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경제적 면에서 배임죄 구성요건 명확화의 필요성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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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행 배임죄 처벌제도의 개요
이에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어떤 경영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 적정성 여부를 고려하는 객관적 과정을 거친 경우에는 임무위배의 인식이나 불법이득의사가 없는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배임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추정하는 ‘안전장치’(safe harbor)를 법률에 규정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경영행위를 하기에 앞서 (i) 내부기구 내에서 자유롭고, 실질적이고, 심도 있는 토의를 하거나, (ii) 독립적인 지위에 있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신용평가기관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받거나, (iii) 행정기관에 질의를 내어 회신을 구하는 등 ‘어떤 행위의 충실의무 위반여부에 관하여 객관적 확인 절차를 거친 경우에는 배임죄의 고의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취지의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전장치 제도는 조세법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바, 잘못된 조세의 부과와 범죄의 처벌은 모두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동일한 성격을 가지므로 형법에서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함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배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다‘는 인식과 ‘자신이나 제3자가 이득을 보고 그로 인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고의범이라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도 “주관적 인식이 없는데도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하였다는 결과만으로 책임을 묻거나 단순히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물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여 고의범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런데, 이 2가지 주관적 구성요건 모두 그 개념이 불분명하다. 우선,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충실의무를 저버린다(breach of fiduciary duty)는 뜻인데, 관련 법령이나 법인의 정관상 또는 수임인이 본인과 체결한 계약상 지켜야 할 의무가 뚜렷하고, 그것에 위반하여 어떤 행위를 하였다면 해당 행위는 충실의무를 위반한 행위, 즉 임무에 위배된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령, 정관 또는 계약상 수임인이 지켜야 할 의무가 명시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경우 어떤 행위가 충실의무에 위반되는지, 아니면 허용된 권한의 행사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음, 배임죄 성립의 또 다른 주관적 요건인 ‘자신이나 제3자가 이득을 보고 그로 인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불법이득의사)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 또한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다. 불법이득의사를 갖고 어떤 행위를 하였다고 하기 위해서는 해당 행위가 원인이 되어 본인에게 손해가 발생할 수 있음이 행위시점에 분명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매우 많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의 매매행위를 하는 경우 ‘가격’ 결정의 주관성 때문에 매매가격이 적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매매가격이 시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경우가 아니면 그 적정성 여부는 ‘신’(神)만이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하나의 예는, 거래상대방에게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신용을 공여하는 경우 역시 ‘신용도’(credit rate) 결정의 주관성 때문에 해당 신용공여 행위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신용공여의 대가로 받기로 한 반대급부가 적절한지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법원 판례는 위 2가지 인식의 존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관하여 “문제된 경영상의 판단에 이르게 된 경위와 동기, 판단 대상인 사업의 내용, 기업이 처한 경제적 상황, 손실 발생의 개연성과 이익 획득의 개연성 등의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자기 또는 제3자가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다는 인식’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의 존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라고 하거나 “처리하는 사무의 내용, 성질 등 구체적 상황에 비추어 법령의 규정, 계약 내용 또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당연히 하여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하지 않거나 당연히 하지 않아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본인과 맺은 신임관계를 저버리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라고 하여, 이른 바 ‘종합적 요소’라는 모호한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대법원 2014. 6. 26. 선고 2014도753 판결; 대법원 2011.10.27. 선고 2009도14464 판결; 대법원 2011. 10. 27. 선고 2009도14464 판결). 이러한 배임죄 고의 존부에 관한 판단기준의 모호성으로 인해 어떤 사안을 두고 사실심 법원과 대법원 사이에 유․무죄가 엇갈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예를 들어, 「저축은행의 임원들이 임직원의 친척의 명의를 빌려 그들에게 토지구입비용을 대출하는 형식으로 골프장사업 부지로 사용할 토지를 구입하면서 근저당권 설정 등 채권확보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채 해당 저축은행의 자금 177억 원을 사용한」 사안에서 하급심 판결은, “피고인들이 골프장건설을 추진하면서 상호저축은행법 등 관련 법령을 위반하였다는 점만으로는 곧바로 배임죄의 고의를 인정할 수 없고, 피고인들은 골프장 용지를 매입하거나 골프장 건설을 추진하면서 사업타당성에 관하여 자체적인 조사와 논의를 거쳤으며, 일반적으로 골프장건설은 그에 대해 인.허가상의 각종 법령상 제약이나 행정적인 규제가 있는 상태 하에서 행정민원을 통한 해당 용지의 용도변경 등의 방법으로 추진되기도 하고, 피고인들이 위 추진 과정에서 해당 저축은행 자금을 방만하게 지출하였다는 의심의 여지는 있으나 개인적인 정실관계 혹은 부정한 사례금이나 청탁에 기하여 토지대금 등을 부풀려 지급하였다거나 아무런 대가 없이 사업비를 지출한 것으로는 보이지 아니하므로, 저축은행의 임원들이 저축은행에 손해를 가하고 제3자의 이익을 위한다는 배임의 의사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으나, 대법원은 배임의 고의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고 하여 유죄를 인정하였다(위 대법원 2011.10.27. 선고 2009도14464 판결).
