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기금의 의결권 행사,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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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모직 삼성물산 합병결의 임시주총이 임박했다. 국민연금기금(이하 국민연금)은 어떤 결정을 할까? 고지된 1:0.35의 합병비율만 보면 삼성물산 주주인 국민연금입장에서는 불리하다. 주주가치를 훼손시킬 것으로 판단하고 SK처럼 반대결의를 할 법도 하다. 자산가치로는 제일모직의 3배 이상인 삼성물산이 1/3정도의 가치밖에 인정받지 못한 꼴이기 때문이다.
양사 합병비율 계산은 자본시장법에 따른 것이다. 법은 최근 1개월간의 주가를 기반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합병비율 계산결과는 합법적이어서 이의를 제기할만한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도 양사합병에 문제를 제기한 투자자가 나타났다. 미국계 헷지펀드 엘리엇이다. 양사합병이야 기업판단이겠지만 주주가치를 훼손시키게 될 합병비율로는 부당하다는 것이었다.
주가에 회사의 자산가치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시점을 의도적으로 택해 합병비율을 정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합병계약시점에서 삼성물산주가는 연간최저수준을 나타냈고 제일모직은 상승곡선을 그려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이 소액주주 이익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엘리엇을 비롯한 외국투자자의 공격빌미가 된 것 같다.
합병비율의 부당성을 지적한 엘리엇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합병비율 계산기준이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합병비율계산의 적법성을 인정하더라도 타이밍을 문제 삼아 자산가치와 괴리되었다고 보는 합병비율에 대한 법의 판단을 다시 구해보려 할 것이다.(엘리엇은 한국법원에 합병비율계산의 불합리함을 제소했으나 지난 7월 1일 패소하였다)
헷지펀드란 그런 것이다. 그들은 틈새를 찾아내 집요하게 공격한다. 어떻게든 차익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의 펀드투자자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지금 엘리엇은 합병비율의 부당성을 이유로 요란하게 문제를 제기하여 삼성물산에 시장이목을 집중케 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저평가되었음을 크게 드러내 주가상승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성공한 듯 보인다. 삼성물산주가는 합병계획발표 후 20%정도 상승했다. 엘리엇은 합병결의결과와 관계없이 이득을 볼 확률이 높다.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엘리엇의 과거행태로 보아 그런 의도로 접근했을 것이 틀림없다. 결국 엘리엇의 배를 불릴 것이 뻔하다. 엘리엇에 대한 시장의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이다. 그들은 마지막 한 점의 고기조각, 피 한 방울이 남을 때까지 단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다. 생태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벌처펀드라고 매도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수효과도 없지 않다. 엘리엇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면 이처럼 양사의 합병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을까? 삼성측도 서둘러 주주친화방안을 발표하지 않았는가. 웃어야 하나?
엘리엇이 정의의 사도가 아니 듯 삼성도 자선사업가가 아니고 국민연금도 호구가 아니다. 이번 일이 3세 승계작업의 밑그림이라는 것을 모르는 투자자는 없다. 삼성으로서야 최상의 시나리오대로 추진했겠지만 엘리엇을 불러들인 것은 결국 삼성이다. 냄새도 나지 않았는데 그들이 달려들었겠는가. 과거 소버린이나 칼 아이칸, 론스타 등의 행태를 익히 보아온 우리다. 삼성은 구멍가게가 아니다. 세계유수의 다국적기업이다. 결과만 좋으면 되는 시대는 끝난지 이미 오래다. 과정과 절차가 투명하고 정정당당해야 한다. 그래야 오래 간다. 주주자본주의의 엄혹함을 새삼 마음에 새길 일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 전원합의로 마련된 의결권행사지침에 따라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결정, 집행하고 있다. 다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사회적으로 문제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경우는 따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 부의하여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에도 SK의 경우처럼 기금운용본부가 아닌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는 기금운용위원회직속 독립기구로 위원전원이 모두 외부인사다. 의결권행사를 집행하는 기금운용본부장을 상당한 자격으로 위원으로 참가케 해야 한다. 권한이 있으면 책임도 뒤따라야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의 대원칙은 장기주주가치증대이다. 합병결과 장기적으로 주주가치가 증대된다고 판단되면 찬성할 것이고 아니라면 반대할 것이다. 국민연금은 양사합병이 주주가치를 증대시킬 것이라는 삼성측의 주장을 면밀히 분석 검토할 것이다. 1:0.35 합병비율로 인한 확실한 현재의 불리함과 합병시너지효가가 가져올 불확실한 미래의 기대이익을 비교 평가한 후 합병으로 인한 이득이 충분한지 여부를 따져 판단할 것이다.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조직되고 의결권행사지침이 마련된 것은 10년 전인 2005년이다. 국민연금은 그 해부터 장기자산가치 보존을 위해 포트폴리오재편을 개시하였다. 기존의 채권위주 포트폴리오를 바꾸기로 하고 위험투자를 늘리기 시작한 것이다. 의결권행사지침마련은 주식투자가 늘어나면서 주주로서의 의결권을 공정하게 행사하기 위한 기준마련이 절실해진데 따른 조치였다. 당연히 기금가입자의 이익보호를 위한 주주가치증대가 목표였다.
