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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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여를 끌어오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건설공사가 드디어 마무리되어 개관을 앞두고 있다. 국립기관으로는 드물게 지방도시인 광주에 건설된 아시아문화전당은 11월 공식개관에 앞서 건물이 일반에 공개되고 실험적인 공연을 몇 개 선보이면서 처음으로 중앙의 언론에서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에서 공연장의 방음이나 조명과 같은 시설상의 문제와 짧은 기간에 준비한 공연작품들의 내용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또한 박근혜대통령도 이미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광주아시아문화전당의 운영경비에 대한 지적을 한바 있었기에 이제 막 출범하려는 국립기관의 운영에 차질이라도 생기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만일 우리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시설이나 실험적으로 내놓은 몇 공연작품의 수준 따위의 기술적이고 부수적인 문제에 매몰되다 보면 정작 중요한 문화전당 건립의 국가적 의미나 그것이 가져다줄 무한한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왜 그러한 문화기관이 우리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것이 되어야한다. 이와 같은 본질적인 논의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 관한 국민적인 이해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1.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국제적인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아시아문화교류를 위한 거점도시를 대한민국에 건립하기위한 국가적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문화시설이다. 그러므로 우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음악당 같은 공연시설이나 미술관 같은 전시시설이 아니다. 문화전당의 부대시설인 공연장은 오페라나 교향악단 등을 위한 화려한 극장이 아니라 문화전당의 부속기관에서 제작되는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 공연물을 시연하는 가변적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문화전당은 미술관을 포함하고 있지 않고, 역시 부속기관의 창의적인 문화적 제작물들을 필요에 따라 전시할 공간을 갖추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진정 새로운 개념의 매우 실험적인 문화시설로서 아시아의 문화자원을 연구하고 교류하며, 아시아문화자원을 토대로 세계적인 문화 예술 콘텐츠를 창출하여 문화산업에까지 연결시키는 ‘문화발전소’역할을 하는 복합문화시설이다. 그러므로 아시아문화전당을 공연극장이나 미술관으로 간주하여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특이한 문화복합시설을 구상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한 답은 대한민국에 국제적인 문화도시가 필요하다는 현실적 요구에서 찾을 수 있다.
2. 대한민국에는 세계인이 찾는 문화도시가 없다.
20세기가 ‘산업도시’의 시기였다면 21세기는 ‘문화도시’의 시기이다.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의 사례가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20세기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였던 세계적인 산업도시 디트로이트는 미국자동차산업의 부침과 함께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20세기 중반 180만 명을 상회하던 인구는 이제 60만 명대로 줄었고 도심인구의 80%가 흑인으로 문화적 다양성이 제공하는 활력을 잃고 범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추락했다. 인구가 14만 명밖에 안되는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는 별다른 산업시설이 없지만 모차르트의 흔적을 찾는 년 간 800만 명에 달하는 외국인 관광객 때문에 여전히 활기찬 문화도시로 번영을 누린다.
이러한 극적인 대비에서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의 이행이라는 문명사적 전환과 그에 따른 도시발전의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읽어낼 수 있다. 사실 세계 각국은 시대의 변화 양상에 맞추어, 그리고 주변 환경 및 도시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도시의 발전을 도모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새로운 도시 유형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왔다. 이에 등장한 것이 문화도시의 개념인바, 이는 ‘문화’가 도시 활성화를 위한 전략의 핵심수단으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즉 문화가 고부가가치의 미래형 산업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가나 도시의 경쟁력과 개인의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요소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는 국제적인 문화도시가 존재하는가? 불행하게도 대답은 ‘아니오’이다.
