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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의 패러독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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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5년07월06일 16시21분
  • 최종수정 2016년02월27일 22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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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의 패러독스

 

 기업이 회사의 형태를 취한 것은 불과 100여 년 전의 일이다. 새 생명이 태어나기 위하여 신의 축복이 필요하다면, 법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왕의 축복을 필요로 하였기 때문이다.  왕의 축복이 있어야만 학교나 병원 등 비영리법인의 설립이 가능하였으며 우리나라 언론이 촌스럽게 밝히는 미국의 소위 아이비리그가 바로 영국의 왕이 미국식민지에 내린 축복의 결과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법인, 즉 회사의 설립도 왕의 축복으로 가능하였으며 특정주주들에게 축복을 내린다는 것은 일종의 특혜였기 때문에 그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최초의 회사라고 배운 동인도주식회사란 왕이 해외식민지의 개발과 관리로 인한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특별히 축복한 영리법인이었다.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이르러 미국 몇몇 주에서 세수확보를 위한 일반회사법이 나타났고 그 결과 지금은 모두가 주정부에 간단한 서류만을 접수시킴으로써 미국회사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민상법을 만들면서 회사는 누구나 간단히 설립할 수 있는, 비영리법인은 주무관청의 인허가가 있어야만 설립이 가능한 체계를 받아들였다.

 

회사는 법이 생명을 부여한 인격체이니 법으로 그 지배구조를 정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신이 인간을 만들면서 머리는 생각을 하게하고 팔은 뻗어서 높은 곳에 달린 열매를 따먹을 수 있게 만든 것과 같이 법에서 이사회가 회사의 모든 결정을 내리며 임원은 이를 집행하도록 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의 가장 직접적 이해관계자는 회사에 자본을 출자한 주주들이다. 그렇다면 주주들이 모여서 정관으로 주주총회, 이사회, 임원들 간의 관계를 정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법이‘콩 놔라, 팥 놔라’하면서 회사의 내부 지배구조에 관하여 사사건건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결국은 주주가 자신의 이익이 무엇인지 판단하여 최선의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특정회사의 주주를 포함한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법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지의 문제이다.  그러나 전자의 견해도 회사의 주식을 거래소에 상장하여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였고 따라서 일반투자자들이 언제나 시장에서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상장회사의 경우에는 일반투자자의 이익과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라는 정책적 견지에서 공권력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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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거 증권거래법에서 상장회사의 관리라는 제목 하에 상장회사의 지배구조나 재무관리에 관한 특칙을 두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 증권거래법은 연혁 상 기업공개촉진법의 정신을 물려받아 자본시장에서의 투자자보호뿐만 아니라 상장 촉진을 위한 상장회사의 자금조달 편의도 중요한 정책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증권거래법 규정들은 자본시장법의 시행과 더불어 지배구조는 상법으로, 재무관리는 자본시장법으로 분산시켜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자본시장법 상 상장회사의 합병과 반대주주의 매수청구권에 관한 규정이다.

 

합병 시 소멸회사의 주주들은 합병이 끝나면 소멸회사의 주주지위를 상실하므로 이에 대한 대가로 주식가치에 상응하는 무엇을 받아야 한다.  현금, 채무증서, 존속회사의 주식 등이다.  대가가 무엇이건, 소멸회사의 주식이 과소 평가되면 자신의 이익을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반대로 과대평가되면 존속법인의 주주이익을 해하는 것이다.  주식가치의 협상은 소멸회사의 이사회가 수행하며 종국적으로는 주주총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적정한 주식가치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문제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이용하여 과거 상장회사가 동일한 지배주주가 지배하는 비상장회사를 합병하면서 이를 과대평가하여 상장회사의 투자자 이익을 해하고 지배주주의 이익을 도모한 사례가 많았다. 

 

 그리하여 법은 비상장회사와의 합병 시 그 평가를 외부기관에 의뢰할 것을 강제하였다.  또한 상장법인의 가치는 시장가치에 따르도록 하였다.  상장회사와 상장회사 간 합병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합병가액을 시장가치에 따르도록 하였다.  반대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 그 가격 역시 유사하게 시장가치에 따른다.  따라서 합병에 관한 규정은 투자자 보호에서 한걸음 나아가 상장회사의 경영진에게 주식가치에 관한 협상을 필요 없게 만드는 편의를 제공하게 되었다.  투자자의 이익과 상장회사의 편의 간 균형점을 시장에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셈이다. 