또 위의 예와 반대로 하급심은 배임의 고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였으나 대법원이 그 고의가 없는 것으로 인정한 예도 있다. 즉, 「A 회사가 도시개발사업의 추진에 소요되는 자금 170억 원을 B 회사로부터 신용대출을 받는 데 대하여 C 회사가 연대보증을 함에 있어서 (i) C 회사는 해당 도시개발사업이 성공적으로 시행되는 경우에만 반대급부를 받을 수 있었고, (ii) 해당 연대보증을 하면서 적정한 담보를 확보하지 못하였으며, (iii) 해당 연대보증 제공 계약에서 피보증인인 A회사가 대출금을 사업권의 인수비용, 토지매입을 위한 계약금 등 C 회사에 신고한 용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의무 조항만 두었을 뿐,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iv) 이에 A회사가 해당 대출금 170억 원 중 160억 원을 다른 회사의 기업어음을 매입하는 데 사용한」 사안에서 하급심 법원은 “A 회사가 B 회사로부터 170억 원 상당의 신용대출을 받는 것에 대하여 C 회사가 연대보증을 함에 있어서 C 회사의 임원들이 적정한 담보를 제공받지 않고, 나아가 A 회사가 그 대출금을 다른 용도로 유용하는 것을 통제·감독할 상당하고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행위는 배임행위에 해당하고, 합리적인 경영판단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유죄로 판단하였으나, 대법원은 “연대보증을 한 C회사의 임원들이 연대보증을 받은 A 회사의 대출금 사용처를 통제·감독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을 주된 이유로 하여 업무상 배임죄에 있어서의 임무위배행위에 해당한다거나 위 임원들에게 배임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라고 하여 무죄의 취지로 판단하였다(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3도7360 판결).
2. 다른 나라의 제도
일본 형법 제247조는 “타인을 위하여 그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 또는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그 임무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여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한 때에는 5년 이항 징역 또는 5십만엔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하여 배임죄를 단순 고의범이 아닌 목적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단순한 불법이득의사 보다 강한 ‘불법이득의 목적’이 있어야 범죄가 성립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영미법에서는 배임행위에 관한 성문법 규정이 없고 오랜 기간 집적된 판례에 의해서 우리나라의 배임죄에 해당하는 ‘충실의무위반죄’(defalcation)의 구성요건을 해석하고 있다. 우선, 회사법상 배임행위에 대비되는 정당한 행위는 ‘경영판단’(business judgment)이라는 이름으로 민.형사적 책임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즉, 법인의 이사의 합리적인 ‘경영판단’(business judgment)에 대해서는 회사나 주주들에 대한 법적 책임을 지우지 않는바, 이러한 경영판단의 기준에 부합하면 형사책임을 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경영판단에 해당하기 위한 요건으로는 (i) 정직하고 편향되지 않은 판단일 것(충실의무의 준수), (ii)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 했을 것, (iii) 임직원, 변호사, 회계사 및 다른 전문가 등과의 상의 등 적절한 절차를 취했을 것 등이 있다(Harry Hen and John Alexander, LAWS OF CORPORATIONS, 3rd ed., pp. 661 to 663). 한편, 회사법상 이러한 경영판단의 범주를 벗어나 형사법상 충실의무위반죄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위반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행위가 임무에 위반되는 부적절한 것임 알았거나 또는 알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인식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알았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인식’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 없고 충실의무에 실질적으로 위반될 것이라는 위험’을 의식적으로 무시하였어야 한다[Neal v. Clark, 95 U. S. 704; Bullock v. Bankchampaign, N.A., 569 U. S. (2013)]. 따라서 단순한 부주의나 실수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3. 현행 배임죄 처벌제도의 개선 필요성