2012년 한국을 찾은 외국인관광객의 수가 1천만 명에 달한 후 2014년에는 그 숫자가 1천4백만 명을 넘었다. 문제는 그들의 80%가량이 서울을 찾는다는 점이다. 근래에 제주도를 방문하는 중국관광객이 늘어 약간의 분산이 이루어졌으나 한국은 여전히 서울공화국으로 남아 서울을 제외하면 세계인이 찾아오는 (문화)도시가 없는 셈이다. 한국과 인구가 비슷한 스페인을 보면 스페인을 찾는 해외관광객의 숫자가 한국의 다섯 배가 넘지만, 한국과는 정반대로 수도 마드리드에는 20%만 몰리고 나머지 80%는 세비야, 그라나다, 톨레도, 코르도바, 바르셀로나 등지로 고루 분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앞서 언급한 오스트리아의 경우도 작은 시골도시 잘츠부르크를 찾는 해외관광객이 거대한 수도 비엔나의 그것보다 더 많다. 외국의 사례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수치는, 21세기 문화의 세기에, 한국에서의 문화도시조성사업의 필요성과 그 방향이 어떠해야하는지를 가늠케 해준다.
3. 한국의 문화도시조성사업의 성공은 새로운 모델의 개발에 있다.
문화도시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카이로, 로마, 시안 같은 ‘역사적 문화도시’, 프린지 페스티벌로 년 간 2백만 명을 끌어 모으는 영국의 에든버러로 대표되는 ‘문화향유형 문화도시’, 잘츠부르크처럼 모차르트라는 콘텐츠를 앞세운 ‘콘텐츠형 문화도시’, 미국의 라스베가스 따위의 ‘관광레저형 문화도시’ 등등이 잘 알려진 유형들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그동안 이러한 유형의 문화도시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어왔다. 신라의 천년고도였던 경주를 국제적인 문화도시로 만들려는 노력은 이미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시작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적의 대대적인 발굴과 보수, 대규모 보문관광단지의 건설, 도시전체의 정비, 세계문화엑스포의 개최 등 1970년대 이래 수조원의 재원이 투입되어 경주는 편리한 교통인프라와 관련시설을 두루 갖춘 문화도시로의 면모를 구비한지 오래다.
그러나 국제적 역사문화도시로서 경주가 상대해야 할 경쟁자들은 카이로나 로마, 아니면 중국의 시안 같은 도시들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많다. 안타깝게도 경주는 경쟁도시들이 적게는 수백만에서 많게는 천만 명에 이르는 외국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데 반하여 여전히 세계인의 이목을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에든버러의 유형을 따라 한국의 수많은 도시와 지자체에서는 갖가지 종류의 축제를 경쟁적으로 개발하여 시행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적으로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왔음에도 국제적으로 알려져 인정받는 축제의 등장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문화적 콘텐츠에 초점을 맞춰 문화도시를 조성하려고 한 사례로는 통영이 좋은 보기이다. 즉 통영은 아름다운 음악당을 건설하고 국제음악제를 창설하여 ‘윤이상’이라는 콘텐츠를 내세운 문화도시를 구상해왔다. 그러나 이 역시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한듯하다. 관광레저형 문화도시는 인천 등 몇 도시에서 외자를 끌어들여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대규모 위락시설을 건설하려고 하는 사례들이 있는바 이러한 시도의 성공 여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바로 이러한 현실적 경험이 한국에서 문화도시를 조성하는데 있어서는 상투적인 문화도시의 유형을 쫓기보다는 세계인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새로운 발상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싹트게 되었다.
4. 대안적 문화도시의 모형을 블루오션에서 찾다.
