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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이 탄생하려면 <5> 전문화의 길, 협업의 길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7년10월16일 18시05분

작성자

  • 김도훈
  •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전 산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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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나라 주력산업들이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은 이제 산업 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그런 느낌이다.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운, 조선 같은 산업들만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다. 우리 수출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기존 주력산업들이 모두 그런 위기감을 느끼고 있고 각자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하는 다양한 노력을 강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가 입버릇처럼 사용해 왔던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에 이제야말로 나서야 할 것 같다. 정부든 기업이든 그리고 산업 전문기관이든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단골 메뉴로 기술경쟁력 향상을 위한 R&D에 가일층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해답을 제시하곤 해 왔다. 과연 그것으로 해결될까? 지금까지도 기술개발, R&D 방면에서 거의 세계 최고 수준급의 노력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동안의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의 목표를 전략의 변화에서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술개발, R&D를 하더라도 어떤 기술을 목표로 하고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심각히 고려해야 할 시기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산업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려고 할 때 가장 많이 참고해 왔던 케이스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방식과 독일의 히든챔피언 방식이 아닐까 싶다. 시기에 따라 어느 한 쪽이 강조되기도 하고 때로는 양쪽을 섞은 전략이 제시되기도 했던 것 같다. 기실 두 케이스들은 모두 우리가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찾으려는 우리 산업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두 케이스들을 모두 참고하려 하거나 혹은 섞어도 될 일인지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실리콘밸리 방식은 그야말로 세계 모든 곳의 탤런트들을 결합하여 새로운 산업을 열어가는 이른바 ‘협업’의 방식이라면, 히든챔피언 방식은 자신이 강점을 가지는 분야의 기술력을 끊임없이 향상하여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경쟁력을 갖추어 나가려는 이른바 ‘전문화’의 방식이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는 거의 상반된 방식이기 때문이다.

우리 산업들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어떤 방식이 더 적합할 것인가?

이웃 일본의 경우를 보면 아무래도 독일 히든챔피언 방식의 기업들이 새로운 산업영역을 구축해 나가는 모습이다. 특히 핵심소재, 부품 등의 분야에서 그런 기업들이 많다는 사실은 우리 산업들이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그런 기업들의 핵심 소재, 부품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잘 알려져 왔다. 우리나라 중견, 중소기업들 중에서도 이런 전문화의 길을 걸어서 어느 정도의 성공 스토리를 써 가는 케이스들이 종종 눈에 띄어 반갑기도 하다.

 

그렇지만 우리 산업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대기업들이나 그들과 함께 주력산업의 경쟁력을 만들어가는 협력업체로서의 많은 중소, 중견기업들이 이런 방식의 전문화의 길을 걸을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이들 대부분은 지금까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적절한 영역에서 적절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후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함께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산업을 키워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명제가 나오면 각자가 자신들이 맡은 분야에서 적절한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상당 수준의 R&D를 추진해 왔고 그것이 지금까지는 잘 맞아떨어져 온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산업을 일구어 온 대부분의 우리 기업들에게 몇 가지 특정 분야에서만 지속적으로 자신의 기술력을 키워나가는 히든챔피언 방식으로 변신하라고 요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때그때 일정 정도의 성공을 거두어 온 우리 산업으로서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전문화의 길은 아무래도 적성에 맞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은 변화의 방식은 협업의 길인 셈이다. 과연 우리 기업들이 이 방식은 쉽게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나라 대기업과 협력업체인 중소, 중견 기업들 사이에 일하는 방식도 협력이라고 부르고 있는 만큼 우리 기업들도 새로운 협업 방식에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실리콘밸리 방식의 협업방식과 우리 기업들 사이의 협력방식의 결정적인 차이는 기업들의 개방성이 아닐까 싶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 끊임없이 새로운 탤런트를 가진 기업들과 협력하려고 애쓰는 데 비해 우리 기업들은 계속 함께 일해 온 협력업체들과 거의 배타적으로 가족처럼 일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파트너들을 맞아들이는 데 매우 소극적이라는 점에서 실리콘밸리 기업들과는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산업들은 대부분 이러한 우리 기업들끼리의 협업보다는 선진 기술을 가진 외국기업들과의 합작을 통해 기술력을 얻어서 그 기술을 우리 나름대로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통해 제품과 생산방식을 향상시켜 이루어낸 결과인 셈이다. 즉, 아직까지 우리 기업들끼리 협업을 통해 일구어낸 성공적인 신산업의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기업문화를 감안할 때 자신들의 모든 것을 열어 놓고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신산업을 개척해 나가는 일은 쉽지 않을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 산업들이 어떤 길을 걸어야 할까?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수확 또한 장기간 지속될 ‘전문화’의 길일지, 아니면 기업문화를 개방적으로 열어 새로운 파트너들과 새로운 산업을 함께 열어가는 ‘협업’의 길일지. 두 가지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우리 기업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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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0월16일 18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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