우리나라 헌법 제12조 제1항은 “누구든지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을 받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13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행위 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함으로써 근대 형벌제도의 근간인 죄형법정주의를 선언하고 있다. 이러한 죄형법정주의 주요한 내용의 하나는 범죄의 구성요건과 처벌 내용의 명확성의 원칙이다. 사물의 변별능력을 제대로 갖춘 일반인이 무엇이 금지된 행위인가를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헌법재판소 1992. 2. 25. 선고 89헌가104결정; 대법원 2002. 7. 26. 선고 2002도1855). 그런데, 우리 형법상 배임죄 구성요건으로서 위에서 본 2가지의 고의, 즉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한다’는 인식과 ‘자신이나 제3자가 이득을 보고 그로 인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이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애매모호하다. 피고인이 자백을 하지 않는 한 범죄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어차피 객관적으로 드러난 행위를 기초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데, 현행 구성요건만으로는 어떤 행위가 배임죄 고의의 존재를 추단케 하고, 어떤 행위가 이에 해당하지 않는지를 분간하는 것이 모호하여 예견가능성이 매우 부족하다. 따라서 현행 배임죄 규정은 순수하게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에 반하는 위헌적 측면이 강하므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편, 위와 같은 배임죄 구성요건의 애매성은 단순히 피의자나 피고인의 지위에 서게 된 국민들의 신체의 자유나 재산권과 같은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적용대상이 되는 사람들이 주로 각종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기업들의 경영인들이라는 점에서 기업 활동을 심각하게 위축하고, 이로 인해 국가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심각히 저해하는 문제도 야기하고 있다. 기업의 주요한 재산의 매매, 자본의 투자행위 또는 기업구조재편 행위 등을 할 때마다 배임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불러 일으켜 소극적 판단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배임죄로 기소된 기업경영인의 어떤 행위가 대법원까지 가면 궁극적으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이더라도, 그 행위에 대해 수사를 받고 소추될 수 있는 가능성만으로도 기업경영인은 해당 행위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경영인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우려에 사로잡혀 있음은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대부분 이미 공감하고 있다.
위와 같이 법률적인 면에서는 예견가능성의 결여로 죄형법정주의의 정신에 반하는 면이 강하고, 기업경영과 국가 경제의 면에서는 본의 아니게 보신주의 현상을 초래하고 있는 배임죄 구성요건의 애매모호성을 하루 빨리 제거할 필요가 있다.
4. 현형 배임죄 처벌제도의 개선 방향
진정으로 충실의무에 위반하여 개인적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있고, 국가가 이를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배임죄 자체를 폐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제는 그 범의에 관한 구성요건의 애매성이므로, 이를 제거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 방법으로는 우선 일본 형법에서처럼, 수임인이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자기 스스로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삼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고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즉 ‘불법이득의사’를 넘어 ‘자기 또는 제3자의 이익을 도모 또는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어떤 행위를 한 경우에 한하여 처벌하는 목적범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목적’이라는 추상적 요건을 추가하더라도 그 목적의 존부에 관한 판단기준 역시 어느 정도는 애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업경영인들의 관점에서 그 애매성이 충분히 제거되었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에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어떤 경영행위를 함에 있어서 그 적정성 여부를 고려하는 객관적 과정을 거친 경우에는 임무위배의 인식이나 불법이득의사가 없는 것으로 추정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즉, 배임죄의 고의가 없었음을 추정하는 ‘안전장치’(safe harbor)를 법률에 규정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떤 경영행위를 하기에 앞서 (i) 내부기구 내에서 자유롭고, 실질적이고, 심도 있는 토의를 하거나, (ii) 독립적인 지위에 있는 변호사, 공인회계사, 신용평가기관 등 관련 분야 전문가의 의견을 받거나, (iii) 행정기관에 질의를 내어 회신을 구하는 등 ‘어떤 행위의 충실의무 위반여부에 관하여 객관적 확인 절차를 거친 경우에는 배임죄의 고의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취지의 규정을 신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안전장치 제도는 조세법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바, 잘못된 조세의 부과와 범죄의 처벌은 모두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동일한 성격을 가지므로 형법에서도 이러한 제도를 도입함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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