의한 비영리기관의 지배와 공익성의 훼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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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기관은 학술, 종교, 자선, 기예, 사교 기타 영리 아닌 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 또는 재단을 말한다(민법 제32조). 이러한 비영리기관은 ‘최대의 이윤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익의 창달을 목적으로 한다. 종교 재단,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법인, 사립학교법에 따른 학교법인, 의료법에 따른 의료법인 등이 비영리기관의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의료법인의 비영리성에 관해 의료법 시행령 제20조에서 “의료법인과 의료기관을 개설한 비영리법인은 영리를 추구하여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러한 비영리기관의 목적과 기능은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창출해 내는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구성원들이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함양하고,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도록 도와준다. 사립학교를 통한 교육이 없었다면 어떻게 오늘 날의 대한민국을 이룩하였을 것이고, 비영리병원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애로를 겪었을 것인가? 그리고 사회복지법인이 없으면 취약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정도나마의 수혜도 받지 못할 것이고, 종교 재단이 없으면 국민들의 삶은 심히 척박해 질 것이다.
이처럼 공익적 기능을 수행하는 비영리기관이 설립취지에 맞게 제대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 국가는 여러 가지 감시와 감독 제도를 둠과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재원의 확보와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주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비영리법인의 설립을 위해서는 반드시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존속기간 중 법인의 사무 및 재산상황에 관해 계속 주무관청의 검사를 받아야 하며, 비영리법인이 목적 외의 사업을 하거나 설립허가의 조건에 위반하거나 기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한 때에는 주무관청은 그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면서(민법 제37조, 제38조, 제67조; 기타 특별법), 다른 한편으로는 비영리법인의 수입에 대해서는 조세를 부과하지 않고(법인세법 제3조 제3항), 비영리기관에 대한 기부금에 대하여 조세감면의 혜택을 주고 있으며(법인세법 제24조 제2항), 각종 국가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이러한 혜택의 수여는 모두 비영리기관의 설립자나 그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익적 기능의 수행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그 혜택이 사회구성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공익목적의 비영리기관을 사기업이 사실상 지배하는 경우가 있다. 사기업의 경영자가 출연하여 비영리기관을 설립함으로써 설립시점부터 사기업이 비영리기관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고, 비영리법인의 지배권은 거래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비영리기관 이사직의 임면권 행사를 통해 사기업이 그 지배권을 취득하여 사실상 비영리기관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예로는, 어떤 학교법인의 이사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 사직하면서 사기업의 경영진이나 그 지시를 받는 사람이 이사직을 승계할 수 있도록 협력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대가를 받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사기업에 의한 비영리기관 지배권의 취득이 적법한지 여부는 별론으로 하고, 사기업이 영리추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의 운영방식과 원리에 따라 비영리기관의 운영에 관여하는 것이 비영리기관의 공익목적 달성에 심각한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닌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사기업의 경영자가 지배하는 사립대학교는 학교 건물의 건축이나 기타 필요한 용역을 그 사기업 그룹에 속하는 특정 회사로부터 시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거나 필요하지도 않은 용역을 거액의 대가를 지급하고 매입함으로써 학교의 재정상태를 악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을 과도하게 인상하거나 학생들에게 질 낮은 교육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또한 취업 면에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는 학과나 교과목의 강의를 폐지하거나 축소함으로써 ‘균형 잡힌 인성을 갖춘 사회구성원의 양성’이라는 교육 본래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또한 사기업이 비영리병원을 이윤창출의 수단으로 지배하는 경우에는 높은 의료수가를 낼 수 없는 사회취약계층에 대해서는 진료를 기피하고, 반대로 부유층에 대해서는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은 해당 비영리기관의 공익성 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하고, 그 혜택을 받도록 예정된 사회구성원들로 하여금 의지할 곳을 잃게 만들어 국가, 사회의 안정적 존립에 위해를 가져올 수 있다. 최근에 삼성서울병원이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확산 주범이 되어 우리 사회를 극도로 불안에 떨게 한 사실(조선일보 2015. 6. 18.자 사설의 지적)이나 중앙대학교 이사진과 교직원 간에 심각한 갈등이 불거져 사회를 소란스럽게 한 사실 등은 비영리기관을 사기업 경영원리에 따라 지배하는 데서 발생하는 폐해와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본다.
그래서 비영리기관은 자체의 구성원에 의해 공익추구라는 본래의 목적에 따라 독립적으로 경영되어야 하는 것이고, 사기업이 영리추구라는 사기업의 경영원리에 따라 비영리기관을 지배, 운영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궁극적으로 해당 사기업 자체를 포함한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은 이러한 폐해를 방지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 그러한 제도적 장치로서 사립학교에게 ‘등록금을 올리지 말라’고 요구하거나 비영리병원에게 ‘과잉진료 하지 말라’라는 식으로 결과로 나타난 폐해만 막는 처방을 할 것이 아니라, 그러한 폐해를 야기하는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그러한 근본적인 장치로서, (i) 사기업의 지배자가 임원으로 있는 비영리기관과 해당 사기업 간에 내부자 거래(인사 교류 포함)를 하는 것을 통제하는 방식, (ii) 비영리기관에 대한 감독관청의 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있거나 재직했던 자와 그 비영리기관 사이 또는 그 비영리기관의 임원이 속해 있는 사기업 사이의 사적거래를 통제하는 방식, (iii) 독립적 외부감사인에 의한 회계감사의 실시, (iv) 재정과 인사 면에서 독립된 준법감시인의 설치 등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비영리기관의 공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이러한 제도적 장치의 개발과 시행을 통해 우리 사회는 한 층 더 선진사회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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