스핑크스와 피라미드, 콜로세움, 진시황제의 병마용 등은 세계인들이 너무나 잘 아는 역사적 유산들이며, 프린지 페스티벌은 에든버러라는 아름다운 고도에서 70년에 가까운 오랜 기간에 걸쳐 성장해온 축제이다. 그리고 모차르트라는 콘텐츠는 잘츠부르크에만 있다. 그렇다면 예술적 콘텐츠나 세계적인 역사적 자산이 없다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문화도시의 조성은 불가능한 것인가? 다행히도 우리는 새로운 모형의 가능성을 브라질의 꾸리치바와 독일의 프라이부르크에서 찾을 수 있다. 꾸리치바는 ‘환경’이라는 콘텐츠로 문화도시의 반열에 올랐고, 프라이부르크는 환경과 국제적인 네트워킹의 절묘한 조합을 통하여 문화적으로 존경받는 도시가 되었다. 지면관계상 이 둘 중 프라이부르크의 사례만을 살펴보면, 지극히 평범한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1970년대 초 인근에 원자력발전소를 짓는 계획에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일으켰다. 프라이부르크시민들은 인접한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주민들과 국제적인 공조를 이끌어내면서 환경단체들의 국제적인 네트워킹을 구축하였고, 반대운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뒤 원자력발전소에 반대한 궁극적인 이유였던 환경보전활동을 시정에 체계적으로 제도화하여 반영하고 생활화하는 운동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 녹색당의 창당, 국제적 환경단체 사무소들의 유치, 친환경적 도시계획의 시행이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도시의 에너지원을 풍력, 수력, 태양광으로 대체해나가고, 그에 따라 친환경, 재활용 산업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 프라이부르크에서 개최되는 태양광 엑스포는 경제적으로 가장 우수한 엑스포가 되었고 태양광 발전에 관한 최첨단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속속 들어섰다. 한마디로 프라이부르크는 국제적인 환경단체네트워크의 중심, 그리고 신 재생 에너지의 연구와 개발의 선도도시로 우뚝 서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도시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제는 널리 알려진 프라이부르크의 보봉 생태주거단지는 세계인이 끊이지 않고 찾아가는 견학의 장소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례를 참고하여 구상할 수 있는 새로운 모형은 어떤 것이 있을까?
5. 아시아문화의 가치와 문화의 교류에 초점을 맞추다.
광주에 아시아문화전당을 짓는다고 했을 때 경주에 비해 역사문화적 자원이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상당한 반대 의견들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사실, 즉 역사문화적 자원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조건이 다른 국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래서 역설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새로운 유형의 문화도시를 구상하도록 작용하였다. 경주, 통영, 인천 등의 도시에서 추구해온 기존의 문화도시조성사업은 그동안의 많은 투자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남들이 시도해 본적이 없는 새로운 발상과 접근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광주가 선택한 모형은 프라이부르크의 환경과 국제적 네트워킹이라는 틀에서 ‘환경’을 ‘아시아문화’로 바꾸는 방식을 취했다. 아시아문화 교류의 거점을 광주에 구축하고자하는 발상은 광주의 경험에서 기인한 것이다.
광주는 불행하게도 5.18을 겪었지만, 그 불행 때문에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은 한국의 도시가 되었다. 그리고 1987년 한국의 민주화는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한국의 민주화경험을 배우려고 광주를 찾도록 만들었다. 또 하나, 광주는 1995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국제적인 미술비엔날레를 시작하여 세계 5대 비엔날레로 발전시킴으로서 국제적 문화교류와 네트워킹의 경험을 축적한 지방도시가 되었다. 그렇다면, 아시아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그것을 창의적 문화자산으로 바꾸어 교류하는 거점을 광주에 구축한다는 것은 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동시에 바람직한 면이 있다. 우선 우리는 21세기는 아시아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말을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다. 서구의 근대성이 초래한 심각한 모순과 파괴는 우리로 하여금 21세기 문명사적 전환을 위한 대안의 모색은 아시아가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에 주목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21세기에는 문화적 다양성이 꽃피는 토양을 가꾼다는 면에서 아시아 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아시아 지역은 새로운 인간형을 탄생시키는 공동체의식의 배양공간으로서,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보존과 생성의 기반으로서 각별한 의미를 보유하기 때문이다.