국민연금은 기금규모가 늘어나고 주식투자비율이 높아지면서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해외연기금에 비하면 아직은 약과다. 아마 앞으로 더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었지 약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업입장에서는 까다로운 시어머니를 만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다. 재무적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기업경영에 관심을 가지는 전략적 투자자가 아니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다. 국민연금에 대한 이해부족이거나 기금규모증가에 따른 우려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크지만 30년 후 2500조까지 커진다니 그 압도적인 규모에 누군들 걱정이 없겠는가. 연금사회주의라는 말을 운위하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금방이라도 국민연금이 기업들을 온통 지배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법도 하다.
연금사회주의Pension Socialism라는 말은 피터 드러커가 1976년 발간한 “보이지 않는 혁명The Unseen Revolution”이라는 저서에서 썼던 말이다. 당시 급성장하고 있던 미국의 기업연금 보유주식이 상장기업 발행주식 총수의 25%였다. 10년 내에 50%가량이 될 것이고 결국 생산수단이 근로자의 손으로 넘어감으로써 연금의 영향력이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한 말이다. 주주자본주의라는 용어는 떠오르지 않았을까? 그분이 당시 사회주의가 극성을 부리던 유럽에서 이주한 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걱정은 이해되지만 오해이고 기우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시각차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기금가입자의 이익을 높이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국민연금이 얼토당토않은 것을 기업에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평균적인 요구를 할 것이고 기업은 수용가능하면 수용하고 아니라면 거절하면 될 일이다. 국민연금은 장기주주가치증대 측면에서 숙고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면 된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를 위하여, 기업은 소비자와 주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기업입장에서 보면 국민연금이 당장은 귀찮고 성가실 수도 있으나 길게 보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초장기투자를 하는 국민연금이 보유하는 주식을 발행한 기업은 국민연금의 투자로 시장자금조달이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민연금과 기업 모두 서로 상생하는 지혜를 발휘해나가야 한다.
또한 기금이 커진다고 그에 비례하여 지분율도 그대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의 규모만 커지는 것이 아니다. 기업과 경제규모도 커지고 당연히 시가총액도 커진다. 국민연금은 분산투자가 원칙이므로 국내에만 투자할 수도 없고 위험자산인 주식에만 투자 할 수도 없다. 안정성확보가 최우선이므로 위험자산은 최소규모로만 투자한다. 국민연금의 규모가 늘어난다고 해서 지분율도 높아지기만 할 수 없는 이유들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궁극적인 목적은 운용성과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함으로써 기금가입자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의결권행사는 기금가입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기업의 장기방침이 결정되는 사안을 살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장기투자를 하는 국민연금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이는 국내에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외연기금들의 의결권행사는 우리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구체적이며 매우 적극적이다. 중요한 운용수단이기 때문이다.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기금운용담당자들의 기본책무이다. 주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기도 하다. 합당한 기준에 따라 공평 엄정하게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 행사원칙은 물론 장기주주가치증대이다. 적극적인 의결권행사는 국민연금의 운용목적인 기금가입자 이익보호를 극대화하려는 일인 것이다. 기업을 옥죄려는 일이 아니다. 기업을 귀찮고 성가시게 해서 국민연금이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기업이 성장해야 국민연금도 이득이다. 상생하려는 일이고 우리 모두의 미래를 위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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