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몰아냈던 미신이 되돌아오고 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관련링크
본문
세계가 놀라는 경제 발전과 사회 민주화를 이룩한 우리 사회가 느닷없이 어둡고 음침한 미신‧점술‧유사과학에 빠져들고 있다. 세대‧성별‧지역‧계층에 상관없이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관심이 국가적 강박증 수준이라는 외신의 평가가 나올 정도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던 미신타파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만 할 상황이다. 세계적인 천체물리학자 칼 세이건이 지적했듯이 미신‧점술‧유사과학은 개인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세상을 어둡게 만드는 악령이다. 어떤 경우에도 불안과 공포로 가득 채워진 어둠 속에서 세상을 밝혀주는 작은 촛불인 현대 과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관심도 대단하다. 숟가락 구부리기, 원격 투시, 수맥 찾기, 염력(念力), 공중 부양 등의 초능력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상상을 넘어선다. 국민들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중파 텔레비전 방송이 초능력을 자랑하는 외국인 마술사에 빠져들기도 했다. 마술이 과학적 원리와 첨단 기술을 이용해서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오락이라는 사실은 애써 감춰버린다. 오히려 시청자들에게 초능력의 실체를 증명해준다는 핑계로 엄청난 제작비를 낭비하면서 마술을 초능력의 신비화에 앞장선다.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 대학의 교수가 어느 날 갑자기 교직을 포기해버리고 풍수(風水)의 전도사로 변신했다는 소식이 사회적으로 대단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청소년들도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퍼지고 있는 이상한 귀신놀이에 빠져들고 있다고 한다. 두 자루의 연필을 엇갈리게 올려놓은 후에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단문으로 된 질문을 던지면 귀신이 연필을 통해서 답을 알려준다는 황당한 영상이다. 위에 올려놓은 연필이 돌아가는 방향에 따라 귀신의 답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 전부다. 올해 유튜브에 올라온 비슷한 동영상이 벌써 66만 개를 넘고, 그 중에는 조회수가 수백만을 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찰리 찰리 챌린지’라는 황당한 귀신놀이에 빠져든 청소년들이 심각한 정서 불안 증세를 나타내나가 결국에는 기이한 행동을 하거나 사고를 일으키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미신‧초능력‧주술에 빠져드는 것은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거부하는 반(反)과학적 정서의 확산은 사회적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지난 수 년 간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와 같은 엉터리 책이 확실한 증거다. 저자의 전문성은 물론 책의 내용도 경악할 수밖에 없는 수준이다. 수없이 등장하는 ‘카레’(curry)가 사실은 저자가 ‘care’를 잘못 옮긴 것이라고 한다. 엉터리 책에 속아서 소중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런 수준의 저자가 쓴 책이 출간되어, 서점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대학에서 교양강의의 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사회는 절대 선진국이라고 할 수가 없다. 겉으로만 화려하게 발전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정말 부끄러운 수준이다. 전통이나 과학에서 아무 근거도 찾을 수 없는 ‘백수오’가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것이 공연한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사실 미신‧점술‧무속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주술(呪術)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거친 야생(野生)에서의 위험과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연약한 인간이 거친 현실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자신의 안위를 지켜줄 초자연적인 도움을 원했던 것은 당연했다. 태양이나 달을 숭배하기도 했고, 산‧강‧호수‧바위를 신성시하기도 했고, 독특한 특징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을 집단의 수호신으로 모시기도 했다. 결국 인류 문명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친 자연에서의 삶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주술적 문화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도 있다.
복잡한 사회생활이 시작되면서 주술은 막강한 사회적 권력의 기반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동남아‧남미‧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원시생활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부족들에게 주술사는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자유‧평등‧인권을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사회에서 주술‧미신‧점술‧무속은 개인의 천부적인 권리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던 것이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다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귀중한 가축이나 이웃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도 마다할 수가 없었다. 그런 면에서는 우리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1960년대의 적극적인 미신타파 운동이 성과를 거두기 전까지 우리의 역사는 미신에 집착하는 어두운 사회였던 것이 분명하다.
세상이 달라진 것은 근대 과학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산업혁명 덕분이었다. 근대 과학혁명 이후로 밝혀진 과학 지식과 기술 개발 덕분에 이제 우리는 더 이상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 떠는 생활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 우리 스스로 자연을 이해하고, 끔찍한 자연 재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최소한의 노력으로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서 스스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는 뜻이다. 이제 더 이상 주술사의 황당한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의 정체성과 자존심과 안전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 현대 과학을 거부하는 사회에서는 건강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그동안 현대 과학기술의 열매에만 집착해서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바쁘게 달려온 우리 사회가 이제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서둘러 효과적인 치유책을 찾아내서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 전체가 어둠의 세상으로 추락해버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반세기 전에 시작했던 ‘미신타파’와 ‘과학기술입국’의 기치를 다시 세우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하는 상황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