아시아문화교류의 거점으로서 아시아문화전당은 큰 틀에서 아시아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연구와 자료 수집을 담당하는 연구센터와, 수집된 자료와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아시아문화 콘텐츠를 창출하는 창조센터, 그리고 그러한 문화콘텐츠에 기초 한 창조적 성과물들을 시연하는 공간으로 구성되는 선순환의 기본 구조를 갖도록 설계되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문화전당이 아시아인과 함께 문화콘텐츠의 창·제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 그에 따라 일자리창출과 경제 활성화의 효과도 가시화 될 것이다. 또한 전당 내에는 아시아교류센터가 설립되어 학술, 예술, 민간교류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특히 아시아문화예술인들의 교류와 소통을 위한 다양한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마련된다면 이는 한국문화외교(文化外交)를 위한 새로운 디딤돌의 역할을 해 낼 것이다. 그리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노력은 한국의 장래에 헤아릴 수 없는 값어치의 자산으로 변모 할 것이다.
6. 장기적인 안목과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개관을 앞두고 우려되는 대목이 콘텐츠문제이다. 그동안 정부는 건물의 완공에 치중해온 나머지 건물을 채울 콘텐츠와 운영프로그램에 대한 투자에는 적극적이지 못했다. 특히 건물의 완공이 5.18사적보존을 둘러싼 일부단체의 반대에 부딪쳐 공사가 지연되는 우여곡절을 겪으며 소프트웨어에 대한 예산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문화전당의 완전한 개관은 준비가 부족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의 근본적인 의미를 훼손하는 구실로 삼아서는 안 된다. 문화의 결실은 시간을 요한다. 조급함을 버리고 인내하며 가꾸고 몰입해야한다. 분명한 것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에 세워졌지만 국가의 백년지대계와 관련이 있는 사업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한다. 사실 일부 언론에서 지적한 문제들은 개관일정에 쫓기며 짧은 기간에 만들어낸 결과물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돌이켜 보면 건물의 완공이 지연되는 바람에 콘텐츠를 위한 사업을 활발히 진행시킬 수 없었던 것이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관련 자료를 꼼꼼히 살펴보면 극히 작은 수에 불과하긴 하지만 문화전당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업의 윤곽을 제시해주는 파일럿 프로젝트들이 몇 있었다. 대표적인 예를 세 가지 든다면 다음과 같다: 아시아의 다양한 민속악기들을 다루는 각국의 음악인들이 모여 창작음악을 만들어낸 한-아세안 오케스트라의 실험, 샤머니즘의 문화적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중앙아시아와 한국의 학자와 예술인들이 공동으로 문화콘텐츠의 기초를 이루는 스토리를 발굴해본 한-중앙아시아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위원회, 아시아문화에서 발견되는 환경친화적인 기술에 관한 공동연구. 중요한 사실은 이들 모두가 각각 순회공연, 음반제작, 에니메이션 또는 희곡이나 시나리오로 발전시켜 문화산업 쪽으로 연계 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파일럿 프로젝트들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아시아 전래의 환경친화적 기술의 일부는 쉽게 실용화 될 가능성을 갖는 것들이다. 앞으로 아시아문화전당에서의 사업은 이러한 성격을 갖는 계획들을 더욱 많이 구상하고 발전 확대시켜 나아가야한다. 내친김에 한마디 더 사족을 달자면, 아시아문화전당에 다보스포럼 같은 권위 있는 아시아문화포럼을 창설하여 둥지를 틀게 하거나, 문화전당 내에 유네스코의 국제교류센터 따위를 유치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보다 구체적인 계획은 이미 정부당국과 문화전당소속 기관의 책임자들이 이미 완성해가고 있으리라 믿는다.
7. 맺는 말
때마침 현 정부는 문화융성과 창조경제를 주요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광주에 들어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그러한 국정과제를 구체화하는 하나의 구심점이 되리라 믿는다. 더 나아가, 세계화와 인류문명의 발전에 관한 동양적 모델을 새롭게 모색해보고, 그에 따라 아시아의 문화를 재조명해 보는 작업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과제라 한다면, 광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은 참으로 국제적인 관심의 대상이 될 만도 하다. 이제 겨우 전체 사업의 기본적 윤곽이 잡힌 이 사업은 아직도 불완전하고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본 사업이 담고 있는 깊은 철학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사업의 성공적 달성은 그 파급효과가 광주와 한국의 국경을 넘어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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