 

삼성물산의 경영진들은 주어진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합병에 대한 자본시장법상의 규율에 따라서 행동했고 그래서 일단 원하는 결과를 얻었다.  엘리어트의 합병가액 산정의 불공정성 논란을 잠재웠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은 투자자 보호를 위하여 최소한의 기준을 정하면서 투자자를 보호한 것이 아니라 경영진을 보호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는 점에서 일견 패러독스이다.  또한 시장가치에 근거한 규율이 자본시장의 최첨단 플레이어인 헷지펀드에 의하여 도전받았다는 점도 일견 패러독스이다. 하지만 법이 법에 따른 자를 보호하였다는 점에서 예견가능성이라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고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가 확인되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인 삼성물산이 외국의 헷지펀드라는 투기적 자본과 싸워서 이겼다는 일차원적 분석에서 한걸음 나아가 법이 예견가능성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 공정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기 위하여는 어떤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할까?

 

금융규율당국이 투자자의 후견인 입장에서 합병가액에 대하여 규율을 할 것이 아니라 회사 경영진이 알아서 정하되 기본적인 원칙만 정하는 방법이 있다. 그럴 경우 현재의 자본시장법상 합병가액의 산정이나 절차에 관한 규율을 모두 없애고 상법 제398조를 본받아 공정한 절차와 가격이어야 한다는 원칙만 선언하는 것이다.  상법 제398조는 회사와 이사나 주요주주 등 이해관계자간의 거래는 공정한 절차와 내용을 따르도록 정하고 있지만 적용대상이 지극히 좁으니 이를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해상충으로 이사회가 특정 거래가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지 여부에 관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다는 상황 하에서 주주의 이익이 침해될 수도 있다는 우려는 합병의 경우에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는 언제나 공정한 절차와 내용에 관한 사법부의 사후적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종국적으로 사법부의 개별적 사건에 대한 판단이 누적되어 비교적 일반적인 사전적 기준이 설립될 것이며 외국에서의 선례나 기준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당장 모두의 시간과 고민, 노력이 필요하다.  이사회는 협상의 절차에 관한 그림이 필요하며 주주전체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공정 가치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사법부는 공정한 절차와 가치인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이는 최근의 금융개혁과 이에 따른 금융기업의 자발적 준법확보장치를 촉구하는 분위기에 부합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기업가치의 제고나 자본시장의 신뢰성 확보를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개입의 정도에 관하여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금융규율당국이 모든 기준을 제시하고 이들 기준이 잘 지켜지는지 늘 감독하는 시스템으로 새로운 경제의 창조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미래지향적 인식에서 출발한 바람직한 움직임이다.  또한 상황에 대한 신속한 대응이나 상장기업의 자금조달 편의보다도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과 일반투자자보호가 자본시장 규율시스템의 우선적 목표라면 한번 고려하여 볼 만한 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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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충적 대안으로서 현 공식의 기초인 시장가치의 신뢰성이 떨어지는 경우 일반적 또는 개별적 예외를 인정하는 것을 생각하여 볼 수 있다. 일반적인 예외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합병가액의 산정방식에 예외를 단서로 추가함으로써 가능할 것이고 개별적인 예외는 사법부가 사후적으로 사례를 축적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과거 하급심에서 주식매수청구가격 산정 시 시행령에 정한 공식의 적용을 배척한 사례도 있으나 대법원은 시장가치에 대한 맹신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도 2007년 금융위기 이후 외국의 금융규율당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주의적 재무이론에 기초한 시스템 확립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주시하고 시장과 공권력의 개입이라는 커다란 주제에 관하여 보다 심각한 고민을 하여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해상충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통하여 공권력이 다시 태어나고자 하는 사회적 노력에 부응하여 회사와 이해관계자간 거래 시 이해상충을 피하기 위하여 회사가 취하여야 할 공정한 절차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보다 깊이 있는 고민을 하여야 할 것이다. 

 

현재의 대규모기업집단 중심의 경제체제는 개별기업과 이해관계자간 거래 시 일반 투자자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는 확신을 주지 않으면 자본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정당성이 손상될 수 있다.  한편 기업들은 대규모기업집단 내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작업과 관련하여 걸핏하면 형사기소를 당하는 수모를 겪으면서 법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고 있다.  공정거래법에서 일감몰아주기라는 자의적 행정규제와 자본시장법보다도 광범위한 공시의무로서 대규모기업집단 내 이해상충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는 공권력이 원칙을 제시하면서 기업집단 내 이해상충의 문제를 기업에 맡기고 기업의 경영진들은 지배주주로부터 보다 독립적인 견지에서 주주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정한 절차와 공정한 거래조건이 무엇인지 우선적으로 고민하게 만들며 개별적인 경우에 주주들이 사법부에 민사적 구제를 구하는 방식으로 규율시스템을 바꾸는 것도 고려하여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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