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금리차 역전의 의미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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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30년 국채수익률이 미국보다 낮아진 데 이어 10년 국채수익률에도 같은 현상이 발생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멀리 내다보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면서 한국 장기금리가 미국보다 낮은 상황이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금리 인하, 미국은 금리 인상 시기 저울질
단기적으로 보면 한미 경제와 통화정책의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올해 5월까지 우리 경제 상황을 보면 서비스업 생산은 다소 증가했으나(내수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의 경제 성장 둔화와 엔화 가치 하락 등의 영향으로 수출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수출이 1년 전보다 5.6% 줄었다. 특히 5월 수출은 마이너스(-) 10.9%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이 가장 컸던 2009년 다음으로 감소폭이 확대되었다. 6월 들어서는 ‘메르스’가 회복되고 있는 내수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한국의 물가상승률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올해 5월까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0.5% 상승하는데 그쳤다. 한국은행이 목표치로 내세운 2.5∼3.5%를 훨씬 밑돌고 있는 것이다. 경제가 잠재 능력 이하로 성장하고 물가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은 기준금리를 더 내려야 할 상황이었다. 실제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6월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면서 기준금리를 1.75%에서 1.50%로 0.25% 포인트 인하했다. 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러나 미국은 통화정책 정상화 과정을 밟아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양적 완화를 종료하고, 올 하반기 어느 시점에서 연방기금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져가고 있다. 그만큼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고용 지표 한 가지만 보아도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2008.2∼2010.2) 비농업부문에서 일자리가 872만개 줄었다. 그러나 경기가 좋아지면서 2010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잃어버린 일자리의 1.4배에 해당하는 1203만개의 고용을 창출했다. 금융위기 동안 10%까지 올라갔던 실업률도 올해 4월에는 위기 전 수준이 5.4%까지 하락했다. 이 같은 경제 회복을 바탕으로 올해 9월쯤 미국이 정책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2004년에도 이런 상황이 발생했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경기 회복을 근거로 연방기금금리를 2004년 5월 1.00%에서 12월에는 2.25%까지 인상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은 당시 ‘카드 사태’로 위축된 내수를 부양하기 위해서 기준금리를 3.75%에서 3.25%로 인하했다. 이에 따라 2004년 12월 한국의 10년 국채수익률이 월평균 3.85%로 미국(4.23%)보다 0.38% 포인트 낮아졌다. (<그림-1> 참조)
한미 금리가 역전되었을 때, 한국 채권시장에 투자되었던 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었었다. 그러나 2013년까지 미국계 자금이 한국 채권을 계속 순매수했다. 2013년 말 현재 미국계 자금이 한국 상장채권을 20조 580억원 보유해, 외국인 보유 비중 가운데 21.2%를 차지했다. 한미 금리차 역전은 일시적 현상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실제로 2005년부터 한국의 국채수익률이 미국보다 높아졌다.
한국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질 전망
앞으로 1∼2년 정도는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더 멀리 내다보면 보면 한국의 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고착될 확률이 높다.
피셔 방정식이 제시하는 것처럼 명목금리인 국채수익률에는 미래의 실질금리와 물가 상승률이 반영되어 있다. 실질금리는 사전적으로 추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용 변수로 보통 실질경제성장률을 사용한다. 물가가 일정하다고 가정하면(실제로는 물가도 대체로 경제성장률과 같은 방향으로 변동한다), 국채수익률이 하락한다는 것은 앞으로 경제성장률(혹은 물가상승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국채수익률 하락은 미래의 경제성장 둔화를 선반영한 것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자료(“20년 전의 일본, 오늘의 한국: 인구구조 고령화와 경제역동성 저하” 2014.12)에 따르면, 한국의 2011∼15년 잠재성장률은 3.1%로 떨어졌다. 2001∼05년 4.6%, 2006∼10년 잠재성장률은 각각 4.6%와 4.0%였다. 한국 경제의 성장 능력이 이처럼 낮아진 것은 잠재 성장을 결정하는 노동, 자본, 총요소생산성도 같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KDI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16∼20년 3.0%, 2021∼25년 2.5%로 낮아지고, 그 이후는 1%대로 추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2026년 이후에는 노동 공급이 감소하면서 잠재 성장률을 하락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그림-2) 참조)
미국 의회에서는 미국 경제의 잠재 성장률을 2016∼20년에 2.2%, 2021∼25년에 2.1%로 추정하고 있다. 10년 이후에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미국과 거의 유사해진다는 것이다. 미 의회가 2025년 이후 전망치는 내놓지 않고 있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2025년부터는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미국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 최근 한국의 30년 국채수익률이 미국보다 낮아졌는데, 이를 선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국채 시장이 10년 후의 한미 경제상황을 반영한다면, 머지않아 10년 국채수익률의 경우에도 한국이 미국보다 낮아질 전망이다.
한국 경제, 자금 초과공급 현상 지속
한국 경제 내부 상황을 보아도 금리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1997년 이른바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를 겪은 후, 기업들의 투자자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한국 경제에서 저축률이 투자율보다 높아졌다. 한 국가 경제에서 저축은 자금의 공급이고 투자는 자금의 수요이다. 저축이 투자보다 많으니 자금잉여 상태가 지속되면서 금리가 떨어진 것이다. 지난 2014년 한해만 보아도 총저축률이 34.7%로 국내총투자율(29.0%)보다 5.7% 포인트나 높았다.
앞으로도 저축이 투자보다 많은 현상이 지속될 것이다. 저금리와 자산가격의 조정으로 금융 및 부동산 자산이 크게 늘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고용도 불안하기 때문에 한국 가계가 절약하고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저축을 늘리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해 가계 순저축률이 6.1%로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편 한국은행의 자금순환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 기업들은 504원에 이르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
은행과 중국계 자금 채권 매수
은행의 채권 매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가계 자금이 안정성을 중시하면서 은행으로 들어가고 있다. 은행은 그 돈으로 대출을 통해 이자 마진을 남겨 다시 돌려줘야 한다. 현재 가계가 경험해보지 못한 저금리의 ‘단맛’에 은행 돈을 빌려 쓰고 있지만, 갈수록 높아지는 부채 때문에 은행의 가계 대출이 무한정 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이 은행 돈을 빌려 써야 한다. 그러나 이미 기업은 500조가 넘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 돈을 많이 쓸 필요가 없다. 대출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만큼 은행은 유가증권 투자를 늘리게 될 것이다. 유가증권은 크게 주식과 채권으로 나눌 수 있는데, 보수적인 은행은 주식을 많이 사지 않고, 채권 그 중에서도 안정성이 높은 국채 매수를 크게 늘릴 전망이다.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성장률이 미국보다 낮아질 수 있고, 은행이 국채를 대규모로 매수할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국채수익률이 미국보다 낮아지는 현상이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 미국계 자금이 유출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로 미국계 채권매수 자금은 2014년 이후 정체되고 있다. 2013년 말에 미국계 자금이 한국 상장채권을 20조 580억원 보유했는데, 올해 5월에는 18조 8910억원으로 줄었다. 그 자리를 중국계 자금이 메꾸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중국의 한국 상장채권 보유금액이 12조 5090억원에서 17조 950억으로 대폭 늘었다. 올해 내에 중국계 자금이 미국보다 한국 채권을 더 많이 가지게 될 것이다. 한미 금리차 역전에 따라 미국계 자금이 빠져나가더라도 한국의 채권시장이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한 이유다.
머지않아 ‘한미 금리 역전’이라는 말이 당연하게 들리는 시대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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