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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과 엘리엇 분쟁, 어떻게 보아야 하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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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7월06일 16시2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02분

작성자

  • 이상빈
  •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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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삼성과 엘리엇 분쟁,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이번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이해하려면 1996년 에버랜드의 전환사채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는 에버랜드가 있었다. 즉 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을 지배하고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조였다. 에버랜드 이사회는 1996년 10월 전환가격이 7,700원인 전환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기존주주들이 포기하자 제3자에게 배정했다. 그 때 에버랜드의 주식은 주당 8만원 내지 23만원에 거래되고 있었다. 전환가격이란 전환사채를 가진 투자자가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교환할 때 적용되는 가격이다. 따라서 주당 8만원 내지 23만원인 주식을 7,700원에 인수할 수 있는 전환사채는 글자그대로 요술방망이인 셈이다. 이런 전환사채를 기존주주들이 포기하자 제3자인 이 재용 회장과 그의 동생들이 각각 48억 3091만원씩 합계 96억 6182만원에 인수했다. 

 

이 재용 회장 남매는 2주 뒤에 주식으로 교환했는데 이는 기존 에버랜드의 주식수인 70만 7,200주보다 많은 125만 4,777주를 배정받았다. 이로 인해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이 재용회장이 획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재용 회장이 전환사채 구입대금으로 지불한 단지 48억 3,091만원으로 삼성그룹을 지배하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2014년 7월에는 제일모직의 패션부분을 인수했던 에버랜드는 회사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지난 연말 50대 1 액면분할로 주식수가 50배로 증가해 이 재용 회장의 주식 수는 3,136만 9,500주가 되었다. 

 

이번에는 삼성물산이 보유한 재산의 가치가 제일모직의 두 배가 넘는데도 불구하고 삼성물산 주식 3주와 제일모직 주식 1개를 교환비율로 하는 합병이 추진되고 있다. 합병이 성사되면 이 재용 회장은 삼성물산의 지분 16.5%를 보유하게 된다. 1996년 10월에 48억 3,091만원에 구입한 전환사채가 몇 번의 변신을 거쳐 삼성그룹의 경영권을 공고히 하는 엄청난 부로 성장했다. 블룸버그는 "삼성 3남매가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quite a bargain)′에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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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첫째, 전환사채 가격책정의 자의성이다. 전환가격이 7,700원인 전환사채라면 가격이 어마어마해야 하는데 이를 임의로 낮게 책정하였다. 에버랜드가 비공개법인이니 일반소액주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또 기존주주 모두 삼성그룹에 속해 있으니 가격을 조작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주주는 없었다.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해도 이 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둘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상 주식가격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어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삼성물산의 주가가 주당 자산가치보다 낮으면 구조개혁 등을 통해 최소한 주당 자산가치 정도로 올릴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를 등한시하면 주가를 인위적으로 낮출 수 있다. 반면 제일모직은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해 주가를 띄울 수도 있다. 이 모두 경영진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가만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외국의 예를 보아도 주가만을 합병비율의 금과옥조로 삼는 경우는 없다. 합병은 당사자 간의 자유로운 협상을 통해 결정되어야지 이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무리이다. 이런 틈새를 삼성그룹은 교묘히 파고들어 이를 삼성그룹 지배구조 확립의 발판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 재벌의 문제점 중 하나는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다 보니 항상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하여 일반주주를 희생시키면서 또는 정상적으로 증여세를 납부하지 않고 법의 허점을 통해 지배구조를 확립하는 것은 세계적 기업인 삼성이 취할 바는 아니다. 절대 권력은 절대로 부패한다는 말이 있다. 견제 받지 않는 지배주주의 경영권 행사는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희생시키면서 지배주주의 이익을 도모하기 마련이다. 

 

미래첨단산업으로 금융업이 거론될 만큼 금융기법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갖가지 금융신상품이 등장하고 이를 잘 이용하면 경제에 도움이 되지만 이를 악용하면 각종 비리 및 탈세를 조장할 수도 있다. 마치 다이너마이트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전환사채는 혁신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으로 개발되었지 싼값에 경영권을 회득하는 수단으로 탄생하지는 않았다. 삼성그룹의 행태는 다이너마이트를 산업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무기를 만들어 인명을 상상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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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문제점을 지적한 엘리엇을 지지할 것인가? 아니면 국익차원에서 삼성을 지지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을 하려면 이는 마치 엄마가 좋으냐? 아니면 아빠가 좋으냐? 라는 질문에 직면한 어린아이의 심정이 되어야 한다. 국익이라는 차원에서 부당함을 외면할 수 없고 그렇다고 재주는 곰이 넘고 엘리엇이 돈을 챙기게 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런 문제점을 미리미리 예상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삼성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설사 삼성이 합병에 성공한다 하여도 엘리엇은 이를 투자자‧국가 간 소송까지 끌고 갈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순수 국내용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이번 건은 그러하지 않다. 그 만큼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이런 변화를 따라잡는 삼성으로 거듭 태어나기를 우리는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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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7월06일 16시25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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